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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성욱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20세기 문화이미지』

‘문화기술’의 기억과 근원

 

 

이동연 李東淵

문화평론가, 성공회대 연구교수 sangyeun@hitel.net

 

 

김추자선데이서울 20세기-문화

1년 6개월간 준비 끝에 이성욱(李成旭,1960~2002)의 유고집이 완성되고 조촐하게 마련된 출간기념회를 마친 후, 책임편집을 맡은 나는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홀가분한 느낌보다는 고인의 삶의 유산들이 이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기억되겠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유고집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 파일을 뒤져 목록을 만들고, 출간의 윤곽을 그리고, 난삽한 유고들을 ‘겸손하게’ 손질하고 다듬는 시간만큼은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고인과 교감할 수 있었지만, 고인 스스로 그리 대단하게 뽐내지 않았을 법한 4권의 유고집이 막상 세상에 나오니, 정말 한 인간의 글 삶이 마감되고 이제는 그의 문화기술이 과거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허탈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장담컨대 이성욱이 생존했더라면 이 4권의 책 모두가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을 거다. 주제에 맞게 써야 할 글이 더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의 천성이 원래 자신의 원고를 꼼꼼하게 기획하고 관리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온갖 문화의 영역을 넘나들던 전방위 ‘글발’에 비해 그가 생전에 남긴 책은 달랑 한권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가 요절했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4권의 유고집이 내게 아쉬움을 더하는 것도 이 역설 때문이다. 유고집이라는 게 대게 그런 사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성욱의 유고집이 출간된 과정은 삶의 근거와 텍스트의 근거가 배리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삶과 글이 모순된다는 게 아니라 글이 삶속에서 일부가 되어 굳이 텍스트의 물적 근거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배리 말이다. 그 배리가 클수록 문화적 삶의 자유는 그만큼 많았을 거다.

이성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진지한 ‘학구파’이면서도 몸으로 다종다기한 생쇼를 부리는 ‘잡기파’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문학평론가 이성욱보다는 문화평론가 혹은 ‘문화건달’ 이성욱의 기억이 더 살갑다. 유고집을 준비하면서 솔직히 문학평론집이나 박사학위 논문보다는 2권의 문화평론집에 좀더 신경이 간 것도 그런 연유이다. 고인의 문화체험을 통해 70년대 문화의 흔적들을 생생히 읽을 수 있는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생각의 나무 2004, 이하 『쇼쇼쇼』)와 90년대 이후 달라진 문화환경과 자본주의 문화키워드를 감지할 수 있는 『20세기 문화이미지』(문화과학 2004)는 문화일상과 향수에 대한 후일담과 당대의 문화적 사건을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 아닌 1인칭 직접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이 두 권의 문화기록서는 70년대식 문화키드의 색기발랄하고 죄충우돌하는 ‘문화요람기’ 안에 산업화시대의 문화적 향수가 어떤 언어로 발산되고 있는지를 고백하고 있고, 한국 대중문화의 계보 속에서 발견되는 문화키워드와 문화토픽, 그리고 문화이미지들을 스케치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문화를 운동으로 정치로 사고할 수 있는 인식적 토대와 사건에 대한 담론적인 개입이 가미되어 있어 너무 무겁지 않은 대중문화 체험서이자 문화계보학이고 문화운동서이다.

『쇼쇼쇼』와 『20세기 문화이미지』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는 한 개인이 살아온 시대에 대해 문화적으로 말을 거는 1인극 같은 것인데, 전자가 후기자본주의 이전의 문화적 체험과 문화적 계보의 에피스테메(episteme)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후자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를 관통하는 문화적 키워드와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에쎄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서면로터리 북성극장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선데이 서울』을 탐닉하며, 김추자에 반하고, 남포동 대연각에서 걸춤을 추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개인적으로는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연상시키는 성장기 청년문화 마니페스토(manifesto) 같아 보이면서도 『쇼쇼쇼』의 후반부에는 자신의 경험공간과 ‘그때 그 시절’을 객관화하려는 ‘대중문화 100년의 계보’가 도해된다. 『쇼쇼쇼』는 그런 점에서 문화적 근대성이 종말을 고하던 즈음에 본격 소비문화와 살갗을 대던 한 소년의 문화적 충격과 흉내내기가 대중문화 100년의 계보학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해답은 이미 고인이 된 이성욱의 유고집 행간을 독해하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고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생기발랄한 문화적 체험을 전달하는 1인칭 직접화법의 글쓰기에서 대중문화는 즐거움의 대상, 감각적 흥미로움의 보고로 기록되다가, 대중문화의 계보와 문화적 에피스테메를 규정하는 3인칭 시점의 글에서 대중문화는 대체로 자본과 권력의 산물로 기록된다. 시점의 차이에 따른 관점의 분열은 대중문화에 대한 이중잣대로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성욱 개인 혹은 그의 세대 자체가 그러한 이중잣대 속에서 살았다는 점일 것이다.80년대 진보적 문화운동가나 조직가들의 감성에는 항상 70년대 대중문화의 아우라가 몸에 사무쳐 있다. 다만 그것이 운동의 당위적 논리 속에 억압되거나 잠재되어 있었을 뿐이다.90년대 소비자본주의의 본격 출현 이후 많은 진보적인 문화운동가들이 대중음악, 영화, 만화, 라이프스타일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프로이트 말대로 ‘억압된 것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이성욱의 이 유고집들은 유독 그러한 시점의 차이와 관점의 분열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여 『쇼쇼쇼』에서의 대중문화적 감성들은 『20세기 문화이미지』의 비판적 시대읽기의 자양분이 된다. 내가 『20세기 문화이미지』 서문에 쓴 내용이긴 하지만, 그의 글의 뿌리는 70년대 근대주의의 문화적 낭만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감각에서 자극받은 글쓰기이지만, 그의 글들은 늘 과거회귀적이면서 과거지향적이었다.90년대에 대해 쓴 글들을 보아도 그의 이야기에는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70년대적 감수성을 통해서 8,90년대를 관찰하기도 한다.

『20세기 문화이미지』에 있는 다양한 기록을 낭만주의적 프리즘으로 투사한 ‘생활의 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정서적·감성적 근원의 흔적들이 동시대 대중문화에 대한 글쓰기에서 드러난 탓 때문이다.‘복고’ ‘판타지’ ‘몸’ ‘휴대폰’ ‘공주병’ ‘체 게바라’와 같은 세기말의 문화키워드를 탐색하는 글에서 그는 대중들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기록하고 있고, 축구와 월드컵, 보신탕, 아프가니스탄, 황수정, 유승준, 강준만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생활 속의 문화, 문화 속의 생활을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의 발견’을 가로지르는 인식적 틀에는 그의 70년대적 감수성이 깊게 관여되어 있다. 그래서 이성욱에게 ‘쇼쇼쇼’와 ‘김추자’와 ‘선데이서울’은 『20세기 문화이미지』를 간파하는 자장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문화평론가 이성욱을 우리 시대의 문화기술자라로 말하고 싶다. 문화기술자는 온갖 다양한 문화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즐거운 화술과 통렬한 시점으로 구성할 줄 아는 문화적 테크니션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화적 테크니션으로서의 이성욱은 의례적인 허풍과 예외적인 진지함을 함께 견지하고 있어 한 개인이 포괄하기 힘든 다양한 영역에 온갖 언어로 개입한다.

이 두 유고집의 미덕이면서도 아쉬운 대목이 바로 그 지점이다. 물론 고인의 최종적인 손길이 없는 상태에서 출간할 수밖에 없었지만, 글의 편차나 간극이 심해 제목만큼의 일관성을 얻기가 쉽지 않다.70년대 말 부산에서의 문화요람기가 대중문화 100년의 계보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고, ‘방석집’과 ‘카바레’라는 근대공간에 대한 추억이 어떤 점에서 시대의 아우라이자 토픽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시선이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문화기술자로서 이성욱은 문화적 근대성에 대한 연구, 한국 대중문화통사에 대한 담론적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쇼쇼쇼』와 『20세기 문화이미지』는 그러한 한국적 문화연구를 독려하는 미완의 기획이자 후배 연구자들에게 문화연구의 자발성을 촉구하는 격문으로 충분히 대접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