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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P.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새물결 2004
신사학의 선구자 뽈 벤느
이학수 李學洙
부경대 사학과 강사 leefrance@hanmail.net
최근 대학의 사학과에서는 전공학생들을 위해서도 사학개론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학생이 모두 어렵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반면 출판계에서는 최근에 역사이론서들을 연달아 출판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비롯, 신사학·미시사학에 관한 이론서들과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비판하는 또다른 역사이론서들(『서발턴과 역사학 비판』 『역사를 보는 눈』 『역사의 풍경』 『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이론에 대한 강한 욕구와 역사학 방법론 모색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런 시기에 원서가 출간된 지 약 30년이 지난 뽈 벤느(Paul Veyne)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Comment on écrit l’histoire, 이상길·김현경 옮김)가 번역 출간되었다.
뽈 벤느는 아날학파의 역사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한 것이 분명하다.1971년이라면 브로델이 역사학에서 권력을 누리던 시기였고,아날학파가 전세계 역사학을 주도하고 있을 때였다.그런데 벤느는 무모하게도 아날학파의 구조계량사,심성사,역사사회학적 연구들을 전면 부정해버렸다.이러한 주장은 기성 사학계로서는 무척이나 당혹스런 일이었다.미셸 드 쎄르또(Michel de Certeau)는 『아날』지에서 “엑상프로방스의 다비드가 프로방스의 깃발의 높이 쳐들고 빠리의 모드에 대항하여 싸움을 걸어왔다. 그의 350면짜리 역사이론서에 차라리 ‘역사를 탈식민지화하라’라는 제목을 붙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벤느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아날학파의 반대입장에 서는 역사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셸 푸꼬(Michel Foucault), 앙리-이레네 마루(Henri-Irénée Marrou), 미셸 드 쎄르또, 뽈 리꾀르(Paul Ricoeur), 프랑쑤아 도스(François Dosse) 등이 등장하면서 약간씩 힘을 얻어가다가,1990년대에 들어와 아날학파가 쇠퇴하면서 비로소 이들의 주장은 인정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1971년에 출판된 이 저서가 오늘에야 한국에 번역본으로 소개된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단아 벤느는 기존의 역사방법론을 온통 부정해버린다. ‘대문자(History)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일하고 총체적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며 과학으로부터 기대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역사학은 설명하지 않으며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벤느에게 있어서 역사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야기이며 줄거리이다. 그가 “역사는 실체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텍스트 활동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이며 총체적인 역사가 없다는 뜻이다. 역사는 텍스트 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역사와 소설은 같다고 주장한다. 이 둘의 차이란 단지 소설이 그럴듯한 사실이거나 허구적인 이야기인 데 비해 역사는 진정한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어느 보행자가 교통경찰이 도착했을 때 “내가 이야기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역할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사고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줄거리의 구성방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스·로마인들은 기부와 자선을 많이 했는데, 이를 설명하는 데 대략 세 가지 줄거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벤느는 직접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벤느는 맑스주의 역사학·경제사·총체사 등의 이론을 비판하고 나아가 사회학과 역사학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선 역사적 운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거대이론은 매력적이고 지적이긴 하지만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배격한다. 로마 사회경제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 출신의 로스또프쩨프(Mikhail Rostovtsev)의 경우,3세기 로마제국을 관통했던 정치적 위기를 농민대중을 대표하며 황제에게 충성하던 군부와 원로원을 장악하고 있던 도시부르주아 간의 갈등으로 설명했다. 그는 로마제국의 위기를 어떤 사건을 전달하듯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의 작업은 도·농간의 갈등을 유형화한 것이다. 하지만 벤느는, 유형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고 선택되는 것이므로 유형에 의존하게 되면 설명을 단축시키게 된다면서 유형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흔히 우리가 주장하는 연속성에 대해서도 벤느는 부정하고 있다. 고대의 기부관행, 기독교의 자선, 현대의 원조와 사회보장제도 등은 공통점이 전혀 없고 동일한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간 것도 아니며 동일한 동기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역사가들은 사회 전체의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기부형태의 연속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기만이며 억지스러운 계보라고 주장한다.
부록 「역사학을 혁신한 푸꼬」에서는 푸꼬가 역사라는 빙산의 숨겨진 부분을 찾아내어 역사의 연속성, 보편구조와 총체성 등을 거부하고 단절과 불연속성을 주장했다면서 그를 위대한 역사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푸꼬가 역사학을 풍부하게 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아날학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벤느의 지지자도 아닌 비교적 역사의 주류에서 비껴 있던 앙뚜안느 프로(Antoine Prost)는, 벤느의 주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역사 12강좌』에서 점잖게 지적하고 있다. 즉 역사가 실제 발생한 사건의 소설이고 역사적 진실은 어디까지나 단편적이고 역사는 결코 온전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역사적 진실은 누적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언젠가는 전체 지도를 완성하게 될 것으로 믿고 부분 지도들을 그려가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벤느는 아마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국내 사학계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벤느의 주장들은 여러모로 생소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정통파(?) 역사학자로 ‘역사는 과학이며 인과관계로 설명하는 학문분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느는 자신의 역사이론을 주장할 때 순전히 이론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매 심급마다 역사적 예들을 들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또한 미시사 내지 신사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도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연구 없이 외국의 역사이론만 수입해 소개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연구를 하는 데 벤느의 이 저서는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틈만 나면 벤느의 강의를 들은 바 있고 대학원에서 현재 사학개론을 강의하는 평자도 솔직히 말하면 역서를 읽어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때로는 원서의 해당 부분을 대조하고서야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곤 했다. 아마 이 상태대로라면 역사이론의 고전인 이 저서가 서가에 꽂히긴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번역의 까다로움과 역자의 노고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더구나 특정 분야는 그 분야의 전공자만이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난해한 역사이론(역사철학·과학철학·역사학방법론·사학사)과 천하를 주유하듯 고대에서 현대까지 건너뛰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잡기가 역자들에겐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몇가지 아쉬움이 보인다. 전적으로 편집상의 오류임이 분명한 숱하게 잘못된 불어표기(예컨대 Félix Fénéon을 악센트 없이 Felix Feneon으로 한 것, 32면)와 대소문자의 구분이 잘못된 것, 플로렌스와 피렌체의 혼용, 프로이센과 프러시아의 혼용 등은 독서의 순조로운 진행을 막고 있다. 또 친절하게도 역주를 달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지만 역사학 자체보다 문학 쪽에 치우친 자의적인 선택도 아쉽고, 어색한 번역도 군데군데(비스마르크가 엠스의 급전을 보냈을 때, 66면; 예수의 정열, 80면; 의식에 자갈의 불투명한 무게를 준다, 139면) 눈에 띈다. 이상의 것들은 재판인쇄에서 바로잡았으면 좋겠고, 출판사에서도 역사이론 전문가에게 교열을 한번쯤 거치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읽히는 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