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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 저서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등이 있음. prlee@knou.ac.kr

 

 

1. 지속가능성과 정부의 환경정책

 

한국도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체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하려는 것은 엘마 알트파터(Elmar Altvater)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영구운동기관을 만드는 시도와 같을지 모른다.1 영구운동기관은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도 일을 하기 때문에, 이 기관을 움직이는 데는 에너지를 조달하고 폐기물을 쏟아내는 과정이 생략된다. 제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다른 운동기관과 달리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자본주의체제는 끝없는 팽창을 추구하는 체제이고, 끊임없이 자원이 공급되어야 한다. 특히 고갈될 운명의 에너지 자원이 한 순간이라도 공급되지 않으면 이 체제는 붕괴되고 만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체제 속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에너지자원이 끝없이 소모되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이 체제를 떠받치는 석유·석탄·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일회용이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끝없는 번영을 꾀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표현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구운동기관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성립할 수 없듯이, 고갈되는 자원에 기초한 자본주의체제에서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화석에너지 중에서도 석유는 산업사회의 혈액과 같은 것으로 이것이 없이는 현대 자본주의체제가 지탱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석유는 세계화론자,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동력원이다. 이들은 석유를 이용해서 그리고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계를 움직이며 팽창해간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석유는 세계화의 동력원이었고, 지금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본 동력으로 작용한다. 엑슨-모빌, 셸, 셰브론-텍사코 같은 석유 멀티들은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엄청난 자본력을 동원하여 석유를 차지하려 한다.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거칠 것 없이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팽창을 추구하는 가운데 지구환경이 훼손되고, 지역주민의 생활영역이 파괴되고,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지만, 이들은 이러한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그전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것은 세계화가 국가간·남북간의 공정성을 해치며, 그럼으로써 지속가능한 세계의 확립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렇듯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실천적 모색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말이 아직 환경론자들의 구호 정도로 취급되는 한국과 달리, 서구에서는 이 말이 정치인·지식인·언론 등 사회주도층에서 당위로서 인정되고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은 환경과 개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지닌 남과 북의 타협의 산물이고,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모호함을 품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보통 생태(ecology), 경제(economy), 공정성(equity)의 세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이러한 조화상태에서의 발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른 해석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지속가능성은 강한 지속가능성(strong sustainablity)과 약한 지속가능성(weak sustainablity)으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사회를 생태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고 후자는 경제발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종종 지속가능성을 또 다르게 해석하는데, 이들은 공정성을 강조하여 일자리 유지와 사회적 평등을 지속가능성의 최고가치로 여긴다.2

자본주의체제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체제로의 변혁이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이 자본주의국가들보다 자연자원을 더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은 지속가능성을 사회체제와 연결짓는 것의 위험을 보여준다.3 지속가능성의 달성은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생태에 중점을 둘 경우 생산과 소비 전분야에서의 생태적인 전환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전환은 서서히 이뤄지는 것이고, 체제의 변혁이나 획일적인 프로그램에 따라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환을 향한 지역 차원에서의 실천이 장기적으로 신자유주의에 균열을 내고 지속가능성의 실현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실천을 정부가 앞장서서 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시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정부와 기업이 여기에 함께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천주체의 체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게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체제변혁을 중심에 놓고 실천에 참여할 수도 있고,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활용하면서 실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의 달성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품고, 지역에 맞는 적절한 전환프로그램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이다.

생태적인 전환은 재생가능한 자원에 기반한 경제를 이룩하고, 자연과 벌이는 전쟁과 국가간·지역간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현재의 생산방식과 생활양식을 좀더 생태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이 전환은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문은 식량생산, 에너지 수급, 물 수급, 교통 분야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정책이나 환경정책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강박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 이들 정책에서 지속가능성 달성을 위한 생태적 전환이라는 장기적 관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이 개발지상주의, 성장제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동북아중심국가나 국민소득 2만불시대를 부르짖고, 새만금간척, 핵폐기장 건설, 대형댐 건설, 각종 도로 건설, 골프장 건설 등에 매달리면 얼마 안 가서 지속불가능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모두 재생불가능한 자원 이용이란 바탕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은 중국이 산업화로 인한 엄청난 자원소비의 결과 지속불가능한 상태로 들어가면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은 현재 급속한 산업화로 에너지·식량·토지·물의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필요한 석유의 25% 이상을 수입하고 있고,4 식량자급도 곧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5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석유소비는 거의 2배 증가했고 이에 따라 중국은 200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석유소비국이 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10년 후에 중국은 전세계 석유의 15%를 소비하고 그중 60%를 수입하게 된다. 중국이 채택한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가 더 빠르게 확대되면 석유소비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만일 13억의 중국인이 집집마다 한두 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게 된다면, 중국은 현재 하루 7400만 배럴의 전세계 석유생산량으로도 수요를 조달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늘어나는 육류소비와 이를 조달하기 위한 막대한 양의 사료용 곡물소비도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식량사정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중국의 발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6

중국의 발전이 지속불가능해지면 그 여파가 한국에게도 크게 미칠 수밖에 없다. 경제부문만 보더라도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매우 높다. 올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상품의 최대 수입국이 되었다. 중국의 발전이 지속불가능의 벽 앞에서 멈추면 한국경제도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지속가능한 ‘발전’ 쪽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동북아중심국가로서의 한국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한국도 성립할 수 없다. 2만불시대나 동북아경제중심 같은 것보다 지속가능한 한국의 확립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벌이고 있는 많은 개발사업들도 먼저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정권이 바뀐 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새만금간척과 핵폐기장 건설은 현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올해 들어 이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정부정책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괄호에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간척사업은 그것을 통해서 얻어진 농지가 식량생산의 지속성에는 약간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태적인 전북, 생태적인 한반도의 지속에는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다. 핵폐기장 건설도 원자력발전의 지속에는 크게 도움을 주겠지만, 한국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수급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새만금간척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업이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은 있지만 전북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어정쩡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폐기장 건설추진과정은 현정부가 환경관련 사안에 얼마나 구시대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고, 에너지 수급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내놓은 글의 내용부터가 장기 에너지 수급에 관한 언급이 없이 핵폐기장 건설의 시급함만을 강조하며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는 위로부터의 일방성이 강한 것이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유치도 조작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인 방식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데, 이는 부안군이 핵폐기장 후보지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부안에서는 군민과 군의회에서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군수 혼자 위도에 핵폐기장을 받아들이겠다고 신청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군을 대표하는 군수가 유치신청을 했다는 것만 앞세워 들끓는 군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위도를 핵폐기장 부지로 결정했다.

환경정책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이처럼 빈곤한 반면, 경제에서 정부가 달성하려는 것은 매우 풍성하고 분명한 것 같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추동하는 것은 강한 개발의지인데, 동북아경제중심이나 국민소득 2만불 시대는 정부가 성장위주·개발위주의 국가경영에 집착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이들 구호의 달성이 바로 현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최대목표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환경이 진정한 고려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환경은 성장이나 개발과는 종종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과 개발을 중심에 놓는 정책을 펴는 한 환경은 가장 나중에 구색맞추기로 끼워지는 것이 되기 십상이다. 현정부가 들어선 후에 불거진 많은 환경현안들–새만금간척, 핵폐기장, 고속철도 천성산터널, 서울 외곽순환도로, 경인운하 등–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타결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정부가 환경을 구색맞추기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긍정적인 관점에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정권 인수위 보고서에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쾌적한 환경조성이라는 제목으로 환경에 관한 몇가지 제안이 나온다. 여기에서 지속가능성은 개발과 보존을 조화시키고, 환경과 경제의 상생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인수위가 제안한 것은 수도권 대기질 개선, 환경친화적 에너지세 도입, 물부족 문제의 친환경적인 해결이다. 대기·에너지·물이라는 중요한 환경주제를 건드리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근본적인 데까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해석하는 의미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할 때 인수위에서 제시한 몇가지 제안은 그것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지구환경의 혜택이 후손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어떤 사회가 그 뒤를 따르는 많은 세대에 걸쳐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로 본다고 하면 지속가능성의 달성을 위해 좀더 근본적인 생태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2. 생태적 전환의 양태

 

에너지씨스템 전환

에너지는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물질적 요소이다. 에너지 수입을 위해서 우리가 연간 32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지출한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돈은 국내총생산 600조원의 7%에 달하고, 수입총액 1520억 달러의 21%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대부분 화석연료와 원자력(우라늄)으로부터 얻어지고,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온다. 그러나 이들 에너지는 모두 고갈되는 것이고, 게다가 기후변화와 방사능 오염이라는 전지구적인 환경문제를 일으킨다.7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에너지 소비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와 관련해서 우리사회는 지속불가능한 사회 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단기적인 수급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 장기적으로 후손까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하고 공급하느냐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원자력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석유와 가스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해외에 진출해서 직접 석유생산을 하려는 것이 정부 에너지정책의 중심이다. 한마디로 언젠가 사라지고 말 에너지자원 확보에 총력을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수십년간 이 정책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2002년 현재 한국인의 일인당 1차에너지 소비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2003년 BP 통계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를 석유로 환산했을 때 한국인 한사람이 2002년 일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는 4475kg에 달한다.8 이 수치는 일본의 4029, 독일의 4015, 프랑스의 4384, 영국의 3720kg보다 높은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나라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2001년 일인당 1차에너지 소비는 한국이 4220kg, 독일이 4090kg, 일본이 4070kg이었다. 격차가 커지는 이유는 한국은 에너지 소비가 지난 4년간 평균 6% 이상 증가했지만 독일이나 일본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는 오히려 1990년 이래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이다. 전기의 경우도 한국의 일인당 소비량 또는 생산량은 다른 OECD 국가보다 적지 않다. BP 통계에 따르면 2002년 한국의 일인당 전기생산량은 7285kWh로 일본의 8472kWh보다는 적었지만 독일의 7083kWh, 영국의 6515kWh보다 높았다.9 전기의 경우 연간 소비증가율은 에너지 소비증가율보다 훨씬 높다. 정부에서 예측하듯이 앞으로도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하면,10년 후 한국의 일인당 전기소비는 미국과 같고 중부유럽 국가보다 두 배나 많아질 것이다.

에너지 소비가 해마다 크게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그 일환으로 석유공사와 현대정유 등이 컨쏘시엄을 구성하여 해외유전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고,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수입하는 천연가스 외에 시베리아나 사할린으로부터 가스관을 통해서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석유시장과 천연가스시장이 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국내 에너지 소비와 동북아 에너지 수입이 계속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머잖아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겨울 천연가스 소비가 크게 증가하여 장기계약에 따라 도입되던 액화천연가스가 모자라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가스화력발전소의 연료를 석유로 대신하도록 하고, 일본으로 수송되는 가스를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리고, 또한 현물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주고 가스를 확보하는 등의 노력으로 겨우 가스공급이 끊어지는 것을 막았지만, 자칫 한겨울에 가스가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석유 수급도 낙관만 할 수 없다. 중국이 1993년 석유수출국에서 석유수입국으로 돌아선 이래 동북아의 석유 수입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수가 증가하여 유조선 도착이 지연되는 사태에 대한 우려가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해적이 나타나거나 선박충돌로 말라카 해협이 좁아지는 사태를 가상하여 이를 대비한 씨나리오까지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에너지 수급의 주요 축으로 생각하고 있는 원자력은 앞으로 10년 안에 전체 전력의 50%에 가까운 전력을 공급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원자력 관계자들은 원자력발전이 에너지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사회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핵폐기장 건설은 에너지정책의 획기적인 전환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핵폐기장 건설은 원자력발전을 계속하기 위해 필수적인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에서는 무리하게 건설을 강행하려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가 워낙 거세기 때문에 강행이 쉽지 않을 것이고, 원자력을 점진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지역에서도 핵폐기장 건설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은 전지구적인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1860년대에 인류가 지구대기 온도를 측정한 이래 지구평균 대기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40여년이 지난 현재 섭씨 0.6도가량 높아졌다. 상승추세는 최근에 더 강해지고 있는데, 이는 기온측정 이래 가장 더웠던 10개의 연도 중에서 7, 8개가량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기상학자들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21세기 100년간 지구평균 기온은 최소 섭씨 1.4도, 최대 섭씨 5.6도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평균기온이 상승하면 기상분포에서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늘어나고, 기상이변도 증가한다. 2003년의 유럽 폭염, 한국의 지속적인 강우, 태풍의 강도가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 등이 이러한 기상이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화석연료의 사용이 크게 증가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에너지 소비가 100배 이상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현재 일어나는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국지적인 기후변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반도에서는 근대적인 기후관측을 시작한 1919년부터 지금까지 평균기온은 섭씨 1.5도가량 상승했다. 지구평균 기온상승과 비교하면 3배가량 기온상승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상상태도 변화하고 있다. 1987년 이래 추운 겨울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고, 최근 20년 동안 강수량은 7% 증가했지만 강수강도는 18% 증가했다.10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그것의 지속불가능성, 수급 불안정성, 사회적 갈등, 기후변화 등을 고려하면 에너지씨스템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첫번째 전제라 할 수 있다. 이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는 현재의 에너지 수급씨스템을 태양, 바람, 바이오매스(biomass), 소수력, 지열, 조력 같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에 바탕을 둔 씨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향으로 에너지 수급씨스템을 전환할 때에만 우리는 에너지 고갈이 가져올 혼란과 기후변화를 예방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지속가능성 달성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중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은 0.1%를 조금 넘을 뿐이다.11 거의 모든 에너지를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화석연료의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이 노력이 계속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석유의 경우 세계 석유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싯점부터 정부의 노력은 열매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석유 지질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세계 석유생산량은 2010년을 전후해서 최대값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2010년경부터는 석유생산량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석유가격의 폭등과 석유확보를 위한 치열한 국가간 경쟁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과 확산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씨스템의 확립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은 에너지 고갈과 기후변화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산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개편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전세계의 풍력발전 시장은 해마다 40%, 태양전지 시장은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이들 시장은 풍력의 경우 덴마크와 독일이 선점하고 있고, 태양전지 시장은 일본과 미국이 선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뛰어든다는 것은 한국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해서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설비의 생산을 통해서 세계의 풍력발전이나 태양전지 시장에 뛰어든다는 산업적인 의미도 있는 것이다.

원자력발전도 화석연료의 경우와 같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원자력발전도 어느정도의 경제성이 보장되는 기간은 40여년 정도이다. 그후에는 가격이 아주 높은 우라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잇점이 사라진다. 원자력은 또한 대형사고와 핵폐기물을 통한 방사능오염 위험을 지니고 있다. 원자력발전과 핵폐기장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로 인해서 발생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도 점점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유럽연합 국가들은 대부분 원자력발전을 포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대신에 이들 국가는 태양에너지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적극 개발하는 길을 선택했다. 원자력은 우라늄 가격이 높지 않고 다른 에너지자원에 비해 보관하기가 쉽기 때문에, 중·단기의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에 어느정도 기여할 수는 있다. 또한 온실가스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협약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잇점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은 단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고갈된다는 점에서, 원자력을 계속 확대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달성에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

에너지씨스템의 생태적 전환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교통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최종에너지 소비 중에서 수송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2002년 현재 21%가량 된다. 현재의 교통씨스템은 자동차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교통씨스템은 에너지를 매우 비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승용차와 비행기는 한 사람을 태우고 1킬로미터를 달릴 때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따라서 이산화탄소도 가장 많이 방출한다. 승용차는 기차에 비해 3~4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화물 수송의 경우 화물차는 기차보다 10배가량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12 승용차와 화물차 중심의 교통씨스템은 화석에너지 소비를 크게 증가시키고, 따라서 화석에너지 고갈이라는 지속불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통씨스템도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 중심의 생태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씨스템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일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50년 정도의 장기계획과 10년 동안의 단기계획을 세워서 화석연료와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 계획 속에서 에너지 소비의 절대량을 줄여나가고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이면, 석유와 원자력의 비율을 서서히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을 올려도 에너지 수급에 무리가 가지 않을 것이다.

 

물 수급의 전환

21세기의 가장 큰 환경문제 또는 생존의 문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물확보 문제이다. 앞으로 강물을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물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점점 더 격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강물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충분한 양의 식수와 산업용 물을 확보하는 것이 손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은 유엔에 의해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학자들이 내놓은 물부족지수 분석에서도 한국은 물이 부족한 국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물이 아주 풍족한 국가에 들어가지도 않는다.13 환경부, 특히 댐건설을 담당하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유엔의 물부족 국가 분류를 받아들여 한국의 물 상황을 종종 심각한 것으로 이야기한다. 반면에 환경단체에서는 물부족이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며, 물수요 관리를 적절하게 해주기만 하면 충분한 양을 확보해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에서는 앞으로 2006년에 1억톤, 2011년에 18억톤의 물이 모자랄 것으로 보고 물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130여개의 대형댐을 건설하고 있다.14

물을 확보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정부정책의 중심은 대형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댐을 건설해서 홍수를 예방하고 필요한 물을 저장해두자는 것이 정부의 정책기조였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현재 한국에는 765개의 대형댐이 들어섰다.15 이것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나 많은 것이고, 단위면적당 댐의 수로 따지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댐을 건설하여 물을 확보하면 필요할 때 언제나 퍼쓸 수 있는 물을 얻는다는 가시적인 성과는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대형댐은 환경파괴를 비롯한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장기적으로 물확보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오히려 댐을 건설하지 않고 산림을 잘 보존하는 것이 물저장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필요한 물의 절대량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하천이나 호수의 물은 그 질에 따라 1등급에서 5등급으로 나뉜다. 1급수는 간이정수 후에 식수로 쓸 수 있는 물이고, 5급수는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물이다. 전국의 하천 중하류의 수질 등급은 대체로 3급수 정도이나 4급수인 경우도 있다. 하천의 수질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주로 공장폐수와 축산폐수에 기인한다. 특히 농촌에서 나오는 축산폐수는 공장폐수에 비해 감독과 단속이 어렵기 때문에 하천의 수질관리에서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하천이나 지하수 또는 토양을 오염하는 것으로 무시할 수 없는 부문은 농업이다. 화학농업은 또한 토양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토양의 함수(含水)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물 수급의 생태적인 전환은 필수적이다. 물은 쓴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일부 증발하는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질이 약간 낮아진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생태적인 물 수급이란 물의 저장을 생태적인 방식으로 하고, 사용한 후 흘러가는 물을 정화해서 여러차례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형댐은 생태적이 아니다. 그것은 40년 정도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쓸 수 있을 뿐이고, 이 기간 동안 많은 환경문제를 유발한다. 댐에는 끊임없이 토사가 흘러들어온다. 토사가 쌓임으로 인해 댐은 40년 정도 지나면 담수능력이 거의 사라지고 마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토사를 퍼내거나 댐을 다시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많은 비용이 들고, 더 많은 환경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세계은행과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에서 만든 세계댐위원회는 2000년 11월 2년여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보고서는 대형댐이 생태계와 지역주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히했다.

물 확보는 대형댐의 건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함수능력이 뛰어난 산림의 보호와 관리, 논과 밭의 유기농으로의 전환에 의한 토양의 함수능력 증대, 지하수의 지속가능한 이용, 물 절약 및 물 재활용 설비 보급, 그리고 빗물이용 시설의 확대를 통해서 해야 한다.16 골프장도 물 확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골프장은 산림을 파괴함으로써 물 저장고를 크게 훼손한다. 또한 골프장의 유지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사용된다. 2003년 쿄오또에서 열린 세계 물포럼에서는 미국이 물을 가장 많이 낭비하는 국가로 지적되었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 2만3000개에 달하는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은 물 저장고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물을 허비하는 것이다.

물 관리에서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지구온난화로 초래된 기후변화이다. 기후변화로 강수패턴이 달라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물의 흐름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동안 강수량은 조금 늘어난 반면 강수강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물 관리가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는 우리 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적응을 요구한다. 물 수급의 측면에서는 예를 들어 산림을 조성하거나 개발할 때, 택지와 도로를 만들 때, 갑자기 강하게 쏟아지는 강수를 가능한 한 많이 담을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식량 생산방식의 전환

지속가능한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도 생태적인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식량생산의 생태적인 전환은 현재의 관행농업을 유기농으로 바꾸는 것이다. 유기농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화학비료와 농기계에 의존하는 농업을 하지 않으면 수확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기농은 농업의 일부분에서 틈새적 존재로서만 가능한 것이지 농업 전체가 유기농으로 바뀌는 것은 식량수급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기농의 경험적 사례는 처음에는 유기농의 수확이 관행농법에 비해서 떨어지지만 해가 갈수록 수확량이 증가해서 결국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양 속의 미생물과 지렁이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땅을 살리고, 땅의 함수능력을 크게 높인다. 그리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화학물질로 오염시키지 않음으로써 수질 향상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건강증진에 기여함으로써 의료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관행농업은 긴 시간표를 놓고 볼 때 지속가능하지 않다. 다량의 에너지 소비,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으로 인한 토양의 척박화, 표토의 상실, 하천수의 오염, 토양 함수능력의 감퇴 등이 지속가능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기농으로의 전환은 지속가능한 한국을 만들어가는 데서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유기농도 지역의 물질순환을 교란하는 형태여서는 안된다. 많은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해외에서 들여온 목초액을 뿌리는 유기농은 생태적인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기농은 초국적 곡물자본과 화학자본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들 초국적 자본은 유전자조작 농작물을 개발해서 이것으로 전세계의 농업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지만, 유기농은 지역 고유의 종자를 지켜나가고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은 또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의 생산자로서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 유기농으로 여러 종류의 재생가능 에너지가 생산될 수 있고, 특히 식물성 기름이나 바이오 디젤은 교통부문에서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중요한 일을 담당할 수 있다. 꾸바에서 광범위하게 수행되는 도시 유기농의 확산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농업을 통해서 수확되는 농산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농업은 생산과 소비가 동일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지역중심의 식량 흐름의 상징이 될 수 있고, 초국적 곡물자본에 대한 저항의 실천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3. 맺는말

 

생태적 전환이 상품 생산비용을 높여서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기침체와 사회적인 혼란을 가져와서 결국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확립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면 지속가능성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점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스위스나 일본의 경우 환경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높고 에너지 가격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도 상품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장기계획 속에서 생태효율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실천해나가면 커다란 사회적 혼란 없이도 생태적 전환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위스의 경우 1980년대에 정부에서 환경기준을 강화하려고 했을 때 산업체는 반발했지만, 환경기준이 강화된 후 오히려 국제경쟁력이 더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이들이 기준에 부합하는 효율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국제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세가 도입되어서 에너지나 물의 가격이 올라가면 산업체에서는 이들 자원을 적게 쓰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높은 비율의 생태세가 갑자기 도입되면 기업체가 입는 충격은 클 것이지만 낮은 비율로 서서히 높여가면서 기업에 적응할 시간을 주면 살아남는 기업은 전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적응에 실패해서 사라지는 기업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크게 성장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이는 산업구조의 생태적인 전환과정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혼란과 충격을 가능한 한 최소로 하면서 생태적인 전환을 이룩하고, 이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확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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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mar Altvater, “Mehr systemische Intelligenz, bitte! Der Nachhaltigkeitssiskurs missachtet die Naturgesetze,” politische ökologie 76호(2002), 24~25면.
  2. Karl-Werner Brand, “In allen vier Ecken soll Nachhaltigkeit drin stecken,” politische ökologie 76호(2002), 18~21면.
  3. Wolfgang Sachs, Nach uns die Zukunft: Der globale Konflikt um Gerechtigkeit und Ökologie, Frankfurt 2002, 170면.
  4.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03
  5. Vaclav Smil, Feeding the World, MIT Press 2000, 297~98면.
  6. 중국의 산업화에 따른 자원 소비의 증가와 중국이 택한 발전전략의 한계에 대해서는 레스터 브라운 『에코 이코노미』, 도요새 2003, 38~40면 참조.
  7. 현재의 사용량을 기준으로 할 때 가채연한은 대략 석유 40년, 천연가스 60년, 석탄 200년, 우라늄 50년이다.
  8.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03.
  9. 여기서 생산량을 가지고 비교한 이유는 BP의 통계가 소비량이 아니라 각국의 전기생산량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BP의 통계는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매년 발표하는 에너지 통계 중 전기관련 통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통계에서 일인당 전기생산량을 파악하려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자가발전량을 제외한 양을 가지고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2001년 1인당 전기생산량은 6025kWh였다. 반면에 BP통계는 약 6700kWh로 나온다.
  10. 신경섭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저감」, 2002년 국회환경경제연구회 강연자료.
  11. 정부 통계에는 대체에너지의 비율이 1%가 조금 넘는 것으로 나오지만, 정부에서 정의하는 대체에너지에는 폐기물과 석탄 액화연료 등이 포함되어 있고, 대체에너지 중에서 90%가량을 폐기물이 차지한다. 그러므로 전체 에너지 공급량 중에서 순수한 재생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부분은 0.1% 정도밖에 안된다. 일반적으로 폐기물은 재생가능 에너지에 들어가지 않는다.
  12. 이필렬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창작과비평사 1999, 139~40면.
  13. Peter Lawrence, Jeremy Meigh, Caroline Sullivan, The Water Poverty Index: International comparisions, KERP 19(2002). 여기에서 저자들은 다양한 지표를 이용하여 물부족 지표를 만들어낸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핀란드부터 시작되는 물풍요 순서에서 중상위권에 들어간다. 미국은 물의 양은 풍부하지만 한국보다 낮은 순위이다. 환경부에서는 한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물의 양만을 따지는 폴켄마크(Falkenmark)를 가지고 한국이 121개국에 달하는 물풍요 국가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13개의 물부족 국가군에 들어간다고 분류하지만, 이것과 물부족지수 사이에는 연관이 적다. 폴켄마크에서는 한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물이 연간 1000~1600m3인 경우를 약간의 물부족(water stress), 500~1000m3의 경우는 만성적 물부족, 500m3 미만의 경우를 최악의 물부족으로 분류한다. 한국의 경우 일년에 한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물의 양은 1400m3이다.
  14. 건설부 「수자원장기종합계획」, 2001.7.
  15. 여기서 대형댐이란 국제댐위원회의 기준에 따른 것으로, 댐의 높이가 15미터 이상인 것을 말한다. 그러나 높이 10~15미터라도 길이가 500미터 이상이거나 담수량이 300만톤 이상, 또는 초당 방류량이 2000톤 이상인 댐도 대형댐으로 분류된다.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www.kfem.or.kr) 참조.
  16. 지하수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지하수를 한꺼번에 뽑아올려서 고갈시키지 않고, 생성되는 양만큼만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물론 지하수가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