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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계층의 불평등과 형평의 원리
김왕배 金王培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일상생활의 불평등에 대한 성찰』 등이 있음. wangbae@yonsei.ac.kr
1. 계층의 불평등과 재생산
미증유의 경제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한국사회에서도 지난 금융위기 이후 실업과 빈곤의 담론이 성행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빈곤이 부른 자살’ ‘정리해고’ ‘실업의 칼바람’ ‘청년실업’ 등 사회불안을 상징하는 용어들이 일상적인 것들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연일 부동산투기와 집값 폭등, 황금족과 명품족의 출현, 불황을 모르는 해외여행과 궁전 같은 주거단지의 등장 등 사치와 풍요의 현상들이 대비되고 있다. 이른바 계층의 양극화 혹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점차 현재화되고 있으며, 계층상승을 위한 사회이동의 기회는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계층간 소득격차의 추이를 보더라도 그 불평등이 깊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996년 상위 20%의 소득을 100으로 놓았을 경우 그로부터 40%의 중간층은 물론 하위 20%의 소득이 점차 줄어들어, 하위계층의 경우 96년의 30.3에서 99년 17.4로 거의 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는 상위계급 20%와 나머지 계층구성원 간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득의 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계수도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소득은 늘었으나, 대신 계층간 소득격차는 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층간 격차는 단순한 소득수준의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교육·의료 등의 써비스는 물론 여가생활 등 총체적인 생활양식과 삶의 질에서의 계층간 차별로 이어지면서 사회도덕과 윤리를 의심케 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계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는 최하위 빈곤층이나 차상위 저소득층은 적절한 사회적인 지원이 없어 가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가난이 대를 이어 세습되는 현상마저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빈곤으로의 추락은 비단 하위계층뿐 아니라 비교적 탄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던 중산층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몰락가능성이 증대하는 현상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일어나는 계층의 극화현상을 반영한다. 즉, 초국적 자본가들과 전문·행정관료들, 금융 경영자들 등으로 구성된 소수의 고소득층과 빈곤의 나락으로 전락한 다수집단으로 계층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이른바 ‘이십 대 팔십’의 논리가 그것이다. 중산층의 공간은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의 계층상향의식과 성취동기를 유발하는 정착지 구실을 하지만 세계경제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그 기반이 불안의 기류에 휩싸여 있다. 경기침체에 민감한 소규모 자본가나 자영업자 들의 파산,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신중간층의 몰락 등 중산층 신화는 다시 고려될 싯점에 이른 것이다. 소수의 상위계층을 제외한다면 도시빈민층은 물론이려니와 대부분의 인구집단이 빈곤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등을 경험해온 한국사회는 계층구조화 기간이 짧았고, 그 대신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이동이 보장된, 그것도 상향이동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졌던 유동적 사회였다.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되지 않던 1960년대경 한국사회의 인구 대부분은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빈곤에 의한 평등한 사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시공간적으로 압축적인 산업화기간 동안 급격하게 휘몰아친 사회이동으로 인해 계급의 구조화기간이 짧았고, 계층간 차등은 상대적으로 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적어도 한국사회가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돌입하였다고 판단되는 1980년 후반 혹은 1990년 초반에 이르러 급속히 변한다. 즉, 계층의 경계화가 더욱 분명해지고 그 재생산의 과정이 점차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산업화기간 동안 보이던 사회이동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계층이 정착되어가고, 그에 따른 생활상의 격차가 뚜렷해지면서 삶의 조건들은 세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경제위기 이후 상류계층과 하위계층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빈곤의 수렁에 빠지게 된 이른바 ‘언더클래스’(underclass)가 계층의 새 범주로 등장하게 된다. 계층간 생활격차는 교육·의료·여가 등의 소비생활 전영역에 걸쳐 발생하면서, 일부에서는 체화된 특정한 성향 혹은 취향을 의미하는 ‘계급 아비뛰스’(class habitus)의 현상마저 감지되고 있다.
특정한 계층이 유용할 수 있는 ‘자본’의 영역은 더 폭이 넓어지고 있다. 부르디외(P. Bourdieu)가 말한 것처럼 공식적 학력과 고가의 문화재 보유, 그리고 특정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취향, 또 이해관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사회관계 모두가 자본으로 가용된다. 최근 몇몇 조사를 살펴보면 한국사회에서 계층간 자본의 분포와 생활양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산과 소득으로 나타나는 경제자본의 차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의식주나 여가에서도 양과 질을 달리한다. 물론 서구자본주의에 비하면 그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지난 산업화기간 동안 더 명백해지고 있는 것이다. 상류층이 성북동·평창동·한남동 일대와 강남지역으로 집적되어가는 공간의 분할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의식과 소비에서는 독특한 매장과 스타일이 지향되고 있다.1
한편 학벌사회로 묘사되는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학력은 상향적 사회이동과 계급재생산의 핵심적 요인이다. 한국사회는 영국이나 미국 등과 같이 극소수의 상류계급 자녀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엘리뜨 교육의 산실인 고등학교 등이 존재하지 않고 평준화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제도권에서의 교육불평등은 공식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私)교육에서의 계층간 차이는 현격하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상류층들이 밀집되어 있는 강남의 한 지역의 사교육비는 일반 평균지역에 비해 세배 가량 높고, 상위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부모 70% 이상이 대기업가, 고위행정관료, 전문가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표들은 이제 중하위층 자녀들의 교육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유학은 또한 계급재생산의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물론 유학의 문이 중산층에게까지 열려 있고 학력인플레로 인해 효과가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상류계층의 자녀들에게는 계급재생산에 거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더구나 유년 및 초등학교의 학생들의 경우 예체능 엘리뜨 교육마저 성행하고 있어 아직은 계층간 성향과 기질을 나타내는 계급 아비뛰스가 현저히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후세대에 이르면 그 형성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회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증대시켜주는, 다시 말해 사회자원을 동원하여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증폭시킬 수 있는 사회관계를 일반적으로 사회자본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회자본의 대표적 관계망은 결혼망인데 다른 선진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역시 결혼망은 상류계층의 이해를 보장하고 확장하는 대표적인 ‘폐쇄전략’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상류계층의 결혼은 대자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대기업가와 고위관료 및 정치인 사이에서 부와 권력을 조합하는 매개역할을 하고, 차세대에 그것을 물려주는 계급세습의 통로가 된다. 이러한 결혼망의 형성은 최상류계층의 현상만이 아니다. 경영자나 전문가 등 이른바 주변상류계층(이를 중상층으로 분류하기도 한다)에서도 배우자들의 집안배경에 의해 결혼의 성사여부가 결정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학교는 비공식 연줄망을 생성하는 사회자본의 공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류계층의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유치원 및 초등학교는 단순히 차등적인 교육내용과 조건만을 제공하는 장이 아니라, 학부모·자녀 간의 일정한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상류계층의 폐쇄전략과 중산층의 모방 혹은 도전 그리고 하위계층의 좌절 등이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불평등 현상이다. 물론 한국사회의 계층적 생활양식의 질적 차별화와 그 기회의 차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덜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러나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지난 경제위기 이후 더욱 분명하게 가시화되고 있다.2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바탕으로 사회이동의 기회가 있던 시대를 묘사하는 ‘개천에서 난 용’의 시대, ‘자수성가’의 시대는 거의 종말을 고하고, 계층적 배경에 의해 삶의 조건들이 규정되는 시대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2. 빈곤의 위협
한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생활에서 탈락된 층을 빈곤층이라 한다. 이 빈곤의 유형은 크게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으로 나뉘는데 전자가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소득층을 말한다면 후자는 글자 그대로 상대적 개념으로서 사회적인 평균소득을 누리지 못하는 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은 최하위 극빈층, 즉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수준의 생활보호자층과 그 차상위층으로서 저소득층을 포괄하지만, 최근에 상대적 빈곤 개념의 등장과 함께 빈곤은 중산층의 현상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절대빈곤선에 놓여 있는 도시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10%선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지난 경제위기 전의 5%에서 두배 정도 늘어난 것이어서 빈곤층이 확대재생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로 따지면 정부가 정한 2003년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02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약 140만명, 그리고 차상위 저소득층은 약 320만명 등이다.3 한 조사에 의하면 이들 계층은 가구주의 실직률이 76%에 이르는가 하면 극도의 절망감에 가난의 대물림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그나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자활근로소득과 의료비·전화료 감면 등 월 54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차상위 저소득층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산층의 경우 빈곤이라는 말보다는 가계압박에 따른 궁핍이라는 용어가 더 타당할 수도 있다. 빈곤이 생계유지의 불능 혹은 경계선에 있는 경우라면, 궁핍은 일정한 경제활동과 소득에도 불구하고 생활유지상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이다. 빈곤이 빈민층이나 저소득층의 생활상태를 지칭한다면 궁핍은 중산층의 생활상태를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용어의 선택이야 어떻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왜 중산층에게까지 파고드는가? 이는 소득의 증대와 함께 노동력 재생산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동력 재생산비용은 의식주는 물론 교육, 의료 그리고 여가와 같은 총체적인 생활비용을 의미하며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비용을 기준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빈곤이란 노동력 고도화에 따른 노동력 재생산비용의 증가와 함께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조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소비생활부문에서 주택비나 생활용품비 그리고 교육·의료·오락비 등의 상승은 궁핍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이 되고, 따라서 전체적인 생활수준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궁핍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4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1인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221만원이고,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82만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가구당 소비지출이 약 190여만원을 차지한다. 거칠게 말해 이 평균적 소비지출이 가구당 노동력 재생산비용인데 이 한계선에 있거나 그 이하의 층을 빈곤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사교육비, 의식주 소비의 고급화, 인건비의 상승, 여가수준의 확대 등으로 가계압박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재생산비용의 일정부분을 국가가 공적 영역으로 흡수할 경우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절감될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에 의한 사회복지의 수준이 낮은 우리의 경우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개인이나 가족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이 가중되어 생활을 압박한다. 그리고 이 비용지출의 한계선에 아래에 놓인 저소득층과 빈민층은 아예 평균적 노동력 재생산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빈곤은 노동력 재생산이 발생하는 소비생활영역에서뿐 아니라 생산부문과 연계되어 조명될 필요가 있다. 소비생활부문(노동력 재생산부문)에서의 빈곤이 불안정한 생계와 가족구성, 낮은 교육과 취업기회의 상실, 산업재해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생산부문에서는 주로 불안정고용이나 저임금, 경기불황에 따른 방출로 인한 실직 등이 그 주된 이유가 된다.5 빈곤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취업기회의 상실, 즉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이다. 최근의 노동시장은 매우 유연화되어 취업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실직으로 인한 생계유지 불능의 조건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1차노동시장 즉 공식부문의 노동시장은 승진과 연금, 수당 등을 보장하는 취업안정의 지대로, 그리고 2차노동시장 즉 비공식부문의 노동시장은 불안정 노동시장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오늘날 견고하고 안정적인 취업영역은 공식부문이든 비공식부문이든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노동시장을 더욱 분절시키고 고용의 형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정규직보다는 일일고용이나 계절고용, 반고용 및 일시 계약고용 등 이른바 한시직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은 경기순환에 따라 언제든지 방출될 수 있으며, 실업수당이나 승진, 의료보험이나 산업재해보험, 퇴직금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그 정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체 취업인구의 52%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평균 비정규직의 임금은 96만원으로 정규직 임금 182만원의 절반수준이며, 이들 중 15% 미만의 근로자들만이 퇴직금이나 상여금, 수당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6
중산층의 빈곤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이유는 생활비의 상승과 함께 정리해고 등에 의한 실업 때문이다. 지난 경제위기 이후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구조조정이란 명분으로 진행되어왔는데, 최근의 기업노동시장은 이미 정리해고가 일상화되어 있는 이른바 상시 구조조정체제에 돌입해 있다. ‘사오정’이란 속설이 대변하듯 사십대 중반의 나이가 이미 정년퇴직의 선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퇴직(한 기업에서 근속 후 이직 혹은 퇴출) 나이는 이보다도 훨씬 빨라 35세 전후를 기록해, OECD 국가의 평균 나이 45세보다 무려 10년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해고 이후 재취업이 간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재취업이 된다 해도 이전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산층의 한 축을 이루는 자영업자층 역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층은 전체 취업인구의 30% 이상으로 평균 15%를 밑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대부분 경기침체에 민감한 생계유지형이 많아 중산층으로부터 탈락의 위험성이 다분하다. 정리해고를 당한 신중간층의 구성원들이 자영업으로 몰려 ‘창업’ 형태의 자영업자층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기는 하지만,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생계유지형의 자영업자층으로 재생산된다.
결국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해고와 비정규직의 확산은 중산층을 포함한 많은 하층민들을 빈곤의 위협에 노출시킨다. 따라서 취업기회의 확산과 고용안정이라는 보호막 장치가 필요하다. 정리해고가 과연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증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가에 대한 회의가 비등한 만큼 정리해고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법적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서구 선진국들처럼 구조조정 이후 재취업훈련을 강화하고, 1년여간에 걸쳐 임금의 일정부분을 지불하는 관례를 법제화하거나, 독일의 경우처럼 정리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을 통해 업무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가능한 한 해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정규직과 마찬가지의 임금과 수당, 휴가 등을 제공하고, 연금 및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받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고용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대신 노동과 생활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 댓가를 비정규노동자층에게 주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회적 보상에 대한 형평의 원리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자영업자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정리해고의 완충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해서도 창업지원 및 정보제공 등의 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3. 국가와 시장
계층간 격차를 줄이고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노동시장과 소비생활영역에서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지원’의 개념은 사회복지와 유사하지만, 사회복지가 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적 기관에 의해 실행되는 좁은 의미의 제도적 정책을 지칭한다면 사회적 지원은 더욱 폭넓은 개념으로 제도적 통로 외에 친구관계, 가족, 결사체 등 비공식 사회관계를 통해 지원되는 모든 총체적 자원공여를 의미한다. 노동력 재생산비용의 자기충당이 불가능한 빈민층과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더욱 직접적인 사회적 지원 전략이 필요하고, 빈곤가능성을 지닌 중산층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다양한 사회적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장에서의 기회, 예를 들어 노동시장에서의 취업조건, 상품 및 써비스 시장에서의 생활기회 구매조건이 구조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 유연화가 기업의 효율적 경쟁과 성장을 위해 필연적이라면 정리해고에 의한 실업이 발생했을 때에는 이미 선진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처럼 기업 및 국가보조금을 일정정도 지불하고, 실질적 재취업이 바로 이루어지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구성원들 스스로가 사회적 지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이 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국가와 시장의 거시적 차원은 물론 개인, 가족, 제3섹터의 지역시민공동체로 이어지는 미시적 차원의 접근이 동시에 필요하다. 먼저 시장과 국가의 거시적 차원을 간단히 살펴보자.
평등적 가치를 우선하는 일군의 사람은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이야말로 필연적으로 경쟁과 불평등을 야기하며, 빈곤을 초래하는 ‘악’의 근원지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야말로 전체적인 사회의 부를 증대시켜 불평등하지만 부유한 체제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가난하지만 평등한 체제와 대비한다. 그들은 또 계급갈등이나 집단이기주의는 시장경제나 시장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며 시장을 폐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시장의 공공적 질서를 유지할 때 빈곤과 불평등 같은 문제를 최대한 치유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자본주의에서 계층간 불평등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차이, 즉 시장역량의 차이다. 개인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교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 교환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러한 시장역량이 결핍된 혹은 이에 접근이 불가능한 층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 시장으로의 접근을 직·간접적으로 돕거나 아니면 비(非)시장영역에 공공재를 공급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시장을 기축으로 한 복지정책이라고 한다면 결국 국가가 개인들의 시장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일차적 과제가 될 것이다. 시장진입의 기회와 조건들, 즉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위해 취업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든가 교육정책을 실시한다든가 상품 및 써비스 시장으로의 진입을 위해 보조금·연금 등을 지불한다든가 하는 일련의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결국 시장 메커니즘의 조정을 위한 국가개입의 정도와 방법, 계급세력 및 시민사회와의 역학관계 등에 의해 다양한 제도유형 및 정책내용 들을 규정해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국가는 그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자원동원체제에 주력하였을 뿐,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생활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 영역에 일임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국가에 의한 사회보장제도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국민총생산(GNP)이나 무역규모에서 세계 11위권의 역량을 자랑하면서도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지출은 OECD30개국 중 29위에 해당할 정도로 빈약하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사회복지비용이 25%인 반면 한국은 아직도 10% 미만이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더라도 스웨덴이 33.4%, 독일이 29.6%, 영국이 22.8%, 미국이 16.3%인데 반해 한국은 5.3%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막 국민연금이나 보험, 기초생활보장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복지국가 담론이 확산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체제수준에서는 초보단계이다. 더구나 의사결정자들은 사회복지정책을 국가책임주의 입장보다는 시혜적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인이나 장애인, 빈민 등에 대한 부양을 개인이나 가족의 부조에 의존하고 있는 전통과 현실 때문에 일반 시민들 역시 국가나 사회 중심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희박할 뿐 아니라 부정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사회복지형 체제를 지향할 싯점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는, 재정의 부담과 조세 불만, 국가의 복지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던 권위주의 정권하의 편향된 이념, 급박한 세계경제의 흐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조절기능의 부재 등으로 이른바 ‘복합딜레마’에 빠져 있는 듯하다. 더구나 글로벌 자본주의체계의 하위서열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가가 초국적 자본과 대외국가로부터 얼마만큼 자율적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그 운신의 폭은 상대적으로 좁다. 글로벌체제의 무한경쟁 속에서 점차 국가는 ‘소비의 정치’보다는 ‘생산의 정치’에 주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7
4. 제3섹터와 지역공동체
그렇다면 국가개입의 한계를 메우고, 현실적인 사회적 지원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근대사회에서 국가의 성원은 곧 시민사회의 성원이다. 시민사회가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의해 제도화된 공공영역이라면 근대국가의 출현과 함께 시민은 국가의 한 성원이 됨으로써 국민과 중첩적인 존재가 된다. 시민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신장시켜왔다. 첫번째 단계의 시민권은 시민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인간적 권리(human right)였고, 두번째 단계의 시민권은 선거와 같은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였으며, 세번째 단계의 시민권은 교육·의료·연금·수당 등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요구로서의 사회적 권리(social right)였다. 서구사회에서 시민권의 확산은 참여와 대의제를 통한 사회복지국가의 출현과 함께 진행되었고, 그 결과 복지체계에 토대를 둔 새로운 시민권이 성립되었다.8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시민권은 시민사회의 계층간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생활기회의 확대를 의미하는 사회적 시민권은 단순히 물적 조건들뿐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획득, 다시 말해 유(類)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명예’라는 정신적 보상의 분배까지도 의미한다.
시민사회와 국가, 시민과 시민 사이의 사회복지권은 이른바 ‘제3섹터’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국가와 기업에 대응하는 시민 스스로의 공동체 공간인 제3부문에 대한 논의는 이미 서구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9시장과 국가를 넘어선 제3부문의 공동체 활동은 사회써비스, 건강, 교육과 연구, 예술, 종교, 변호활동 등 전분야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공동체 써비스조직들은 특히 고령자, 장애인, 정신병자, 불우아동, 무주택자와 빈민들을 지원한다. 제3부문은 활성화된 시민사회와 자원봉사와 같은 자발적 공동체 활동을 전제로 하며, 이를 토대로 ‘사회적 고충들이 의사소통되는 광장’이다. 그리고 제3부문은 수많은 경제활동을 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취업을 돕고 실업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기능을 담당한다.10 따라서 정부는 제3부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자원봉사자들이나 기부자들에 대해 과감한 세금면제를 시행함으로써(사회적 임금의 혜택) 이 부문과 연계해야 한다.11
그런데 제3섹터의 운영은 지역차원에서 주민운동과 연계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지역차원에서는 특정한 공간의 중산층을 포함, 저소득층과 빈곤층이 계층간 연합으로 제3섹터 운동이 더 활성화될 수 있고, 그들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자원배분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풀뿌리운동으로서의 주민운동은 추상적인 거대담론에 관여하는 운동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체험 가능한 자신들의 생활세계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으로서 ‘장소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운동이기도 하다. 지역주민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운동의 이슈가 구성원의 생활공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어느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에 편중되기보다는 지역주민 전체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3섹터와 관련된 지역주민운동은 생산과 소비, 정치, 정체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들을 이슈화함으로써 발생한다. 생산분야와 관련해서는 산업과 산업공해 등의 문제, 소비분야에서는 복지·의료·교육 등 사회복지와 관련된 ‘집합적 소비수단’의 분배와 소비, 환경과 위해식품의 감시, 그리고 교통·통신·건축·재개발 등이 주된 문제들로 부각된다. 이러한 지역주민운동은 자발적 참여를 통한 삶의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물질적 이해관계의 차원을 넘어서 탈(脫)물질적 가치가 접합된 운동이다. 이를테면 지역구성원들이 장애인·노인 봉사활동을 통해 자원봉사의 가치와 규범을 배우고 내면화함으로써 공동체의 이상을 지향한다.
‘풀뿌리 복지’라고도 명명될 수 있는 이러한 사회적 지원의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한국사회에서 지역공동체의 원형은 혈연이나 지연에 바탕을 둔 ‘마을’에서 발견된다. 마을의 구성원들이 상부상조의 원리로서 공동체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켜왔는데 부조(扶助)는 대사를 치르는 집에 금품 등을 공여하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서 누군가가 집을 지을 때 도구와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나 과부, 홀아비, 노인만 사는 집에 지붕을 이어주는 것 등이 부조이다. 공동체 원리가 가장 잘 나타난 형태는 ‘두레’였다. 둘레 즉 원주(圓柱)의 뜻으로 풀이되는 두레는 촌락단위로 구성된 농민들의 상호협동체를 말한다. 두레는 촌락공동의 내부질서, 즉 공동방위, 공동노동, 공동예배, 공동유흥, 상호규찰(規察)과 공동소유의 협동조직체로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웃에 대한 공동부조를 통해 촌락 자치질서를 이끌어온 모체였다.12
이러한 부조정신의 복원을 통한 지역단위 제3부문의 확대는 개인주의의 전통 속에 개별자 수혜에 기초한 국가중심적 서구형 복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지원은 단순히 물적 자원의 분배(시장역량의 확대)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자원의 분배까지도 포함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상호부조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지역공동체운동은 다양한 유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생활소비자협동(생협)운동, 아파트 주민자치운동, 그리고 지역화폐로 정보와 노동력 등을 교환하는 실험적 운동 들이 대표적이다.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생필품을 공동구매하는 협동체로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공동체 관계를 유지하는 생협운동은 약 12만 가구가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화폐의 실험적 사용도 발견되는데 현재 지역화폐운동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서울 동작구의 자원봉사은행과 송파구의 송파품앗이, 그리고 대전의 한밭 레츠(lets) 등이다. 도시빈민이나 저소득층이 참여하는 생산조합운동으로서의 ‘나래공동체’도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지역자치운동은 극히 소수의 지역성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여전히 실험적이며, 좀더 넓은 차원의 시민사회운동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운동은 사회적 시민권과 사회복지제도 수준의 요구를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취업창출과 빈민구제 등 적극적 제3섹터의 활동과도 거리가 있는 것이다.
제3섹터는 단순히 국가로부터 보장을 수혜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창출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기반을 형성하는 ‘생산형 복지’의 한 전략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제3섹터에 대한 국가나 기업의 연계와 지원이 약하고, 주민들의 의식 또한 부족하기 때문에 비영리 시민단체를 포함한 종교단체나 자발적 결사체들로 이루어지는 제3섹터의 활동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5. 전망과 과제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던 계층간 영역이 점차 확고해지면서 계층간 총체적인 생활기회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절대빈곤층과 빈곤선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을 합쳐 5,6백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중산층 역시 구조조정과 실업, 생활비의 상승 등으로 빈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판 베벌리힐즈’에 사는 소수의 상류계급이나 중상층들이 경제자본은 물론 학력과 같은 다양한 문화자본과 연줄망 등 사회자본의 집적을 통해 그들의 계급적 이해를 유지하고 확장시키고 있다. 각 계층은 대를 이어가는 재생산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사회적 이동의 기회가 많고, 계급구조화의 강도가 약했던 한국사회에서도 점차 계급의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고, 재생산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생계보장형의 빈민층 및 저소득층, 끊임없이 발생하는 정리해고 및 소득증대와 함께 나타난 노동력 재생산비용의 상승 등으로 빈곤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 중산층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시급히 요청되는 싯점에 이르렀다. 시장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하에서 국가는 일차적으로 생산영역과 소비생활영역의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이들의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으로 빈민층이나 저소득층, 중산층 등은 국가에 의한 ‘수혜’나 써비스 차원의 사회복지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공동이익을 위해 조직화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서 물질적인 자원뿐 아니라 정신적인 자원의 분배를 획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시민권의 확대와 제3섹터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운동은 불평등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한국사회의 전통적 가치인 상호부조의 공동체 윤리를 바탕으로 재화의 분배와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는, 풀뿌리 차원의 ‘사회적 지원’이 국가 차원의 거시적 정책과 연계될 때 불평등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층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들은 평등과 자유의 조합에 의해 결정되는 체계 속에서 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진부하게 되어버린 자유와 평등의 두 핵심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회자원의 분배원칙은 무엇이고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는 무엇인가? 즉 사회정의란 무엇이며 이러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합당한 제도와 체제는 무엇인가?13
제도는 체제의 하부개념이다. 국가의 사회보장정책이나 제도화된 전략들 그리고 제3섹터 운영의 실질적 내용은 그 기본적 골격인 사회체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체제는 기본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분배, 즉 시장·효율·불평등과 국가·분배·평등이라는 요소들의 조합의 표현이며,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사회적 세력에 의해 규정된다. 어느 체제든 그 이념형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존재하고, 또 한계를 안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 나타난 사회보장제도와 정책은 그 이념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수렴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한 대안으로 우리는 어떤 체제를 따라갈 것인가? 각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병존시킬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양자의 조합이 가장 많은 합의와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체제는 무엇인가?
지난 몇세기에 걸쳐 지구상에 등장했던 체제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시장을 부정했던 사회주의권의 많은 나라들이 시장경제로 선회하고 있고, 시장의 실패를 경험한 나라들은 불안과 빈곤을 초래하고 있으며, 시장을 축소한 많은 복지국가들이 저성장과 고실업 그리고 국가 재정적자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에게 서구의 복지국가 유형이 체제선택에서 하나의 이념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많은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장 영국이나 독일 혹은 스웨덴 식의 서구 복지국가의 모형을 따르기에는 여러 정황이 다르다는 것을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들 나라에서는 이미 방대한 복지예산과 정책들 그리고 제도적 실험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폭넓은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투쟁, 아울러 이를 조화시키려는 조합주의적 전통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사회보장에 관한 국가의 예산지출과 제도운영이 너무나 취약하고, 제3섹터의 역할 역시 미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국가에 대해서는 사회복지에 대한 적극적 인식전환과 예산확충을,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제3섹터의 운영과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라는 원론 수준의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지원에 대해 국가와 시장(기업) 그리고 커뮤니티(제3섹터와 시민사회)의 삼각 축을 기본골격으로 하였을 때, 국가는 계획과 집행의 권력을, 시장(기업)은 자원의 효율적 생산을, 커뮤니티는 신뢰와 상호작용에 기초한 배분을 대변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이 세 축의 역할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국가는 선도적인 역할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안고 있다.
계층간 불평등의 해소와 사회적 지원을 위한 국가의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취업과 고용안정 등 생산영역에서의 지원이며, 둘째는 생계 및 소비생활영역(노동력 재생산영역)에서의 사회보장, 그리고 셋째는 제3섹터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이다. 그러나 국가의 사회적 지원 역량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에 기초한 재정에 있다. 특히 사치재와 상류층의 자산소득에 대한 현행보다 무거운 누진세의 적용, 기업이나 자영업자층에 대한 투명한 조세적용, 탈세나 조세누수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등의 정책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진국의 사회보장이 체계적으로 실행되는 근거가 바로 이러한 조세정책과 재정확보에 있다. 여기에서 일부 특정한 사회적 자원의 공개념 부활과 확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에 시행하려다가 거의 폐기상태에 놓여 있는 토지 공개념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자유민주주의 제1원칙인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성과 시장원리를 내세워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어떠한 체제에서나 사유재산에 대한 국가의 공적 개입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같이 부동산에 의한 계층간 격차가 많이 벌어지는 경우, 부동산투기를 통해 막대한 자산과 불로소득을 얻는 층과 주거공간조차 얻지 못하는 층들 간의 기회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개념에 기초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회구성원들에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에서 공적 써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이미 한국은 사교육이 공교육의 장을 아우르고 있는 실정이며, 예체능과 실기, 외국어 등은 거의 사교육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지출되는 사교육비는 중산층들에게는 생활의 압박을, 저소득층과 빈민층에게는 기회의 박탈을 가져오는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공개념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특정한 사회적 자원, 즉 토지와 교육 등에 대해서 국가는 단지 자원배분만을 통제하는 결과주의에 입각한 정책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러한 자원의 산출에 투자하는 정책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자원의 산출부문은 개개인의 자유경쟁과 투자 즉 시장에 의존하고 국가는 단지 써비스의 분배만을 강제한다면 지난 의약분업의 결과에서처럼 집단적 저항에 의한 사회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제3섹터에 대해서 국가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제3섹터는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3섹터의 활동이 매우 취약하므로 국가가 이 부문에 대해 직접적인 보조는 물론 세금감면 등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역에 대한 자원봉사와 기부금을 통한 ‘사회적 지원’의 확충을 위해서도 세금감면 정책은 필요하다.
제도와 체제 선택은 항상 그 사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지원에 대한 한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족에 기초한 부양과 부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비공식적 연줄에 기초한 상호부조와 부양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공개념이 부재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공영역의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과 참여가 부족하며, 때로는 공적 부조나 국가의 보장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기까지 하다. 공공영역에 세금과 보험을 지불하고 그 지출의 댓가로 국가나 사회로부터 사회적 지원을 받는다는 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공적인 사회적 지원에 대한 의식전환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족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공적 사회보장제도에 수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와 물적 보상주의 그리고 소외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가족주의는 탈물질적 가치의 보상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의 요소로서 폐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성찰과 복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족주의적 가치는 특히 지역공동체에 기초한 제3섹터의 ‘사회적 지원’ 활동과 밀접히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란 경제와 정치는 물론 규범과 가치영역 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회관계의 총체를 의미한다. 사회복지와 사회적 지원에 대한 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그에 대한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논의가 요청된다. 한국사회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계급의 공고화와 재생산 그리고 계층격차가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나 이미 불평등 구조가 정착된 서구 자본주의사회에 비하면 그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분배의 기회와 조건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계층 불평등과 사회갈등, 그에 대한 제도적 대안, 나아가 체제이행의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된다. 사회정의와 형평, 체제와 그에 걸맞은 제도의 선택에 대해 전문가집단만이 아니라, 학계·국가·시민영역의 다양한 집단과 계층의 합리적 의사소통과 공론이 필요하다.
평등이 곧 사회정의라는 단순등식을 피한다면 불평등에 대한 공정성이 확립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을 존재하게 하는 사회적 과정이 얼마만큼 공정한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이는 불평등에 대한 제도적 대안 제시의 차원을 넘어 사회윤리와 규범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계층간 불평등은 바로 이러한 공정성, 윤리와 규범 그리고 합의가 부재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사회의 불평등보다 형평의 원리가 결여되어 있다. 수량적이고 계량적인 평등, 무조건적인 평등은 오히려 사회적 형평을 저해할 수도 있다. 아울러 기회와 조건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불평등 역시 사회적 형평에 어긋난다. 형평의 원리란 정당한 조건과 기회 위에서 발생한 결과에 따라 사회적 자원이 분배되는 공정한 균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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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조사에 의하면 강남구 주민의 금융자산은 타구에 비해 최고 4배에 달한다(『중앙일보』 2003년 10월 22일자). 각 계급간 소비생활양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장미혜 「소비양식에 미치는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상대적 효과」(연세대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00) 참조. 그리고 계층과 계급의 개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본 글에서는 계급과 계층의 의미를 동일하게 사용할 것이다.↩
- 이러한 계급재생산의 구체적 내용들에 대해선 김왕배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한울아카데미 2000) 참조.↩
- 보건사회연구원은 차상위 계층을 632만명으로 보고 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함께 빈민층을 전체 인구의 16%로 잡고 있다.↩
- 여기에는 단순히 물적 자원뿐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도 포함된다. 즉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비에 대한 정신적 욕구도 높아지며(이러한 욕구를 욕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 빈곤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
- 조명래는 빈곤의 유형을 생산부문에서의 불안전고용과 노동불능형 빈곤, 재생산부문에서의 불안정 가정형과 파탄 가정형으로 분류하고, 재생산부문의 빈곤에 촛점을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히 미래 삶에 대한 절망이라는 소비부문의 조건과 의식이 빈곤분석에 하나의 주요의제가 될 것을 주장한다(한국도시연구소 『도시와 빈곤』 제23호, 1996년의 특집토론 “현대사회의 빈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조명래 발언 참조).↩
- 도시빈곤층의 경우 한 조사에 의하면 정규직은 단 2.3%에 지나지 않으며, 예금이 전혀 없는 경우가 74%에 이른다(『중앙일보』 2003년 10월 7일자).↩
- 생산과 소비의 정치라는 용어는 독점자본과 같은 초국적 자본의 생산활동을 도와야 하는 국가와, 주민들의 복지와 소비를 담당하는 지방정부와의 관계를 설명한 쏜더스(P. Saunders)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 T. H. Marshall, Class, Citizenship, and Social Development(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7) 제4장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참조.↩
- 제3섹터에 대해서는 주성수 『시민사회와 제3섹터』(한양대출판부 1999) 참조.↩
- 미국의 경우 경제활동행위의 구성을 GNP 구성으로 보면 기업부문이 80%, 정부부문이 14%인 데 비해 제3부문이 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제3부문은 총고용의 9%를 차지한다. 제3부분의 자산은 현재 연방정부 자산의 약 절반에 해당된다. 자세한 내용은 J. Rifkin, The End of Work(이영호 옮김 『노동의 종말』, 민음사 1996) 참조.↩
- 또한 현행 복지부문 관료들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대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며, 불필요한 방위프로그램을 축소해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리프킨은 주장한다. 이를 위한 가장 공정하고 포괄적인 방법은 모든 사치재와 써비스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 이밖에도 상호호혜 원칙하에 노동력을 교환하는 품앗이나 계(契) 등의 전통이 있다.↩
- 일반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의 체제에 대해 세 부류의 이념형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며, 둘째는 사회민주주의체제이고, 셋째는 공산주의체제이다. 이들 체제는 각각 기회의 평등을 추구할 것인지, 조건의 평등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사회세력들간의 강제력과 합의를 통해 선택된 것들이다. 달리기 경주로 비유한다면 기회의 평등은 장애인이나 운동선수나 일단 출발점에 똑같이 설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는 것이며, 조건의 평등은 장애인의 경우 출발선을 몇미터 앞쪽에 설정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의 평등은 모든 이들의 결승점을 동일하게 설정한다(박호성 『평등론』, 창작과비평사 199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