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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G. 브라운 『생명의 에너지』,ᄒᆞᆫ의학 2002
과학과 생활의 만남
소광섭 蘇光燮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kssoh@phya.snu.ac.kr
스노우(C.P. Snow)는 『두 문화』(The Two Cultures)라는 책에서 ‘열역학 제2법칙’의 문화적 가치를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견주며, 교양있는 사람이 이 법칙을 모르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모르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대 의대 내과학 이홍규 교수 등이 번역한 가이 브라운(Guy C. Brown) 박사의 『생명의 에너지』(The Energy of Life, 김원배·신동수·이홍규 옮김)는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열역학 제2법칙을 비롯하여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핵심개념과 최근의 분자생물학적 이론을 쉽고 재미있는 비유들을 구사하면서 매우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과 함께 전달하고 있다.
역자가 말하듯이 21세기를 맞이해 건강과 질병, 비만과 다이어트, 스트레스와 피로 등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늘어가고 관련서적이 범람하고 있으나, 이들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총괄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과학적 안내서는 없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생명을 유지하고 신체를 움직이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며, 물리적 에너지와 함께 정신적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이 에너지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고, 다시 잃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원기왕성한 사람은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창조적이고 마냥 행복하다. 저자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칼로리 섭취량이나 은행구좌에 흥미를 갖는 것보다, 어떤 것들이 우리의 에너지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2면)고 강조한다. “육체와 정신에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면 시간이 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며, 여러 곳을 다님으로써 우리의 삶이 보다 풍부하게 영위되는 것이다. 활력, 열정, 박력, 자신감, 집중하여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능력, 신속하고 일관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 피로나 탈진을 견디는 능력 등―요약하여 에너지―은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3면)“최근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현대사회의 산물이다. 에너지 부족은 환자들이 가장 흔히 호소하는 증상이 되었으며, 우울증과 탈진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에너지를 좀더 얻기를 갈망하고 있다.”(같은 곳)
「들어가는 말」에 나온 저자의 이 문구들을 보면 싸구려 잡지에 나오는 광고문안이 아닌가 의심이 갈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피상적인 것이고 이 책의 내용과 수준은 정통의 과학교양서이다. 저자는 이른바 ‘정력’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에너지’의 과학적 의미와 현대 생물학 이론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지침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정력을 위해서라면 기이한 동식물까지도 마다 않고 찾아헤매는 잘못된 습성과 상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보약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장단기적 에너지 확보 방법에 대하여 합리적인 처방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처음 5장까지는 에너지에 관한 물리적·생물학적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생명현상의 중심개념인 ‘에너지’의 물리적 의미에서 출발하여 세포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전기현상, 전자와 양성자,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의 작용 등을 1~3장에서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몸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생성의 기초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발견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함께 엮어가면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교양인이라면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다.
4장에서 소개하는 ‘미토콘드리아’ 이야기는 생명에너지의 핵심이면서, 또한 철학적으로도 흥미있는 주제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적인 단세포생물이었는데, 오랜 옛날에 동물세포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 공생관계의 존재이다. 그들은 세포 속에 살면서 산소와 음식물을 결합시켜 에너지를 생산하므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원이 되었다. 대신 우리는 그들에게 먹이와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몸속 세포마다 천개 정도의 미토콘드리아가 있으며,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을 미토콘드리아가 처리하여 열과 에너지를 만든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구하는 사람은 먼저 미토콘드리아에 대하여 잘 알고 그것의 성질에 맞추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몸 세포의 DNA와는 다른 자기 고유의 DNA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유전된다. 그런데 이 유전은 모계유전이 특징이어서 인류 최초의 어머니인 ‘이브’를 찾는 것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서이다. 죽은 사람들의 신원확인에도 이 DNA가 많이 사용된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러시아 니꼴라스 황제의 딸 아나스따씨야라고 주장한 것을 유족들의 DNA 조사로 사기로 판명한 것도 이 미토콘드리아 DNA의 응용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생명의 아이러니는 이것이 생명활동의 에너지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세포의 죽음을 초래하는 은밀한 암살자라는 점이다. 우리의 세포가 10억년 전에 처음 미토콘드리아를 끌어들인 순간부터 파우스트의 거래가 시작된 셈이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수용한 댓가로 세포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독성물질을 생성하고 취급해야만 했다. 생과 멸은 원래 나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었을까?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생성과 함께 활성산소를 배출하는데 이것이 노화와 당뇨와 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야누스적 존재라 아니할 수 없겠다.
비교적 딱딱한 주제를 이루는 전반부를 지나면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제목의 장들이 계속된다. ‘비만, 날씬해지는 법’(7장), ‘스트레스’(8장), ‘정신에너지, 기분에너지’(9장), ‘뇌 에너지의 사용’(10장), ‘섹스와 수면’(11장), ‘에너지를 얻는 방법’(12장)과 같이 평소에 일반인의 관심이 많은 주제들에 대하여 전반부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과 조언을 한다. 특히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누구나 꼭 읽어봐야 할 내용이다.
당신이 다른 명확한 증상 없이 피로감을 느낀다면 심각한 정신 또는 신체의 질환보다는 에너지 결핍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장기적으로 신체에너지 수준을 높이려면 에너지를 보충하는 노력보다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242면)
그 이유와 그 효과가 궁금하다면 보약이나 정력제를 찾기 전에 이 책의 12장을 읽어보아야 한다. 끝으로 이홍규 교수가 특별부록으로 덧붙인 「생명에너지와 기의 역사」는 기(氣)에 관한 간명하면서도 중심을 꿰뚫는 뛰어난 해설이므로 역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