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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유종호 『나의 해방전후: 1940~1949』, 민음사 2004
자서전의 시대
윤해동 尹海東
서울대 강사, 한국근대사 전공 hdyun@hananet.net
이제 곧 ‘모든 사람이 자서전을 가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전망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화시대의 글쓰기 방식이 쌍방향 소통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공식적인 역사나 내러티브를 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표출하고 싶은 욕망을, 인터넷은 부추기고 또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기억은 재현 형태상으로는 문헌과 구술로 나뉜다. 쌍방향 소통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자서전은 역사적 기억의 형태상으로 본다면 문헌이기도 하고 또한 구술이기도 할 것이다.
유종호(柳宗鎬)의 ‘회상록’ 『나의 해방전후:1940~1949』는 저자가 저명한 문학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자서전의 시대를 예감하게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1941년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되던 1949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바, 이른바 해방전후사에 대한 ‘회상록’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회상록 또는 고백록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일 터이고, 그 둘을 양극으로 한 스펙트럼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근접 과거에 대한 온전한 파악을 통해서 사회사적으로 기여하고자 쓴 것’으로서, 결코 자전이 아니라는 점을 강변한다. 회상의 주체로 등장하는 저자는 다만 그가 경험한 삶의 세목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6면).
저자는 ‘기억의 복권을 위하여’ 회상을 집필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는 기억의 역할과 기억투쟁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기억에 대한 그의 관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기억은 때때로 기억주체를 오도하고 혼란시키므로 허망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은 해방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기억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릴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유소년기의 비허구적 기억 재생산’은 정당화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현재 상황에 근거해서 약간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급속하고 전면적인 사회적 변화가 수반되거나 주체의 자의성이나 선입견이 작용함에 따라 상상력도 일정한 방향으로 방위설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풍문에 의한 자의적인 상상력은 신화작용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기억을 복권하고, 사회적 기억을 회복하는 일은 ‘자의적 상상력의 신화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특히 필요한 일이 된다. 이때 이를 매개하는 것은 기억이 가진 ‘참무리’로서의 역할이다. 참무리란 경험한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진정성의 후광이다. 참무리는 자의적 상상력이 가진 신화작용을 침식함으로써,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과거 이해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기억을 기록하고, 교환하여 종합 검토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회적 기억을 환기하는 회상을 통해 ‘개인사로부터 전체사’로 이행하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면 저자가 ‘재생산한 유소년기의 비허구적 기억’의 몇몇 단편들을 따라가보자. ‘국민학교’부터 전적으로 일본의 ‘황국신민’ 교육을 받았던 저자 또래가 조선사람이란 것을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었고, 또 그런 의식은 조직적으로 억압되고 있었다. 가령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사람 안중근의 총을 맞고 죽었다든가, 일본에 대항해서 싸우는 ‘킨이찌세이(金一成)’라는 조선사람이 있다든지 하는 말을 들으면, 막연하나마 조선은 일본과 다르고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으며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일상적인 것이 될 수는 없었다(112~14면). 한편 다음과 같은 애틋한 기억도 있다. 저자가 2학년 때 여학교를 갓 졸업하고 담임으로 부임한 열한살 연상의 일본인 여교사는, 저자를 외투 안으로 끌어안고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때 검정 외투차림으로 함박눈 속에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을 저자는,“별볼일 없는 내 유년기 활동사진의 최고 서정시”로서 이 때문에 “많은 것을 불문에 부칠 수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하필이면 왜 일본 기집애가 담임이냐”라는 외조모의 발언은 망언이 되고, 며칠 동안이나 이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50~51면).
일제 말기에 유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의식 속에 민족이라는 경계는 흐릿한 그 무엇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이 항복방송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저자의 이종형은 일본의 연합함대가 건재한데 “일본이 항복했을 리가 없다”고 머리를 갸우뚱거렸던 것이다(108~109면). 특히나 저자가 일본 헌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해방 후 어느날로, 장총을 들고 충주의 관공서나 동사무소 건물을 지키고 있던, 청주에서 응원나온 헌병이었다(116~17면). 이처럼 일제의 압제의 촉수는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새삼스런 그 무엇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의 회상 속에 남아 있는 이런 기억은 민족을 경계로 그어진 식민지에 대한 역사서술이 그후에 가공된 민족주의의 허구적 산물일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1948년 저자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의 회상이 흥미롭다. 일민주의(一民主義)를 강조하던 안호상이 문교부장관이던 시절, 학도호국단이 창설되고 교련이 정규과목으로 채택되며 체육교사들이 징발되어 단기훈련을 받고 배속장교의 자격으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당시 교련시간에 많이 불리던 군가 가운데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태극기 걸어놓고 천세 만세 부르세/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나랏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라는 가사를 가진 것이 있었다. 근데 최근에 이 군가가 박시춘이 작곡한 「혈서지원」이라는 곡으로, 일제 말기 지원병 장려책의 일환으로 작곡된 것임을 알았다고 토로하고 있다(262~63면). 이를 두고 저자는 일제 말기를 함께 지내온 사람들은 서로가 공범이라는 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역사의 연속성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요컨대 저자의 유소년기에 대한 기억 속에서 기존의 도식화된 민족사상(民族史像)을 직재적으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식민지 시기와 정부수립 전후의 시기가 지금까지 상상된 것보다는 훨씬 연속성이 강한 시기였다는 점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기억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기억과 역사가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역사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목표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역사를 위한 기억’을 추구한다면, 기억은 ‘기억을 위한 역사’로서 ‘대항기억’ 나아가 ‘대항역사’를 구축하고자 한다. 역사란 궁극적으로 기억의 투쟁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국가의 공식역사로서의 민족사와 대항역사를 구축하기 위한 투쟁이 바로 기억과 역사의 투쟁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회상록은 현대 한국의 기억투쟁에 훌륭하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저자는 자신의 기록이 자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노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이 책에는 고백만이 아니라 자신의 신상에 관한 기록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나아가 학교를 매개로 한 사회적 상황만을 드러냄으로써 심지어는 가족의 상황마저 알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의도적인 ‘거리두기의 과잉’은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복권’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듯하다. 기억이 가진 편견으로서의 측면을 인정한다면, 편견 없는 회상을 상정할 수 있을까? 총동원체제기의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이 ‘경제적, 지적, 정서적 빈민굴’이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이나, 이 책을 쓰면서 ‘형성기의 원색적인 황량함과 척박함에 대해 사회적 시민적 공분’을 느꼈다는 표현에는 기억이 가진 편견이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편견은 명백히 거리두기의 과잉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나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와 같은 고전적인 유년기의 회상록 목록에, 우리는 중요한 저작 하나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의 유년시절」이 20세기 초반 베를린에 대한 훌륭한 ‘도시사회사’로 기능하듯이, 이 책은 앞으로 해방 전후 ‘교육의 사회사’로서 현대사 연구에 훌륭하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은 자서전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언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이제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자서전을 쓰자, 모두가 자서전을 쓰는 시대로 나아가자, 이것이 역사라는 거대서사에 대항하여 기억투쟁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