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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두식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교양인 2004
잃어버린 헌법을 찾아서
김종철 金鍾鐵
연세대 법학과 교수 jkim386@yonsei.ac.kr
성문법은 근대성의 중요한 표지이다. 관습법과 같은 불문의 법 규범으로는 복잡해져가는 자본주의사회가 평화롭고 안전한 질서 속에 유지되도록 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법 규범의 예견가능성이 떨어지고 지배자의 자의(恣意)가 개입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근대화에 뒤처져 성문법제를 받아들인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가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화의 뒤안길에서 때아닌 관습법의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홍역의 징후는 지난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관습헌법의 이름으로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홍역의 발원처는 헌법재판의 이름으로 저급한 정치적 성명서에 서명한 일곱 명의 헌재재판관이나 공명심에 들떠 그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세계헌법사에 유례가 없는 쾌거를 이룬 것으로 찬양하는 청구인측 법률가들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성문헌법주의의 기본개념과 가치에 둔감하기 그지없는 재판관이 헌법에 대한 최고해석권자의 자리에서 우리 공동체의 근본규범을 유린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행사한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홍역열의 발원처는 이들을 대표자로 뽑은 우리들 국민이다. 우리 헌법이 자랑스럽게 공동체의 최고권력을 가진 주권자라고 선언하고 있는 이 국민이 아직도 ‘법이라고 하는 다루기 어려운 물건’을 전문가들에게 맡겨놓고 “그저 생업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자위하면서 “경제 좀 챙겨라!” 하고 아우성이나 치고 있는 동안,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도 “모르면 조용히 하라”는 한마디로 모든 비판을 봉쇄하는 ‘저주받을’ 법률가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똥개 법률가’를 자처하는 김두식(金斗植)은 이 책에서 “청지기라는 본래의 소명을 저버린 채 자기 집단과 권력자를 옹호하는 데 지식과 능력을 악용해온”(6면) 법기술자를 고발하고, 시민들이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정의의 표현인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한 참회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진정한 참회를 위해 많은 장애가 있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애는 자기 자신이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 대통령과도 맞장뜰 수도 있는 검사가 되었음에도 그가 ‘전업주부(專業主夫)’를 거쳐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어느 지방대학의 법학교수로서의 삶이다. 그것도 ‘일류들’은 꺼려하는 교양법학 가르치는 걸 즐기는 ‘이류’ 법학교수의 길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이류이기를 자처하는 것은, 일류를 자처하는 이땅의 수많은 법률가들이 시민생활과 철저히 담을 쌓은 ‘그들만의 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온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위해서이다. 논리보다는 직관, 법리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한 결론을 정답으로 제시하는 데 익숙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한 일류법률가를 지망하는 몽매한 법학도나 일반 시민들에게 “정답은 없다!”고 외치기 위해서이다(제1장).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법이란 것이, 신과 같은 절대적 권위자가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점지하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올바른 절차에 기초하여 서로가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참회를 위한 두번째 장애는 국가란 이름의 괴물이다. 저자와 평자가 기본적인 사회관을 형성하던 초중등교육 시절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공산당은 붉은 피부를 가진 뿔 달린 도깨비라는 설명을 매일 아침 일지에 적으며 오로지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도록 강요받은 세대다. 그러나 48년 제주, 60년 마산과 서울, 80년 광주에서 시민의 가슴에 칼침과 최루탄과 총탄을 퍼붓던 그 무엇이 국가란 괴물이었고, 그 괴물의 학살을 수행하거나 방조한 자들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 부품화한 법기술자였음을 저자는 고발한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이유로 인권유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법률가가 되어서는 안된다”(99면)고 호소한다.
이 책에서 넘어서고자 하는 마지막 장애는 특권집단을 추구하는 법률가 양성과정과 법원 및 검찰을 중심으로 형성된 오도된 법률문화이다. 대한민국의 법률가 양성과정과 법률문화는 한마디로 폐쇄적 특권집단의 몰상식, 비양심 그리고 비겁함으로 상징된다. 권력의 수족이기를 거부하고 시민의 편에 서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최대한의 보장을 위해 헌신하는 법률가가 필요하며 그 양성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특권화한 법률가들에게 설득한다(제3장~제5장).
저자가 친절하게 제시하는 참회의 방향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축약되는 헌법정신이다(제6장). 우리 헌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최대한의 보장을 기본정신으로 한다. 그는 이 헌법이 이러이러한 인권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국가안보 등을 위해 제한한다는 권력자의 논리나 어법에 의해 유린될 때 그 헌법은 더이상 국가기본법이 아니라 ‘잘 포장된 한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함을 설파한다.
지금까지 이 글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거나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으나 아직 김두식의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참회의 길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연히 그에 대한 섣부른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필자와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너무 부당한 처우이다. 최소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김두식은 ‘저주받아야 할’ 법기술자에 대한 비판을 필자처럼 주체하지 못할 감정을 저급한 화법과 가파른 호흡의 긴 문장으로 흐려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보다 훌륭한 인격을 가졌음에도 세계관 차이로 비판의 대상이 된 일류들에게 사죄를 덧붙이는 겸손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차분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설득력있는 논리를 전개한다.
관습헌법의 망령으로 다시 한번 법률가들을 저주의 대상으로 만든 헌재재판관들한테 받은 상처를, 이류임을 자처하는 법률가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김두식과 같은 이류법률가와 함께 잃어버린 헌법을 복권하는 그날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