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4회 창비신인시인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과 함께 11월 24일(수) 오후 6시 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4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송진권 「절골」 외 4편
심사위원
이시영 최정례 박형준
2004년 10월
(주)창비
심사평
공동당선작을 낼 뻔했을 정도로 좋은 시들이 많았다. 영혼의 꽃바구니에서 꺼낸 삶의 마술은 갈수록 우리 시의 침체가 심화되는 현실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신인들의 패기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여러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콜라캔으로 대변되는 도시 삶의 비애로부터 청춘의 열정을 소진하던 80년대의 도시 외곽 풍경을 지나 농촌공동체의 한 끄트머리에 매달린 설화적 공간에 이르기까지 빼곡한 지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다채로운 지층에서 내밀한 시적 생명을 바탕으로 사회와 자연 등의 사물과 다리를 놓는 새로운 상상력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이번 창비신인시인상 심사는 세 명의 심사위원이 1차심사에서부터 참여하여 세심한 분석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시적 개성을 소중하게 키워나가는 좋은 신인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본심 뚜껑을 열어보니 단 한명의 신인을 골라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는 시인의 시선과 감정이 잘 녹아 있을 때 설득력을 발휘하는데, 시인의 시선이 뛰어나면 감정의 무게가 부족했고, 이와 반대로 풍부한 감정이 잘 살아 있으면 새로운 시선이 부족했다. 시란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의 감정으로 느끼고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서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작품을 쓴 사람의 사상과 시인의 눈 속에 들어온 형상의 결합이 시를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이다.
583명 중에서 최종적으로 논의된 응모자는 모두 4명이었다. 이 중에서 김윤희의 시는 한국어의 순도높은 서정을 보여주는 안정성이 단연 돋보였으나 돌출된 언어구조가 빚어내는 매력이 부족했다. 또 자신만의 시적 스타일로 언술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권오영의 경우는 매력적인 시세계에 비해 투고된 작품들이 균질하지 않았다. 특히 권오영의 시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공모제에서는 많은 시를 투고하는 것보다 정해진 편수에서 시적 개성과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스스로 가려뽑을 줄 아는 감식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당선자로 집중 논의된 신인은 송진권과 임재정이었다. 세 심사위원의 침묵과 설득이 번갈아 오가는 과정에서 두 신인을 공동당선자로 결정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한 심사위원이 끝내 임재정의 시가 당선작으로 하기에는 시적 높이가 그렇게 우수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자연스럽게 당선작은 송진권의 시로 결정되었다.
임재정의 「즐거운 수리공」 외 4편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랩의 언어로 발랄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어조로 표현하는 독특한 어법은 무덤 파는 포크레인을 ‘정원사’로 노래하는 「내 친구는 정원사」라는 시편에서 빛을 발한다. 포크레인에서 “황토밭 위를 내닫는 소나기”를 발견하거나 “장지(葬地) 한쪽에 쉴 때면 합장하는 품새가 대찰 큰스님”이라는, 그러니까 가벼움과 무거움이 교차하는 시선의 발굴은 새로운 어조에 의해 흥겨움마저 선사해준다. 하지만 투고된 다른 시편들은 시적 대상을 표현하는 데서 개연성과 시적 깊이가 부족하고 재치에 머무른 단점이 있다.
송진권의 시는 최종심에 진출한 작품 중에서 세 심사위원이 마음에 둔 시에 모두 포함될 만큼 생생한 설화적 풍경이 압권이었다. 그는 시를 만들지 않고 스스로 즐기면서 신명나게 분출한다. 구성지면서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랑말랑한 언어의 묘미로 빼어나게 살린 충청도 사투리, 거기에 걸맞은 어휘 선택, 설화와 가난의 현실마저 경쾌하게 그려낸 우리 전통의 익살스러운 가락이 일품이다. 그러나 「절골」 「무수」 두 작품이 이러한 높은 시적 성과를 거둔 반면 나머지 투고작은 상대적으로 우려의 심사를 던져준다. 과다한 사투리 사용과 지나친 과거 편향적 측면은 앞으로 이 신인이 현대 도시의 일상을 그릴 때 얼마마큼 고뇌의 흔적을 보여줄지 조금 걱정스럽게 한다. 앞으로 그가 신명의 언어로 시선의 다양성과 감정의 균형을 이룬, 뛰어난 시인으로 거듭나 우리의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줄 것을 기대한다.
李時英 崔正禮 朴瑩浚
당선소감
송진권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방송대 국문과 졸업
대전조차장역 근무
며칠 전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벌써 며칠째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몽롱한데다 몸살까지 있어 아른아른합니다.
어릴 적부터 많이 앓았습니다.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며 자다 깨다 하다보면 이불까지 축축이 젖어 있었습니다. 잠결에 마당을 지나는 바람소리, 누군가 두런거리는 소리, 타다닥 불티를 내며 장작 타는 소리,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들 틈새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가난했던 부모님은 일을 하러 들로 나가셔야 했고 혼자 앓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고 늘 조용하니 눈에 띄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지내는 것보다 짐승이나 풀, 나무와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점점 또래집단의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저는 세상과 일종의 막 같은 것을 두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철이 들어서 만난 세상은 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시를 접하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고향의 말들로 제 시에 꽃도 놓아보고 바람도 놓아보고 어렸을 적 들은 얘기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지나온 것들을 놓아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현실이 쉽지 않아서였을까요. 글쓰는 것과는 무관한 직업이다보니 심신이 많이 지쳤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향과 유년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에서 멀어졌던 것이 더욱 시에 몰입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언젠가는 깨어날 꿈같은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이젠 깨어나야 할 것도 같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과거가 있기에 지금도 있고 또 올 것도 있겠지요. 지나간 것과 지금의 연결이 쉽진 않겠지만 그 고리를 찾는 일이 지금 저에겐 숙제입니다. 어렵겠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집에 빠지지 않고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 선생님들 말씀 깊이 명심하여 집착하지 않고 저만의 언어로 세상을 그려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참 많은 스승을 가졌습니다. 시집과 책으로 만난 많은 시인들,싸이버공간에서 만난 여러 스승들, 시맥과 웹진 시인학교의 여러 문우들, 강화도의 식구들, 힘들 때 저를 믿어준 동료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인이 되신 어머니와 항상 넉넉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시골의 아버지, 친구들, 그리고 저에게 웃음을 가져다준 아내, 내년에 태어날 아가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방식대로의 글쓰기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창비 관계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