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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아시아의 변화, 한국사회의 대응

 

동아시아 협력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국민국가들의 협력인가 국민국가의 극복인가?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주요 논문으로 「북한 개혁의 ‘이륙’은 가능한가」(본지 112호)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의 성격과 발전방향」(본지 120호) 등이 있음. lee87@mail.skhu.ac.kr

 

 

1. 동아시아 협력론의 부상과 문제점

 

1990년대 들어서 ‘동아시아’는 인문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의 중요한 분석범주로 등장하였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들이 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당시 급격한 내외의 환경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국적 시각과 세계체제적 시각의 매개항으로, 특히 전지구적 자본의 획일화 논리에 저항하는 거점으로 동아시아를 주목하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1 그러나 동아시아론이 한국사회의 당면한 실천과제와 연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냉전체제의 해체와 중국 대외개방의 가속화로 동아시아를 단절시켰던 대륙과 해양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역내의 경제·문화·정치 교류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여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에 다양한 협력사업이 진전되면서 한반도를 하나의 전략적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동북아에서 갖는 지정학·지경학적 잇점을 살리는 것이 21세기 한반도 발전전략의 핵심적 내용으로 떠올랐다.2

이에 따라 최근 동아시아 협력론은 많은 실천적·정책적 의제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이 과연 새로운 담론이 함축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들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부터 2003년 노무현정부의 출범에 이르는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장기적인 발전방향 문제보다는 단기적인 정책과제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빼앗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논의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렇다고 논의의 이념적 기초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할 경우 또다른 맹목성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사회의 동아시아 협력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동아시아 질서인가. 지금까지 동아시아 협력론은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전제로 하고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논의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전제에 대한 검토는 불충분하다. 물론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시각의 견지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역질서라는 것은 개별국가 차원만의 실천의 산물이 아니라 역내의 다양한 정치·문화·사회·경제적 주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떤 지역질서가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개별국가의 발전과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지역질서를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로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어떤 동아시아 질서가 바람직한가라는 규범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어떤 동아시아 질서가 가능한가라는 실질적인 문제도 동시에 해명할 필요가 있다.

둘째, 동아시아 협력론이 제기하고 있는 실천과제의 장기적 영향이다. 노무현정부의 출범 이후 동북아중심국가 위원회, 동북아시대 위원회 등이 구성되고 로드맵이라는 형식으로 많은 정책의제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제들이 주로 국민소득이라는 기준에 따른 ‘잘살아보자’라는 지향 이외에 어떤 장기적인 정책비전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불충분하였다.3 이들 정책의제들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의 경제·사회구조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지 않으면 그 구상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이미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있었으나 아직은 위의 문제들에 만족할 만한 답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4 이 글은 동아시아 협력의 개별적인 정책의제보다는 기본구도에 촛점을 맞추어 기존의 동아시아 협력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사회의 동아시아 협력론이 더욱 과학적인 전망을 획득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특히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동체적 논의에 경사하거나 아니면 현실주의에 발목을 잡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발전이 한국사회에 어떤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

 

 

2.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전망: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

 

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가 필요한가? 이러한 문제의 답은 냉전의 종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서냉전의 종식은 세계체제의 안정보다는 위기의 심화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천하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5 냉전시기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느 한 이념을 대변하는 역외의 패권에 의존하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안한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이에 따른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이러한 불안한 안정과 질서도 같이 해체시켰으며, 동아시아 국가들은 갑자기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속으로 내던져졌다. 소련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그렇다고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자신의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믿음도 가지기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냉전시기의 조심스러움을 버리고 자신의 군사·경제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였다. MD 추진 및 북한 핵문제에 대한 일방주의적 태도, 인권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의 강요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대한 지역적 차원의 연대 필요성을 증가시켰다. 때마침 이루어진 유럽통합의 급진전과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지역주의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특히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차원의 협력은 급진전되기 시작하였다. 1997년 12월 “ASEAN+3(한·중·일)”이 비공식 정상회의를 개최한 이후 역내의 경제협력, 안보협력, 문화·사회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반 ‘아시아적 가치’ 논쟁 등 주로 추상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던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하였으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장기적 목표가 제시되기에 이르렀다.6 이는 동아시아에서 근대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주체가 된 지역질서에 대한 모색이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어떤 질서인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먼저 국민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지역질서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이는 민족주의에 의해 촉발된 갈등이 지역의 평화적 발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장했다는 인식과 연관이 있다. 강상중은 「공산당 선언」의 표현을 빌려 “한마리의 요괴가 동북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요괴가”라는 비유를 하고 어떻게 “내셔널리즘이라는 극약을 사용하지 않고 거기에 ‘취급주의’라는 팻말을 붙여 내셔널리즘의 전압을 높이지 않는 틀을 나라 안팎으로 만들어갈 것인가”가 21세기 정치가에게 맡겨진 가장 큰 과제라고 주장하였다.7 문정인과 전재성은 국가주권을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대내적으로는 절대적이고 최고의 권위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는 베스트팔렌(Westphalen)적인 주권개념의 추구가 동아시아에서 갈등의 가능성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하였다.8 이러한 접근에서는 국제관계에서 국민국가의 절대적 우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제도협력을 촉진하고 상호의존과 상호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평화문제에서는 공동안보 및 다자간 안보협력, 경제적으로는 개방적인 경제공동체, 정치적으로는 인권 및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국민국가 단위의 권리보다 더 강조한다.

반면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있다. 최장집은 “지역공동체의 장애요인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주의 담론 형성에서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조건에서 “국가간 경계를 넘어 어떤 지역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려우며” 새로운 지역질서의 발전은 동아시아 각국들이 “특수한 이익과 가치를 갖는다는 전제로부터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9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에게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왕 후이(汪暉)도 지역관계는 기본적으로 국가들의 관계이며, 아시아 지역에서 국민국가의 건설이 완성되지 않았고, 새로운 아시아 담론은 지구화의 주권에 대한 충격을 방어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평등한 주권의 존중이라는 기초 위에서만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의 보호적 성격의 제도적 틀과 공동통치의 사회적 틀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0 즉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국민국가의 극복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존중에 기초한 국민국가들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국가들 사이의 공동이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동체로 발전할 기초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장집은 평화와 안보, 왕 후이의 경우는 지구화에 대한 대응을 이러한 협력의 주된 내용으로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상상하는 데서 국민국가 극복에 촛점을 맞추는 것과 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는 것 사이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현실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장집 등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성숙한 국민국가의 건설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를 외면한 공동체 논의는 현실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지적은 새로운 지역질서에 대한 논의가 공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국민국가라는 틀이 지구화에 따른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역질서를 국민국가들 사이의 협력만으로 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동아시아가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국가의 건설과 이들 사이의 평화적 질서 구축이라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만 머무르기에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환경 변화가 크다.

이 점에서 새로운 동아시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백낙청이 지적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하나의 기점(국민국가 혹은 초국가적 제도 및 규범)에서 하나의 종착점(국민국가들의 질서 또는 지역공동체)을 향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 질서로 발전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들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될지를 평화협력과 경제협력의 영역을 예로 살펴볼 것이다.

 

 

3. 패권질서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평화체제는 가능한가

 

프리드버그(A. Friedberg)는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아시아가 민주주의, 경제·사회적 평등, 탈민족주의적 정치문화, 활력있는 지역기구 등 유럽이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에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요인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대국들의 충돌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불길한 전망을 한 바 있다.11 지구적 차원에서는 유럽의 유고 분쟁에서 중동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군사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나 동아시아에서는 다행스럽게 위의 불길한 예측이 빗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평화가 안정적인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1993~94년 그리고 2002년 이후의 북한 핵위기, 1995~96년의 타이완해협의 긴장고조, 남사군도(Spratly Islands)의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갈등, 일본과 중국 사이에 땨오위따오(釣魚島,일본명은 셍까꾸尖閣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등 위기적 상황은 계속 발생하였다. 역내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 쟁점들은 대부분 국민국가 사이의 갈등이나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차적으로 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질서이다. 미국은 1995년 2월에 발표된 “동아시아전략보고(East Asia Strategy Report)”라는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중시 전략을 밝히고 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일본과의 안보동맹강화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자의 등장을 막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배경으로 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계속 필요하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의 개입 없이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며, 미국의 패권은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12 소위 ‘패권안정론’과 맥락을 같이하는 이러한 논리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그리고 일본의 미국에 대한 편승전략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변화 추세는 미국의 패권이 이 지역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지역 차원의 평화보다는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의 국익에 종속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적절한 긴장이 있는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야말로 미국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가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부각하며 이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가시킨다든지, 아니면 역내의 경쟁의식을 한편에서 계속 조장하며 자신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목적은 더이상 숨겨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는 한반도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볼모신세를 면하기 어렵고, 분단체제의 극복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패권추구는 이에 대한 도전을 유발해 새로운 힘의 대결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부상이 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다. 강상중은 “역사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21세기에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대국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는 신흥대국이 패권을 추구할 때는 국제정치가 불안정해지고 종종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라며 우려를 표명하였고, 와다 하루끼(和田春樹)는 “미중대결인가, 공존인가. 결국 패권국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암울한 전망에 대해,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지향하는 길 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13 그런데 대국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갈등과 경쟁도 점차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우려로 여러 동아시아 협력론은 다자간 안보협력을 패권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다. 대국들의 패권추구나 힘의 균형의 추구 모두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과 갈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다자간 안보협력은 대국들의 일방주의적 행위를 제약할 수 있고, 상호경쟁보다는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지역질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평화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이를 동북아시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도 증가하고 있고, 강상중은 6자회담 이전에 이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과제로 “한반도의 남북 공존관계에 ‘2 더하기 2 더하기 2’, 그러니까 6개국이 어떤 모양으로든 참여해서 안전보장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최장집도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는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평화,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14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다자간 안보협력 구상은 미국을 중요한 주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아시아에서 세력관계의 변화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기존 패권세력의 약화와 새로운 패권세력의 등장이 반복되던 상황과는 다르며 상당 기간 미국·중국·일본 사이의 힘의 균형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15 그리고 이는 우리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친구냐 적이냐라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해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는 동맹이냐 아니냐라는 선택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면 협력하고 우리의 입장을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16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의 힘으로만 해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등한 자세로 문제를 논의하고 협력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주’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6자회담이 다자간 안보협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개별국가의 안보정책을 국제규범에 종속시켜야 하는 다자간 안보협력은 무정부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 유럽이 CSCE(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Europe)를 통해 다자간 안보협력을 발전시킨 예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 역시NATO라는 군사동맹의 뒷받침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역할을 지나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현재 주변 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6자회담 참여에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들이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에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로 나올지는 회의적이다. 중국은 타이완문제를 국제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을,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전략이 다자간 대화의 의제로 다루어지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6자회담에 이어진 다자간 안보협력이란 것은 사실상 한반도에 대한 공동관리 씨스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곧 동아시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의 맹아가 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처럼 다자간 안보협력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자는 것이지 다자간 안보협력의 무용론을 주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자간 안보협력은 동아시아가 대국들의 군사적 경쟁무대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당장 다자간 안보협력을 실현시키지는 못할지라도 헬씽키 선언처럼 유관 국가들이 동북아시아에서도 평화적 미래의 상과 이를 위한 공동노력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신사협정을 맺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있으며, 대립과 갈등에 의해 지배되어온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관을 도입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17 따라서 북핵문제 등 현재의 위기를 관리 가능한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한 유관 국가들 사이의 협력이 이러한 신사협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노력은 동북아 평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신사협정에는 선언적으로라도 한반도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공동노력의 필요성과 기본방향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협력이 다자간 안보협력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다자간 안보협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안보정책에 대한 절대적 권리는, 협력과 합의에 의해서라면 국제체제에 양도가 가능하고 또 국가 자체만의 안보가 아니라 개인적 인권의 보장·증진과 조화를 이루는 상대적 권리로 전화될 필요가 있다. 유럽의 CSCE의 경우도 경제·환경·문화·인권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교류의 촉진을 안보협력 강화의 중요한 기초로 삼았다. 그런데 이는 국민국가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하는 근대적 국제관계의 틀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여야 하는 국민국가들의 협력보다는 소위 ‘트랙2’(Track Two)라는 민간부문, 특히 시민사회의 협력을 통해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연대감의 형성이 필요하다. 물론 동아시아에서는 시민사회가 전체적으로 저발전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 영역의 활동이 아직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동아시아에서도 1980년대 후반이후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있고 동아시아를 횡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민간역량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전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시민사회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부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아시아적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보면 동아시아의 평화질서는 동북아 평화체제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대국들의 화해를 이루는 무대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대국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역내의 새로운 안보관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백영서(白永瑞) 등은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국 중심이 아니라 과거 동아시아 질서의 주변에 위치한 세력 사이의 협력을 강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8 특히 동아시아 협력에서 동북아시아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반면, ASEAN이 ‘ASEAN+3’을 주도하고 제도협력을 촉진하고 있는 것은 주변에서의 시각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와 이들 사이에 대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경계심은 쉽게 공유하고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협력 가능성이 높지만, 정치적 환경의 차이로 시민사회 차원의 교류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도 아시아적 가치 논쟁 때처럼 인권이나 시민적 권리에 대해 특수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협력의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19

 

 

4. 지역경제통합의 진전과 새로운 발전모델에 대한 모색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발전과 관련하여 또다른 중요한 쟁점은 지역경제통합과 발전모델의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동아시아의 통합을 가속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경제교류의 증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역내 교역의 증가세에서 잘 나타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내 수출과 수입이 총수출과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1년 각각 31%와 32%에서 2001년 41%와 50%로 증가하였다.20 이에 따라 제도협력도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특히 2001년 ASEAN과 중국이 10년 내 자유무역지역 창설에 합의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는 FTA 체결을 위한 협의들이 급진전되고 있다. 소극적이던 일본도 중국에 자극을 받아 ASEAN 및 동남아 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보여 2004년 “ASEAN+3” 회의에서 ASEAN과 2009년까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는 데 합의를 하였다. 물론 FTA의 협의에는 여러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대로 추진될 것인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현재 역내 경제교류의 증가추세를 고려하면 기본방향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협력론은 FTA의 체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와다 하루끼는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인 지역통합을 추진한다는 면에서 동북아시아 자유무역지역 창설은 최대 핵심과제가 된다”고 지적하였으며 이수훈도 FTA를 동북아 협력의 주요과제로 제출하였다.21 이러한 판단은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와 시장통합이 평화질서의 발전과 공동번영에 유리하다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는데 유럽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FTA뿐만 아니라 환율공조체제 구축, 동아시아통화기금 문제도 정책의제로 제안되어 있는 상황이다.22

여기에서 우리는 피하기 힘든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지역경제통합의 가속화와 발전모델 사이의 관계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 영미식 시장경제와는 달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시장에 대한 적절한 보호, 수출지향형 성장정책,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등을 특징으로 하는 발전모델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지하였으며 한때 미국식 경제모델에 대한 경쟁적 모델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국가주도의 발전모델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고, IMF가 소위 ‘워싱턴 컨쎈써스’에 따른 급진적인 경제자유화 정책을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강요하며 경쟁적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영미식 경제모델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일견 동아시아 지역에서 FTA의 체결과 지역경제통합은 영미식 경제모델의 확산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결정론적으로 보기보다는 역내의 대응에 따라서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를 축으로 시장통합이 계속 진행될 것이며 국민국가들의 투자·생산에서의 역할과 경제조정 능력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발전, 생산력의 발전을 추진하는 동력으로서의 시장통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진보적 사고로 보기 어렵다. 지구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이는 인류의 기술·문화적 발전의 결과이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23 그러나 소득격차의 증가, 생태계의 파괴 등 부작용에 대한 효과적인 조정수단이 결여되어 있는 시장통합만으로는 진보적 미래를 구상하기 어렵다. 개별국가이건 지역적인 차원이건 시장통합과 시장적 질서의 발전이라는 과제를 수용하면서 국가 사이의 경제적 격차, 환경, 빈곤 등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점에서 국민국가 중심의 발전노선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겠지만 새로운 거버넌스와 관련한 국민국가의 역할, 국민국가와 시민사회의 협력체제 구축은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백낙청은 동아시아가 가장 활발한 자본축적이 진행되고 있으며, 역내 뚜렷이 합의된 발전모델이 존재하지 않고, 중국 등의 인구 규모의 생태계에 대한 압력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큰 점, 그리고 문명적 자산이 풍부하다는 점 등이 동아시아에서 대안적 발전 패러다임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 바 있다.24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이 지역경제통합의 진전 등 새로운 동아시아적 질서의 형성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개발주의의 영향력이 여전히 큰 동아시아에서 자연발생적인 변화의 결과로 대안적 발전 패러다임이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현재 동아시아의 지역경제통합과 관련한 논의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ASEAN의 FTA 합의내용을 보면 중국과 경제적으로 비교적 앞선 ASEAN 6개국은 2010년까지 FTA를 체결하고, 후발국 4개국은 2015년까지 FTA 체결을 추진한다는 단계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인적자원 개발, 농업, 메콩강 유역 개발 등의 공동협력사업을 우선적으로 전개할 것에 합의하는 등 내부의 경제발전단계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공동이익을 증가시키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고려는 앞으로 한국과 ASEAN, 일본과 ASEAN의 논의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이 미국과 같은 패권지향형 국가에 의해 주도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유럽의 경우처럼 거시경제에 대한 국민국가의 조절기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화폐통합을 통한 지역경제통합은 상당기간 불가능하다. 소국들과 많은 저발전국을 포함하고 있는 ASEAN에 의해 동아시아 지역경제통합이 주도되고 있는 것이 다양성과 공정성을 반영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공간을 활용하여 FTA 및 지역경제통합에서 환경권·노동권 등의 의제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별 국가적 차원에서는 그동안 지구화나 경제적 자유화가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에 의해 주도되어왔고,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FTA 체결이나 지역경제통합을 이벤트 식이나 선언적으로 추진해서는 안되며 개별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25 이는 국제적 합의보다 더욱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개별국가 차원에서 개방화와 자유화에 따른 경제적 부의 증가를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씨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개방화와 자유화는 지역통합보다는 역내의 경제·사회적 갈등을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적 권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일국적 문제만은 아니고 발전적인 지역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공동의 과제이며 특히 시민사회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5. 동(북)아시아 협력과 한반도: 개방적 진보는 가능한가?

 

국민국가들의 관계인가 아니면 국민국가의 극복인가라는 측면에서 동아시아 협력은 다원화된 경로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냉전해체 이후 새로운 평화체제의 발전과 관련해서는 제국주의의 개입에 의해 왜곡되었던 국민국가의 자기발전과 국민국가 사이의 수평적인 국제관계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연대감이 형성되어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평화질서를 만들 수 있다.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협력과 교류가 빠르게 증가해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기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구화, 경제 자유화의 부작용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구축이 필요하고 국민국가의 새로운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는 국민국가들의 질서만으로도 그리고 국민국가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도 불가능하며 두 방향의 힘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복합적인 과정은 국민국가를 당장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국가의 기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다. 즉 동아시아 협력의 진전은 “세계주의적 관점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중첩되는 운명공동체와 다차원적/다층적 정치라는 특징을 지닌 지구화 시대의 정치적 도전에 궁극적으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의 진단이 남의 일만은 아니게 만들고 있다.26 이는 우리에게 지구화 혹은 개방적 지역질서의 형성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며 새로운 진보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개방적 진보의 길을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역내의 경제통합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모든 사회집단이 위험부담이 있는 정책결정을 회피하고 임기응변으로, 특히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준비없는 개방으로 대응하는 것은 역내 경제협력이 제도적 통합단계로 발전하는 싯점에 개방의 부작용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개방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지역경제통합과 개방화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효과적인 보상체제의 구축을 통한 새로운 공공성 확보로 대응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생산자, 특히 조직된 생산자보다는 비정규직·고령자·실업자 등에 촛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고용정책, 복지정책, 그리고 지구화에 대한 대응능력 배양(외국어 교육 포함)이 주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사회정의·생태주의 등의 가치를 일국적 차원 즉 국민국가라는 틀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중적 상호연결망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국적 차원의 생태문제 해결, 노동문제 해결은 지역적 차원에서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국의 노동조건 개선은 다른 나라의 노동조건 악화나 노동권에 대한 억압과 함께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생태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개발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민국가 사이의 협력에서 지역협력에 민주주의·사회정의·생태주의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질적으로 수용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민간차원,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시민사회도 지역주의적 시각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의제들을 다루며 동아시아 차원에서 공공성의 증진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지역평화체제의 기반을 강화하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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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영서 「중국에 ‘아시아’가 있는가?」, 『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
  2. 이에 따라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협력론은 동북아 협력에 촛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이수훈(李洙勳)의 경우는 ‘동북아시대’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동북아’라는 개념이 동아시아나 아시아·태평양보다 더욱 분명한 가치지향성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 참여정부의 동북아 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이수훈 『세계체제, 동북아, 한반도』, 아르케 2004, 134면). 반면 최원식(崔元植)은 동아시아론이 동북아 중심론으로 축소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아시아가 동북아보다는 더욱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최원식 「주변, 국가주의 극복의 실험적 거점―동아시아론 보유(補遺)」, 정문길 외 엮음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문학과지성사 2004,313면). 백낙청(白樂晴)의 말처럼 동북아,동아시아 자체가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고 어떤 의도와 목적인가가 분명하다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백낙청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체제는 가능한가?」, 한국인권재단 엮음 『한반도 평화는 가능한가?』, 아르케 2004,151~52면). 본고도 동북아와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모두 사용하는데, 동아시아 질서 및 협력에 촛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3. 강상중(姜尙中)은 일본 중의원 헌법조사회 발언에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고, 일본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미국을 대신하여 수입대국이 될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한 단기적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주장하였다(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뿌리와이파리 2002, 39~40면).
  4. 이와 관련한 논의로는 백낙청 외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창비 2004; 한국인권재단 『한반도 평화는 가능한가?』, 아르케 2004; 이일영 엮음 『동북아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 한신대 출판부 2004; 최장집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아세아 연구』 2004년 겨울호(통권 118호)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백낙청의 경우는 위기국면에 진입한 세계체제에 대한 동북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창조적 대응의 가능성과 장기적 비전을 탐색하고 있으나 동아시아 질서 자체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지는 않았다. 최장집(崔章集)의 경우도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민족주의에 대한 대립항이 아니라 국민국가들의 공존질서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으나 평화안보문제에 대해, 그것도 주로 한반도 및 한반도와 미국·일본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있어 동아시아 질서의 전체구도에 대한 설명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논의에서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전망과 이런 전망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던져주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5. 백낙청, 앞의 글 144면.
  6. 1998년 2차 “ASEAN+3”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으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이 구성되어 2001년 5차 정상회의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하여―평화번영진보의 지역’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회의에서 구성이 결정된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은 2002년 6차 정상회의에 17개 단기사업, 9개 중장기사업을 제안하였다. 이 중 자유무역지대 창설, 동아시아정상회의 개최, 환율공조체제 구축 및 동아시아통화기금 창설, 아시아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 등의 중장기사업은 동아시아 협력의 제도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박번순 「아세안+3과 동아시아 협력」, Global Issue 제9호,삼성경제연구소 2004.11.30).
  7. 강상중, 앞의 책 40면, 42면.
  8. Chung-In Moon and Chaesung Chun, “Sovereignty: Dominance of the Westphalian Concept and Implications for Regional Security”, Muthiah Alagappa (ed.), Asian Security Order: Instrumental and Normative Features,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2, 129면.
  9. 최장집, 앞의 글 105~108면.
  10. 왕 후이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창비 2003, 220면.
  11. Aron Friedberg, “Ripe for Rivalry: Prospects for Peace in a Multipolar Asia”, International Security Vol. 18, No. 3 (1993·94년 겨울).
  12. Michael Mastanduno, “Incomplete Hegemony: the United States and Security Order in Asia,” Muthiah Alagappa (ed.), 앞의 책 164면.
  13. 강상중, 앞의 책 51면 및 와다 하루끼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일조각 2004, 198면.
  14. 강상중, 앞의 책 118면 및 최장집, 앞의 글 99면.
  15.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이며 이후 동아시아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대과정에 빠르게 편입되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급격하게 이동하였다. 패권의 변화에 따른 동아시아 지역구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동아시아 지역구도: 역사의 연속과 단절』, 제361회 국학연구발표회(2004년 12월 16~17일) 참조.
  16. 이와 관련하여 최장집은 대외관계의 관련 요소들을 분해–재구성하는 합성적 접근을 통해 양자택일적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최장집, 앞의 글 112면). 백낙청이 ‘민족공조’나 ‘한미동맹’을 절대시하고 양자택일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도 비주체적인 이분법적인 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백낙청, 앞의 글 161~62면).
  17. 백낙청, 앞의 글 158면.
  18. 백영서 「주변에서 동아시아를 본다는 것」, 정문길 외 엮음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문학과지성사 2004, 34면.
  19.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의 보고서에서 제안한 중장기 협력과제 중 하나가 시민참여 및 국가–시민의 파트너십 형성을 위한 정책자문 및 공조에서 NGO와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이고, 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 Edward J. Lincoln, East Asia Economic Regionalism,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4, 45면.
  21. 와다 하루끼, 앞의 책 260면 및 이수훈, 앞의 책 145면.
  22.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와중에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제안하였으나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좌절된 바 있다.그러나 동아시아 정상들이 새로운 동아시아통화기금 구상에 원칙적인 동의를 보인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23. 지구화를 결정론적이고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고 그 자체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과정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헬드 외 『전지구적 변환』, 창작과비평사 2002 참조.
  24. 백낙청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서」, 백낙청 외, 앞의 책 24~25면.
  25. 우리나라의 경우도 ‘선진한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등의 구호 속에 새로운 정책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차원의 결과와 이에 대한 대책이라는 측면을 사상시키는 경향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26. 데이비드 헬드 외, 앞의 책 7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