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동아시아의 변화, 한국사회의 대응
새로운 한반도 경제체제의 구상
분단경제에서 개방형 민족경제로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경제학. 저서로 『중국의 농촌개혁과 경제발전』 『동북아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공저), 주요 논문으로 「한국농업과 동북아농업」(본지 125호) 등이 있음. ilee@hs.ac.kr
1. 시작하면서: 두 개의 정경(情景)
국내 경제가 어렵고 양극화가 큰 문제라는 걱정이 많다. 위기다 아니다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정부도, 쟁점법안 문제로 소란스럽던 정치권도,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하나의 사례이지만 연말에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2월 대구의 어느 영세민 집 안방 장롱에서 다섯살짜리 아이가 숨져 있는 것을 주변에 있는 성당 관계자가 발견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기아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왔으나, 계속된 경기침체 때문에 하루 한끼는 거의 매일 굶었고 한달에 일주일 정도는 식사를 아예 못하는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1
그런데 영상을 통해 또다른 어린이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북한 청진 시내 모습을 담은 사진에는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리거나 한쪽 다리를 잃은 채 광장을 기어다니는 아이들, 길바닥에서 술병을 들고 담배를 능숙하게 피우는 열살 가량의 아이들, 누더기 차림으로 굶주림에 지쳐 철로에 쓰러져 잠든 소녀의 모습이 확연하다.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미 북한―중국 국경 가까이의 옌지(延吉), 투먼(圖們), 허룽(和龍)은 물론 랴오닝(遼寧)성의 션양(瀋陽)과 따롄(大連), 심지어는 샨뚱(山東)성 칭따오(靑島)에까지 퍼져 있다.2
이 두 개의 가슴 아픈 정경에 어떤 연관이 없을까? 장롱 속의 남쪽 어린이와 철로에 쓰러져 있는 북쪽 소녀의 소리없는 고함소리를 선으로 연결하면 그 지평선엔 어떤 소실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늙은 사냥개만큼 느긋한, 그래서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이 차근차근 주어진 상황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경제학자들의 속성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도 또한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얼굴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물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상당수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투자 부진을 가져오는 좌파정책을 공격해왔다. 또 진보파 경제학자들은 문제의 근원을 둘러싸고 투기자본 책임론과 재벌총수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의 뿌리에 글로벌화와 경쟁격화라는 환경변화, 그리고 흔들리는 분단체제, 그 안에서 개혁의 지연으로 내부의 분단을 다시 확산하는 경제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대안은 분단경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설계이다.
2. 흔들리는 분단경제
그러면 먼저 남북한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돈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남북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자는 의도에서 제기된 ‘분단체제’ 개념을 경제적 차원에서 구체화해보기로 한다.
(1) 새로운 환경과 분단경제의 동요
지금까지 전개된 분단체제론에 의하면,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분단체제는 그 하위체제인 남북 각기의 체제에서 지배자와 민중의 대립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분단체제가 ‘하나의 체제’인 이상 그 ‘주요모순’은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 대 남북한 민중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모순’이다.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적대적이지만 다분히 상호의존적이다. 남북한 사회는 냉전체제의 지원과 체제경쟁 그리고 내적 역동성을 통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3
분단체제의 경제적 ‘토대’4는 ‘국가 주도의 추격·추월 전략’과 그를 뒷받침하는 씨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0년대까지 남북한 경제체제에는 모두 선진국 또는 남북한 상대국을 따라잡겠다는 강력한 국가의지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격·추월 전략’의 전제는 국가를 기본단위로 하고 경제발전의 중심을 공업화에 둔다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씨스템은 가격을 왜곡하는 거시정책과 통제적인 관리체제였다. 즉 정부는 일정하게 이자율, 환율, 원자재가격, 농산물가격을 통제하고, 희소자원 분배에 개입한다. 종종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산업보호정책이 시행되고 무역장벽이 설치되었다.5
냉전체제 하에서 남북한의 ‘추격·추월 전략’은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시작된 냉전체제의 부분적 완화, 1970년대말 이후 중국경제의 세계경제로의 편입, 1980년대말 이후의 사회주의권 붕괴는 남북한 내부의 분단경제를 규정했던 기본환경의 일각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무역·투자·금융 자유화, 정보통신산업·생명공학산업·메카트로닉스6 산업에서의 기술혁명은 국경을 초월한 경쟁력과 ‘개방경제형 정부’의 새로운 역할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공고한 분단경제는 흔들리게 되었다. 즉 냉전체제의 이완과 글로벌화가 진행됨에 따라 경제적 조정이 국민경제적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세계경제 또는 세계체제는 정치·군사적 수준과 경제적 수준에서 국민국가의 능력을 점점 더 침해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세계자본의 흐름에 한층 직접적으로 연관되게 되었는데 이는 초국적자본의 국내유입뿐만 아니라 국내자본의 초국적자본화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국내 자본축적의 한계와 국제분업체계의 붕괴 때문에 새로운 씨스템을 마련하고 세계경제·세계체제와의 연관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제 남북한은 모두 내부에서 격렬한 구조 변화의 와중에 있고 이전 체제를 해체·분해하는 힘은 강해지고 있다. 분단체제를 규정하고 있던 외부환경이 변화하고 남북한의 적대성이 부분적으로 이완되었다. 남한에서는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행되었고 북한에서는 계획체제를 뒷받침하는 국제분업관계가 와해되었다. 남북한 경제 내부에 작동하던 강제적·명령적 동원체제의 힘은 전보다 약화되었고, 양극화 또는 이중구조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강제력 약화와 내부 분화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정치경제상의 현상물이다.7
(2) 남북한 경제의 내부 분화
남한에서 ‘국가 주도의 추격·추월 전략’이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은 1987년 전후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개선된 세계시장 여건에 편승하여 남한의 재벌체제는 그 외형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국가의 조정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한편 민주화운동의 진전으로 종래 자원 유출 또는 수탈의 대상이었던 노동·농업·환경 부문의 정치력이 크게 성장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여 저(低)요소가격의 투입조건을 만들어주고 자본―노동관계를 조정하던 종래의 체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또 전통적 기술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기술혁명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됨에 따라 후발국에 의한 혁신기술의 독자개발은 없다는 전제가 상당부분 무너졌다. 또 전통기술에 있어서도 한국이 개발도상국 선단(先端)까지 발전함에 따라 기술추격의 여지가 거의 소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위기를 계기로 엄혹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일부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적·금융적 기초를 마련했다. 격렬한 구조변화 속에서 생존의 입지를 확보한 영역에서는 자본이나 노동 모두 위험을 기피하고 단기주의적 시야 속에서 적절하게 타협하는 ‘나쁜 균형’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의 저수지 역할을 하던 여타 부문은 위기 이후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내수 부양의 거품이 사라지자 다시 엄혹한 한파에 시달리게 되었다. 즉 도소매업, 숙박업 등 써비스업에서 최근 양극화가 집중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기계부품산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취약해지는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8
한편 북한경제는 김일성 생존 시기부터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김정일 체제가 출범했으나 개혁과 개방이 모두 지연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국가의 관리능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전반적 이완, 전층적 하강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경제 각 영역에서 시장화가 진행되는 부문과 그렇지 못한 부문으로 분화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구체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계획씨스템이라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자력갱생, 정신적 자극 우선, 고(高)축적·강(强)축적, 중공업 우선 발전과 같은 수단·정책을 사용했다. 그러나 강제축적 메커니즘에 의해 고축적을 달성한다고 해도 생산 측면에서 그에 상응하는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자본효율의 급격한 하락이 나타나고,70년대 후반과 80년대 전반부터는 농·공업 생산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1989~91년 사이 전개된 사회주의권의 체제이행은 북한이 속해 있던 국제분업체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북한의 석유, 원자재, 식량의 공급원, 경공업제품의 수출시장이 결정적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1990년을 분기점으로 급속하게 북한경제가 후퇴하면서 계획부문과 비공식부문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계획부문에서 비공식부문으로 자원이 불법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빈발해졌고, 배급체제가 약화되면서 농민시장과 직매점 등 합법적 비공식부문의 기능이 암시장화했다. 이중가격체계가 형성되면서 공식적 임금은 무의미해졌으며, 계획부문의 공동화(空洞化)와 비공식부문이 활성화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경제는 종래의 직접적 명령에 의한 조정방식과 물물교환 등 자발적·퇴행적 시장화에 의한 조정양식이 병존하게 되었다.9 북한은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여 일정한 범위에서 시장 조정양식의 효율성을 활용하고자 2002년 7·1 조치를 시행했다.10
3. 분단경제의 조정을 위한 기본정책
금융·무역·투자가 글로벌화하고 기술의 혁신과 비약이 가능해진 환경 속에서 남북한은 모두 내부 분단을 조정하고 적절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에서 내부 분단화를 조정하기 위한 핵심고리는, 중소형 경영체를 중심으로 한 혁신·시장화 전략과, 역량을 특정지역에 집중하는 지역거점·특구 전략이라고 판단된다. 분단경제로부터의 탈피를 위해서는 ‘개방경제형 정부’의 새로운 능력이 중요하다. 특히 지역 차원에서 배양된 새로운 정부 능력은 남북의 분단경제를 협력·균형·통합발전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꼭 필요한 자원이다.
(1) 남한: 독립형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지역거점 전략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정책은 유치산업 부문의 국내기업이 선진국으로부터 구매한 중위기술에 기반하여 선발국 추격(catch-up)을 쉽게 하도록 국가의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은 선발국이 가지고 있던 선행필수조건(대체물)을 국가가 제공하는 전략(대체전략)을 채택했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은 비대화하고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11
한국에서 일부 대기업은 더는 산업정책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가 되었지만, 중소기업 대부분의 발전은 지체되어 내부분단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의 전통적인 하도급 구조를 점차 수평적 네트워크로 전환한다는 목표는 그 자체로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 글로벌경쟁 환경에서 대기업의 아웃쏘씽(outsourcing)과 비용절감 노력을 막을 수 없고 중소기업과의 우호적인 연계를 강제할 수단이나 근거도 없다.
이제 종래와 같은 추격과정이 종식되어감에 따라 앞으로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국적을 초월한 전략적 제휴와 국경을 초월한 지식네트워크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이러한 제휴와 네트워크를 이용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하도급형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의 글로벌 기업에 대한 납품을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의 습득기회를 넓히고 규모의 경제효과를 제고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적으로 혁신과정을 수행하는 독립형 중소기업·벤처기업이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는 기업들이 선진기술을 스스로 개발하도록 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씨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산업정책은 독립형 중소기업·벤처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독립형 중소기업·벤처기업의 발전은 지역혁신체제의 형성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12
독립형 중소기업·벤처기업이 발전하는 데에 필요한 지역혁신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고, 이에 소요되는 자원, 특히 정부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 정부의 능력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개성있는 몇개의 지역거점(regional hub)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 안에 계통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몇개의 지역을 정하여 각각 그 안에서 항구―거점―내륙으로 계통화하고, 기존의 동북아경제중심과 국가혁신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수단을 통합·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중소도시들이 연합하고 주변의 산업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 및 농촌지역과 더불어 자족할 수 있는 규모의 어번 클러스터(urban cluster)”를 만들자는 제안과도 상통하는 것이다.13
현 경제정책의 최대 문제는 문제의 뿌리를 파악하는 너른 시각과 핵심역량을 집중하는 일관성있는 전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의 대처에는, 단기적으로 시의성있고 효과적인 거시정책이 중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지역과 중소기업·벤처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단계의 산업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지방의 정부능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분권화 자체가 만능은 아니고 이러한 정부능력이 배양되게 하는 분권화 모델이 설계되어야 한다.14
(2) 북한: 시장지향형 경영체 창설을 위한 특구 전략
북한의 경우 핵문제가 현재 최대의 현안이지만, 이 문제가 단시간 내에 결말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치체제 문제도 자주 논란이 되지만, 집권자가 누가 되든간에 효과적인 경제관리 및 이행의 문제는 일상에서 계속 부딪치는 핵심적인 과제이다. 사회주의 각국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이행기에 재산권 변동이나 사유화 같은 제도개혁의 필요성은 상당히 감소되고, 시장과 국유기업의 양 극단 사이에 여러가지 형태의 ‘제3의 길’이 존재할 가능성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15
북한에서 개혁정책의 주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집권 엘리뜨의 교체가 있든 없든간에 개혁정책의 패턴변화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경험과 동북아의 조건을 감안할 때 한국정부에 의해 갑자기 흡수통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의 정책주체는 당분간 개발독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넓게 보아 중국형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이다.16
북한의 경우, 인쎈티브 제도의 회복과 생산의 정상화 중 무엇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두 과제는 상호 인과관계에 있다. 생산의 정상화는 인쎈티브 제도의 회복을 위한 전제조건이고, 인쎈티브 제도를 복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생산의 정상화를 위한 기초가 된다. 그리고 개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재정씨스템의 분권화와 지방화, 그리고 분권화된 경제조직에서 개별적인 경제적 인쎈티브의 강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개혁의 과정에서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경제적인 인쎈티브가 작동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적 소유권의 전면적 도입 없이도 여러 개선조치 등을 통해서 씨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많다.
북한이 처한 여건을 고려하면 특구를 개발하고 특구를 중심으로 시장지향적 중소형 경영체 창출이라는 개방·개혁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시장부문과 계획부문의 격차를 줄여가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농업 개혁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국유기업과 사영기업, 협동조합·기업농장과 가족농장이 병존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정부능력과 관련된다.
북한에서 기업조직 개혁의 기본요소는 인쎈티브 개혁, 기업 지배구조 개혁, 소유제 개혁 등이다. 소유제 개혁 이전에 경쟁과 혁신을 통해 기존 씨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고, 기업 내부자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새로운 중소기업이 창설되도록 하고 이들에 대해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한편, 경쟁력 없는 국유기업은 빠르게 제거해야 할 것이다.17
이러한 씨스템 개혁에는 적절한 수준의 제도공급이 필요하다. 적절한 제도공급을 위해서는 특구를 설치해서 제도실험과 정부능력 배양을 병행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때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한 경제협력은 북한의 ‘복선형’ 씨스템 개혁을 자극하고 추동하는 계기가 되며 북한경제 전체의 이행비용을 감소시킨다. 개성공단 공동개발과 같은 사업은 남북한 경제 내부의 분단화와 남북간 분단체제를 재구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 분단체제를 넘어: 남북―동북아 협력발전과 개방형 민족경제
(1) 분단체제와 남북–동북아 경제협력
남북간 분단경제는 세계경제, 냉전체제와 관련되어 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개방화의 환경 속에서 평화·통일·혁신이라는 어려운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동북아 경제협력은 이들 목표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며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18
우선 남북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 남한 자체의 성장한계를 돌파하는 수단이다. 남북―동북아 경제협력은 한반도의 평화를 뒷받침하고 내수시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능을 한다. 남북―동북아 차원에서 협력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투자영역을 발굴하며 성장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역내 평화체제의 태동에 조응하는 경제씨스템의 기반으로 삼을 수도 있고, 한반도 경제통합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역내에서 자본이 흐르고 고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여객과 화물을 모으고 나누는 것은, 글로벌화에 적응하면서 글로벌화를 넘어서는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고, 경제가 평화를 부르고 평화가 경제를 밀어주는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동북아 경제협력은 대외개방과 남북한 협력발전을 매개하는 결절점이다.
동북아 경제협력은 분단체제가 야기하는 위험은 물론 세계경제·세계체제로부터의 위험을 완충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글로벌화의 국내적 충격을 차단하는 데만 주력하고 지역화 흐름에 소극적이거나 저항적인 태도를 견지할 경우, 한반도는 경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지역주의의 주도권은 중국, 일본, ASEAN 국가들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남한은 동북아 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동북아의 통합조건이 동남아보다 양호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강대국 사이의 교량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공동의 집’ 건설을 주도하는 데 유리한 입장에 있다.19
동북아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경제통합을 진전시키고 남북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데, 동북아 경제협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경제의 통합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지역통합의 과정은 에너지·철도·통신 등에서 기능적 협력을 먼저 추진하고 이를 기초로 점차 높은 수준의 통합으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에서의 에너지협력, 교통망 통합과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주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분단체제의 극복과 동북아에서의 지역주의 발전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2) 남북–동북아 경제협력의 발전단계
남북 경제통합은 점진적·진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는 있으나, 급진적 변화에 의해 단계를 건너뛰게 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과 막대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남북 경제통합과정은 다음과 같이 동북아 협력의 진전과 연계하여 단계별로 진행되도록 한다.
첫째, 협력발전의 단계이다. 이때는 남북한 협력의 점들을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특구개발과 협력프로젝트를 통하여 종래의 비협조게임의 틀을 협조게임의 틀로 전환한다. 북한주민이 기본적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제기반 복구를 지원하고 그밖에도 인도적 지원을 수행한다. 남한은 국내적으로 동북아와 세계로 연결되는 무역, 금융거래, 산업생산의 ‘경제 중심’ 또는 ‘허브’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남한에서는 동북아로 향하는 지역거점을 발전시키고, 한반도·환황해·환동해의 여러 점들을 선으로 잇는 네트워크 구축에 착수한다. 또 국제적 무역투자 자유화의 부작용에 대비한 제도개선에 주력한다.
개성공단 개발사업은 협력발전 단계에서 남북경협과 관련된 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시범 프로젝트이다.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종래의 교역 중심에서 투자 확대로 가도록 하고 개성공단에 직교역사무소를 두어 직교역을 제도화하도록 한다. 개성공단이 잘 운영되도록 국내의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당국간 합의서, 국제협약 관련 사항을 정비해야 한다.20 또 개성공단과 수도권 지역경제가 보완적으로 발전하게 함으로써 남북간 균형적 분업구조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개성공단은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열린 창이다. 서울과 인천의 날개를 자르는 것이 분단이라면, 개성―서울―인천으로 이어지는 지역경제권은 분단된 한반도를 묶고 동북아로 향하는 튼튼한 삼각 날개가 될 수 있다.21
둘째, 균형발전의 단계이다. 남북한이 적절한 분업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시장적 기초 위에서 무역·투자와 산업협력을 확대한다. 남북간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하고 포괄적인 무역투자협정을 통해 분업과 전문화의 이익을 얻도록 한다. 북한의 시장화 개혁을 재정·금융적으로 지원하고 북한 주민의 자유주의적 권리 확대를 지지한다. 북한의 시장화 개혁의 구성요소는 ‘사영기업+국유기업’의 기업체제, ‘가족농장+협동조합/기업농장’의 농장체제, ‘시장화+정책개입’에 의한 가격·유통체제,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지원에 의한 기술혁신 등이다. 이는 ‘아래(시장)로부터의 길’과 ‘위(제도)로부터의 길’이 혼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복선형(複線型) 개혁의 길’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인접지역으로 구성된 공간에서는 확대된 무역과 물류의 ‘네트워크+허브’ 형성을 주도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한반도―환황해―환동해 경제권 형성을 주도한다.
셋째, 통합발전의 단계이다. 여기에서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여 경제통합의 이익을 얻도록 한다. 정치적으로는 국가연합 수준의 통합을 이루고 북한주민이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도록 한다. 이는 북한주민에게 내국민 수준의 정치적 권리와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부담을 남북한 국가연합의 재정에서 일정하게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국가연합의 재정이 상당한 수준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또 남북한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효율적인 고용창출 복지 또는 상호주의적 복지모델의 형성이 필수적이다.22 그리고 동북아에서는 공동시장과 통화동맹을 추진하고 남북한 사이에는 화폐통합과 부분적인 재정통합을 이뤄야 한다.
(3) 새로운 한반도 경제체제의 비전
새로운 한반도 경제체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분단체제를 해체·재구성하고 동북아에서의 신지역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개방형 민족경제’이다. 개방형 민족경제는 개방경제를 지향하되 혁신적 산업씨스템과 공정하고 효율적인 공공씨스템을 결합하는 체제이다.
개방형 민족경제는 다자주의·지역주의·민족주의의 동심원 구조를 의미한다. 다자주의란 강대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며 WTO 체제와 공존하면서 새로운 평등한 국제경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역주의란 역내 국가와의 무역·투자 확대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 경제통합으로의 발전을 지지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남북 협력발전에서 시작하여 통합적 민족경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배격하지 않으며 상호보완적이 되도록 한다.
개방의 진전은 사회적 영역의 확대와 동반해 이루어지도록 한다. 사회적 영역의 확대는 국가주도와 시민주도가 혼합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사회적 영역은 범위가 대단히 협소하고 기능과 역할이 취약한 상황이다. 따라서 혁신을 전제로 한 공공부문의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교육·보건의료·복지·공공행정 써비스 등 사회적 써비스에서의 경쟁력있는 공공부문을 강화하도록 한다.23
개방형 민족경제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는 내부적으로 합리적인 개방·보상의 교환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과 개방의 혜택을 보는 주체에게는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잘 대표되지 않는 취약계층의 이익을 주장하고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하고 단기주의적 전망과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숙의(熟議)’에 기초한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이뤄져야 한다.24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민중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sustained and stable growth)을 중시하므로, 더 넓은 공공의 이익을 지지하고 국민국가를 강화하며 민족국가 형성에 기여한다. 이렇게 민중을 다시 정의한다면,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다. “민중적인 것은 민족적이고 민족적인 것은 민중적이다.”
5. 마치면서
우리가 어떤 체제를 만들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현실에 기초한 전략의 눈으로 보려 한다면, 먼저 외부환경과 내부의 능력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고 자원이 부족한 중규모 국가이며, 주변에서는 4대 강국의 엄청난 힘이 꽉 조이고 있다. 그러면서 금융·무역·투자의 글로벌화와 새로운 기술혁명이 진전되고 있다. 냉전체제가 이완되면서 북한경제는 구조적 모순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남한의 경우에도 국제적 경쟁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산 앞에서 산 뒤를 넘어다보는 심원(深遠)의 눈으로 보면, 고단한 삶의 정경들 뒤에는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산맥처럼 펼쳐져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한정된 내부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표적을 선정하고 이와 관련된 정책믹스를 조직적·단계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남북―동북아 협력발전 전략과 함께 중소경영체를 중심으로 한 혁신·시장화와 지역거점·특구화의 정책믹스를 제시했다. 이 길을 따라 산봉우리를 넘고 사이사이의 폭포와 기슭의 시내를 건너다보면 좀 넓고 후련한 ‘개방형 민족경제’로 향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 길은 공공의 이익을 지지하는 민중과 국민국가, 그리고 북한 민중과 다음 세대까지 포함한 ‘개방―혁신―연대’ 체제로 가는 길이다.
__
- 『연합뉴스』 2004년 12월 18일자 및 2005년 1월 11일자.↩
- 『중앙일보』 2001년 1월 7일자 및 『연합뉴스』 1999년 2월 17일자.↩
- 백낙청(白樂晴) 교수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독특한 사회구성에 대한 분석을 사회과학에 요청했으나 그 제안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이에 그는 분단된 한반도 상황을 직접 이론화하는 작업에 나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백낙청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78호(1992년 겨울) 및 김종엽 「분단체제론의 궤적: 회고와 전망」, 『동향과전망』 61호(2004년 여름) 참조.↩
- 통상 ‘토대’는 하나의 사회구성에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분단경제의 전개양상만을 제시할 뿐, 하위체제인 남북한 각각의 생산력, 생산관계 등 여러 하위요소,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도 밝히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토대’라는 표현은 아직 서술적이다.↩
- 단, 남한이 수출시장을 목표로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경공업에서 중공업 단계로 이행했다면, 북한은 처음부터 강력한 중공업우선발전을 추진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유화·집단화를 행했다. 물론 세계시장의 중요성과 미시 조직의 효율성 문제를 경시한 북한경제가 나중에 치러야 할 댓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 최근 대부분의 기계와 공정은 전기와 기계적 본질이 어우러진 복합체이다.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는 이러한 복합적 구성체를 효과적으로 해석·제어·처리하기 위해 기계·전자·씨스템 등 공학의 여러 분야를 복합한 학문을 말한다.↩
- 양극화는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동행하는 현상이고, 이는 세계경제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예를 들면 16세기의 상업혁명, 18세기말의 산업혁명, 19세기말~20세기초의 빅 비즈니스 등장 등이 있다). 최근의 양극화도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2004년 11월 중 중저가 차종인 포드 포커스 판매량은 전년대비 39%나 줄어든 반면 고급차종(레저용 픽업)인 포드 F150은 3% 증가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대기업의 보너스가 늘어난 이상으로 중소기업의 보너스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복지국가 전통을 지닌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볼 때, 독일의 경우 2001~2003년에 0.301에서 0.382로,이딸리아는 0.273에서 0.360으로, 룩셈부르크는 0.269에서 0.308로 증가하여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일보』 2004년 12월 20일자).↩
- 남한의 산업예비군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비임금 근로자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의하면 2004년 10월 현재 비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34.2%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OECD 통계(Labour Force Statistics)에 의하면, 2001년 비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미국 7.4%, 프랑스 8.9%, 스웨덴 10.0%, 독일 11.0%, 영국 12.2%, 호주 14.0%, 일본 15.9%, 타이완 23.6%(2000년)였는데, 이때 한국은 37.6%를 기록했다. 비임금 근로자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의 강화, 사회써비스업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
- 이석기 「1990년대 이후 북한 경제체제의 특징과 위기」, 『동향과전망』 62호(2004년 가을·겨울) 174~81면.↩
- 2002년 7월 이후 북한에서 실시된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는 가격 및 임금 조정, 배급제 축소, 공장기업소의 자율성 및 인쎈티브의 확대 등이 추진되었는데, 이는 사회주의 각국에 있어서의 초기 개혁정책에서 자주 관찰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 한편 싱가포르나 대만은 선발국과 후발국의 보완관계를 이용하여 국제적 하청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전략(보완전략)을 채택했다(신장섭·장하준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창비 2004, 28~32면).↩
- 혁신은 경제주체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인데, 혁신과정에는,각기 독특한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및 자신의 고유한 역사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특수적인 거버넌스 구조, 즉 정부, 기업, 교육·연구기관, 정치집단 사이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이상철 「참여정부 국가균형발전정책과 지역혁신체제의 구축」, SIES Working Paper Series, No. 175, 서울사회경제연구소 2004 및 P. Cooke, “Introduction: Origins of the Concept”, in H.P. Braczyk, ed., Regional Innovation System, UCL Press 1998).↩
- 김석철 「새만금, 호남평야, 황해도시공동체」, 『창작과비평』 121호(2003년 가을).↩
- 분권화는 지역단위에 자율성을 주고 이를 토대로 지역간 경쟁을 유도·보장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분권화를 통해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역균형의 목표는 소득 재분배 정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 제도경제학의 논의에 의하면, 제도는 경제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일정한 룰이고 실제의 행동패턴이다. 대표적인 제도는 시장과 기업조직이다. 여기에서는 현존하는 제도에 안정성이 있고, 여러 제도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제도의 가변성과 진화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 국내에서는 북한 개혁정책의 시행주체가 개혁정책의 순서·속도·방향을 규정한다는 논의도 많다. 물론 북한 정치체제의 특수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이 변수에 따라 여러가지 구체적인 씨나리오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북한의 이행과정이 정책주체에 의해 결정되는 비중을 ‘결정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필자는 더 높은 추상수준, 넓은 시간범위, 구조적 초기조건을 고려할 때, 북한은 이미 진화적인 이행과정에 들어섰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시야에서라면 정책의 주체 요소의 비중이 비교적 작은 ‘북한형’ 개혁유형을 구성할 수 있다(이일영 「‘북한형’ 기업·노동개혁: 체제이행의 유형과 전망」, 한신대학교 학술원 사회과학연구소 심포지엄 2004.11.17).↩
- 북한의 씨스템 개혁에서는 농업개혁도 중요한 요소이다. 농업개혁의 기본요소는 가격·유통개혁, 기술체계 혁신, 경영조직 재편과 소유제 개혁 등이다(이일영 『북한 농업개혁의 현황과 전망』, 통일부 통일교육원 2004).↩
- 동북아 경제협력의 의의·범위·발전단계는 이일영 「동북아로 가는 길: 국민경제와 글로벌경제를 너머」, 『동향과전망』 57호(2003년 여름) 참조.↩
- 와다 하루끼(和田春樹)는 ‘연대’ 와 ‘신지역주의’를 통해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매개체와 중심이 한반도, 남한과 북한, 더 나아가서는 통일한국이라고 주장한다(와다 하루끼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신지역주의 선언』, 이원덕 옮김, 일조각 2004).↩
- 양문수 외 『경제분야 통일인프라 구축 및 개선방안』, 통일연구원 2004, 108~20면.↩
- 우정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세 개의 거울」, 『창작과비평』 120호(2003년 여름).↩
- ‘한국형’ 복지모델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가복지, 사회적 기업, 상호주의적 복지 등의 혼합형이다. 와그너(A. Wagner)에 의하면, ‘상호주의적’(communitarian) 복지레짐은, 경제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집단의 완전 참여라는 전제하에서 국가의 복지제공 역할을 지방정부와 노조와 같은 기능적 공동체와 분담하는 씨스템을 의미한다. 페스토프(V. Pestoff)도 같은 맥락에서 복지제공에 있어 국가와 시장 이외에 자원적(自願的)·상호적·협동적 방안을 모색했다. 이와 관련된 경험으로는, 스위스의 노조가 상호주의적 사회정책 수립에 참여한다든가,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협의회(AFL―CLO)가 1990년대 이후 지역에 뿌리를 둔 ‘지역노조’(community unions) 건설에 관심을 갖는다든가, 스웨덴 정부가 복지써비스 생산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확대한다든가 하는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A. Wagner, “Reassessing Welfare Capitalism: Community-Based Approaches to Social Policy in Switzerland and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Community Practice 2 (3), 1995 및 V. Pestoff, Beyond the Market and State: Social Enterprises and Civil Democracy in a Welfare Society, Ashgate 1998).↩
- 한국의 경우 재정지출에서 사회보장 지출의 비중이 2000~2003년 평균 3.7%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유형이라고 알려진 미국과 영국도 이 기간 동안 각각 11.5%, 13.5%를 기록했으며, 독일은 19.2%, 스웨덴은 18.0%, 일본은 10.6% 수준을 나타냈다(OECD, Economic Outlook Database, 2004). 한국은 사회안전망의 제도적 장치와 관련 재정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단, 북한과의 통합을 고려하여 상호주의적 복지의 비중을 늘려 재정부담을 줄여야 한다.↩
- 사람들의 정태적 선호를 단순히 취합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에 기반하여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숙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숙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이영희 「민주화와 사회갈등」, 『동향과전망』 61호(2004년 여름) 및 J. Elster, Deliberative Democracy, Cambridge Univ. Press 199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