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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사적 전환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식민지·근대와 세계사적 시야의 모색」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부시 2기 정부의 출범에 맞춰 1기 때와 같은 일방주의가 계속될 것인지 그 정책 방향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는 예정대로 치러진 이라크 선거에 고무되어 중동 및 세계의 민주화라는 명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한편, 전쟁으로 틀어진 유럽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외교적 수단에 비중을 두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집권 1기 때도 내건 ‘자유의 확산’이라는 명분 자체가 패권주의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어서 군사패권주의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라크 정세는 여전히 유동적이고 미국의 희망대로 진전될 전망은 밝지 않으며 미군 철수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부시가 이끌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관한 우려가 증폭되어가면서 그 일방주의적 행태와 만행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글들을 접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그 패권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진단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상식적으로도 진짜 힘있는 자가 저리도 무모하게 싸움을 걸면서 완력 자랑만 하랴 하는 의문이 가능한 터에, 오늘날 세계의 정치·경제·군사·이데올로기적인 정황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 또한 이러한 진단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 해 국내에 연이어 소개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미국 패권의 몰락』, 찰머스 존슨(ChalmersJohnson)의 『제국의 슬픔』, 엠마뉘엘 또드(Emmanuel Todd)의 『제국의 몰락』, 죠지 쏘로스(George Soros)의 『미국 패권주의의 거품』은 제목들이 시사하듯이 미국 패권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1 책의 저자들을 보더라도 월러스틴를 제외한다면 좌파라고 하기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렇듯 지적 배경과 문제의식에서 전혀 다른 저자들이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쇠퇴? 오늘날 이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그런 쇠퇴를 반전시킬 정책을 요란하게 주장하는 미국의 매파들밖에 없다”2는 월러스틴의 말은 극적인 수사로 들릴 뿐 지식계에서는 이미 해당되지 않는다.

2차대전 후 확고했던 미국 패권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진단은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할 사항이지만, 아무튼 세계사의 현 국면에서 미국이 처한 위치와 좌표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불안정한 정세를 감안할 때, 탈냉전 이후의 유일한 군사대국인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이 지닌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다른 무엇보다 절실하다. 또한 미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 현실에 내재화된 구조적인 변수인만큼 미국의 패권체제가 쇠락해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즈음 새로운 동아시아질서의 변화에 대한 전망이나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과 같은 지역단위의 창조적 대응을 모색하는 흐름이 대두하는 것도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기의 상황, 즉 미국 패권의 안정기에 고착된 구조에 모종의 균열이 감지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미국의 패권주의 세계전략의 모순적 성격과 역량을 진단하고, 4장에서는 오늘날 세계의 지정학적 분열상황을 어떤 틀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간략히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미국이라는 국가와 나머지 세계로만 분열된 것이 아닐진대, 오늘과 같은 세계사적 전환국면에서 현실을 한층 복합적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2. 미국 패권주의 구상의 시대착오

 

현재 부시정권 매파의 세계전략 목표는 그들의 공개적 언명만 보더라도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냉전종식 후의 유동적이고 혼란스런 세계질서를 끝내고 미국 주도의 패권을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의 양극화된 국제정치구조는 해당국가에게 강제된 만큼이나 안정성도 가졌던 반면 탈냉전은 세계에 불안정과 위험을 가져온 동시에 미국 패권의 정당성도 어느정도 위협했다. 따라서 탈냉전 이후 미국의 전략분석가들은 미국의 세계지배권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해왔다. 잘 알려진 헌팅턴(S. Huntington)의 서구와 비서구의 문명적 대결론이나 브레진스키(Z. Brzezinski)의 다양한 동맹관계를 활용하는 현실주의 전략 모두 탈냉전으로 유동적이 된 세계질서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의 패권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모색이었다.

하지만 9·11사태는 그간 다른 종류의 구상을 해온 신보수파(네오콘)라는 집단을 부상시켰다. 그 구상은 미국이 갖고 있는 압도적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점차 쇠락해가는 미국의 패권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이 집단의 정책그룹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의 1997년 원칙 선언문은 대폭적인 군사력 강화를 통해 전지구적 지도력을 회복해 21세기를 “미국의 원칙과 이익”에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하고 있다.3 군사력을 활용해 ‘원칙과 이익’을 실현시키겠다는 천명은 사려깊은 현실주의 대신 이데올로기와 이익추구를 결합시키겠다는 강경한 지향을 보여준다. 부시나 라이스(CondoleezzaRice)가 제창하는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균형’ 정책 또한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들 매파 가운데 어떤 이는 탈냉전 후 10년을 영웅 프로메테우스가 난쟁이처럼 지낸 시기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일방주의가 진정한 의미에서 탈냉전 외교정책의 출발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는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인정하고 그 책무를 강조하는 이도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에게 ‘제국’ ‘제국적 역할’이라는 용어는 모종의 사명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4

이들의 목표는 군사적 수단을 활용한 새 판짜기라 할 수 있고 이라크전쟁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기본적으로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고 하기 힘들다. 물론 석유자원의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확보도 그 전략구상에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전쟁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다만 석유에 대한 통제를 다른 경쟁국들에 대한 위협수단으로 활용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즉 전략적 상품으로 석유를 활용하는 구상만큼은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라크 석유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는 세계전략 구도에서 의미있는 것이 된다.5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증명함으로써 세계적 패권을 확립하는 것이 매파 집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인데, 이것은 단순한 힘자랑이 아니라 일종의 협박이다. 그것은 성격이 다른 다양한 상대, 즉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유럽과 동아시아, 핵보유국 및 잠재적 보유국, 그리고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는 중동국가들에 대한 협박인 것이다.

이들 매파가 9·11 이후의 시기를 미국 패권이 확고한 지위를 굳혀갔던 2차대전 직후 시기와 견주는 것은 좀 역설적으로 보인다. 네오콘의 세계사 전망에는 탈냉전 직후의 시기는 세계가 1945년 이후 미국의 패권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19세기말 열강들이 패권을 다툰 혼란기로 돌아갈 것인가―대표적인 네오콘인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는 의외로 이 경우 19세기말의 독일의 위치에 오늘의 중국을 배치한다―의 기로에 있는 시기이다.6 네오콘의 일원은 아니지만 이들과 손발을 맞춰온 라이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이 9·11을 국제정치의 지각변동의 계기로 받아들이면서 한 말도 시사적이다.

 

국제체제는 소련의 붕괴 이후 유동적인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이제 이행기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가능하고, 정말이지 그렇게 될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은 미국의 지도력이 자유를 지지하는 새로운 세력균형을 창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열강 중에는 독일과 일본)의 수를 확대시켰던 1945~47년과 비슷한 시기이다.7

 

라이스는 금년 1월의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에서도 대테러전을 과거 냉전시대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투쟁에 견주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를 물리친 승리의 노력을 지금 테러에 대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부시정권 매파의 새 판짜기 전략을 맑스주의자 캘리니코스가 ‘장대한 전략’(Grand Strategy)이라 일컫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부시팀의 이런 전략이 세계에서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독해에 근거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20세기말 미국의 경제력 및 패권이 쇠락하고 있다는 견해에 반대하는데, 그 근거로는 미국의 90년대 호황이 거품을 안고 있었다고 해서 전적으로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 미국이 막강한 군사대국인데다 여전히 유럽 및 일본과 대등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유럽은 통일적 대응이 어려워 미국 패권에 대한 진정한 지정학적 도전자로 등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국제정치는 초강대국 미국과 그 밑의 주요 강대국들로 이루어진 체제, 냉전 이후 지속되어온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8 그래서 그는 부시팀의 전략이 미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장기적 위협에 대한 정확한 독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승리할 경우, “그러한 승리는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1990년대 호황기보다 더 자신감을 갖고 자기 길을 계속 추구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예측한다.9 그렇기 때문에 반전운동과 반신자유주의운동의 결합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의 변화에 안 맞는 그 장대한 전략의 시대착오를 정확한 독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설명방식은 무엇보다 미국의 내적 동력과 외적 환경이 지난 30년간 엄청나게 변했음을 무시하고 있다. 특히 냉전 초반기의 미국과 21세기의 미국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경제적 차원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차대전 후의 미국은 군사적 우위 외에도 가장 높은 경제력과 생산적 효율성, 동맹국들의 정치적 지지, 패권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갖추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력은 원조를 통해 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과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켜 라이스가 말한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균형’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연 지금 상황에서 그런 예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부시정권이 내세우는 자유의 확대라는 명분은 냉전시대의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냉전시대에 미국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공산주의 세력의 존재를 패권 유지에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9·11 이후의 시대와 2차대전 직후 시대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딱 한가지, 적(敵)이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냉전은 사실상 양대세력의 억제 아래 홉스봄(E.Hobsbaum)의 말대로 ‘냉평화(cold peace)’로 관리되었던 것이며, 이제껏 미국 패권에 눌려 있던 지역들의 ‘역습’(blowback)이 본격화되는 현재의 혼란기 정황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오히려 미국은 국내에서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거니와 2차대전 이후 자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국제기구·국제조약·국제법도 무시하고 있다. 2003년 2월의 반전시위를 두고 『뉴욕타임즈』의 한 기고문이 “지구상에 두 개의 슈퍼 파워, 미국과 세계여론이 있다”10고 표현했듯이, 그 결과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고립일 뿐이다. 요컨대, 오늘날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두드러진 것은 장대한 전략구상과 시대상황의 극적인 불일치로 보인다.

 

 

3. 미국 패권주의의 모순

 

이러한 전략구상과 주어진 시대 간의 불일치는 곧 목표와 그것을 실현할 수단의 불일치이며,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군사력과 다른 힘 간의 불균형에서 잘 드러난다. 마이클 맨(Michael Mann)이 ‘모순의 제국’이라 지칭한 것이 바로 이것인데, 미국 패권이 처한 위기는 다른 패권국가의 등장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자원들이 극히 불균등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11 미국의 세계패권에 대한 궁극적 위협은 군사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모순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일 터이다. 때로 미국이 제국적 패권을 유지하기에는 군사력에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는 엠마뉘엘 또드 같은 사람도 있지만, 세계 전체의 군사비 가운데 1/3 이상을 차지하는 지출이나 첨단무기체계의 개발능력을 볼 때 군사 초강대국의 지위를 의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또드의 주장에 일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근본적인 군사적 취약성은 사상자 없는 전쟁개념에 있는데, 지상군 투입에 한계가 있으므로 해군과 공군의 우위는 몰라도 자신의 의지를 직접 강제하기 위한 지상군의 제국적 지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12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찰머스 존슨의 말대로 ‘군사기지의 제국주의’야말로 미국 제국주의의 핵심이며, 인명손실을 가져올 지상군 투입을 막기 위해 미국은 더욱 무모한 싸이버 우주지배, 핵, 미사일방어체제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사상자를 줄이기 위한 싸이버 폭격이 더 많은 민간인 살상을 야기하는 것처럼 미국 군사력의 그 취약점이야말로 더 큰 추악함을 초래하고 한층 막대한 군사비를 필요로 하게 된다.13

문제는 이러한 군사적 우위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중요한 점은 강대국간의 전쟁 가능성이 점차 사라진 터에 유럽·일본·러시아 같은 주요 경쟁자들을 과거처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군사력의 정치적 활용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갈등은 미국의 정치적·외교적 패배였다. 게다가 군사적 패권이 경제적 패권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경로 또한 확실치 않다. 첨단과학기술과의 연계라든가 세계 석유에 대한 통제권의 안정적 확보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 엄청난 군사력으로 근본적인 경제적 지위의 하락을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또한 이라크전쟁의 장기화가 점차 미국경제에 부담을 증대시키는 현실에서 보듯이, 미국이 소위 ‘폭정의 전초기지’들을 상대로 세계적 규모의 전쟁에서 큰 피해 없이 이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경제가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음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드러나지만 결정적인 취약점은 미국경제가 나머지 세계에 대해 갖는 의존관계에 있다. 서유럽과 일본이 경쟁자로 등장해 삼자가 거의 대등해졌다는 점은 그렇다 쳐도, 미국경제가 나머지 세계에 대해 기생적 의존관계에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 생산품에 의존해 살아가지만 여기서 비롯된 엄청난 무역적자는 전세계에서 미국 금융시장으로 들어오는 투자자본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어찌 보면 미국의 소비가 세계 공장을 돌리고 있고 미국이 전지구적인 경기부양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지면서 세계경제에 가하는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냉전 초반기의 경제상황과 비해보면 극적이라 할 만한 전환인데, 미국은 세계경제에 대해서 상품과 자본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종의 블랙홀이 된 것이다.14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 미국의 경제가 장기적으로뿐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취약하다는 것은 올해 들어서 많은 경제분석가들이 계속 지적한 점이다.15 미국의 약한 달러와 쌍둥이 적자는 단기적으로도 세계경제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문제이고 달러가치의 가파른 하락은 심각한 양상이다. 부시정부의 감세정책과 이라크전쟁 비용으로 미국은 2004년에도 412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경상수지 적자도 6000억 달러를 넘었다. 올해도 이라크 추가전비 800억 달러를 포함해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인 427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달러 약세를 방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최근 유엔은 ‘2005년 세계경제 상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달러화 가치의 급락이 미국의 무역적자 심화를 반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의 재정적자 시정을 강력히 주문하고 나섰다.16 요컨대 세계경제의 여건이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를 요구하고 있고 재정을 소모시키는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세계 제1위의 채무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미국에 닥치지 않는 것은 바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때문이다. 하지만 가파른 달러가치 하락이 계속된다면 나머지 세계에서는 그 채권을 구매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 유입을 통한 적자 보전이 어려워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2년 이래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가 35%나 급락하면서 달러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이윤이 현저히 떨어져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유로 투자 비중을 서서히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중국·일본·한국 등이 계속 채권을 사들여준 덕분에 전반적인 재앙에 이르지는 않는 상황이다.17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도 미국 군사력의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국 이익의 관점에서 투자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점에서 미국경제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주의 패권에 간접으로 기여하고 있는 셈이고 “전쟁비용의 원천은 아시아에 있다”는 말이 성립할 듯도 싶다.18 결국 부시정부가 세금감면 조치를 취하면서도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능력은 아시아 정부들이 막대한 양의 미국 정부채권을 계속 사들여준 덕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도 점차 바뀌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외환보유고를 가진 중국은 2001년 이래 계속 외환보유액 증가분 50%를 달러로 보유하다가 작년에는 25%로 줄였고,19 『이코노미스트』지는 작년 12월 “많은 경제학자들이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20고 전했다.

이라크 전비는 당초 예상액을 훨씬 넘어 올해까지 3천억 달러로 불어나 미국의 재정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동맹국이 합세한 제1차 이라크전쟁 비용에서 미국의 재정부담이 약 70억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21 이것은 막대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군국주의적 패권주의가 미국경제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막대한 군사비 지출이 적자재정에 부담을 주고 적자재정은 해외로부터의 금융지원에 의존함으로써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 군사주의적 패권추구는 미국의 이익에도 분명 배치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미국 패권의 쇠락을 한층 심각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군사력과 경제력의 불일치는 집권세력의 권력분파들간에 이해관계의 불일치를 야기해 내부분열을 가져올 가능성까지 있다. 달러 급락과 정부의 엄청난 부채는 증권시장의 파탄을 야기할 수도 있는 사태인데 자본가계급의 입장에서는 군사비 예산 증가를 계속 보고만 있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연합(EU) 및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으면서도 기축통화인 달러, IMF 및 세계은행에서의 영향력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왔다. 하지만 유로화 강세가 달러 기축을 위협할 정도로 달러의 약세가 심각하다면 미국은 결코 패권국가는 아닌 것이다.22 미국경제는 오래전부터 서서히 패권적 지위를 상실해오고 있었으며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 시도하는 군사적 패권주의의 몸부림이 그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4.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의 지정학적 분열

 

미국의 패권이 쇠락해가면서 세계가 어떻게 변모해갈지, 점점 무모해져가는 미국은 어디로 갈지, 또 세계가 이 전환기에 어떻게 대응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사의 전개가 부시정부 매파의 희망대로 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유럽은 미국의 패권에서 점차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동아시아에서도 역내 국가들의 상호의존과 평화공존에 대한 필요성이 한층 커져 협력이 점점 강화되는 방향을 기대해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오히려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분열, 미국의 고립화는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헌팅턴의 바람과는 달리 이제 미국적인 것과 유럽적인 것의 차이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유럽의 가치와 이해관계는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담론도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세계가 미국과 나머지 세계로만 나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럽이 미국의 패권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해도 자본주의세계 중심부의 일원으로 미국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경쟁관계에 있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유럽연합이 미국의 하위 동반자에서 벗어나 경쟁자로서 미국의 패권에 맞선다고 할 때 어느 정도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마침 반지구화 운동가 월든 벨로(Walden Bello)와 맑스주의자 캘리니코스의 입장이 선명하게 대립되는 지점이 있어 이를 계기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벨로는 2002년 9월 유럽이 미국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 동맹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을 향해 ‘미국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유럽·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 동맹’을 제창한 바 있다.23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약화되는 것이야말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긍정적인 진전이요, 유럽인들이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 등과 진지하게 씨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는 유럽이 이민에 대한 가혹한 조치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으나 이제 억압받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면서 나머지 세계와 유럽의 동맹을 제안했다. 캘리니코스는 이런 입장이야말로 국가로서의 미국을 겨냥해 마치 현 세계의 문제를 미국의 지배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또한 자본주의 지구화에 대한 대항지점으로 국가를 설정하고 세계를 경쟁하는 국가들의 세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오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우위에 대한 유럽연합의 도전은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기는커녕 “많은 자원들을 군대로 돌리고 새로운 군비경쟁을 풀어놓아 세계를 지금보다 한층 더 부정의하고 위험스럽게 만들 것”24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 세계의 지구화 자체가 국가간·지역간·문명간·계급간 등 다양한 층위의 분열과 갈등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논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월러스틴이 21세기의 몇십년 동안 진행될 지정학적 분열 세 가지를 지목한 것은 그것에 대한 찬반에 관계없이 일단 전환기의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을 분류해보는 데 유용한 하나의 사고틀을 제공한다. 그는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독자적인 동력을 지니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지정학적 분열에 시달리게 될”25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 세 가지 분열은 (1)다가올 몇십년 동안 자본축적의 중심축이 되고자 추구하는 가운데 전개되는 이른바 삼자(Triad)―미국·유럽연합·일본―사이의 투쟁 (2)세계체제의―경제적·사회적·인구적―양극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개되는 남과 북 또는 세계경제의 중심지대들과 다른 지대들 사이의 투쟁 (3)우리가 집단적으로 수립하고자 하는 세계체제의 형태를 둘러싼 다보스정신과 뽀르뚜알레그레정신 사이의 투쟁이다. 처음의 두 가지 갈등은 지리적인 차원에서 위치가 정해지는 것들이고,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국가간 관계들과 관련이 있다. 세번째 갈등은 국가간 갈등이 아니라 각각 전세계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두 집단·운동·계층 사이의 갈등이다.26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 분석가들은 “이 세 가지 분열들 가운데 하나만이 존재한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27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세 가지 분열들 가운데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세계, 그리고 미국 패권의 성격과 대안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이 차별화될 수 있을 법하다.

첫째로 (2)와 (3)의 분열을 시야에 두지 않고 (1)의 문제에 몰두하는 지정학적 사고는 지역통합을 이야기하든 국가이익을 이야기하든 주류담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의 지역단위나 전지구단위의 사회적·경제적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채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대안으로 유럽주의나 혹은 다른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논자들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냉소적인 반미주의자라 할 엠마뉘엘 또드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는 향후 세계의 전략적 질서의 목표가 골칫거리인 미국의 쇠퇴를 나머지 세계가 관리하는 일이라고 보면서 미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유럽·일본·러시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유럽연합과 힘을 합해야 할 러시아의 강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체첸에 대한 억압을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체첸에 대한 억압을 막는 것은 러시아의 해체를 가져올 우려가 있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28

둘째로, 캘리니코스의 경우 앞에서 보았듯이 이와 정반대로 (2)와 (3)의 두가지 분열만을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유럽연합의 도전을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본다.

셋째로, 20세기 말의 지구화로 국가간 관계의 제국주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탈영토적 네트워크상의 지구 ‘제국’이 도래했다고 믿는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에게는 (3)의 갈등만이 근본적인 것이다. 그들이 이미 도래했다고 믿는 탈근대적 ‘제국’에서는 지리적 차원과 국가간 차원은 결코 독자적인 갈등지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국은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으며”“반미주의는 위험한 정신상태”라고 비판한다.29 지구화로 인해 생산의 탈중심화·탈영토화가 이루어져서 국민국가간, 남북간의 지리적 구분으로는 오늘날 지구적인 차원의 분열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대해 국지적인 차원에서 방어하려는 민족주의나 지역주의는 반동적이라는 것이다.30

넷째로, 지정학적 분열 세 가지를 모두 중요한 것으로 보는 월러스틴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사고방식이 한층 복잡하다. 유라시아와 미국의 대결구도를 상정하면서 다극체제를 전망하는 또드와 달리 그는 남과 북의 갈등에서는 미국이 북의 주역으로 선두를 차지하는 가운데 유럽은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다가올 미래의 체제를 염두에 둘 때는 (3)의 분열이 더 근본적이라 보지만 당면한 몇십년간은 (1)(2)의 분열이 갖는 독자적 동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네그리·하트의 견해와는 정면 배치된다. 이런 차이는 2003년 2월 15일의 반전시위를 높이 평가하는 월러스틴과 반지구화운동이 반전운동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라는 하트의 견해차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유럽연합의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과 다극적 세계의 지향을 의미있는 것으로 긍정한다는 점에서 국가적·지역적 단위의 대응을 위험한 것으로 보거나 반동적인 것으로 보는 캘리니코스나 네그리·하트와 구별된다. 미국 패권에서 벗어난 하나의 강력한 자율적 유럽은 다극적 세계의 한 축이 될 텐데, 다만 그것이 제대로 될지는 “현재 세계 지정학의 중대한 물음표”31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월러스틴은 월든 벨로의 구상을 지지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식으로 유보적이다. “하나의 자율적 유럽이 계속되는 남북의 양극화를 실제로 극복하기 시작하는 방향으로 세계경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자 나아가려 한다면 세계무대에 훨씬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가능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32

세 가지 지정학적 분열을 모두 중요한 것으로 설정하는 월러스틴의 시각은 오늘날 세계체제에서 계급문제, 남북문제와 더불어 지역주의적 대응에 모종의 창조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 우리 지식계에서 논의되는 동아시아론, 혹은 지역주의와도 접맥시킬 여지가 보인다. 한편으론 지역주의에 따르는 시장통합을 진전시키면서, 다른 한편 환경파괴와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숱한 난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세계체제의 진보적 변화, 혹은 다극화에 기여한다는 발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로선 이런 시각이 작금의 세계사적 전환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런 시각은 계급·국가·지역·전지구의 차원을 두루 고려하는 가운데 층위가 각기 다른 요구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에 맞부딪치기 마련이고, 게다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현실적 과제의 전략적·전술적 우선순위를 그때그때 정확히 설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현 세계에서 미국의 좌표를 이해한다 할 때에도 이러한 복합적 사고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칫 미국이 한 덩어리의 실체인 것처럼 착각하는 친미/반미의 좁은 사고틀에 머무르게 되거나, 거꾸로 제국주의 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혹은 지구 ‘제국’ 대 ‘다중’(multitude)과 같이 어떤 간명한 기준으로 다층적 현실을 재단하는 단순논리에 빠지기 쉽다.

이제 세계사는 미국 패권의 안정기에 고착된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배구조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싯점이고 그로 인해 불안정과 동요가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다. 물론 이런 불안정과 동요는 단순히 미국이란 한 나라의 패권이 쇠락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누적된 전체 세계체제의 숱한 모순들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그 대응방식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능히 짐작이 된다. 특히 가속화되는 지구화로 인해 전체 세계체제의 동향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유례없이 클 수 있고, 역으로 한반도 현실의 진행방향이 세계의 지정학적 무대에 미칠 수 있는 여파 또한 엄청날 수 있다. 이렇듯 상호연관된 세계의 다층적인 지정학적 분열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일국자본주의론 발상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타도’의 과제가 아니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단일한 과제’라는 화두가 무엇보다 긴요하게 된다. 후자의 과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말 그대로 세계의 단위로 작동하는데다 그 내부의 지정학적 분열이 다층적이라는 사실에서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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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mmanuel Wallerstein, The Decline of American Power: The U.S. in a Chaotic World, The New Press 2003(한기욱·정범진 옮김 『미국 패권의 몰락: 혼돈의 세계와 미국』, 창비 2004); Chalmers Johnson, The Sorrows of Empire: Militarism, Secrecy and the End of the Republic, Metropolitan Books 2004(안병진 옮김 『제국의 슬픔: 군국주의, 비밀주의, 그리고 공화국의 종말』, 삼우반 2004); Emmanuel Todd, Aprés L’Empire, Gallimard 2002(주경철 옮김 『제국의 몰락』, 까치 2004); George Soros, The Bubble of American Supremacy, Public Affairs 2004(최종옥 옮김 『미국 패권주의의 거품』, 세종연구원 2004). 이하 인용면수는 번역서의 면수임.
  2. 이매뉴얼 월러스틴, 앞의 책 23면.
  3. 죠지 쏘로스, 앞의 책 22~26면에서 재인용.
  4. Michael Mann, Incoherent Empire, Verso 2003, 9면.
  5. Alex Callinicos, New Mandarins of American Power: The Bush Administration’s Plans for the World, Blackwell 2003; 김용욱 옮김 『미국의 세계제패 전략』, 책갈피 2004, 142면. 반면 월러스틴은 석유가 전쟁의 목표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석유통제 문제에 관해 미국은 이미 유리한 입장에 있어서 전쟁 승리를 통해 가져올 작은 이득을 위해 전쟁을 무릅쓸 이유는 없다는 것과 이 전쟁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미국의 석유 통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2003년 3월 24일 Boris Stremlin과의 인터뷰, Fernand Braudel Center, http://fbc.binghamton.edu/iwstremkr.htm 참조.
  6. 알렉스 캘리니코스, 앞의 책 106면.
  7. “Remarks by National Security Advisor Condoleezza Rice on Terrorism and Foreign Policy”(2002년 4월 29일), 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2/04.
  8. 알렉스 캘리니코스, 앞의 책 172~85면. 정성진은 20세기 말부터 미국제국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강화되어왔다고 주장한다(정성진 「21세기 미국 제국주의―맑스주의적 분석」, 『사회경제평론』 제20호,2003, 특히 4장 ‘21세기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의 강화’ 참조). 최형익도 오늘날 미국 패권이 쇠락하고 있다는 견해에는 반대한다(최형익 「제국의 황혼」, 『진보평론』 2004년 여름호).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 역시 마찬가지이다.“오늘날의 미국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더 헤게모니적인 권력은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R. 브레너·정성진 대담 「자본주의의 기원과 위기」, 『창작과비평』 2001년 겨울호 421면)
  9. Alex Callinicos, “The Grand Strategy of the American Empire”, International Socialist Journal 2002년 겨울호, http://pubs.socialistreviewindex.org.uk/isj97/callinicos.htm; Alex Callinicos, 앞의 책 184면 및 188면.
  10. Patrick Tyler, “A New Power in the Streets,” The New York Times 2003년 2월 17일자(캘리니코스, 앞의 책 23면에서 재인용).
  11. Michael Mann, 앞의 책 13면.
  12. 엠마뉘엘 또드, 앞의 책 112~13면.
  13. 찰머스 존슨, 앞의 책 386면.
  14. 엠마뉘엘 또드, 앞의 책 163면.
  15. Marshall Auerback, “What Could Go wrong in 2005?”(2005년 1월 21일), TomDispatch.com, www.tomdispatch.com/index.mhtml?pid〓2141
  16. 「美재정적자, 세계경제에 먹구름」, 『조선일보』 2005년 1월 26일자.
  17. 이매뉴얼 월러스틴, 앞의 책 400~401면.
  18. 알렉스 캘리니코스, 앞의 책 168~69면.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미국의 군사력과 동아시아의 재정능력의 분화로 현 체제의 강력한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현재의 헤게모니 위기가 다소 장기적인 체제혼란으로 악화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주장한다(같은 책 169면).
  19. Marshall Auerback, 앞의 글 참조.
  20. 「65개국 중앙은행 70%“달러 대신 유로 투자 늘려”」, 『한겨레』 2005년 1월 25일자 참조.
  21. 찰머스 존슨, 앞의 책 409면. 전비는 610억 달러를 약간 초과했는데 당시 동맹국들이 대부분 분담했다.
  22.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자면, “달러가 붕괴하면 그것(시장―필자)도 붕괴할 것이고 모든 것이 지정학적으로 바뀔 것이다. 붕괴한 달러는 쌍둥이빌딩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Immanuel Wallerstein, “Empire and the Capitalists,” Comment No. 113(2003년 5월 15일), Fernand Braudel Center, http://fbc.binghamton.edu/comment.htm.
  23. Walden Bello, “Unraveling of the Atlantic Alliance?” Focus on the Global South 2002년 9월호, http://www.focusweb.org/main/html/Article104.html.
  24. Alex Callinicos, “The Grand Strategy of the American Empire”, International Socialist Journal 2002년겨울호, http://pubs.socialistreviewindex.org.uk/isj97/callinicos.htm.
  25. 이매뉴얼 월러스틴, 앞의 책 368면.
  26. 같은 책 368~69면, 강조는 원저자의 것임.
  27. 같은 책 368면.
  28. 엠마뉘엘 또드, 앞의 책 202면. 그는 “만일 미국이 원한다면,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전쟁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도록 내버려두고, 유럽은 군사주의를 거부하고 유럽의 문제들에 집중함으로써 강해지도록 하자고 제안하는 데,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진다(같은 책 266면).
  29. Michael Hardt and AntonioNegri,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윤수종 옮김 『제국』, 이학사 2001, 18면.
  30. 같은 책 81면 및 433면.
  31. Immanuel Wallerstein, “The U.S. and Europe, 1945 to Today,” Comment No. 137(2004년 5월 15일), Fernand Braudel Center, http://fbc.binghamton.edu/comment.htm.
  32. 같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