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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루스 배러클러프 Ruth Barraclough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씨드니대학 일본-한국학과 코리아 파운데이션(Korea Foundation) 박사후과정 연구원. 이 글은 2004년 11월 12일 오스트레일리아 월롱공대학에서 열린 한국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며, 원제는 “When Korean Working Class Women Began to to Write…”임. ruth_gemma@hotmail.com

ⓒ Ruth Barraclough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이 논문을 쓰는 데 소중한 조언과 격려를 해준 정진욱, 리암 디(Liam Dee), 로럴 캔덜(Laurel Kendall), 미리엄 랭(Miriam Lang), 백낙청, 그리고 케네스 웰즈(Kenneth Wells)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영국 소설가인 버지니어 울프(Virginia Woolf)는 1928년 젊은 여대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이 강연은 훗날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라는 평론으로 출간되었다. 그녀는 청중에게 소설이나 시 혹은 희곡을 쓸 야심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1 그녀는 더 나아가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이 근대성의 시작을 알린다고 주장했는데, 낸씨 암스트롱(Nancy Armstrong)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순간은 “근대 세계를 창조하는 데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흔히 생각하는 사건들보다 더욱 연관성을 지닌” 것이다.2 버지니어 울프는 이렇게 쓰고 있다. “18세기 말엽에 변화가 일어났는데, 만일 내가 역사를 다시 쓴다면 이를 십자군 원정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생각하고 더 충실하게 묘사할 것이다.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 말이다.”3 버지니어 울프에게 이 순간은 진정으로 근대적인 중산층 사회에서 중산층 여성이 맡게 될 중요한 역할을 예시(豫示)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목소리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사회적 힘에 관해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문화적 순간은 ‘자기만의 방’에서가 아니라, 서너 명이 함께 사는 방이나 때로는 여성 기숙사에서였다. 버지니어 울프가 자신의 평론 『자기만의 방』에서 그 형성을 기록한 중산층 여성작가와는 달리 한국의 노동자 작가는 문화적 헤게모니 속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진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여성들은 자신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아로새기는 데 자서전 형식을 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이 책들의 범상치 않은 위상을 검토하며 작품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나는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싯점에 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미리 밝혀둘 것은 내가 다루려고 하는 대상이 무슨 대표적인 여성작가가 아니라,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서로의 작품을 접했고 거의 동시에 작품을 발표한 별도의 세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중 1982년 형성사에서 출판한 송효순의 자서전 『서울로 가는 길』은 한동안 가장 뛰어난 여공 수기로 손꼽혔다.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는 저명한 문학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1984년에 출간되었다.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일월서각) 또한 1984년에 발간되었다. 이 세 권의 책은 파업 및 빈민층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1970년대 서울 공장지대의 세계를 널리 알렸고, 준비된 독자층을 만나게 되었다.4 그러나 나는 이 작품들에 한국문학 정전 속에서의 소수의 목소리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정치와 문학의 접점에서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얼마나 힘있게 서 있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친 남한의 급속한 산업화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미천한 대접을 받는 직장에서 주변적 존재로 취급됨으로써 이들이 수행한 핵심적 역할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다. 자본축적에서 이들이 행한 결정적인 역할은 이들이 받은 보수나 직업의 안정성, 혹은 직장에서의 진급 가능성으로는 간파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이들의 가치나 의의를 인정해준 증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이들은 이른 나이에 학교를 떠났고 이들의 관심사는 언론보도에서 대부분 무시되었다. 이들은 공적 문화나 ‘고급예술’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들의 고용주나 국가는 가장 냉소적 방식으로 이들의 가치를 매겼으니, 이들이 국가번영을 위해 애국적이고 이타적으로 헌신하는 상징적 존재라는 식이었다. 이들은 길에서조차 ‘공순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에 시달리며 돈이 필요해 육체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비하되었다.5

여성노동자들이 자서전을 쓴 것은 바로 이런 무시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미래의 번영을 위해 젊은 남녀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한 한국의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산업화의 맥락 속에 이들의 자아 세우기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6 여공들이 처한 제반 모순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즉, 이들은 수출시장에서 핵심이었고, 이들이 집에 송금한 월급이 농촌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조했지만, ‘진정한 노동자’로 결코 간주되지 않았고 공장의 말단 임시직을 맡았던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들이 동일방직, YH, 여타 현장의 노조운동에서 자신을 노동자로 주장하기 시작하자 공장주와 경찰의 반응은 가혹했다. 여성노동자 탄압은 한국의 성공적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의 핵심적 측면인데, 이에 맞서 이 여성들이 구사한 투쟁전략을 보면 그들 삶의 일부인 성·계급 이데올로기에 그들이 비판적이면서도 그 속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서전은 자기표현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그 자체가 실로 오랫동안 이들을 무시해온 세상에 저항하는 거점이었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문학으로서 이들 자서전은 엘리뜨적 ‘고급문화’와의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 혹은 1980년대 국가의 엄격한 문학검열에 대한 전복으로만 볼 수 없는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7 왜냐하면 이 책들이 출간되던 당시에는 전두환 장군 치하(1980~88)의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발버둥쳤을 뿐 아니라, 이 시기의 ‘고급문화’ 혹은 최소한 문단문화의 한 흐름이 바야흐로 노동자 서사와 민중미술 운동을 새로운 활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8

여기서 검토하는 세 편의 자서전은 1980년대 노동계급에게서 나오는 문화적 창의성을 대표한다. 상당한 규모인 한국 반체제 문화시장의 일부로서 연극, 거리공연, 대중 무속행사, 노래패 활동, 수필집, 단편, 시선집, 심지어 「파업전야」 같은 영화까지 공연되거나 은밀히 유포되었다. 이것들은 1970년대, 80년대 자생적인 ‘서민적’ 문화전통을 대중화하여 이를 일상적 삶의 일부로 만들고자 했던 폭넓은 민중운동의 일부였다.9 이 글에서 논의하는 세 권의 책은 모두 ‘진보적’ 출판사들에서 나왔고, 교보문고와 종로서점 같은 초대형서점에서 판매되었다.10

문학사가인 권영민은 노동문학을 한국의 산업화가 낳은 문학이라는 좀더 넓은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소설적 인식과 그 형상화 방법 자체도 상당한 변화를 드러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과 정치적인 체제개방은 권위주의적 사회체제의 청산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문제로서, 노동자들의 삶의 불균형이 더욱 직접적인 문학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현대문학사: 1945~2000』 2, 민음사 2002, 296~97면)11

 

따라서 이런 여공의 문학은 광의의 ‘노동문학’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여성노동자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욕망을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과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를 주로 거론하면서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을 간간이 언급하기로 한다.

 

 

자서전

 

장남수는 경상남도 밀양군의 시골에서 성장하던 무렵 자신의 가족의 상황을 말하면서 자서전 『빼앗긴 일터』를 시작한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장남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가족관계를 봉건적이라 판단하고, 춘궁기를 못 견뎌 아버지가 서울로 상경해야 할 때 “노동자 1대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고 기술한다(8면). 학교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생생한데, 그녀는 (자신이 최고점을 받았는데도) 부잣집 딸이 우등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제약된 삶의 지평을 깨닫는다. 그녀가 학창생활의 갑작스런 중단에 대해 회한을 적고 있는 부분은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제1장 도입부의 두어 면에 걸쳐 장남수는 광범위한 어휘를 구사한다. 그녀는 마치 농부인 양 농촌생활을 묘사하고, 마치 운동단체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처럼 자신의 처지를 분석하지만, 독자를 향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쓴다. 시골의 목가적 생활 가운데 나무 위에 걸터앉아 『테스』를 읽고 있는 장남수의 모습에서 독자는 이 자서전에서 처음으로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는다.12

이 순간이야말로 문학에서 노동계급과 농촌여성을 말없는 희생양의 이미지로, 자신들의 엄청난 곤경을 의식조차 못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통념을 장남수가 교묘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독자가 처음으로 흘끗 보는 순간이다. 『테스』는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이며, 남자와 종교의 손아귀에서 파멸되는 농촌여성의 애잔한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장남수가 애독하는 책들에서는 대담한 농촌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똘스또이의 『부활』(Resurrection)에서의 까뚜샤와 『더버빌가의 테스』에서의 테스가 그들이다.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는 한국에서처럼 영국에서도 하녀, 농부의 딸, 여공의 삶과 여가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문학적 흐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금석이다. 1891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독자의 여론은 나뉘었는데, 많은 독자들은 무엇보다도 소설의 주인공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테스』의 영국 독자 다수에게,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새롭게 등장한 중산 하층 및 노동계급의 여성 독자대중에게는 테스와의 조우가 하나의 위안이었다. 1920년대 하녀생활을 자서전으로 써낸 이디스 할리(Edith Halle)는 테스에 대해 “흥미진진한 인격, 생각, 개성을 지닌 가난한 노동 여성”이라고 적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이제껏 읽은 것들 중에 여주인공이 ‘상류층 출신’이 아닌, 최초의 진지한 소설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노동자 계층을 생각 없는 자동기계로 그리지도 않았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내가 인간임을 느꼈고 내 고용주들이 마치 내가 없기나 한 것처럼 내게 말할 때조차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하나의 당당한 인간일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13

한국에서도 역시, 여성노동자들은 문학에 대한 관계가 양면적임을 일러주었다. 석정남이 문단에 몸담은 사람으로서는 처음 알게 된 한 시인에게 소개될 때, 그 시인은 그녀의 시 취향을 비웃는다. 바이런(Byron)과 독일시인 하이네(Heine)는 반세기 전 교육받은 독자의 취향을 대변하는 시인이라는 것이다(『공장의 불빛』, 54면). 석정남은 처음에 동일방직의 근로자용 도서실을 아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두어 시간 정도 방해받지 않고 시를 읽으며 그녀의 빡빡한 삶과 천한 작업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서실에서 ‘꿈꾸는’ 시간을 위해 교대조로 돌아가는 공장일을 기꺼이 한다(같은 책 18면). 그러나 그녀가 드디어 쓰기 시작한 작품은 자신이 체험한 삶의 경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과 ‘문학’ 간의 차이, 즉 레이먼드 윌리엄즈(Ramond Williams)가 일컬은 “문학에서의 가치와 노동자 대중의 삶”14 사이의 간격을 강화하기보다는, 석정남은 여공은 물론 시인과 다른 잠재적인 독자를 겨냥한 이야기로 자신의 문학에서 이런 간격을 모호하게 만든다.

『더버빌가의 테스』처럼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역시 당대의 몇몇 거대 사안들―서울로의 상경, 공장경제 진입, 반체제적 노조운동에의 가담―에 얽혀든 농촌여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장남수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쓰고 ‘역사를 만든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자로서의 확신을 품고 자전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최초의 ‘노동문학’ 작가들이 동일방직, 원풍모방, YH 공장 들에서 파업과 탄압을―가두시위로 번져 결국 수많은 참여자의 투옥과 심문으로 끝난 노사분쟁을―직접 체험한 이들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젊은이들이 직장에서 해고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이름을 바꿔 임시직에 있으면서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그토록 오랜 기간 자신을 억압해온 사회구조를 선명히 드러내곤 하였다. 이들은 자기들의 노동과 인격을 ‘싸구려’로 평가한 사회경제 및 자기들의 ‘희생’을 요구한 정치적 합의, 그리고 하층계급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데 일조한 문화질서와 어떻게 싸웠는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먼드 윌리엄즈가 웨일즈 공단문학에서 자서전적 형식이 우세한 점에 관해 쓰면서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러한 목소리이다. 노동자 작가에 관해 윌리엄즈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작가들은 자신의 계급적 상황을 대단히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상황 속에서는 예외적인 사람들이었고, 또한 이런 상황에 조응하는 자서전의 핵심적인 형식적 특색이 있으니, 바로 대표적인 동시에 예외적인 이야기가 그것이다. (Raymond Williams, 앞의 책 219면)

 

노동계급 자서전에서 ‘대표적인 것과 예외적인 것’의 결합, 개인적 성격과 집단적 성격 간의 긴장은 작가들에게 손해를 끼쳤다. 이들은 노동계급적 삶의 형상화를 기념하고 있는 동시에 계급간 경계선을 파괴하는 양면적인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자끄 랑씨에(Jacques Rancière)는 그의 책 『노동의 밤』(The Nights of Labour)에서 19세기 프랑스의 노동자와 지식인 간의 관계를 해체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글을 써서 다른 종류의 삶으로 도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프롤레타리아 작가나 시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성을 구현하게 될 때 일어나는 분열에 주의를 기울인다. 랑씨에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러하다. “우리의 도망자들이 프롤레타리아적 삶의 굴레에서 탈피하고자 갈망하면서도, 에둘러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노동자 정체성의 이미지와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째서인가?”15

이는 한국 노동계급 작가에게도 역시 대두되는 질문이다. 노동계급 삶의 체험을 높이 인정하는 것과 그 삶에서 도주하는 것 사이의 난처함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의 삶을 침해하는 사회구조 속에 자화상을 위치시킴으로써 자서전 장르를 통해 이 두 가지 노력을 화해시키고자 했다. 이리하여 작품에서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일화에서조차 이들은 자기 체험의 사회적 원인을 분명히 밝힌다. 이를테면 가난이 성애(sexuality)에 끼치는 영향, 농촌 출신이라서 느끼는 대도시에서의 어색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부담으로 말미암아 위험한 일자리를 떠맡기로 마음먹는 것 등이 그것이다.16

이들 자서전의 힘과 새로움의 일부는 도중하차한 학업과 거대한 청소년 노동시장이 입증하듯 어리고 궁핍한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것’ 자체에서 비롯된다. 자서전 장르가 지닌 친밀감 덕분에 이 작가들은 자신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드러내는 글쓰기 공간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석정남은 자서전을 출간할 때 치러야 하는 댓가, 즉 자신의 직업,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궁핍함과 취약점을 대중에게 드러낼 때의 오명에 관해서 쓰고자 했다.

석정남은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고 그녀에게 일기를 출판해보라고 격려한 ‘시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의 이름에 대해서는 단지 암시할 뿐이지만 그의 용모와 인물됨을 드러내는 묘사를 하고 있다. 석정남의 친구가 사회정의를 강력히 지향하는 기독교 단체인 크리스챤 아카데미출신의, 그녀의 글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시인을 만나보라고 권하자, 그녀는 이 시인이 어떤 사람일지 상상한다. 그녀는 그에게 관례적인 시인의 온갖 진부한 낭만적 면모를 부여한다. “내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우선 다른 사람보다 뭔가 다르고 고상하며 머리는 굽슬굽슬 길게 늘어뜨리고 눈은 쾡 하면서도 빛나야”(『공장의 불빛』, 54면)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분명한 실망조로 우리에게 일러주듯, 시인은 삼십대의 평범한 아저씨였다. 그가 그녀에게 ‘막말’ 혹은 ‘반말’을 하기에 이르자 석정남은 더욱 당황해한다.17 석정남은 그녀의 일기를 읽도록 허락할 것인지 망설이지만, 왜 망설이는지 그 이유를 시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 그녀는 그 이유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내가 무엇보다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돈에 쪼들리며 살고 있는 내 생활에 대해서이다. 물론 내가 공장에 다니는 공순이니까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은 시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정도를 지나 비참하게 살아온 내력을 알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도록 챙피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책 55면)

 

이러한 심경의 토로에서 석정남은 자서전을 냄으로써 개인적으로 치러야 하는 댓가에 대해, 그리고 기어코 출판을 감행하게끔 이끈 확신에 대해 솔직하다. 이제껏 여성노동자의 재현 문제를 공정하게 다뤄본 적이 없는 출판계에 자신의 책을 맡기면서 석정남은 특수한 종류의 노출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다. 덧붙일 것은 동일방직 쟁의를 다룬 그녀의 처녀작 『불타는 눈물』이 그녀가 동일방직에서 일하던 동안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직원 중에 작품을 발표하게 될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공장 상사들은 자랑스러워했고, 한 여자 경비는 정남을 찾아와 “문장력이 괜찮든데 그쪽으로 열심히 노력해봐”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분위기는 싸늘한 적대감으로 돌변했다. 석정남은 노무차장에게 불려가고, 그는 그녀가 동일방직에 대한 ‘악선전’을 한 것이며 잡지를 팔기 위해 쇼킹한 사건을 원하는 잡지사에 이용당했다고 말했다(같은 책 56면). 그녀는 경고를 받았지만 해고되지는 않았는데 그러는 동안 문예지 『월간 대화』의 독자들은 1976년에 프롤레타리아 문학 혹은 ‘노동문학’ 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최초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를 읽었다.

이 새로운 노동문학을 가장 열심히 탐독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노동문학에서 자신들이 다양한 계급출신간의 분열의 예로서 그려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런 계급 분열은 다른 어느 이야기보다 계급간의 내밀한 로맨스에서 가장 강력하게 묘사되었다.

계급간 로맨스에서 장남수는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와 대학생 사이의 깨지기 쉬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젊은 여성노동자가 자신을 추상적으로 규정하는 그 모든 것들―지위, 직업, 가난, 학력 결여 등―에 얼마나 민감한지 드러난다.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걸쳐 젊고 호기심에 찬 미혼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흘러들었다. 1983년 제조업 부문 여성의 72%가 18세에서 24세의 나이였다.18 그들 중 다수가 홀로 상경했고, 시골에 있는 식구들에게 월급을 송금했다.

 

 

계급간 로맨스

 

노동계급 문학의 로맨스 일화에는 거리의 ‘로맨스경제’라는 어두운 영향으로 여공들한테 로맨스는 위험하다는 의식이 깊이 배어 있다. 사창가가 인근에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재정적·성적으로 호소력이 있는데다 포주의 매력적인 숱한 유혹까지 작용하여 결국 사랑에 빠지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노동계급 여성과 가난에 내몰린 모든 여성이 매매춘에 시달림을 받았으니, 당시 매매춘은 한국 경제성장 이면의 지하경제의 일부이자 비대한 한국 군인계층의 사냥터였다.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에 나오는 ‘운희의 사랑 얘기’는 계급간 로맨스에 대한 일종의 교훈으로, 자기 계급 바깥에서 사랑에 빠지는 위험성을 예시한다.

운희는 시골출신 소녀로서, 전라도에서 상경해 인형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모처럼의 휴일에 운희는 친구들과 함께 늘 보고 싶었던 고궁에 나들이를 간다. 경복궁의 박물관에서 그녀는 붙임성 있고 호감이 가는 대학생 성호를 만난다. 그들은 금방 친구가 되고 이 우정은 급속하게 심각한 관계로 발전하며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운희는 성호에게 정성을 다한다. 그의 하숙방을 청소하거나 심지어 그에게 학비와 용돈을 꾸어주기까지 한다. 어느날 밤 퇴근길에 운희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성호를 만나는데 그는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가 말 못할 어떤 일로 급하게 필요한 20만원을 빌려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운희는 망설이다가 결국 그러겠다고 하고 그날 밤 그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성관계를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운희는 식구들이 진 빚을 갚고자 부모님께 송금하기 위해 30만원을 모아놓은 친구 미화의 숙소로 간다. 그러나 미화는 집에 없고 주인아줌마는 운희더러 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절박한 마음에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녀는 나중에 미화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로 하고 미화의 돈을 가져간다.

운희는 곧장 성호의 하숙방으로 달려가지만 이제 그들 사이의 마법은 깨진다. 그들 사이에는 낯선 냉랭함이 끼어들고 성호에게 돈을 건네준 뒤 길을 나선 운희는 다른 여자를 목격한다. 잘 차려입고 곱게 화장한 여자가 성호네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성호와 같은 계급으로 그의 진짜 여자친구인 것 같다. 성호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운희는 절망에 빠져 쏜살같이 뛰쳐나와 집에 오지만 사복경찰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운희는 감옥에서 장남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에 빠져 돈을 훔치고 감옥에 오게 된 운희의 사랑이야기는, 산업혁명 동안 빈둥거릴 수 있기 위해 행사하는 상류계급의 특권에 대한 댓가를 누군가가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잘 보여준다.19 운희와 같은 여공은 이런 로맨스경제에 파산당할 수 있었는데, 이 경제는 그들에게 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는 한편 그들의 순진성과 지겨움과 외로움,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여유와 로맨스에 대한 동경에 무자비한 비용을 물렸던 것이다.

엄밀히 말해 운희는 성호에게 고용된 것도 아니며, 그녀가 그에게 돈을 건네는 것도 그녀가 그를 위해 돈을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돈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반면 성호는 더 부자로 만드는 그들의 경제적·성애적 거래는 매춘부와 포주의 관례적 관계와 흡사하여 모든 여성노동자 독자에게 경고의 역할을 한다.

장남수가 평등한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계급간 로맨스에 대해 뉘앙스를 살려 이야기하는 대목에서이다. 역사학자 정현백은 장남수와 대학생 현우의 연애 여정을 추적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사회에 대해 대단히 복잡정교한 구도를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20 연애가 결혼으로 맺어져 상류계급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는 여공이 기숙사나 빈민가의 쪼그만 하숙방,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개인적인 쇠락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 중의 하나였다.

1977년 장남수가 열아홉의 나이로 서울의 유명한 원풍모방에서 막 일을 시작하던 때였다.21 그녀는 신원증명서를 갱신하기 위해 경남의 고향집을 찾았다. 기차역에서 할머니와 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서울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그녀는 대화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 어디까지 가요?”

“저는 영등포까지 가는데 거긴 어디까지 가세요?”22

“잘 됐네요. 저는 용산까지 갑니다. 우리 얘기나 하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K대학교 2학년, 이름은 현우라 했다. 나는 직장에 다니며 공부하고 싶어 현재는 학원에 다닌다고 말해주었다. (『빼앗긴 일터』, 35면)

 

장남수가 당시 다니던 야학인 한림학원은―급진파 학생과 노동자 간 연대사업의 일환인―정치적 ‘야학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공장노동자가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평범한 야간 강좌였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혹은 형제자매의 출세를 위해 마지못해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여공들에게는 교육이 희망의 발화점이라는 것을 이들의 대화는 잘 보여준다. 당시 장남수가 하던 식의 주경야독은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이 억지로 하는 것이었고, 거의 견디기 힘든 압박을 몸에 가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배움이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것인가에 대해서 결코 내색하지 않지만 다음의 대화에서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의 지식흐름이 상당히 쌍방향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친구하자, 말도 놓기로 하고.”

그의 제의에 응하긴 했지만 몇번이나 또, 또, 하는 지적을 받은 후에야 겨우 말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와 생각이 잘 통한다고 느끼며 쉬지 않고 재잘댔다. 똘스또이의 『부활』을 얘기하고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을 얘기했다.

(같은 곳)

 

남수와 현우가 논하는 소설들은 의미심장하다. 똘스또이의 『부활』은 방탕한 네흘류도프(Nekhlyudov) 공작의 영적 구원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가족의 총애를 받는 하녀 까뚜샤를 유혹하면서 그녀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고 그녀를 버린다. 『부활』은 영적 속죄에 관한 이야기일뿐더러 계급간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데미안』(Demian) 역시 영적 여행을 이야기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 화자가 카리스마를 지닌 각성한 데미안을 학교에서 만나, 기성 종교와 대중의 도덕성이 위선이라는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게 된다. 현우가 난봉꾼 네흘류도프 공작이 아니라 매력있고 지배욕이 강한 데미안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을 보면 그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두 책을 읽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수야 데미안이 멋있었어?”

“응, 너무 멋있더라.”

“그래? 그럼 내가 데미안이 되어줄 수 없을까?”23

“피― 현우씬 안돼.”

“왜? 왜 안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덩달아 웃었다. 나는 『월간 대화』24도 보여주었다. 그 속에 나오는 「인간시장」을 읽어보라고 하자,

“무슨 내용인데? 남수가 얘기해봐.”

그래서 또 열심히 얘기해주었다. 어느새 차는 안양을 지나고 있었다.

“어, 저기 회사 같은데 왜 밤에 불이 켜져 있지?”

“일하니까 그렇지.”

퉁명스레 대꾸하는 내게

“정말 밤에도 일해? 진짜 밤에도 일하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친구일까. 이 친구는? 밤에도 일하느냐고? 가슴에 확 밀어닥치는 괴리감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아, 저 사람은 어쩜 저다지도 세상모르고 편할까? 대학생들은 다 그런 걸까?

그는 내 표정을 보며,

“난 정말 몰랐어. 밤에도 일한다는 것,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아왔나봐. 그러나 가난한 건 행복 아니니?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

“흥 그래서 현우씨 그 가난을 맛보고 싶어서 완행열차를 탔구나. 참 사치스럽다. 진짜 가난을 알기나 하고 그래?”

내 반문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용산역까지 가지 않고 영등포역에서 같이 내린 그는

“그냥 가기는 참 아쉽다. 식사나 할까?”

“싫어 난 그냥 갈 거야.”

“그럼 주소 가르쳐줘. 편지할게.”

“싫어. 현우씨 잘 가요.”

돌아서자 그는 소년처럼 팔을 벌려 앞을 막으며 비켜주지 않는다.

“그럼 현우씨 주소 적어줘. 내가 편지할게. 그렇게 하면 되잖아?”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메모지를 꺼내어 주소를 적었다.

“어휴 뭐 이렇게 글씨를 못 써.”

그러나 내 말엔 대꾸도 않고 적더니 “꼭 편지해야 된다”며 다짐을 했다. 버스를 타고 손을 흔들었으나 그는 바라보고 서 있기만 했다. 텅텅 빈 새벽버스 속에서 ‘그래 편지하자. 그래서 그에게 더 세상얘기를 해주자’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곧 그에게 편지를 썼다. 금방 답장이 왔다. (『빼앗긴 일터』, 35~36면)

 

장남수와 그녀의 새 친구 현우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의를 쌓다가 다시 만날 계획을 세운다.

 

나는 정말 내가 편한 날짜, 편한 장소로 정해 답을 보냈다. 약속한 날, 시간도 정확히 그 장소로 나갔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다리던 나는 잔뜩 구겨진 자존심을 학대하며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니 수유리였다. 4·19탑이 가까이 있었다. 그는 4·19탑 얘기를 했었는데…… 흰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다. 묘소를 한바퀴 돌아보고 잔디 위에 앉아 몇시간을 생각했다. 바람맞았다는 것이, 그것도 처음 약속에서 바람맞았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은 책 37면)

 

장남수가 별생각 없이 들른 서울 북쪽에 있는 4·19 기념탑은 1960년 4·19혁명에서 죽은 학생들을 위한 기념물이다. 학생들이 서울에서 부정선거와 정치부패, 폭력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끌자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군대는 발포를 했다. 시위대는 이내 거리 곳곳을 장악했고, 며칠 안되어 정권을 무너뜨렸다. 부패정권 타도에 앞장서는 학생들에게 4·19 기념탑은 고통스럽고도 모범적인 과거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녀에게 이 기념탑은 거의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녀의 예리한 정치감각은 대학생 현우의 것보다 훨씬 더 날카롭다.

 

내가 그를 이성으로 생각했던 것인가 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어리석지. 그는 대학생이다. 나 같은 공순이 만나 세상얘기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25 혼자 뇌까리며 터덜터덜 돌아왔다. 이틀 후에 편지가 왔다.

“일요일의 약속 못 지켰음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병역관계로 어쩔 수 없었어. 연락할 여유도 없었고……”

따져본즉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수긍이 간다. (…) 밤중에도 일하느냐고 물어보던 음성이 머릿속에 뱅뱅 돈다. 나는 섬유공장 노동자고 그는 대학생이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며칠 사이에 난 무척 많은 걸 배운 것 같다.

그가 대학생만 아니었던들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 테고 약속 어겼대도 이해하고 또 계속 만나고 그랬을지 모른다. 전화를 하라던 토요일 저녁 많은 생각을 하며 보낸 후 문득 야학친구가 보고 싶어 송자에게 연락을 했다. (같은 곳)

 

남수가 깊은 분노를 드러내는 순간은 다음날 아침 송자와 오류동 과수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보신탕에 쓰일 개들을 가둬놓은 공터에 이르렀을 때이다. 송자는 남수에게 이런 개들에게 주사를 놓아 개 짖는 소리가 동네까지 들리지 않고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설명을 한다. 남수는 개들의 쉰 목소리와 디룩거리는 눈에 시선이 붙박인 채로 서서 친구의 말을 듣는다. 이때가 그녀에겐 성찰의 순간인데, 그녀는 이런 비정한 생각을 한다.

 

가까이 가보니 정말 개들은 모두 컹컹거리기만 하지 제 소리를 못내고 있었다. 짖는 것이 생명인 동물을 짖지 못하게 해놓았으니 모두 안타깝게 바둥대며 짖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목엔 쇠사슬을 걸고서…… 나도 목이 답답해지며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같은 책 38면)

 

장남수는 덫에 걸린 채로 헐떡이는 개들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그녀는 비단 계급의 덫에―가난의 덫에, 배우지 못했다는 덫에, 여가와 재미를 어색해하고 낯설어하는 자신의 덫에―걸려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덫에 걸려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느끼는 감정을 서술한다. 레이먼드 윌리엄즈가 다음과 같이 쓸 때 그가 묘사하는 것도 바로 이 목소리이다.

 

하층민, 하층계급의 저 심오한 모호성은 그토록 깊숙하게 내려가되 그토록 높이까지 올려다볼 때 그들의 전망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이질적인 체제의 전망은 물론이고 그런대로 견딜 만한 전망보다도 더 크다는 데 있다. (Raymond Williams, 앞의 책 228면)

 

장남수는 자신의 욕망을 왜곡하는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엔 왕자와 시골처녀의 사랑얘기, 공주와 나무꾼의 사랑얘기가 전해오곤 했다는데 지금 사회는 대학생은 대학생, 사장 딸은 고관 아들, 그리고 노동자는 노동자끼리라는 관념으로 틀이 잡혀 있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과의 깊은 인간애로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간판과 간판끼리, 명예와 명예끼리 각각 그렇고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빼앗긴 일터』, 100면)

 

공단에서 일하는 우리들이 연애를 하면 성문란이라고 한다. 대학생이 잘못하는 것은 귀엽게 봐주고 노동자가 잘못하면 ‘천한 것들’이라고 욕한다. (같은 책 101면)

 

정현백은 장남수와 현우의 관계를 놓고 사랑과 결혼을 통해 노동자의 삶에서 탈피하여 계층상승을 하는 기회로 해석한다.

 

기차 안에서 만난 대학생이 (많은 독서량과 폭넓은 관심을 통해 형성된) 그녀의 지적인 태도에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해오자, 깊은 내적인 갈등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층의 사람이라는 인식을 확인하며, 그녀에게 주어진 〔계층상승의–인용자〕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정현백, 앞의 글 126면)

 

함축된 의미는 장남수가 여공에서 귀부인으로 탈바꿈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계급의 벽을 가로지르지 않을 것이며, 이 단계에서 독자는 그녀가 분투하여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다른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알아차릴 수 있다. ‘여공’과 ‘대학생’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사회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은 채 사람들이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사실, 사랑이야말로 장남수에게 사랑이 왜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정치와 사회와 돈이 개입해야 하는지를 그 어떤 논리보다 더 직접적으로 밝혀준다.

장남수에게 계급간 사랑의 불가능성이 개인적 회한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그녀는 계급간 로맨스의 불가능성에 환멸을 느끼며 두 손을 번쩍 들기도 하지만, 강렬한 분노를 느끼는 만큼이나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모습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이 제안하듯 만일 서사를 이데올로기로서 읽는다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의 계급간 로맨스는 각성의 이야기가 된다.26 개인적인 실망은 세상과 성별 선택이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하나의 깨달음으로 탈바꿈된다. 물론 이 발견에서도 면제된 것이 있다.

 

 

여공의 정조

 

장남수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공의 사회적 세계뿐 아니라 그들의 도덕성에 관해서도 일러준다. 여공의 노동은 가부장적이고 계급을 의식하는 사회의 눈에는 비천해 보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들은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성과 사회적으로 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국 1970년대와 80년대에 번성하던 비공식경제부문에서 몸을 파는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여공들이 매매춘이라는 주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는 여공의 정조에 관해 단호하다.

매매춘에 대한 이러한 침묵은 여성노동자를 괴롭히는 제반 모순들의 다른 측면이다. 그들이 조신하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쓴 여공들은 자신이 매춘부와 비교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일레인 김(Elaine Kim)이 주목했듯이, “여성이 집 바깥에서 일한다는 것은 집안 망신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27에서는 빈민층 여성이 공장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 이들은 여성성을 모독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가정적 여성이라는 이상을 담은 오래된 경구 ‘현모양처’는 직장세계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때로는 식구들까지 부양한 여성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실로 부조리한 목표였다.

빈곤층 여성이 도달할 수 없는 자질들로 여성성을 규정함으로써, 여성노동자는 돈벌이라는 여자답지 못한, 필요로 인해 더럽혀진 존재로 간주되었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더럽혀진 존재로서의 노동계급 여성이라는 통념적 이미지는 여공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여성성, 아름다움, 우아함은 한국에서는 ‘계급적 자산’이었으며 여공들로서는 취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28 장남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도 아니 되고 여자는 얌전하고 교양있게 얘기를 해야 하며 행동도 조용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 자로 잰다면 우리는 여자로선 제로 아닌가. 큰 소리로 하지 않으면 말이 전달이 안되고 작업복을 입고 분주하게 기계 사이를 오가며 일해야 하니 자연히 행동이 덤성덤성하다. 이 나라의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해 밤잠도 못 자고 땀흘리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공순이라는 천시하는 명칭과 세상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이 박탈되는 거라면 우린 뭔가? 누구를 위해 일하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빼앗긴 일터』, 42~43면)29

 

패트리셔 존슨(Patricia Johnson)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서 우리는 장남수가 얼마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과 여성노동자의 삶이 처한 경제적 현실 간의 모순을 떠안고 살았는지”30 알 수 있다.

1970, 80년대가 한국 여성방직노동자의 삶에 관한 가장 풍부한 자료를 산출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는 여성노동자들이 전투적 노조운동을 통해 분투하여 사회의 주목을 얻었으며, 문학에서 그들의 공간을 만들어낸 시기이다. 저임금에 맞서 싸웠던 장남수와 여타 여공들은 욕망의 억압과도 맞서 투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학자 존 스콧(Joan Scott)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독신여성이 받는 저임금을 그들의 억눌린 욕망과 관련시킨다. 스콧은 여성의 저임금이 “남성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욕망―자기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고픈 욕망과 성적 탐닉에의 욕망―의 억압과 관련된 격식을 필수불가결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31 저임금, 비천한 조건, 그리고 모든 가난 결정론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느날 밤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언뜻 엿본, 그런 다른 계급적 관계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과연 문학인가?

 

이들 작품의 출판 이전에는 노동계급 여성의 자서전이 한국사회 어떤 문학전통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들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책들은 문화적 권위의 생산문제 전반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이 작가들은 문학적 생산의 조건,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의 문학의 해방적 역할, 글쓰기의 즐거움, 그리고 여성노동자가 뭔가를 출판하려 할 때 지켜야 하는 힘겨운 일정 사이의 연관들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전(正典)이 되려면 작가의 땀이나 그밖의 노고의 흔적을 작품에서 말끔히 씻어내야만 되는 상황에서 이런 연관들은 이들이 정전의 대열에 합류하기에는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 있는지 우리에게 일깨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들 세 작품이 그것을 출판하고 수용한 문학시장 밖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출판 당시 가장 인기있던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이 기독교적 온유함과 여성적 고통의 감수성을, 일종의 ‘노동계급판 눈물 짜내는 이야기’를 전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오늘날 세 작품 중에서 가장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사실을 눈여겨보는 것은 실로 흥미롭다. 다른 두 작품보다 『서울로 가는 길』은 노동운동에서는 물론 문학에서도 여성노동자를 감상적 인물로 그려내는, 이미 굳어진 문학적 관례에 훨씬 잘 들어맞았다.32 이와는 대조적으로 석정남과 장남수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비천한 삶의 경험에 중산층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을 문학적·사회적 주체로서 제시한다. 그들은 빈곤한 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풍요로운 내면세계의 불일치를 묘사하는데, 특히 장남수는 분명하게 빈곤의 성정치학을 지명한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1980년대 한국 문단에서 모호한 존재로 남아 있다. 장남수가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알려면 그녀의 자서전 서문을 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유명한 정치인도, 스타도 예술가도 아닙니다. (…) 그저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난한 농촌 가정에 달갑잖은 딸자식으로 태어나 공장 노동자가 된 한 여성일 뿐입니다.”(『빼앗긴 일터』, 3면) 여기서 그녀는 문화적·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안정된 자리를 찾고자 갈망하는 동시에 그 위계질서를 비웃고 있다. 이들 두 자서전이 공유하는 가장 괄목할 만한 혁신은, 문학과 사회 양자에 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틀 지어진 작품을 통해 노동계급 여성이 핵심인물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예시(豫示)함으로써 정치적·문학적 재현을 함께 묶고 있다는 것이겠다.

 

 

결론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수십만명의 시골여성들이 수도 서울의 넓은 대로변과 빛나는 고층빌딩들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간직하고 서울의 뒷골목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 호사스런 산업도시의 우아한 건축물들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공들은 남성 위주 노동조합에서 정치적 억압을 당하고 막다른 일터에서 경제적으로 주변화됨으로써 한국의 후기산업화 속에서 그 역할의 중요성이 가려져왔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삭제하는 듯한 온갖 방식의 급속한 경제개발 계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저임금을 받는 근면한 노동자로서, 시골 가계의 재정적 부양자로서, 봉건적 가부장제 위계질서의 연장선에서 공장의 성별 위계의 최하층에 배속된 젊은 여성으로서 살아왔다. 이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을 주장했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심하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사회의 제반 모순을 폭로했을 때, 고용주, 경찰, 때로는 동료 남성노동자들까지도 격분해 마지않았다. 반체제 노동운동은 직장과 사회에서 민주적 관계를 지향하는 이들의 노력에 대해 감상적으로 다루거나 “여성의 희생자로서의 입장”33에 끼워맞추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송효순, 장남수, 석정남의 작품은 이 기간 동안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국가발전과 계급투쟁이라는 거대서사의 주변부에서 이들 공장노동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서사를 창조해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의 산업화 경험에 대한 견줄 데 없는 이야기를 써낸 것이다. 이들 없이 20세기 한국의 격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李一修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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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rginia Woolf, A Room of One’s Ow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2. Nancy Armstrong, 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255면.
  3. Virginia Woolf, 앞의 책 84면.
  4. 이 시기에 출간된 다른 작품들로는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1984), 박영근의 노동자 글모음 『공장 옥상에 올라』(1984), 김경숙 선집 『그러나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1986), 나보순 외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근로자의 글모음 I』(1983) 등이 있다. 이 외에도, 1980년대 공장, 야학과 문학써클 등에서 읽혀진 미출간 단편과 수기 들이 포함된다. 김병익은 이 과정에 대해 「최근 한국노동소설: ‘노동’문학 대 노동 ‘문학’」, 『한국인』 1989년 3월호 12~13면에서 논했다.
  5. 한 젊은 여성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갔을 때다. ‘야! 공순아 이제 오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남학생 몇명이 서 있었다. ‘야, 공순아! 왜 쳐다보니? 싸가지 없게스리’라고 말을 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을 했다. ‘그래 나는 공순이다. 그러는 너희들은 뭐 잘난 것 있니? 학교 뺏지만 달면 학생이냐? 천만에 말씀이야. 너희들 그 썩은 정신상태부터 뜯어고쳐야 돼! 알았니?’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또 몰상식스런 말을 했다. ‘못 배운 기집애가 어디서 큰 소리야. 배우지 않은 기집애라서 말하는 싸가지가 되먹지 않았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속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해서 막 울었다. 왜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만 되나? 왜 공순이란 소리를 들어야만 하나?”(나보순 외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근로자들의 글모음 I』, 돌베개 1983, 47~48면)
  6. 육군소장이었다가 이후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이들의 희생이 일시적이고 결국 보상받을 것임을 약속했다. “우리의 수출규모 신장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저임금으로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야만 하는데, 만일 임금이 높다면 이는 불가능합니다. 고임금과 높은 상품가격 때문에 수출규모가 줄어든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근로자들의 생활이 개선되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은 국가발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국가건설의 긍지와 책임을 지고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수출의 계속적 신장으로 경제가 빨리 성장하면 우리 3백만 근로자들에게 번영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박정희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한림출판사 1970, 2~3면).
  7. 이러한 문학검열의 한 예로 1920년대와 30년대에 출간된 한국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판금조치를 들 수 있다. 이 조치는 1987년에 해제되었다.
  8. 전두환정권을 타도하는 데서의 중산층의 결정적 역할을 논의한 글로는 Jang Jip Choi, “Political Cleavages in South Korea,” Hagen Koo (eds.), State and Society in Contemporary Kore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13~50면.
  9. Chungmoo Choi, “The Minjung Cult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Popular Culture in Korea,” Kenneth Wells (ed.), South Korea’s Minjung Movement: The Culture and Politics of Dissidence,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105~18면 참조.
  10. 정확한 판매부수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주류 서점들에서 이 책들을 모두 사볼 수 있었다.
  11. 권영민은 자신의 글에서 본 논문의 연구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폭넓은 작품군을 언급하고 있다.
  12. 이는 독자 역시 농촌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를 읽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3. Edith Halle, Canary Girls and Stockpot, London: Luton 1997, 39~40면; Jonathan Rose, The Intellectual Life of the British Working Classe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1, 275면에서 재인용.
  14. Raymond Williams, Problems in Materialism and Culture, London: Verso 1983, 221면.
  15. Jacques Ranciere, The Nights of Labour: The Workers Dream in Nineteenth Century France,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89, 64면.
  16. 일례로 친구 남옥이가 돈은 많이 받지만 지옥 같은 일자리를 찾아 이란으로 갈 결심을 하고 한달 후 이란에서 자동차사고로 죽게 된 것을 장남수가 논하는 대목(『빼앗긴 일터』, 56~58면) 참조.
  17. 한국인들에게 존댓말 사용은 지위의 결정적인 표시이다. 따라서 이 시인은 석정남보다 연상이며 교육받은 남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더 높기 때문에 말투 선택의 폭이 훨씬 넓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 때 다양한 수준의 존댓말을 구사할 수 있거니와 아예 존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인이 후자를 선택한 것이 그녀에게는 충격적이다. 그녀는 이 시인이 사회적 지위로 누리고 있는 말투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시인 쪽에서 그런 섬세한 배려를 하지 않는데도 그에게 존댓말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암시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시인의 말투 선택이 잘못된 것이랄 수는 없다. 오히려 시인이 정남과의 사회적 간격에 대한 판단착오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석정남이 자신의 책에서 그를 은근히 질책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런 사회적 간격이라는 가정에 그녀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처음 만난 그분은 나를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던 동네 어른처럼 (…) 장난을 걸기도 하였다”(같은 책 54면)고 말한다. 존댓말과 반말 형식을 (잘못) 사용하는 문제가 이들의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이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등하지 않은 계급이면서도 동등한 말투를 사용하는 보기드문 예로는 이 글에서 계급간 로맨스를 다룬 장의 후반부 참조. 이런 논지를 전개하는 데는 Gi-Hyun Shin, “Politeness and Deference in Korean: A Case Study of Pragmatic Dynamics,” Monash University PhD dissertation, 1999의 신세를 졌다.
  18. Seungsook Moon, “Economic Development and Gender Politics in South Korea: 1963~1992,” PhD dissertation, Brandeis University 1994, 271면.
  19. 이 구절은 마이클 스프링커(Michael Sprinker)의 다음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생산노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위해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특권에 대한 댓가를 결국엔 누군가가 치러야만 했다.”(Michael Sprinker, Imaginary Relations: Aesthetics and Ideology in the Theory of Historical Materialism, London: Verso 1998, 185면)
  20. 정현백 「여성노동자의 의식과 노동세계: 노동자 수기 분석을 중심으로」, 『여성』 1호, 1985.
  21. 원풍모방은 1970년대의 가장 치열한 노동분쟁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유명해진다. 좀더 상세한 정보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70년대 노동현장과 증언』, 풀빛 1984, 403~408면 참조.
  22. 영등포는 서울 외곽의 공단지역으로, 1980년대 노동쟁의의 중심지가 된다.
  23. ‘데미안’이란 인물은 소설에서 몇개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처음엔 남학생 데미안으로, 프라우 이바(Frau Eva)의 초상화로, 그리고 화자 자신으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이미지는 영적 각성 혹은 자기 각성의 상징이 된다.
  24. 『월간 대화』는 석정남이 등단한 잡지이다.
  25. 여기서 장남수는 공순이라는 모멸적 언사를 사용해 자신을 초라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지칭한다.
  26. 장르에 대한 사회적 분석에 관해 제임슨은 이렇게 썼다. “따라서 장르의 제휴관계나 그 관계로부터의 체계적인 일탈이 제공하는 실마리 덕분에 독자는 개별 텍스트의 구체적 역사로 다시금 돌아가 그 텍스트 구조를 이데올로기로, 사회적으로 상징성을 띤 행위로, 역사적 곤경에 대한 원형적 반응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Frederic Jameson, “Magical Narrative: Romance as Genre,” New Literary History, vol. 7, 1975, 157면)
  27. Elaine Kim, “Men’s Talk,” Elaine Kim & Chungmoo Choi, (eds), Dangerous Women: Gender and Korean Nationalism, London: Routledge 1998, 112면.
  28. 패트리셔 존슨은 19세기 영국사회의 여성성에 관해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 “여기서 여성다움, 우아함, 아름다움은 계급적 변별성과 계급적 속성으로 재규정된다.–오직 귀부인만이 이것들을 소유할 수 있다.”(Patricia Johnson, Hidden Hands: Working Class Women and Victorian Social Problem Fiction, Athens: Ohio University Press 2001, 34면)
  29. 이에 대한 영문번역으로는 Seung-kyung Kim, Class Struggle or Family Struggle: The Lives of Women Factory Workers in South Kore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172면.
  30. Patricia Johnson, 앞의 책 36면.
  31. Joan Scott, Gender and the Politics of Histo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8, 146면.
  32. 노동운동 전반에서는 물론 식민통치하의 한국문학에서 노동계급 여성 형상화의 기반이 되는 문학적 관행에 관한 좀더 상세한 분석으로는 Ruth Barraclough, “The Labour and Literature of Korean Factory Girls,”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미간행 박사논문.
  33. 이 구절은 패트리셔 존슨이 조금 다른 맥락에서 쓴 표현이다. 존슨은 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 나오는 스티븐 블랙풀(Stephen Blackpool)이라는, 육체적으로나 성적으로 아내에게 짓눌려 사는 인물이 노동계급 가정의 가정폭력에 관한 통상적인 이야기들에서 성의 역할이 바뀐 것이라고 서술한다(Patricia Johnson, 앞의 책 149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