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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마종하 馬鍾河
1943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68년 동아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노래하는 바다』 『파 냄새 속에서』 『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 『활주로가 있는 밤』 등이 있음.
겁
비결은 ‘겁’이다.
겁으로 산 것이다.
빌어먹을 눈치보기라니.
1·4후퇴 때 어머니께서
바가지를 쥐여주시며
흙담에 몸을 가리고
소리지르라고 하셨다.
“밥 좀 주세요!”라고.
나는 못하겠다고
울먹였으나, 어머니께선
목소리를 높이라고
얼굴을 떨며 주문하셨다.
그때부터, 뿌리의 겁,
질린 찬밥이 되었는지.
가난은 이제 친숙하다.
죄 없는 마음으로
기름 뺀 힘살만으로
저 널린 허무를 가꾸며,
마른 바가지와도 같이
겁마저 가볍게 꾸린다.
대낮의 한밤
거대한 소나기구름들이
암흑 현상을 일으켰다.
우박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뛰고
구절초가 흰 눈 속에서
보랏빛 얼굴로 떨며 버티는 대낮.
사나이들은 삽과 드라이버,
사다리를 둘러메고 한계령을 오른다.
전신주를 고쳐야 통화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통하고자 하면서
통하지 않았고 단절 끝에 통하였다.
눈 속에 사다리를 밟고 올라선
구조대의 사나이들.
한 사나이는 전깃줄을
한 사나이는 저녁별을
서로 이으려 한다.
전류는 심장으로부터 눈을 밝힌다.
홀로 깨끗한 사물들은 모두 별이다.
그들로 인하여, 마을의 등들은
저마다 불 밝히며
대낮의 한밤을 뒤바꾼다.
꿈의 백야에 다 보이는 사랑.
거대한 어둠속의 별들은,
비어 밝은 등과도 같은
우리 마을의 다 보이는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