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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목숨 건 기록 사냥

정문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한겨레신문사 2004

 

 

박성준 朴晟濬

시사저널 국제담당 기자 snype00@sisapress.com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이라는, 현기증 나는 시간의 기록을 더듬어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 시사주간지에서 밥숟가락을 든 지 올해로 15년째며,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국제뉴스라는 밥그릇을 차고 앉아 올해로 5년째 일해왔으며, 이제야 비로소 내 체질에 딱 맞는 밥그릇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국제뉴스담당’ 기자다.

전선기자 정문태가 토해놓은 16년 기록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먼저 내 밥벌이 행위와 간단히 비교할 필요가 있겠다. 내 밥벌이 노릇은 비유하자면 사금장이와 같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크고 작은 뉴스 중에서 무엇이 가치있고 무엇이 재미있는지를 골라낸 뒤 그럴듯한 물건을 만들어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국제뉴스는 거센 물살과도 같아서 잠시만 방심해도 쓸려내려간다. 이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다. 매일 ‘현장’에 진을 치고 앉아 모래를 퍼담아야 하는 한편, 진정으로 가치있는 사금을 부지런히 가려내야 한다. 이것이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나는 실감한다. 비록 힘에 부치더라도 전문적인 감식안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엉뚱한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기 위해 공부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정문태의 일은 넓은 범주에서는 나와 같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나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인생이고, 그가 좇은 것도 나와 마찬가지로 뉴스였다. 하지만 기자라고 다 기자이고, 뉴스라고 다 뉴스인가. 한걸음만 더 들어가면 ‘그이’(정문태는 자신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그이’라 부른다)의 행동방식과 ‘기자질’의 내용은 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 그이는 집요한 사냥꾼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이의 사냥질은 베트남·캄보디아로 대표되는 이른바 ‘동남아 사냥터’가 서서히 불황기로 접어들 무렵인 1980년대말, 세계 각국의 사냥꾼들 집결지 태국 방콕에 ‘막차를 타고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지난 16년 동안 그이는 동남아에서 중동과 아프리카·유럽 등으로 사냥 반경을 넓히며 ‘목숨 건 사냥’을 위해 쉴새없이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다.

사금장이 노릇과 사냥꾼 노릇 중 어느 것이 더 값어치가 있는가. 명색이 기자라는 자존심 탓에 딱 잘라 말하기는 주저되지만 나는 작업방식이나 내용 면에서 그이의 것이 훨씬 더 우월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우선, 피부색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그이의 휴머니즘이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국제뉴스를 다룬다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에 점점 더 굳게 갇혀버리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몇년간 국제뉴스를 들여다보면서 힘센 나라들이 한반도를 놓고 제멋대로 주무르는 모습을 실컷 구경해온 탓에 요새는 가당치 않게 나라 걱정에 애국심 비슷한 것까지 생겼다. 그러나 민족주의·애국심에 눈멀어질수록, 흔히 휴머니즘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관심은 멀어진다. 그이의 ‘기록’, 또는 16년 전선기자로서 삶의 궤적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그 민족주의나 애국심 또는 어떤 특정 ‘주의’에 대한 균형 잃은 중독증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위험한가를 증언해준다. 생생한 체험으로 이를 고발한 그의 ‘기록’은 이런 면에서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풀려나기 위한 고단위 ‘해독제’이다.

The Quarterly Changbi심지어 그이는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평화’와 ‘비폭력’이라는 말에 대해서조차 깊은 혐오감을 표시한다. 오죽하면 1995년 7월 19일 가택연금 6년 만에 풀려난 아웅산 수치와 마주앉았을 때 ‘기자의 본분’을 잊고 취재원에게 ‘핏대’를 올렸을까. 당시 정문태는 아웅산 수치를 민주주의의 어머니로 여기고 민주화 투쟁을 위해 무기를 든 미얀마 학생들이 국경지대에서 안타깝게 쓰러져가는 장면을 수없이 ‘공유’한 뒤였다. 인터뷰 자리에서 학생들의 무장투쟁에 대해 아웅산 수치가 “난 학생들에게 총 들라고 요구한 적 없다. 그런 건 내 비폭력노선과 어울리지도 않는다”며 매몰찬 반응을 내놓자, “당신 아들이고 딸들이다. 1988년 이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국경에서 죽어갔는지 알고는 있는가”라고 쏘아붙였던 것이다(84면). ‘기록’에서 그이는 단언했다. “평화는 힘센 놈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비폭력은 그놈들이 뱉어낸 거짓말에 쳐준 맞장구였다.”(83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정문태, 그이의 작업과 그 부산물인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대한민국에 국제뉴스담당 기자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게, 국제뉴스의 한복판인 전선을 찾아 죽어라고 쫓아다닌 기자는 대한민국 국적 소유자 가운데 찾아보기 드물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전선에서 한 세월을 보낸 그이의 남다른 담력 때문인가. 일차 이유는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기자의 숙명은 ‘사실’의 전달에 있다. 수많은 사실은 모여서 진실이 되고, 진실은 세상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꾸는 데 이바지한다. 이런 면에서 진실을 축조하기 위한 주춧돌인 사실을 건져올리는 데 있어 취재현장의 안락함이나 열악함의 구분은 부질없다.

중요한 것은 정문태 그이가 ‘사실 왜곡’이나 ‘진실 은폐’가 유달리 심한, 그래서 사실을 찾아내기 매우 힘든 ‘전선’이라는 현장에서 ‘사실의 사수’에 매달려왔다는 것이며, 그것도 지난 16년간 목숨을 걸고 ‘그짓’을 해왔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기자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이의 ‘기록’은 그대로 이같은 사실 확보를 위한 몸부림의 기록이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수행해온 것이다. 그이는 큰 언론사나 방송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그는 다른 기자들에 비해 ‘방패막이’가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작업을 해왔다.

그이가 전쟁터에서 확인한 사실은 무엇인가. 엄연히 목격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자의 생존 몸부림이 극악한 폭력으로 매도되고, 강자의 잔학한 무력행사가 정의를 위한 지난한 노력으로 미화되는 불평등한 현실이다. 지난 2000년 9월에 터진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 취재담을 들어보자. ‘기록’에서 그이는 이때의 일을 자신이 겪었던 ‘가장 비열한 전선’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기네의 무차별 공격행위를 ‘시위진압’이라고 했고, 국제언론은 그 용어를 그대로 받아썼다. 하지만 기자들까지 겨냥하는 이스라엘군의 총탄세례 한복판에서 그이가 두눈으로 마주친 사실은 ‘시위진압’이 아닌 ‘학살’이었으며, 군과 민간 사이의 충돌은 단순폭력사태가 아니라 전쟁이었다(196~209면).

때때로 그가 여과없이 전한 사실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사회적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2003년 그이가 인도네시아의 반다 아체 지역에서 건져올린 한장의 끔찍한 사진이 대표적이다. 사진에는 목이 거의 잘려나간 채로 살해되어 나무 기둥에 묶인 한 사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사진은 나중에 『한겨레 21』에 공개된 뒤 ‘상업주의’와 ‘선정주의’ 논란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처참했다. 그이의 ‘기록’에는 그때 왜 자신이 이 사진을 여과없이 싣자고 고집했는가에 대한 술회도 들어 있다(222면). 반다 아체는 지금 이 순간 또 한번 뉴스의 촛점이 되어 있다. 남아시아 해안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사상 최대의 희생자를 낸 지난해 12월 26일의 쯔나미(津波) 참사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현장이기 때문이다. 들리는 말로 전선기자 정문태, 그이는 또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이는 왜 전선 하나만으로 모자라서 재앙의 현장으로까지 죽음을 쫓아다니는가.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댓가로 나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21면)고 그이는 ‘기록’의 한구석에서 고백한다. 이 대목에까지 이르면 나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뿐만 아니라, 삶의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관철해나가는 한 인간으로서도 그이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이 세상에 ‘내 일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이의 ‘기록’이 국제뉴스로 밥벌이를 하는 기자는 물론, 생활인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고 자극을 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실 ‘전선’은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나 펼쳐져 있다. 고단한 삶에 좌절감을 느끼는 자, 그이가 부닥쳤던 수많은 난관의 ‘기록’에서 용기를 얻을 것이다. 모순에 찬 현실 앞에 절망하는 사람, 그이가 겪었던 숱한 절망에서 위안과 희망을 동시에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