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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장편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등이 있음. silverpaper@chollian.net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1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대로 누운 채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빛을 물끄러미 바라본다든가 베개에 깊숙이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일은 없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에 오래 시선을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잠에서 깨어나면 싸이드테이블 위의 시계가 겨우 여섯시를 가리킨다. 서두르지 않아도 출근 전까지 피트니스클럽에서 새벽 운동을 마치고 커피와 쌜러드를 곁들여 간단한 아침식사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꼭 필요한 일만 하면서 살면 확실히 일과가 규칙적이 된다.
8년 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뒤 한동안은 매일 밤 폭음을 했다. 회사가 한창 몸집을 불려갈 시기여서 밤마다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음날 반드시 제시간에 출근할 만큼 몸도 욕망도 성했었다.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건강관리를 할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술자리가 식상해서라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해지기까지의 절차가 갈수록 귀찮아지는 데 비한다면 거기에서 얻게 되는 신선함이나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서로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앉아서 주고받는 시효 짧은 화제 또한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젊은 여자들이 무조건 예뻐 보이던 때만 해도 욕망과 그것을 소비할 방향성을 갖고 있었던 듯싶다. 그 시기가 지나간 뒤 어린 여자들과 노닥거려야 하는 룸쌀롱 출입이 피곤해지기 시작하더니 소음에 예민해지고 아예 남의 목소리 자체가 싫어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게 느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샤워를 한 뒤 혼자서 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한두 잔 마셨다. 다음날 아침 탁자 위에서 어중간한 색깔의 물을 담고 있는 크리스탈 잔을 발견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술을 따라놓은 뒤 잊어버리고 그냥 잠든 것이다. 벽시계가 10분씩 늦게 가는데도 시간을 맞추기보다는 그만큼 빼가면서 시계를 본 지 몇달째이다.
세상이 그다지 놀랍지 않게 생각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여겨진다. 뉴스도 그렇고 주변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그런 식이다. 회사일 역시 마찬가지여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별로 무리할 일이 없다. 잘되든 안되든 결과 또한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뿐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오면서 만난 적 있는 비슷한 누군가와 얼굴이 겹쳐지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워졌다. 세상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삶의 매뉴얼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집어넣으면 단순해져버린다. 시간도 마찬가지여서 날짜와 빈칸만으로 이루어진 새 플래너 수첩을 펼쳤을 때는 내 앞에 많은 미지의 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몇개의 스케줄을 적어넣으면 그것은 조각조각 나뉘고 그 다음부터는 익히 아는 일상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경륜이라고 말하든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은 이미 결정돼버렸다. 회사든 가정이든 이제 내 인생에 변수는 거의 없다. 파산이나 이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나라는 사람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더이상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을 바에야 모험심과 열정 따위는 필요없게 되며 따라서 현상유지 이상의 에너지가 분비되지 않는다. 어느정도 정점에 이른 사람은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더이상 자신의 속에서 미지와 신비를 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도 없지만 설렘 또한 없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행복한 것도 아니다.
2
공항은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갖가지 동선을 그으며 시간 순으로 교차하는 소음과 움직임 속에 서 있다보면, 마치 지구가 자전하듯 삶이란 정해진 궤도를 따라 굴러갈 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J를 배웅하는 일조차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면 재킷과 포켓이 많은 카메라 가방, 윗주머니에 꽂힌 만년필의 하얀 만년설 심벌까지 J는 평소 사무실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낯빛이 창백했고 튀어나온 눈썹뼈 밑의 두 눈에 유난히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회복기에 있는 환자처럼 입술이 까칠했다.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흡연실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유리벽 뒤에서 몇몇 사내들이 체념한 표정으로 묵묵히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담배를 피운 뒤 J가 재킷 주머니에서 천천히 보딩패스와 여권을 꺼냈다. 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는데 걸음걸이는 끝내 무겁고 어색했다.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공항 이용료를 내고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얼마 안 가 다리가 나타났다. 갓길에 차를 세운 뒤 나는 비상등을 켰다. 자동차들이 빠르게 옆을 지나쳐갔다. 다리 아래로는 바닷물이 교각 주변에 잔무늬를 만들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J의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이거 선배 가져가. 왜? 담배도 끊어버리고 떠나려고. J의 결연한 태도와는 상관없이 담배는 한 개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불을 붙이고 차문을 열고 나가는데 봄바람이 재빨리 연기를 흩으며 손가락 사이를 지나갔다. 그때 하늘 저 멀리로부터 내 머리 위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커다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식인상어처럼 둔중한 은색의 배와 위협적으로 번쩍이는 날개. 초월적 존재의 냉담한 위엄 같은 것조차 느껴졌다.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체불명의 날카로운 광선에라도 쏘인 듯이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은 또 재로 변한 J의 담배를 한순간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흩어버렸다.
점심시간이라서 사무실 안에 빈 의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의 실내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컴퓨터의 모니터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담은 채 의미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간유리 칸막이들을 지나쳐 사장실로 들어갔다.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건 뒤 여러개의 서류파일이 기다리고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신입 편집사원 연수 기안과 국제도서전 홍보물 문건. 그리고 맨 아래의 파일에는 신간의 신문광고 스크랩, 2차 광고 시안, 광고비 조견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검토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터폰을 받고 편집장이 내 방에 들어왔다. 회색 슈트 안에 무채색의 블라우스를 받쳐입은 그녀는 오랜 세월 사무직으로 일해온 사람들 특유의 건조하고 소극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국장님은 잘 떠나셨어요? 응. 가족들 아무도 안 나왔죠? 합의하고 수속 다 끝냈는데 가족이 어딨어. 그럼 연수기간 끝나도 영원히 안 돌아오시는 거 아녜요? 영원히?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잠깐 쉬는 것뿐이야. 휴가도 없이 10년 넘었잖아. 그건 사장님이 더한데, 이럴 땐 오너가 더 안 좋네요. 그렇게 되나?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요, 부서장들 아침회의 때 인사 다 했거든요. 점심 하고 들어오면 사장님께도 인사시켜야 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시죠?
스케줄 표를 확인해보니 회의가 두 건에다 외부 미팅이 있었고 저녁 약속도 잡혀 있었다. 반드시 내가 참석할 필요는 없는 일들이었다. 회사는 이제 경영자의 개인적 역량과 의욕이 아니라 씨스템에 의해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거의 공격적이라 할 만큼 과감하게 회사를 경영했다. 출간 여부를 결정짓는 원고검토에서부터 작가 에이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무는 J에게 일임했다. 출판사 가운데에는 간혹 문화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수단껏 세금을 면제받아 노골적으로 땅투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베스트쎌러를 한 종이라도 내고 나면 그 뒤부터 출판에는 더이상 투자하지 않고 수익성있는 주변 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예산, 이권이 걸린 단체장 자리를 기웃거리느라 정작 책은 관심 밖인 출판사도 이따금 보아왔다. 영세한 업계 형편으로서는 그것도 일종의 생존 방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흐름 안에서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책에 거의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J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면 J는 그것을 질적으로 성장시켰다.
처음 출발할 때 나는 언론사에 소속된 출판사업부의 경력사원에 지나지 않았다. 3년 후에는 편집장이 되었고, 다시 2년 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가 단행본 출판부를 없애려고 할 때 그것을 인수해 연간 매출액 300억인 지금에 이르렀다. 해외출판 에이전시에다 해외 문화프로그램 전문여행사와 출판 컨설팅, 문화투자 파이낸싱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벤처 바람도 한몫했다. 몇몇 문화재단과 관계부처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그러기까지 내게는 언제나 면도날 혹은 시베리아 따위의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야말로 곱슬머리에게 라면, 말더듬이에게는 오토바이 하는 식의 상상력 부족한 작명이 아닐 수 없지만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에는 그만큼 변주의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도 나를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부른다. 물론 K나 M 같은 젊은 날의 친구가 아니라 일을 통해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파일들 밑에 깔려 있던 원고뭉치를 발견한 것은 편집장이 나간 뒤였다. 원고검토는 J와 편집위원들 소관이었으므로 내 책상 위에 소설원고가 놓이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표지 귀퉁이에 J의 필체로, 검토요망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무심코 제목을 읽었다. 1991년의 코스모나츠. 작가의 이름은 낯설었다. 어차피 필명일 것이 분명했다. 코스모나츠는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1991년이 쏘비에뜨 연방의 붕괴를 의미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1시 20분쯤 신입사원들이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방안이 답답하고 공기가 탁해지는 기분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겠지만 각자의 젊음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두서없는 에너지와 욕망 또한 만만찮게 방안을 휘젓고 다녔다.
나는 젊은이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리고 돈도, 능력있는 친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뇌와 근육에 신선한 피가 흐르고 거기에 열정과 시간까지 넉넉하므로 그들 앞에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의 경우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곳이 지금의 이 자리이다. 젊음으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해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는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람들은 자기연민이 많고 따라서 점점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다. 출근하기 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볼 때가 있다. 밤새 베개에 눌린 자국이 두어 시간 뒤까지도 그대로 뺨에 남아 있는 것이다. 처진 눈시울과 입 주위의 미세한 주름에서는 어린 나를 곁에 앉히고 흰머리를 뽑게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통장에 어느정도의 잔액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피부의 탄력이 줄어드는 것도 똑같이 시간의 산물이다. 노안이 찾아온 뒤부터 나는 고급 음식점에서 메뉴판의 잔글씨 읽는 것을 포기하고 짐짓 세련된 태도라는 듯 웨이터를 불러 적당한 음식을 추천받곤 한다. 단골 와인바에 가서도 더이상 새로 수입된 와인의 라벨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시력이 좋았던 시절의 대부분 나는 그런 고급 와인의 라벨은커녕 병을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의 인생은 요철 부분이 조금씩 옮겨지면서 일정한 도형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나에게 있어 젊음은 치기와 가난으로만 기억된다.
신입사원들이 나간 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책상 한켠으로 밀쳐놓았던 ‘1991년의 코스모나츠’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인터폰을 해봤지만 편집장은 자리에 없었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별생각 없이 원고를 끌어당겨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짧은 알람음과 함께 모니터에 ‘메일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메씨지가 뜬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2시 30분경이었다. 읽던 원고를 덮고 편지함을 열었다. 메일 제목이 ‘우리 약속 잊지 않았죠?’였다. 비슷한 제목의 스팸메일을 열었다가 좀처럼 브라우저 창이 사라지지 않아 애를 먹은 기억이 났다. 게다가 처음 보는 아이디였지만 그냥 제목을 클릭했다. 뭔가 먹으러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서두르고 있었다. 메일은 단 세 줄이었다. 오늘이 약속한 날이네요. 리버 쎄느에서 8시에 기다립니다. 은숙. 삭제 버튼을 누른 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창밖에는 부옇게 황사가 일고 있었다. 마치 붉은빛이 도는 회색 필터를 끼운 것 같았다. 입자가 거친 낡은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도시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얼굴을 지나쳐갔다.
분명 어디선가 읽어본 적이 있는 원고 같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편집장 시절에 읽었던 원고라면 J도 모를 리 없을 텐데 퇴짜맞은 원고를 새삼 내 책상에 놓아둘 이유가 없다. 대학 졸업 후 좀처럼 취직이 안돼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하던 무렵이 떠올랐다. 직원이 둘뿐인 선배의 출판사에서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때에 시간이 남아돌다보니 굴러다니는 원고를 꽤나 읽었다. 그러나 십몇년 전에 읽은 원고의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더구나 그 시절의 일이라면 나는 이상할 만큼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삐걱대는 목조건물의 계단을 올라가면 연탄난로와 철제책상 뒤편에 작은 칠판이 걸려 있던 군색한 사무실 풍경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밤새 집까지 걸어갈 작정으로 버스비까지 모두 털어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 모두 불가능한 꿈을 꾸자’고 외치던 시절이었다. 요즘도 가끔 낯모르는 사람이 내게 알은척을 해오면 나는 그 시기에 나를 알았던 사람인가보군 하고 짐작한다. 가장 초라한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니 물론 전혀 반갑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어느정도 기억을 잃어버리는 기술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오류투성이에다 순수함 따위는 없는 존재라고 처음 내게 말해주었던 것이 K였던 것 같다. 늘 진지하고 현학적이었던 K는 약을 삼키며 유서에도 그렇게 썼다. ‘선택적 기억상실’이 일어나서 곧 나를 잊게 될 거야. 그의 말대로 나는 K를 떠올리는 일이 거의 없다. 독일에서 1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M도 마찬가지이다. 그 둘까지 빼고 나면 정말로 기억할 필요가 없는 너절한 시절인 것이다.
입맛이 없었으므로 낙지볶음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그냥 혼자 앉아 있기 편한 파스타 집을 택했다. 식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창가에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 통유리 안의 실내가 환히 비치는 음식점에 오면 구경거리가 되는 기분이 들어 창가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러나 혼자 밥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실내를 들여다보는 일은 의외로 드물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크림쏘스 스캄피를 기다리며 나는 내가 아는 은숙이란 이름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헤아려보았다. 여섯을 넘어가자 그 일에 흥미가 사라졌다. 20년 가까이 받아온 명함만 떠올리더라도 은숙은 흔한 이름이었고 당장 기억나기로 우리 회사 직원 중에도 두 명이 있다. 몇년 전까지 자주 갔던 지하 까페 여주인도 은숙이고 지금 살고 있는 주상복합 빌라를 소개한 부동산업자도 은숙이다. 처음 느낌대로 역시 장난메일이 분명했다. 그러나 종업원이 추천하는 신맛이 강한 콜롬비아 산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서 내 머릿속에 불현듯 새로운 은숙이 떠올랐다. 눈이 크고 웃을 때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나는 약간 창백한 얼굴, 연기 자욱한 줄담배, 그리고 숄더백 안에 가득하던 복사자료.
음악 좋아하세요? 어느날 그녀가 내게 물었다. 글쎄. 근데 왜요?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바랜 겨자색 바탕에 온통 높은음자리표가 어지럽게 그려진 그 티셔츠는 내가 늦잠을 잤을 때만 입고 나오는 옷이었다. 형제 많은 가난한 집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로 가장 늦게 눈을 뜨면 가장 형편없는 옷만 남아 있게 마련이었다.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도 갔었다. 어떻게 그 일을 그처럼 까맣게 잊을 수 있었을까. 3시 45분. 그녀가 말한 약속시간까지는 네 시간쯤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메일을 보내온 은숙이 확실히 그녀라고 단정지을 만한 일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J가 있었다면 내게 뭔가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J와는 이따금 피로를 과장해가면서 아내에게도 보이지 않는 약한 모습 그대로 폭음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기억력도 좋은 편이었다. 나에 관해서라면 나 자신보다 J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고 내 입으로 말하곤 했다. 가령 그것이 나의 초라한 시절에 관한 이야기라 해도 나와 달리 그는 그것을 굳이 잊어버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J는 고도 1만 미터가 넘는 비행기 안에 있다.
형. 공항에서 J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를 대학시절의 호칭으로 불렀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힘들더라. 뭐 말이야? 내 시선이 무심히 그의 얼굴에 가서 멈췄다. J의 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근데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는 거지. 문만 열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몸을 일으킬 마음이 안 생겨. 사람이 그래서 그대로 앉아 당하고 마는 거야. 당하다니, 누구한테? 내 대꾸가 약간 퉁명스럽게 들렸던지 J는 씁쓸하게 웃었다. 형이 왜 말렸는지 알아. 형 말대로, 떠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당장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난 말야. 앉은 채로 끝나버리고 싶지는 않았어. 한번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냐? 아직 그 정도 시간은 남아 있겠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4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포털싸이트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리버 쎄느’를 쳐봤지만 해당 검색어가 없었다. ‘까페 리버 쎄느’를 쳤다. 다섯 개의 검색결과가 떴지만 내가 찾는 장소는 아니었다. ‘리버 씨티’는 선상까페였고 각종 연회 및 해양스포츠 안내라고 써 있었다. ‘리버 쎄느’는 없고 대신 ‘리버 템즈’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빠리와 런던은 거리가 너무 먼 것이었다. ‘쎄느 까페’라고 입력하자 해당어가 한 개 있긴 했는데 강원도 소재였다. 네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건, 절박함은 그만두고 어느정도의 확실함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까페 쎄느는 실제 까페가 아니라 인터넷 까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은숙의 결혼식에 간 것은 나와 K와 그리고 M도 함께였다. 밤낮으로 M의 곁을 떠나지 않는 그의 여자친구도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다함께 극장에 갔고 어두워지자 언제나처럼 술집으로 기어들었던 것 같다. 아마 여느때처럼 안주 없이 값싼 술로 양을 채우고 비틀거리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날은 신부의 친구인만큼 뒤풀이용 봉투를 받아 까페 같은 곳에서 기분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 까페의 이름이 리버 쎄느일 수도 있다. 은숙도 알고 있는 장소라면 그 전에도 간 적이 있는 까페일 것이다. 까페 같은 곳에서 은숙과 단둘이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런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메일의 내용대로라면 나와 은숙은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정말로 약속을 했는지는 그만두고 그런 약속을 할 만한 이유조차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30분 뒤 편집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슈트를 벗어 훨씬 산뜻하게 보였다. 슈트 속에 입었던 블라우스가 반팔 옷이라서 그런지 스커트도 덩달아 짧게 느껴졌다. 그녀는 거래처 직원이 사왔다는 철쭉 화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연초록 잎을 제치고 다투듯이 고개를 빼든 선명한 분홍색 꽃이 화사했다. 어떠세요, 사장실 분위기가 좀 살아나죠? 탁자 위에 화분을 내려놓은 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책상의 모서리를 짚으며 거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찾으셨다면서요? 내가 오후 일정을 모두 편집장에게 일임하자 그녀는 눈썹을 한번 추켜올렸다. 그리고 이 투고작 말야. 작가 연락처 갖고 있어? 아뇨. 국장님이 아무 말씀 없이 가셨어요? 편집장의 눈길이 우연히 책상 위의 메모지에 멈추었다. 리버 쎄느? 혹시 아는 곳이야?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집장이 대꾸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무슨 모텔 이름 아닐까요?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관리부하고 기획팀 회의에는 정말 안 들어가실 거예요? 응. 사장님 요즘 아무래도 의욕상실 같아요. 왜, 내 자리 탐내는 거야? 맞아요, 근무태만이니까 시말서 쓰세요. 아니면 한 일주일 휴가를 다녀오시든지요. 점점 더 이 회사에 내가 필요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러지 말고 저번에 소개해드린 우울증 클리닉에 한번 가보시라니까요. 먼저 제가 초기진단을 해볼까요? 늘 피로하고 몸이 처지는 기분이시죠? 응.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그렇구요? 그런 거 같아. 의사결정이 어렵고? 그건 아닌데. 혹시 자신이 염세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뭐 어제오늘 일인가. 그럼 이건 어때요, 한때 즐거웠던 일에 흥미를 상실했다, 맞는 것 같아요? 글쎄, 예를 들면 어떤 것? 편집장은 아무 대꾸 없이 빙긋 웃음을 짓더니 구두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갔다. 리버 쎄느, 어디였는지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었다.
J가 주고 간 일회용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한동안 술냄새를 풍기며 아침회의에 나타나기 일쑤였던 J는 어디에서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회용 라이터들을 주머니 안에서 줄줄이 꺼내놓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J의 라이터에 새겨진 상호는 ‘리버 쎄느’가 아니라 ‘친구 노래방’이었다.
쏘비에뜨연방은 1991년 12월 24일 지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992년은 내가 첫번째 정식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사의 출판사업부에 입사한 해이다. 그해에 대학을 졸업한 J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우리가 양복을 입고 첫 출근을 하던 날은 늦은 봄이었다. 꽃이 진 자리에 새파랗게 돋기 시작한 잎들은 벌써 녹음으로 우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사가 걷혀 하늘은 쾌청했고 출근시각의 도심은 활기로 넘쳐났다. 회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대리석 건물의 8층에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힘차게 솟아 있는 남산탑이 보였고 내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나는 골목 깊숙이에 자리잡은 2층 목조건물의 어두침침한 사무실에서 철제책상 위에 엎드려 붉은 펜으로 교정을 보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언제나 검은색 비닐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고 신발을 벗는 장소에 가면 발가락을 오므린 채 뒤꿈치 쪽을 흘끔거려야 했다. 술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자리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점심시간 사람이 붐비는 값싼 냉면집에서 누군가 자신의 새 구두를 내 헌 구두와 바꿔신고 간 적이 있었다. 실로 몇년 만에 물이 안 새는 구두의 착용감을 알게 된 나는 며칠 후 즐거운 마음으로 그 냉면집을 다시 찾았다. 얼굴을 알아본 주인이 불쾌한 감정과 함께 보관하고 있던 나의 헌 구두를 꺼내주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부정하고 말았다. K가 말리지 않았다면 내 발에서 구두를 거의 억지로 벗기려 드는 주인과 주먹다짐까지 할 뻔했다. 뚜렷한 목적 없이 헌책방을 돌아다녔고 새벽녘에 낯선 장소에서 잠이 깨기 예사인 시절이었다. 은숙의 결혼식에 간 것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을 것이다.
북적이는 하객들 틈에 끼여 갈비탕을 먹으면서 우리는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네 사람이 앉는 탁자 옆에 또 한 개의 의자를 가져다 붙인 걸 보면 우리 일행은 다섯이었던 모양이다. K와 M, M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K와 M은 모두 후줄근하고 어색하나마 양복차림이었지만 나는 그나마의 복장조차 갖추지 못해 전날과 똑같이 주머니 실밥이 뜯어진 청색 면점퍼를 입고 있었다. 갈비탕은 식어 있었는데도 피로연 음식점 안의 공기는 몹시 더웠다. 높은음자리표가 어지럽게 그려진 티셔츠 윗주머니에 붉은색 플러스펜 잉크가 잔뜩 번져 있었으므로 나는 점퍼를 벗지 못한 채 땀을 비오듯 흘렸다. 또한 그러지 않으면 안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청껏 떠들어댔다.
신랑 신부가 인사를 하러 음식점 안에 들어서는 걸 보고서야 우리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와줘서 고마워. 화사한 핑크색 정장차림의 은숙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큰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우리 중 누군가가 묻자 신랑이 뭐라고 대답했지만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은숙의 옆모습만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의자를 붙여 임시로 만든 자리에 앉아 있던 내 옆자리의 인물이 신랑 신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통수에 가려 은숙의 얼굴은 잠깐씩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다. 그녀는 우리 중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한사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들이 때 꼭 초대하라구. M이 쾌활하게 말했다. 은숙씨, 너무 예뻐요. 나는 언제 드레스 입어보나. M의 여자친구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잔인한 4월에 너라도 잘살아야지. K도 그다운 덕담을 한마디 건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나와 내 옆자리의 인물뿐이었다. 신랑 신부가 다른 탁자로 가자마자 나는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말을 막았다. 너 은숙이 결혼하는 데 무슨 유감 있냐? 한 명이 입을 떼자 다들 한마디씩 핀잔을 주었다. 속으로 좋아했던 거 아냐? 그게 아니고, 은숙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 배신감 느끼고 있는 거지? 진짜로 네가 은숙이하고 그랬다면 정말 의외다. 다시 봐야겠는데? K와 M은 킥킥대기 시작했고 M의 여자친구는 그만하라는 듯 M을 흘겨보았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내가 말했다. 그때 내 옆자리의 인물이 봄의 낮술은 특히 위험하니 해가 질 때까지 우선 극장에 가 있는 게 어떻겠냐고 정중하게 제안했다. 나는 음식점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은 비닐가방을 옆구리에 끼었다.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것은 K였던 것 같다. 식당 문을 여니 얼굴로 햇살이 쏟아져내렸는데 어쩐지 내가 앞장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눈이 부셔서 친구들 쪽으로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환한 거리로 한걸음 내려설 때 약간 민망한 기분이 들었던 것까지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상한 일이다. 지워져버렸던 청춘의 어느 하루가 선명하게 되살아나면서 오히려 현재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3
제5장 코스모나츠의 귀환
보스또끄호의 발사를 앞두고 모두 여섯 번의 실험이 있었지만 성공한 것은 세 번뿐이었다. 첫번째 우주선은 예상궤도를 넘어가서 우주 미아가 되었고 어떤 것은 폭발하거나 불타버렸다. 바로 1년 전에 연료를 채우고 발사를 기다리던 로켓이 폭발해 268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으므로 국영 이따르 따스 통신은 보스또끄호에 탈 유리 가가린의 사망기사를 미리 준비해두었다. 출발하는 날 발사 몇분을 앞두고 우주선 출입구의 밀폐장치에서 고장이 발견되었다. 뚜껑에 있는 32개의 볼트를 일일이 손으로 풀었다가 다시 죄어야 했다. 로켓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한순간 우주선이 급회전하여 하마터면 궤도에서 이탈할 뻔했다. 우주복의 산소공급장치가 고장나기까지 했다.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긴 했지만 당시의 소련 기술로는 지상에 무사히 착륙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유리 가가린은 7천 미터 상공에서 사출의자를 이용해 우주선에서 탈출한 뒤 낙하산을 이용해 착륙했다. 그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국제항공연맹은 우주선에 탑승한 채로 이륙하고 착륙해야만 기록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사람이다. 그것은 우주로부터 귀환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M은 유리 가가린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소련의 실종 우주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미국을 이기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상태의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렸다. 물론 기록 같은 건 남기지 않았다. 성공했다면 공개되었을 테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실종된 코스모나츠의 존재야말로 소련사회의 폭력적인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M은 목소리를 높였다. 가가린이 우주비행에 성공하기 1년 전 이딸리아 무선통신사들이 우주로부터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수신한 적이 있었다. “전세계는 들으라. S.O.S!” “이봐, 소용없어. 우리가 여기 온 건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구하러 오겠어?” 러시아어였다. 소련 당국은 돌아오지 못한 코스모나츠의 신상서류는 물론 단체사진 속의 얼굴까지 에어브러시로 정교하게 지워버렸다. 지구에서는 존재한 적도 없는 그들이지만 그러나 우주에서는 궤도를 따라 영원히 떠도는 우주 쓰레기이다.
K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쏘비에뜨연방이 붕괴된 이후에 우주에서 돌아올 코스모나츠의 패닉상태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유리 로마넨꼬 중위는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326일이나 생활했다. 낮과 밤이 바뀌지 않고 태양이 하루에 두 번 떴다 지는 그곳에서 그는 튜브 식량만을 먹었으며 잠잘 때마다 자기 몸을 묶어야 했다. 로마넨꼬의 긴 유배생활은 인류가 우주에 정착해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1989년에는 일본의 텔레비전 기자가 미르에 착륙해서 2천5백만 달러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우주를 생중계하기에 이르렀다. 달 착륙의 기선은 뺏겼지만 우주정거장 덕분에 소련은 미국을 제압했다. 코스모나츠들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영예로운 조국 쏘비에뜨연방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1991년 이후에 귀환하는 코스모나츠에게는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야말로 우주보다 더한 미지의 두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논쟁으로 시작되었던 그날 밤의 술자리는 취기가 깊어지면서 점점 싸움이 되어갔다.
―우주 쓰레기들을 위해 건배! 야, 위령탑이라도 만들어서 우주로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인류의 야만을 장사지내자구!
―집어쳐! 까마득한 우주에서 돌아와보니 조국이 없어져버렸다, 그때의 카오스를 생각해보라구. 광막한 우주를 개척했거나 말거나, 코스모나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조국의 정치현실이다 이 말이야!
―조국 좋아하네. 폭력성을 위장하려면 영웅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뭐, 인간해방? 그랬으면 저렇게 한순간에 무너지겠냐?
―바로 너같이 나이브한 아나키스트들이 우글거려서 그렇게 된 거다, 알아?
―그래. 나도 너 같은 꼴통들하고 이놈의 땅에서 옥신각신할 생각 없다. 아무 희망 없는 후진국에서 버러지같이 바동거리며 살 줄 알았어? 내일 당장 이 땅 뜰 거야. 영원히 머리도 이쪽으로 안 돌린다!
―변절자 새끼!
―내가 변절자면 너는 교조주의자야!
―한번 해보자는 거냐? 좋아, 붙어봐! 안 그래도 나는 이데올로기 혼란에 빠진 이놈의 세계에 경고장을 던지고 장렬히 자폭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야.
―너 같은 놈들 그 포즈가 신물나서 내가 일찌감치 등 돌린 거다, 알았냐?
―주둥이 닥치고 까라니까!
―그래, 덤벼. 이 새끼야!
K는 술잔을 바닥으로 집어던졌고 거의 동시에 M은 탁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M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던 M의 애인은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K와 M 사이에 억지로 끼여들며 여자에게만 강요되는 순결의식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시도하곤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부터는 M에게 뭔가 호소하는 듯 간헐적으로 꿀쩍거리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은 K와 M이 비틀거리며 상대를 붙잡으려고 허우적대는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난 M의 애인이 나쁜 새끼! 소리와 함께 번개같이 손을 뻗어서 M의 뺨을 갈긴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셋은 어지럽게 술병들이 쓰러져 있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번갈아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소동을 피웠다.
그때쯤 되어서는 나도 몸을 못 가눌 만큼 취해 있었다. 취한 채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볼펜을 꺼내고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원고에서 아무 페이지나 뜯어낸 다음 그 위에 뭔가를 끼적였다. 아무도 내 말 따위는 들어주지 않으므로 스스로에게라도 술주정을 하려고 한 짓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 무렵에는 걸핏하면 눈물이 핑 돌았고 그 기분에 시 비슷한 것을 끼적이는 일이 잦았다. 세상 모든 일이 심각하지 않은 게 없으며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배우거나 깨닫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불현듯 술이 깨보니 소매에 약간의 토사물이 말라붙고 바지 앞쪽이 젖은 채 나는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다. 옆구리에 검은 비닐가방은 끼고 있지 않았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다리 난간에 비틀거리는 몸을 기댔으며 검은 물속에서 흔들리는 불빛의 기둥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뜨거운 뺨을 식히기도 했다.
혹시 나는 취한 그날 은숙에게 편지를 썼을까. 그러고 나서 정말로 부치기라도 했고 그 편지가 가령 15년 뒤 오늘 만나자는 따위의 내용이었다면, 이런 모든 애매함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을까. 우리는 한때나마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것일까. 편지는 간절하고도 유치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끝문장은 자못 비장하여 먼 훗날 차마 기억난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 우주의 고독한 코스모나츠. 우리의 귀환지점 리버 쎄느에서 쓴다. 잘 가라, 내 청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여.
원고가 든 가방을 강물 아래 내던질 때 역시 똑같은 말을 지껄였을까.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1 잘 가라, 내 청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여.
6시 35분에 편집장이 다시 인터폰을 했다. 사장님, 지금 친구랑 통화하다가 우연히 알았는데요. 자기네 회사 근처에 리버 쎄느라는 까페가 있대요. 편집장이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눈앞에 연기 자욱한 어둠침침한 실내가 떠올랐다.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던 선배의 출판사 근처라는 것까지 이미 기억해낸 뒤였던 것이다. 붉은색 체크무늬 등갓과 낙서로 가득한 나무탁자. 샹송 몇곡이 일정한 간격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고 문을 닫을 시각까지 남아 있는 손님은 나와 은숙뿐이었다. 내가 늘 목이 멨던 것은 은숙 때문이었을까.
비닐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내가 출판사의 나무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후배가 썼다는 소설원고를 들고 나를 찾아왔을 때는 K도 그 계단을 올라왔다. 우주비행사 이야기 같은 게 먹힐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K는 사장한테 보이기 전에 내가 먼저 검토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 후배가 바로 J였을지도 모른다. 은숙의 결혼식 때 옆자리에 앉았던 것도 J였을까.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지금쯤 J는 기내식을 먹고 이어폰을 낀 채 잠들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누구이든간에 15년 전 내가 원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처음부터 다시 씌어졌을 것이다. 삶은 지나가버리는 것이라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지나간 이야기는 다시 씌어질 수 있는 것일까.
제6장 잘 가라, 내 청춘
스물일곱살의 소련 중위 유리 가가린은 아침 아홉시쯤 지구를 출발했다. 인류가 우주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동쪽’이라는 뜻의 1인승 비행선 보스또끄 안에서 가가린은 우주복을 통해 산소를 마셨다. 우주공간에 이르자 그는 모태 속의 태아처럼 유영했는데 태어날 준비를 하는 아기처럼 가가린 역시 숨을 죽인 채 팔을 내저었다. 지구로부터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깊은 암흑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가가린은 이미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로부터 이탈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둡고 가벼워서 거의 허무에 가까웠다. 불안하고 고독했다. 그때에 유리 가가린의 눈앞에 빛을 머금은 행성이 나타났다. 검은 허공으로 가득 찬 우주 한가운데 신비롭게 떠 있는 아름다운 별. 가가린은 전율했다. 나는 저 별을 보기 위해서 우주를 뚫고 그렇게 먼 거리를 가로질러왔던 것일까. 마침내 유리 가가린은 자신이 떠나왔으며 그리고 다시 태어나게 될 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961년 4월 12일, 지구는 푸른빛이다.
나는 정확히 일곱시에 퇴근했다. 서류 캐비닛 맨 아래 칸에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서류가방 한 개를 찾아낸 뒤 먼지를 떨어내고 거기에 원고를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여섯 개의 층을 수직으로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이상할 만큼 세상 모든 곳이 정지화면처럼 조용했다. 내 발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구가 푸른 것은 물의 행성이란 뜻이다. 로스앤젤레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J도 팜 트리 사이로 보이는 풀장의 푸른 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리 가가린처럼 J는 자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 멀리로 떠나갔다. 자신의 청춘과 담배는 내게 맡겼다. 자기의 지나간 시간과 완전히 대면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통로에 잠깐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유리 가가린의 세상에서는 종이접기를 하듯 시간을 접어두는 것이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시간을 긴 띠라고 생각할 때 15년 전 그녀의 결혼식에 갔던 날과 오늘 사이에는 기나긴 거리가 가로놓이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 날부터 어제까지의 시간을 접어 어딘가 다른 차원의 블랙홀로 보내버린다면 모든 것은 달라진다. 한 블랙홀을 빠져나온 시간은 다른 블랙홀로 이동할 것이다. 결혼식을 포함하여 15년의 시간은 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고 나는 원고를 버리지 않았다. K는 죽지 않았으며 M도 아직 독일로 떠나지 않았다. 내 편지는 아직 씌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날의 다음날이 바로 오늘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원고가 든 가방을 들고 은숙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강물로 던져버렸던 푸른 별을 다시 건져내 다른 가방에 담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J로부터는 내일 오전이 되어야 도착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고도 1만 미터 상공의 J와 나는 완전히 단절돼 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의 시간과도 단절돼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의 모든 날과도 단절돼 있다. 오늘밤의 시간은 내 인생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외적인 미지의 시간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다. 봄밤이 신비로운 빛으로 거리를 감싼다. 골목 깊숙이 꽃향기가 가득 차 있고 별들은 차갑고도 명료하다.
내 입에서 시가 흘러나올 때마다 내 가슴은 자꾸만 아파온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발밑으로 떨어지며 사랑의 종말을 애도한다. 술에 취해 오줌을 누러 나온 친구들의 입김으로 골목 안은 눅눅하다. 티셔츠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던 높은음자리표가 비틀거리며 끊임없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어느 술집에선가 술잔이 깨지고 여자의 숨죽인 울음소리 너머에서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는 구석에서 붉은 펜으로 띄어쓰기 없는 편지를 쓰고 싸움이 끝난 친구들은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다가 어느덧 함께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있다. 유리 가가린의 아름답고 불안한 청춘도 거기 함께 있다. 1992년 봄밤, 우리의 귀환지점 리버 쎄느에서 쓴다.
--
- 김수영의 「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