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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권여선 權汝宣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19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처녀치마』가 있음. puruntm@empal.com
위험한 산책
1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잠에서 막 깨기 전에 꾼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등뒤에서 누군가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그 남자가 남편인지 그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그녀가 그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남자의 가슴이 닿은 그녀의 등과, 그 남자의 팔에 안긴 그녀의 허리가 뜨거웠다. 그녀의 심장은 뚜껑이 닫힌 채 불에 던져진 놋쇠상자처럼 서서히 달구어지며 팽창하고 있었다.
그 달고 격한 느낌을 다시 한번 맛보기 위해 그녀가 눈을 지그시 감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느릿느릿한 말투였다. 바쁜 척은 몹시도 하는 사람이 말은 느리다고, 그녀는 약간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전데요.”
그인 줄은 발신번호 표시로도 알고 목소리로도 알았다. 그리고 저녁에 만나기로 한 약속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집이에요?”
그가 물었다.
“그럼, 집이지 어디겠어?”
“한선배는 갔구요?”
“응.”
잠시 대화가 끊겼다.
꿈속의 그 남자는 바야흐로 그녀 곁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마지막으로 그 말이 듣고 싶다고 그 남자는 말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 음성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녀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며 약간 높은 톤으로 물었다.
“일찍부터 어쩐 일이야?”
“일찍이라구요? 지금 열두시 다 됐는데요. 전 일어난 지 여섯 시간 됐고요.”
그가 일어난 시간이 새벽 여섯시라면, 그녀의 남편이 목욕탕에서 정성을 다해 머리에 타월을 두르고 있었을 시간쯤이겠다. 사실 그도 그 시간에 일어나 무슨 짓을 했는지 그녀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녀가 아는 건 꿈속의 남자가 그녀를 등뒤에서 뜨겁게 안았다는 것뿐.
“난 일어난 지 육분 됐는데.”
“육분!”
그가 혀를 찼다. 그리고 또 말이 없었다.
남편은 노란 목욕용 타월을 머리에 터번처럼 두르고 보랏빛 스트라이프 셔츠만 입은 채 맨다리로 현관에 서서 그녀를 애처롭게 불러댔다. 그때가 여섯시 반경이었던 걸로 그녀는 기억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증세가 하필 1박2일의 지방 쎄미나 일정을 앞두고 도진 것이었다. 한사코 벽에 달라붙으려는 남편을 달래 제대로 된 양복을 입히고 타이를 매주고 가방과 우산을 들려 내보내는 데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 일로 기진맥진해 잠시 눕는다는 것이 긴 잠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입 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녀는 물을 병째로 들이켰다.
“뭐, 먹어요?”
“물 마셔.”
“제가 지금 여기가 약속장소 근처거든요.”
“벌써?”
약속은 저녁 여섯시였다.
“그렇게 됐어요.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그렇고.”
말은 다시 끊어졌다.
“당신 좀 일찍 나올 수 있어요?”
“글쎄.”
그녀는 산뜻하게 나간다도 아니고 못 간다도 아닌 채 미적거렸다.
“그러지 말고 세시까지 나와요.”
“그러지 뭐.”
어쩔 수 없다는 듯 새침하게 대답한 그녀는 황급히 물었다.
“근데 약속장소가 어디였지?”
전화를 끊고 그녀는 장만한 지 얼마 안되는 새 휴대폰을 꽉 쥔 채 골똘히 앉아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게의 집게발에 물린 작은 조개처럼 그 남자의 품에서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입을 벌려서는 안된다. 그 남자가 떠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입을 벌리는 순간 그녀의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더이상 참기 힘든 흉부 통증에 잠에서 깼다.
베갯잇에 닿은 뺨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처음엔 자신이 울다 깬 줄 알고 말랑한 슬픔의 잔여를 즐기려 했다. 베개의 냄새를 맡아본 후에야 그녀는 꽉 다문 자신의 입에서 진하고 독한 침이 흘렀음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눈물 대신 침을 흘리는 여자라니, 입맛이 썼다. 게다가 악물린 그녀의 양 입귀에서 새어나와 베개를 적신 침은 참으로 역한 냄새를 풍겼다.
휴대폰 화면창은 12:00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난 지 여섯 시간이 됐다고 했고, 지금은 정오였고, 원래 약속은 여섯 시간 후였다. 여섯 시간 단위로 구획된 그의 시간표에 뜻밖의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구멍을 막아야 하는, 네덜란드인지 노르웨이인지 모를 애국소년이 내밀 수 있는 연약한 주먹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베개에 닿았던 오른뺨을 쓸어내렸다. 이제부터 이것이 내가 사랑을 생각하는 하나의 포즈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흉터를 만지듯 오른뺨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일, 살이 모조리 썩고도 껍데기만은 굳게 닫혀 껍데기 양 귀로 부글부글 독을 괴어올리는 조개의 액 같은 이 역한 침자국을 천천히 닦아내는 일, 이것이 바로 내가 내용은 사라졌으되 형식은 의연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포즈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부쩍 기운이 났다.
그녀는 서두른 덕에 삼십 분쯤 일찍 도착했다. 그러나 약속장소 근처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열두시부터 줄곧 자신을 기다려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그토록 바쁜 척하는 그가 왜 자신을 기다리며 혼자 점심을 먹고 서점을 기웃거리며 세 시간을 흘려보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정오 무렵에 받은 전화의 뉘앙스는 꼭 그랬다. 고즈넉이 그녀를 기다리고만 있을 듯한.
곰곰 따져보니 그에게는 열두시 약속과 세시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세시 약속이 펑크가 났고 열두시 약속은 아무리 늦어도 세시쯤에는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약속한 상대가 오기 전에 재빨리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그의 계산에는 조금의 착오도 없었다. 그녀가 삼십 분쯤 일찍 온 것과 앞사람이 삼십 분쯤 늦게 온 게 문제였다. 그의 입장은 공평무사했다. 그녀는 일찍 온 만큼 기다려야 했고 앞사람은 늦게 온 만큼 용건을 단축해야 했다. 모든 일정이 삼십 분쯤 비스듬해질 뻔했지만 그에겐 모든 일정을 바로잡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하긴 비스듬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 하루 일정이었다.
그는 기다란 검정 우산을 들고 세시 십오분에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한 면에 메뉴 하나씩만 적혀 있는 부드러운 갱지로 된 메뉴판을 고서적을 다루듯 조심스레 넘기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마치 그곳으로부터 자신이 걸어들어오지 않은 듯 새삼스레 쨍한 창밖을 내다보고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아침엔 아주 따라붓길래 큼직한 걸로 들고 나왔는데 이거 하루종일 거추장스럽게 생겼네요.”
그는 앉은키에 육박하는 우산을 이리저리 세워보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마 비가 그친 열두시 약속에서도 같은 행동을 했겠지,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그가 조금 권태롭게 느껴졌다.
“집에 갈 땐 괜찮을 거야.”
“왜요? 밤에 비온대요?”
“아니. 그때쯤엔 잃어버리지 않겠니?”
“그런 소리 마세요. 전 꼭 챙길 테니.”
그녀는 뜨거운 대추차를, 그는 차가운 매실차를 시켰다.
“자.”
그가 손을 비볐다.
“이제 뭐 할까요? 뭐 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보러 가기도 귀찮은데 앉아서 책이나 볼까?”
“책을 봐요? 무슨 책을?”
“각자 가방에 든 책. 보다가 재미난 데 나오면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그녀는 성의없어 보이지 않도록 입가의 얇은 막을 살짝 당겨 은은한 미소를 만들었다. 그는 그것도 좋겠지만, 하면서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것도 좋겠지만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마시는 방법도 있죠.”
날씨 한번 요상했다. 새벽녘부터 오전까지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반짝 그치고 멀쩡히 개는가 싶더니 다시 솨 쏟아지면서 천지가 컴컴해지고 천둥까지 우릉우릉 쳤다.
길은 공사중이었다. 좁은 우회로에 몰린 사람들이 우산까지 펼쳐드는 바람에 혼잡이 더했다. 바닥에 얇게 깔린 시멘트와 모래는 빗물에 개어져 질척거렸다. 찻집에서 나온 그들은 인파에 섞일 엄두를 못 내고 건물 차양 밑에 잠시 서 있었다.
오른편에서 우산도 없이 유모차를 밀고 오는 노파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노파도 날씨에 속은 것이다. 빗방울은 굵어지는데 울퉁불퉁한 길과 공사 장애물 때문에 사람들의 무리는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노파가 그들 앞을 지나칠 때 유모차에 탄 아이의 머리에 얹어놓은 몬드리안 풍 도안의 손수건은 이미 푹 젖어 달리 풍으로 늘어져 있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해할 뿐 울고 있지는 않았다. 유모차의 귀여운 장식용 지붕은 굵은 빗줄기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노파는 이를 악물고 비켜요, 비켜,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앞사람인들 비키고 싶지 않아 길을 막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노파도 모르지 않는 듯했다. 빗물이 흘러 번들거리는 노파의 표정에서는, 대상 없는 분노를 간직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자탄과 두려움의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저런 표정을 그의 얼굴에서 본 게 언제였던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 당시 그는 세상으로부터 슬그머니 버림받기 시작하는 시절을 살고 있었다. 원한의 매듭을 혼자 묶고 혼자 푸는 일만 되풀이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노파의 표정이 거울에서 본 자신의 표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날씨가 술을 주주 하네요.”
우산을 펼치려다 말고 그는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식당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뽈찜 어때요?”
“좋아.”
“뽈찜 맛있죠. 안 그래요?”
“맛있지.”
그러나 그는 더 적극적인 동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뽈찜 잘하면 진짜 맛있는데. 대구 머리가 크잖아요? 머리에 먹을 게 아주 많아요. 내장도 맛있고.”
그러나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파를 헤치고 가까스로 길을 횡단했다. 좁은 현관 입구에 우산을 세우고 젖은 신발을 벗고 들어선 식당은 의외로 맞은편에 작은 뒤뜰까지 딸린 아담한 공간이었다.
“식당 예쁘네.”
“잘 들어왔죠?”
“아귀찜도 있고.”
메뉴판을 본 그녀의 말에 그가 기겁을 했다.
“대구 뽈은 아귀하곤 비교가 안되죠.”
“그래?”
“당신도 참. 주부라는 사람이 대구 뽈도 모르고.”
물과 물수건을 날라온 식당 여자가 게으르게 웃으며 물었다.
“뽈찜 드시게요? 그럼 지금 잡아야 하거든요.”
그가 물수건으로 이마의 빗물을 닦으며 물었다.
“아, 지금 잡아요?”
“아침에 들여온 게 점심때 다 나가서 막 새로 한 박스 받았어요.”
“그거 참 잘됐네.”
“두 분이면 중짜 하나?”
“중짜? 어머, 그렇게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식당 여자는 빈 쟁반으로 배를 가리며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타일렀다.
“두 분이 중짜 하나는 드셔야 해요. 우리집이 양이 적은 편은 아닌데 워낙에 재료가 신선하고 맛이 좋으니까.”
“지금 잡는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그의 말에 식당 여자가 거 아는 소리 좀 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듯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렇죠. 지금 막 잡아야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죠.”
“아, 그럼 그사이에 먹을 만한 것 없어요?”
식당 여자는 엉거주춤 탁자 모서리에 앉으며 벽에 걸린 메뉴판을 가리켰다.
“정 그러시면 매운탕 소짜에 찜 소짜 시키시든지요. 매운탕은 금방 되걸랑요.”
“아니, 찜 중짜는 그대로 하고, 그사이에 먹을 써비스 안주나 좀 만들어달라고요. 계란말이 같은 거 있잖아요.”
그의 말에 식당 여자는 웬 써비스에 웬 계란말이냐는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는, 쟁반을 세워짚고 탁자 모서리를 한 손으로 붙잡은 식당 여자의 자세를 연신 흘낏거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자세였다.
“메뉴엔 없지만 주방에 계란은 있을 테니까 계란말이 해줘요. 그럭합시다.”
그가 이로써 모든 논의가 끝났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여자도 아쉬운 듯 쟁반을 옆구리에 끼며 탁자를 살짝 짚고 일어섰다.
“뭐, 알아서 해보죠.”
순간 그녀는 식당 여자의 자세를 알아보았다. 남편이 그토록 자주 취하는 자세를 이렇게 늦게 알아보다니.
강의 말미에 잠시 학생들과 이야기가 길어져 출석부나 강의교재 따위를 탁자에 세워짚은 채 상대를 향해 상체를 살짝 기울인 자세. 대학에 일찍 자리잡은 사람들이 다 그런 포즈에 친숙해지는지는 몰라도, 긴 시간을 드릴 수는 없지만 짧은 짬이나마 당신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듯한 다감하고 우아한 그 기울임의 자세는 남편 몸에 인처럼 깊이 박여 있었다. 남편은 그녀와 대화할 때뿐 아니라 시부모와도, 경비와도, 카쎈터 직원하고도 그런 자세로 대화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자세를 남편이 가끔 취하는 무당개구리의 자세보다 한결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식당 여자의 고집도 대단했다. 죽어도 계란말이 대신 쑥갓과 깻잎을 툭툭 끊어 넣은 야채전을 부쳐 왔다. 밑반찬이 서넛 깔렸다. 특별 손님에게만 준다며 식당 여자가 엄숙히 내놓은 갓김치 맛에 그는 열광했다. 여자도 혀가 제대로 된 손님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환약 한 알을 꺼내 소주 첫잔과 함께 원샷했다.
“술 먹기 전에 약까지 챙겨먹고 당신도 참.”
그가 불만스럽게 코를 벌름거렸다.
“안 취하고 오래 즐겨보겠다는데 비난할 것까지 뭐 있니?”
“아니, 제 말은 비난이 아니라, 당신처럼 이렇게 술 먹는 데 진취적인 자세를 보이는 사람, 요즘 보기 드물다 그 얘깁니다.”
“그게 과연 비아냥이 아니란 말인가?”
그가 쑥갓이 바삭하게 뭉친 전의 끝쪽을 떼어내며 말했다.
“희소성 자체에 대한 지적은 섣불리 비난이나 비아냥이라 보기 어렵죠.”
그녀가 애써 떼어놓은 전 조각을 날름 집어먹자, 그는 허무하게 몇번 허공에 젓가락질을 하더니 어찌할 수 없다는 듯 젓가락을 갓김치 접시로 가져갔다.
“당신 약 먹는 것도 이해가 가는 게 사실 낮술이 참 묘한 거거든요. 전에 저도 낮술 먹고 쎄미나 갔었는데 참 견디기 어렵더라구요. 대단히 졸린 것도 졸린 거지만,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게 도통 무의미하고, 과연 이따위 쎄미나란 걸 해야 하나 싶고, 참 사람들 쓸데없는 소릴 많이 지껄이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그는 이틀 동안 계속되는 지방 쎄미나에 원정간 그녀의 남편이 오죽 지루하겠는가 하는 말은 끝내 내뱉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원한이 제도에 대한 혐오를 거쳐 마침내, 제도에 안착한 그녀의 남편에게 격렬히 꽂히던 시기마저도 이미 그에게서는 지나가버렸다. 원한의 표적은 정신의 추위 속에서만 생겨나는 결빙의 환각이다. 그런데 이제 그 표적도, 그도 다 흐물흐물 녹아버렸다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절망에 입혀진 달콤한 허세, 무력감 탓에 빠르고 커지던 목소리, 가슴 저리도록 절제되어 드러나던 한탄과 회한도 이제 그들 인생 저 너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느낌은 썩 유용하진 않지만 익숙한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처럼 얕은 상실감과 있지도 않았던 상상적 애착감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그녀가 남편의 증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더라면 그의 질투와 원한은 좀더 일찍 철회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로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붉은 산 같은 거대한 뽈찜 무더기가 식탁 한가운데 놓였다. 그가 으흠, 신음소리를 내자 식당 여자가 놓치지 않고 생색을 냈다.
“중짜 시키셨는데 대짜만큼 나온 거예요. 많이 기다리셔서.”
“나 이거 예전에 먹어본 거 같은데.”
그녀가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이렇게 말했을 때 그의 젓가락은 벌써 찜 무더기 속에서 대구 내장의 큰 토막을 찍어 개인접시로 나르고 있었다.
그들은 매운 뽈찜과 찬 소주를 마시며 다음에 만날 시기를 타진했다. 그들의 만남은 항상 다음 만남에 대한 강박으로 주름져 있었다.
“8월초면 휴가철이라 도로 사정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우리가 또 사람 들끓는 걸 무진장 싫어하잖아요?”
그는 취중엔 늘 우리라는 말을 썼다. 때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조차도 그녀는 그의 취한 말 속에서는 언제나 그의 우리에 속했다.
“그럼 어쩌니? 그 인간 그즈음에 중국 간다는 걸.”
“그래요?”
잠시 뒤에 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럼 허를 찔러서 휴가철에 움직여보죠 뭐.”
“이 양반아. 허를 찌르려면 남의 허를 찔러야지 우리 허를 찌르면 어떡하나?”
그녀도 어느덧 우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거기가 우리 허였나요?”
그가 킬킬댔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스빠게띠 면처럼 돌돌 말면서 말했다.
“이번 여름도 꽤 더울 거라던데.”
“그래도 94년 혹서만 할까요. 그해 여름 정말 끔찍했어요.”
“95년 아니었어?”
그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니에요. 94년 정확해요.”
“95년이었던 거 같은데.”
“제가 어째서 94년 여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냐 하면 말이죠. 그해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기 1년 전이었거든요. 94년 그해 여름에 우리 어머니가 꼼짝 못하고 누워계시는 아버지 수발드느라고 얼마나 땀을 흘리셨던지 이번엔 어머니가 병이 났어요. 큰일이 났죠. 제가 갔더니 막 우시더라고요. 당신 기운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아버지 보내드렸으면 좋겠다고. 아, 그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우리 아버지가 다음해 봄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그해가 마지막 여름이었던 거라 제가 딱 기억을 하는 거죠. 94년 맞아요. 제 인생에 진짜 그렇게 더운 여름 없었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당신 꽤 효자였나봐.”
“효자는 무슨.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효자 맞네.”
“효자 아니라니까요.”
“그런 효자가 아버지 돌아가신 해를 잘못 알고 있다니!”
그녀의 고집에 그가 도무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식당 뒤뜰에는 흰빛 보랏빛 도라지꽃이 흐드러졌다. 어느덧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낮술은 은은하고 창밖 진창길은 굽었다.
“가사일은 너무 예술적인 작업이라서 우리같이 열등한 종자인 사내놈들이 결코 해선 안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한선배 지론 아니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 그래. 예술 좋지. 나 원래 그림쟁이였잖아. 그림에 대한 열정 아직도 포기 못하고 있어.”
“지난번에 출판사 갔더니 거기 직원 언니가 한상일 교수님 아시냐고 묻더라고요. 보나마나 밀린 원고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길래 내가 눈치채고 모른다고 했죠. 동문이긴 동문인데 잘 모른다고.”
“그 인간이 미대 지도선(指導線)이었지. 그때 무게 엄청 잡았어. 알고 보면 그 인간, 자기가 바라는 것과 만나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인간인데.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걸 가졌는지 모르는 인간인데. 가여워라, 가여워. 그 인간 그렇게 가여운 인간이라고.”
“그때 대학이 몇개 패밀리로 나뉘어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이너 써클이었잖아요. 그걸 우리만 몰랐죠. 저랑 한선배도 한참 있다 서로 같은 써클인 거 알았어요.”
“그 인간하고는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게 아니라 죽여나가는 것 같아. 날 안 놔주고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 같아. 나 하루하루를 빚을 꺼나가듯이 꺼나가고 있어. 다 끄고 나면 죽는 거겠지.”
“한선배 좌우명이 또 뭐였는지 알아요? 남자를 모욕하는 여자에게는 무시무시한 보복을 안겨줘야 한다.”
“그만해 씨발! 우린 왜 만났다 하면 그 인간 얘기얏!”
2
그녀의 남편은 취한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술기운이 있으니 중간에 깨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녀는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다 말고 남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자디잔 분홍 물방울무늬 잠옷만 아니라면 남편은 아주 멀쩡히 잠들어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궁금했다. 평소에는 그토록 점잔을 빼는 남편이 왜 주기적으로 해괴한 차림새에 집착하는지. 왜 그런 차림으로 우스꽝스런 자해의 장면을 되풀이하는지. 그 정도의 기억은 남편의 일생에서 그다지 치명적인 축에도 속하지 않는데 말이다. 빨리 못 기어올라? 못 기어올라? 이런 놈들을 그냥! 이런 놈들을 그냥! 야단스런 셔츠를 입고 이런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맨다리로 벽을 기어오르려 용을 쓰는 남편은 그야말로 한마리의 거대한 무당개구리 같았다. 어쩌면 그런 무당개구리의 자세는 자해의 포즈라기보다, 남편의 위선적인 기울임의 자세에 꽁꽁 갇혀 있다가 어느 순간 분출하는 해방의 포즈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천천히 오른뺨을 쓸어내렸다. 그와 그녀의 관계를 남편은 알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편이 그들의 만남을 은밀히 사주하고 방조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의 만남이 한시바삐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잠자리를 함께하는 부부이자 한시절을 함께 지내온 동료가 아닌가. 누가 뭐래도 우리는 부부이며 동료인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은 잠시나마 그녀에게 로맨틱한 기쁨을 주었다.
편의점은 아파트단지 뒤편 상가에 있었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반바지 차림의 사내들이 맥주와 마른 김을 먹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는 청년들도 있었다. 편의점 옆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아직도 문을 열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산 후 대여점에 들렀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카운터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빨갛게 무친 음식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먹고 있었다.
“여기 몇시까지 해요?”
사내는 입에 든 것을 우물거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그녀가 비디오테이프 재킷 하나를 꺼내들자 사내가 말했다.
“그거는 1편인데요.”
“1편이구나. 2편은 아직 안 나왔나요?”
“안 나왔죠.”
“언제 나와요?”
“빠르면 8월초고 늦으면 8월말인데, 말이나 돼야 나올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더 말하려 했을 때 젊은 처녀애가 둘둘 말린 꾸러미를 들고 들어와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가 처녀에게 물었다.
“주데?”
“주던데요.”
“뭐래면서 줘?”
“제가 여기서 일하는 걸 아나봐요. 그냥 주던데요.”
그녀는 자정 가까운 이 시간에 처녀애가 어디서 무엇을 그냥 받아온 것인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물며 수상쩍은 종이에 둘둘 말린 꾸러미라니.
그녀는 비디오테이프를 고르는 시늉을 하며 사내와 처녀애를 흘끔거렸다. 처녀애는 카운터에 앉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사내는 빨갛게 무친 음식을 다 먹고 일회용 그릇을 신문지에 말아 쓰레기통에 넣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 위장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녀가 카운터에 비디오테이프 두 개를 올려놓자 처녀애가 묻는 눈짓을 했다.
“재킷은 제자리에 꽂아놓고 와야 하나요?”
그녀의 말에 사내가 입가를 문지르며 대신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녀가 전화번호를 대자 처녀애가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다시 묻는 눈짓을 했다.
“아직 반납 안하신 게 하나 있는데요.”
“그래요?”
“그거 반납하셔야 새로 대여가 되는데.”
“깜빡했나봐요. 집에 가서 찾아볼게요.”
처녀애가 난감한 듯 주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못 찾으면 제가 변제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말했다.
“대여해드려! 단골이신데.”
처녀애는 혀를 날름 내밀더니 테이프의 바코드를 찍은 후 검색기 뒤로 넘겼다.
“판타지 좋아하시나봐요.”
사내가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판타지요?”
“모르고 고르셨어요?”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많이 마르신 거 같아요.”
“네?”
그녀는 사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살 많이 빠지셨다고요.”
“나요?”
“아니에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녀는 이 사내가 자기를 언제 보았길래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이 대여점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오는 시간은 주로 오후나 저녁이었고 그 시간에는 주로 곱상한 중년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가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나 처녀애가 앉아 있기도 했지만 이 사내는 처음이었다. 그녀를 다른 사람과 혼동한 것 같았다.
“이건 언제까지 반납하면 되나요?”
“내일이오.”
그녀는 검색기 너머에서 테이프를 받아 봉지에 넣었다. 대여점 문이 짤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닫히는 순간 그녀는 잠깐, 자신이 이 대여점을 다른 대여점과 혼동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갓진 아파트단지 놀이터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전히 느릿느릿한 말투였다.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네. 한선배는 왔구요?”
“응.”
“자요?”
“응. 나 잠깐 산책 나왔어.”
“이 밤중에 위험하게.”
그녀는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았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둘 다 취했죠 뭐.”
그녀는 그네를 조금 흔들었다.
“일어나 보니까 옷이 엉망이던데.”
“저도 그랬어요. 넘어지고 싸우고 그랬으니까.”
“싸웠어?”
“싸웠다기보다 몸싸움을 좀 했죠.”
“몸싸움?”
“당신 또 그 버릇 도져가지고 어딜 기어오르네 마네 하고 싸웠지 설마 가투했겠어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뜯지 않은 채로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어디 자러는 안 갔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 정신에?”
그가 분개했다.
“코스 다 기억나?”
“코스요? 처음에 뽈찜 먹고, 이차 맥줏집 가고, 삼차로 곱창구이 갔잖아요?”
“길가에서 먹은 집이 곱창집이었어?”
“네.”
“기억나는 듯도 해.”
“그러고 나서 포장마차로 한 차 더 갔는지 말았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나도 그건 기억에 없는데.”
그녀는 짧게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우리만 가지고는 복기가 안돼요. 그렇다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술이 덜 깼는지 그는 우리라고 말했다. 불현듯 우리라는 말이 주는 애틋한 연대감에 그녀는 가슴이 저렸다.
“어제는 웬일이었는지 몰라.”
그녀는 약간의 콧소리를 섞었다.
“그러게요. 당신 술 먹기 전에 약까지 먹고 워밍업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일차에서 소주를 너무 마셨나봐.”
“맞아요.”
“우리, 앞으로 그렇게는 먹지 말까?”
그녀는 우리라는 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래요. 날도 더워지는데 그렇게는 먹지 말도록 하죠.”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선배 중국 가면 연락하기로 했죠?”
“응.”
“잊어먹지 말고요.”
“응.”
“그럼 그때 봐요.”
“응.”
전화를 끊기 전에 그녀가 황급히 물었다.
“참, 그 우산 결국 잃어버렸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 정신에?”
그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휴대폰을 꽉 쥔 채 그네에 앉아 있었다. 이틀의 장정에도 남편은 신통하게 우산을 챙겨왔다. 말만 앞서고 바쁜 척만 했지 우산도 그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에 비하면 무엇이건 잡은 것은 놓지 않는 남편의 강한 악력이 그녀에게는 더 편안했다.
그녀는 한손에 휴대폰을 꽉 쥐고 한손으로는 뜯지 않은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그네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녀는 대여점 사내가 자신과 혼동한 여자가 궁금했고, 처녀애가 그냥 주더라며 받아온 마약처럼 의심스러운 물건 꾸러미가 궁금했고, 사내가 먹던 빨갛게 무친 음식이 궁금했다. 편의점 파라솔 탁자에 부려놓은 왁자지껄한 남자들의 내면과, 그녀가 산책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아파트단지 뒤편 상가에서 심야에 일어나는 일들과, 보아도 읽히지 않는 세상의 표정과, 반납하지 않은 비디오테이프와 얼마 전 잃어버린 휴대폰의 행방이 그녀는 애가 끓게 궁금했다.
휴대폰 화면창이 12:00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네 위에서 흔들리며, 꿈속에서 그녀를 안았던 남자의 얼굴에 파라솔에서 맥주를 먹던 중년 남자들과 컵라면을 먹던 청년들, 대여점 주인 사내의 얼굴과 그녀가 기억하는 모든 남자들의 얼굴을 닥치는 대로 겹쳐보았다. 그녀의 내부에 고여 있던 나쁜 체액이 이미 놋쇠상자처럼 굳어버린 심장의 양 귀에서 부글부글 괴어나오는 것 같았다. 한밤중의 산책은 위험했다.
휴대폰과 새 담뱃갑을 비디오테이프가 담긴 봉지에 넣고 그네에서 일어나면서 그녀는 체념한 듯한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 또 어떤 범람을 막기 위해, 무엇의 균열을 메우는, 연약하고 이타적인 주먹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에 슬픈 미소를 띠며 오른뺨을 천천히 쓸어내리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등뒤에서 강한 근육질의 팔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의 허리를 뜨겁게 휘감았다. 순간 그녀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꿈속 남자의 얼굴에 살이 너덜너덜 붙은 시뻘건 대구 뽈이 탈처럼 씌워지는 환상을 생생히 보았다. 놀랍게도 아귀가 딱 맞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마지막으로 그 말이 듣고 싶다고,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형태만 남은 거대한 생선 주둥이가 명령하는 소리를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꽉 막힌 그녀의 입에서 침이 흘렀고, 등허리가 뜨거워졌다.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과 담뱃갑과 비디오테이프가 든 봉지가 놀이터 모래 위로 소리없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