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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좋든 싫든 이것은 저항운동이다

로버트 피스크 인터뷰

 

 

Robert Fisk 영국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세계적인 중동 전문기자. 1971~75년에 『더 타임즈』(The Times)의 벨패스트 특파원으로, 1976~87년에는 중동 특파원으로 근무했고, 그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디펜던트』에서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권 분쟁의 종군취재로 맹활약하고 있음. 북아일랜드 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란혁명, 이란·이라크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차 걸프전, 보스니아 전쟁, 팔레스타인 봉기,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을 취재했고, 영국 국제사면위원회 언론상(1998, 2000)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언론상을 수상함. 저서로는 『이 나라를 가엾게 여겨라』(Pity the Nation: The Abduction of Lebanon, 1992) 등이 있음.

Amy Goodman 미국의 언론인이자 인권운동가로서 현재 미국의 독립방송 디마크러씨 나우(Democracy Now)의 팀장.

 

 

■ 편집자 주

이 전화인터뷰는 2003년 10월 29일 ‘디마크러씨 나우’에 방영된 핵심이 되는 전반부이며 홈페이지(www.democracynow.org)에서 읽을 수 있다. 로버트 피스크는 에이미 굿먼의 첫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라마단 시작과 때를 맞추어 개시된 적십자사와 이라크 경찰에 대한 일련의 폭탄사건의 의미를 짚어내고,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최근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세가 바그다드 공항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자는 피스크 자신의 『인디펜던트』의 10월 28일자 기사 「이라크의 게릴라들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다」(Iraq’s guerrillas adopt new strategy)를, 후자는 10월 26일자 기사 「목격자: ‘그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Eyewitness: ‘They are getting better’)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피스크의 논지를 좀더 명확히하기 위해 10월 28일자 기사의 핵심부분을 여기 재인용한다.“바그다드에서 지난 이틀간의 폭탄사건이 전하는 메씨지는 단순했다. 그것은 이라크인들에게 미국인들이 이라크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었으며, 어쩌면 좀더 중요한 것은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이라크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인들에게 그들이 미국인들에게 협력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적의 지도자들을 죽여라’는 미국인들의 새로운 전투규칙을 승인한 셈이었다. (…) 미국의 적들 가운데 몇몇은 다른 아랍국들에서 왔을 수도 있으나, 미군의 점령에 대한 군사적 반격의 대부분은 이라크 수니파로부터 나온다. (…) 그들은 알카에다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역사적 관점을 배웠다. 성스러운 달 라마단에 적들을 공격하라. 알제리전쟁과 아프간전쟁에서 배워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교훈을 배워라. 적의 지도부를 죽여라.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의 적이며, 협력자가 아니면 애국자이다. 그것이 어제 바그다드 유혈사태의 메씨지였다.”

 

 

에이미 굿먼 로버트 피스크씨가 바로 지금 우리와 전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런던 『인디펜던트』의 중동특파원이시죠. 로버트, ‘디마크러씨 나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로버트 피스크 안녕하세요, 에이미.

에이미 굿먼 우리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이라크에서는 살상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우리는 한쪽에 관한 얘기만 듣습니다. 미군 남녀병사들이 계속 죽고 있다는 얘기, 적십자에 대한 폭탄공격이라든가 바그다드(Baghdad)와 팔루자(Fallujah)의 경찰서들 폭탄공격 얘기 말입니다. 이라크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계셨으니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로버트 피스크 글쎄요. 아시겠지만, 설명을 하려면 일종의 문화적 논평도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금 전 당신의 뉴스보도를 들었는데 미국 정치가들이 하는 얘기를 인용하시더군요. 이라크 내의 외국인 전투원의 숫자에 대해서 말이에요. 글쎄,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라크에는 적어도 20만명의 외국인 전투원이 있고 그중 14만 6천명이 미군복장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알다시피, 이라크 내의 미국인들은 아침식사로 대추야자를 먹으며 티크리트에서 자란 게 아니지요. 이라크 내 외국인 전투원의 가장 많은 수가, 알카에다가 아무리 세를 결집하려 해도 그 천배는 될 텐데, 서방 군인들입니다. 우리가 그곳을 계속 점령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밖에 외국인 아랍투사들이 있는데 사실 이것을 물어보신 거겠죠. 이 숫자가 얼마가 되고 또 그중 얼마가 실제로 이라크로 들어왔는지 모르나 필시 약간은 있으리라 봅니다. 알카에다의 우군으로서가 아니고 미국의 침략을 목전에 두고 이라크를 수호하라는 사담 후쎄인의 요청에 따라서요. 하지만, 결국 이것은 소위 유언비어라는 겁니다. 게임이죠. 거짓말이에요. 미군의 주둔에 대한 저항, 이라크인 자신들에 대한 맹렬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공격들은 주로 이라크인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폭탄공격들 이후 미국인들은 주장합니다. 아니, 자살폭탄공격자 중 자살하지 않은 이를 하나 붙잡기도 했죠. 시리아 여권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의 여권번호나 국적, 생년월일, 실은 그의 이름조차도 제공된 바가 없어요. 글쎄요, 실재인물일 수도 있겠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항’세력의 대다수는 이라크인들이며, 제 자신이 조사한 바로는, 특히 그렇게나 많은 미국인들이, 미군들이 죽은 팔루자 시 주변을 살펴보면, 이곳 사람들은 본디 이슬람 정치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된 이라크인으로서 사담 후쎄인 치하에서도 허용을 받았었습니다. 사담은 언제 주전자 뚜껑을 열어 끓어넘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허용된 것이 뭐냐면 독실한 신자들의 위원회 혹은 단체라고 불리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었죠. 이들이 친사담파는 아니었고 많은 경우 팔루자 사람들처럼 사담의 앞잡이들에 의해 체포되어 아주 잔인하게 취급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해 논하지만 않는다면 종교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개별적인 단체들을 구성하는 것은 용인되었죠.

정권이 붕괴되고 미국인들이 올해 4월 9일에 바그다드에 입성하자 이 단체들은 미국의 통치에 대항하는 유일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공조하여 이라크의 저항세력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사실 제가 4월 9일에 이에 대해 쓰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이 일에 사담의 무기, 사담의 앞잡이였던 이들, 그리고 상당한 정도로, 미국 점령자들이 야만적으로 군다고 느끼는 대중들이 도움이 되겠죠.

팔루자 근처 부족지도자 가운데 어떤 이는, 실은 내가 몇주 전에 그 마을을 방문해서 그와 점심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만, 내게 말하더군요. “있잖소, 처음에 미국인들이 여기 왔을 때 우리는 소리높여 그들을 환영했소.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주둔을 반대하여 시위를 감행하자 그들이 우리들 중 14명을 쏴죽였소.” 실제로 팔루자에서 14명의 이라크인들이 총맞아 죽었지요. 그는 그런 말을 한 뒤 그것은 부족의 명예가 걸린 문제가 되었다고 덧붙이는 겁니다. 우리는 미국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미국인들이 총으로 반격함에 따라 이제 그것은 저항의 문제가 되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인이 행동하는 방식과 이라크인이 행동하는 방식인데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독실한 이슬람 집단들의 세포적 체계입니다. 이들이 이전 정권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담 치하에서 그 존재가 허용된 바 있고 지금 저항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니, 복수전쟁을 저항전쟁으로 전환시켰다고 해야겠죠. 지금 미국인들을 죽이고 또 동족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이라크인들입니다. 럼즈펠드씨, 월포비츠씨, 부시씨는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외국인 전투원들 타령을 할 수 있겠지요. 대개 이들 전투원들은 이라크 바깥에서 태어난 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그렇죠. 이들은 이라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좋든 싫든 이것은 저항운동입니다.

에이미 굿먼 피스크씨, 당신은 최근 바그다드 공항에서 겪은 일을 간략히 묘사하신 바 있죠. 누가 거기에 있었고, 당신이 떠나려고 할 때 시작된 로켓 공격이며, 거기에 있던 병사들이 무슨 말을 했고, 거기의 주변상황들은 어떤지 등에 대해서요.

로버트 피스크 그랬죠. 글쎄요, 그것은, 당신이 지금 언급한 기사(『인디펜던트』 10월 26일자 기사를 가리킴-옮긴이)에서 내가 말했듯, 월트 디즈니와 베트남을 미치광이처럼 뒤섞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아시겠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그다드 공항–더이상 사담공항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됐죠, 누가 그렇게 부르고 싶겠어요–아무튼 여기에서 운항하는 유일한 국제비행기나 항공은 ‘왕립 요르단’(Royal Jordanian) 항공뿐인데 비교적 작은 중동 항공사입니다. 이 운항에 대체 누가 그들의 보험을 책임져주는지 알 수가 없지요.

어쨌거나 거기에는, 내가 급히 빠져나오려 할 때 말인데요, 비행기편이 있었습니다. 왕립 요르단 항공의 비행기가 두 대 예정되어 있었어요. 하나는 고위인사 전용 소형제트기였고, 다른 하나는 수시로 시간을 변경했고 좌석번호 따위도 없던 에어버스(중단거리용 대형 여객기)였죠. 아무튼 비행기가 출발하기를 몇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박격포탄이 공항에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전부 다섯 발이었죠. 나는 일단의 특수부대원들, 미국인들인데요, 검은색의 단단한 띠에는 무전기, 전화기, 무기 등속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그들과 정말로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그들은 실제로–특수부대들이니까 그런 경향이 있겠지만–적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더군요. 그들이 말하더군요. “나쁘지 않군.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니까.” 바꿔 말하면, 상대방은 공항의 실제 활주로에 더 가깝게 박격포탄이 떨어지도록 조준하고 있다는 거죠. 박격포탄이 하나 떨어지면 커다란 고리 모양의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2,30피트 너비로 퍼지곤 했죠. 그러자 상대방을 로켓으로 공격하려고 아파치 헬리콥터 한대가 떴어요.

특수부대원 하나가 내게 한 말에 따르면, 전에는 공항주위 반경 5마일을 확보하고 있었답니다. 이게 일종의 보호막인 셈인데 미국인들이 성공적으로 점령해 반경 5마일이 되었지만, 공격 때문에 이게 반경 2마일로 줄었답니다. 미국인들은 바그다드와 그 남쪽 및 북쪽의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가며 초목을 모조리 쳐내고 있어요. 야자나무,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 어디는 농부들 땅이고 어디는 국유지죠. 이게 1980년대 초, 제가 지금 전화하고 있는 여기 남부 레바논 지역에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한 짓이죠. 물론 그 목적은 공격수들이 초목을 은폐물로 쓰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하려는 겁니다. 아무튼 당연한 일입니다만 이것만으로도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나무 등에 기대어사는 이라크인들의 엄청난 분노를 자아냈죠.

어쨌거나 공항 주위 반경 5마일이 이제는 2마일로 축소됐는데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이제 8천 피트나 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것은 말이죠, 한 특수부대원의 말에 따르면, 공항에서 이륙하는 어떤 비행기도 사거리 가까이에 둔다는 것을, 달리 말해 빠져나가는 어떤 비행기도 이제는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될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항 주변의 안전반경이 너무나 줄어 비행기에 사격을 가해 명중시키는 걸 막을 도리가 없게 된 거죠.

결국 이륙을 하긴 했습니다. 에어버스는 순항고도로 점점 상승해가는 대신 굉음을 울리고 바람을 가르며 (마치 롤러코스트처럼) 중력가속도를 붙여 몇차례에 걸쳐 솟아오르고 또 올랐어요. 포도주병을 여는 코르크 스크루 측면을 따라 올라가듯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식이었는데 공항이 오른쪽 창문에 나타났다가 왼쪽 창문에 나타나는가 하면 거꾸로 보이기도 하면서 난리더라구요. 그 기사의 끝에 제가 말했지만, 3만5천 피트에서 수평을 유지하자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주스를 드시겠어요, 아니면 적포도주를 드시겠어요 하고 물어봤을 때, 내가 대답했죠. “리타, 내가 뭘 골랐는지 맞혀보세요.”

에이미 굿먼 우리는 지금 로버트 피스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인디펜던트』의 특파원으로 그는 점령과 침공 동안 아주 많은 시간을 이라크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지금 통화하고 있는 곳은 베이루트입니다.

[申鉉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