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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심진경 비평집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문학과지성사 2005
차분한 목소리로 도모하는 복합성의 페미니즘 비평
이정석 李正䄷
문학평론가 rock-2@hanmail.net
심진경(沈眞卿)은 “진짜 ‘여성’ 평론가”(7면)이고 싶어한다. 그건 리타 펠스키(Rita Felski)의 『근대성과 페미니즘』(1998)을 공역하여 여성과 근대적 현실의 복합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여성 섹슈얼리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여성을 화두삼아 한국문학의 산천을 횡단한 비평적 결실을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라는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 첫 비평집에서, 심진경은 페미니즘의 투시경을 통해 이전의 비평이 미처 세심하게 눈여겨보지 못한 문학의 심연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남성작가가 낳은 문학이 왜곡한 여성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거나, 여성작가가 생산한 문학의 공과를 찬찬히 따져보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총 5부로 구성된 책 속 대부분의 글들이 근자의 비평서로는 드물게 주제비평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그만큼 ‘여성’이라는 화두가 비평집을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승화된 결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전체가 완고한 페미니즘의 이데올로기에 무겁게 짓눌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문들은 균형감각을 갖추려는 유연한 이론적 입장에 의해 견인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수행성(performativity)과 담론의 효과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의존하면서도 그녀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데서 잘 나타난다.
계몽주의시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자의 몸을 표준으로 하는 ‘한가지 성/육체 모델’(one sex/flesh model)이 과학의 이름으로 남성우월주의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토머스 라커(Thomas Laqueur)의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녀의 육체조차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그리 자명한 실체가 아니며, 생물학적 성도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 행해지는 담론의 효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이 철저한 부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며, 모든 것이 담론적 실천의 효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난점들을 떠올릴 때, 심진경의 유연성은 빛을 발한다. 그녀는 성을 고정불변의 인간내재적 본능으로 간주하는 본질주의나 성을 사회·문화적 관계망 속에서만 파악하는 구성주의의 허점, 혹은 양자의 모순과 충돌을 적절히 피해나가며 자기 견해를 개진한다. 그녀의 글이 대체로 섹스(sex)와 젠더(gender)와 섹슈얼리티(sexuality)가 이루는 삼각형의 꼭지점을 모두 통과하는 원환적 궤적을 그려나가는 것도 유연한 절충주의와 무관치 않은 현상으로 여겨진다.
비평집의 1부는 소설 속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재현되는 방식들을 짚어본 세 편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단연 눈길을 끄는 평문은 근대 초기 ‘신여성’을 둘러싸고 떠도는 ‘소문’이 소설화되어 사실효과를 발휘하는 과정을 추적한 「문학 속의 소문난 여자들」이다. 이 글에서 그녀는 공적 담론의 장이랄 수 있는 소설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사실인 양 전파하는 소문의 메가폰이자 남성이 여성에 대해 품은 원한감정을 분출하는 배설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감시·통제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억압성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소설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들의 가치를 의문시한다는 점에서, 차분한 어조와 달리 범상치 않은 전복성을 내장하게 된다. 한편 2부는 여성성과 육체를 핵심어로 여성작가의 미학적 특성을 해명하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심진경은 여성성과 몸이 기초한 물질성과 거기에 기입된 이데올로기성을 함께 고려하는 입장에 서서, 여성의 몸을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문학적 입장을 비판하고 여성의 현실적 경험에 기반해 여성해방의 전망을 제시하는 문학을 옹호한다. 1부와 2부가 비평집을 떠받치는 중심기둥이라면, 가부장제를 합리화하는 기제라 해서 초기 페미니즘이 배제하려 했던 모성성을 중심으로 여성소설의 주요한 변화점을 짚어보며 그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3부는 중심을 보좌하는 보조기둥이다. 그리고 ‘환상문학’ ‘생태학’ ‘농담’ 등의 용어가 전경화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4부는 페미니즘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논의의 시야를 좀더 넓은 국면으로 확장하는 비평집의 바깥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친 일별에서도 감지되지만, 심진경의 비평적 발걸음은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하며,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면서도 차분하다. 설령 페미니즘을 정적주의자의 정치학으로 환원한다는 비판이 가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여성을 둘러싼 현실을 세심하게 성찰하며 조용히 페미니즘 비평을 견지해나가는 그녀의 태도에 배어 있는 성실함이 은근한 신뢰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심진경 비평의 미덕이 있는 자리는 뒤집어보면 비평적 약점이 노출되는 경계지대이기도 하다. 때로 차분하고 촘촘한 진술이 다소간 지루할 정도로 정태적이다. 꼼꼼한 텍스트 분석이 페미니즘의 범주 안에서만 수행될 뿐, 이를 다시 거시적인 역사적 지평과 연결지어 그 의미를 되묻는 비평적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어떤 비평적 입장을 취하건,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관계들이 교차하는 역사적 현실의 맥락 속에 자신의 해석을 던져넣고 총체적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총체적인 의미화가 위계와 중심을 지향하는 논리라고 생각한 탓인지 몰라도, 심진경 역시 리타 펠스키가 그러하듯이 애써 그같은 작업을 비켜간다. 이때 문제는 평문이 쌓여가면서 텍스트의 다층적 측면이 열리는 동시에 그것을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의 단면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논의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논지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동심원을 그리듯 논의가 확산되면서 다채로운 깊이를 더해가기 위해서, 또 의미있는 관계망을 도출하기 위해서, 최소한 총체화를 지향하는 의식이나마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빈틈없이 균형잡힌 비평이라기에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복합성의 비평이 되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테면, 미묘한 견해차일 수도 있지만 김훈(金薰) 소설이 “일관되게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남성성을 극대화”(219면)한다고 말할 때, 페미니즘 비평의 문제설정을 위해 남녀의 대립과 위계의 구도 파악에 골몰한 나머지 그 안에 존재하는 내적 균열과 모순을 소홀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그녀도 지적하듯이, 여성이 “주체의 가장자리에서 주체를 동요시키는 매혹적인 존재인 동시에 영원히 삼켜버릴 수도 있는, 즉 주체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로 나타난다”(223면)면, 이는 김훈 소설에서 여성이 배제의 대상이기에 앞서 남성 자신의 일부로서 남성주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그 무엇’인 동시에 견고한 남성주체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파열적 불순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절충주의가 대립적인 입장이 맞부딪치고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관점으로 융합된 변증법적 시각으로까지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처럼 내재적 모순과 균열을 너무 가볍게 처리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는 아직도 남녀의 위계적 젠더구조의 해체와 전복에 집중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지, 그녀 자신에게서 유래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여성이 대문자 문학을 가로질러 수많은 이질적인 소문자 문학들에 가닿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조차 벗어던져야 할지도 모른다”(6면)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그녀의 이 비평집에서 느껴지는 다소간의 허전함은, 앞으로의 충만함을 위한 비워둠이라고 믿어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