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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선인 2005
일급에 이른 북한연구의 결실
박명림 朴明林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mlpark@yonsei.ac.kr
한 사회의 학문발전은 종종 그 사회 자체의 발전을 반영하곤 한다. 반면 학문과 사회는 불균등발전이라는 관계동학을 통해 상호 긴장과 충돌 속에 한 공동체의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서동만(徐東晩)의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에서 평자는 이 두 측면을 함께 발견한다. 이 책이 우리 사회의 학문연구의 깊이를 반영한 저서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한 사회과학자의 비판적 분석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회적 실천이 보여준 바를 덧붙일 때 이는 더욱 사실에 부합한다. 이 대작은 앞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우리 학계의 주목을 끌 것인바, 저자의 연구처럼 ‘사회적 지식’(socialknowledge)―사회로부터 산생되고 사회변화를 위해 기여한다는 의미에서―으로서 사회과학의 본령을 다시 반추하게 하는 최근의 연구도 드물다.
평자는 대폭 보완되어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의 모본이랄 수 있는 1995년 토오꾜오대 대학원 박사논문(「北朝鮮における社會主義體制の成立, 1945~1961」)을 당시 역사문제연구소의 독회에서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 통독한 바 있다. 독회가 진행될수록 평자는 좋은 연구논문을 읽는 기쁨과 함께, 이 글의 저자가 머지않아 북한 및 남북관계 연구의 일급 학자가 되리라는 직감을 굳혀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직감은 세 가지 학문적 근거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이 책의 의미와 특장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방대한 내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추후로 미루고 이 짧은 글에서는 이 책의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짚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첫째는 저자가 이용하는 자료의 폭과 깊이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저자처럼 많은 일차자료에 바탕을 두고 특정 주제의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점에서 북한 내의 연구자조차 저자의 자료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료의 문제와 관련해 강조해야 할 점은 자료의 발굴과 제시는 단순히 ‘사실’의 설명을 위해서 선택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역사와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어 엮고 분석하기 위한 특정한 학문적 ‘문제의식’의 반영이다. 즉 문제를 설정하지 않으면 자료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자료 수준은 곧 연구대상에 대한 문제의식의 깊이와 넓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자는 이종석, 김성보, 신주백, 전현수, 김광운, 김연철 등의 연구를 보며 짧은 시간 내에 국내의 북한연구 수준이 서구를 그것을 뛰어넘으리라 예감했는데 이 책은 그 예감을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두번째는 저자가 연구대상과 적절한 거리두기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연구주제에 대한 개입(commitment)―그것이 애정이든 비판이든 간에―의지가 충만하여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설명에 실패하는 경우를 목도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외재적 비판과 내재적 옹호가 뚜렷이 대비되는 이 뜨거운 연구주제에 대해, 특히 자신이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사회현실 및 북한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물게도 양자의 종합을 통한 극복에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자료 동원의 넓이와 깊이는 물론 그에 대한 비판적 독해의 수준에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저자가 공직에 진출할 당시 받은 ‘친북좌파’라는 매도처럼 고급연구에 대한 우리 언론의 독해능력의 저차성을 드러낸 사례도 드물 테지만, 당시 평자를 두렵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학자의 균형 및 비판의식을 끝내 보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념적 폐쇄성과 완고함이었다.) 저자가 책의 곳곳에서 서술하듯 이는 아마도 소련 및 북한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승 와다 하루끼(和田春樹)의 엄정한 학문방법론으로부터 영향받은 바 크다고 보인다.
세번째는 ‘종합’이라는 측면에서의 한 사회체제에 대한 저자의 식견과 안목이다. 평자는 이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다. 북한의 특정 주제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들이 도달한 수준과 깊이는 이제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저자처럼 해당 시기―이 책의 경우 1945년에서 1961년―연구대상에 대한 정치, 경제, 당, 군사, 농업, 노동문제, 전시체제, 지방통제, 생산체제 등을 포괄적인 동시에 체계적으로 서술한 일급연구는 찾기 어렵다. 이러한 ‘전체에 대한 통찰’은 강조되어야 마땅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균형있는 이해를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이 주제에 대한 저자의 연구시각과 학문적 실천의 방향을 미리 시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국 이후 수년간 저자가 발표한 이 시기에 관한 글들의 폭과 깊이는 이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의 농업집단화에 관한 연구」(1996), 「북한 당–군관계의 역사적 형성, 1946~1961」(1996), 「북한 사회주의에서의 전통과 근대」(1996), 「북한 당–군관계의 역사적 형성: 창군기에서 한국전쟁 직전까지를 중심으로」(1997), 「북한연구에 대한 반성과 과제」(1998), 「1950년대 북한의 정치갈등과 이데올로기 상황」(1998), 「한국전쟁과 북한체제의 변화」(2000), 「한국전쟁 해소와 북한 사회주의의 변화」(2000)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아마도 북한사회 내부의 변화에 대한 면밀한 추적을 통해 1940~50년대 북한의 역동성과 변화가능성, 동학, 소진과정, 궤적을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1950년대 북한사회의 변화도정에 대한 설명은 ‘사실화’와 ‘조감도’ 그리고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보고 있는 듯 탁월하다.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이 열어준 북한연구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리더십은 리더십대로, 또 하부는 하부대로, 각 부문은 부문대로, 생산현장은 현장대로 다양한 수준에서 교직되며 우리의 이해를 제고해준다. 그가 이해하기에 북한은 다섯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사회주의체제로 성립, 구축되었다. ① 느슨한 인민위원회 체제 ② 인민민주주의 국가 ③ 전시체제 ④ 사회주의적 개조 ⑤ 1961년 제4차 당대회를 전후한 시기의 국가사회주의체제 성립.
저자가 1961년 제4차 당대회를―북한체제의 발전 및 변화동학·역동성·다양성의 축소와 소진이라는 측면에서―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랄 수 있는 북한체제의 성격 규명과 관련하여 국가사회주의체제의 최종적 성립 싯점으로 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북한체제의 역사적 근원과 기원의 추적에 대한 학문적·실천적인 결론의 의미를 함께 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의 북한 위기에 대한 짧은 진단과 처방을 결론삼아 제시하고 있다. 즉 국가사회주의체제라는 자기인식의 토대 위에,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국가사회주의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나타났다가 버려진 다양한 변종과 선택지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북한에 대해 이 말이 갖는 무게는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장의 문제설정에서 그리고 결론의 이러한 실천적 측면에서의 문제제기와 대안제시가 더욱 깊고 상세했다면 좋았으리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1945~61년의) 역사연구에서 발견한 수많은 지혜가 (오늘날의) 적절한 대안제시로 연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짧은) 결론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채 갑자기 그쳐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사람의 독자로서 평자는 저자에게 이 뛰어난 연구에 바탕한 실천적 논의와 대안을 우리 사회와 북한에 제시해줄 것을 크게 기대하고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