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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용준 『사람의 과학』, 통나무 1994

산학(産學)과 유학(遊學)

 

 

소광섭 蘇光燮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kssoh@phy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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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과학기술은 물론 교육과 학문까지도 생산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학문만이 지원을 받는 산학(産學)일방으로 온 나라가 치닫고 있는 듯하다.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실학정신의 발로라면 이는 더욱 권장해야 마땅하겠지만, 단지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인 사고의 극단으로만 달리는 것은 아닐까?

과학과 기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무엇인가? 과학은 객관적 진리의 탐구이고, 기술은 실용적인 생산수단이요 경제의 밑받침이라는 소박한 생각만으로 충분한가? 바로 이런 단순한 사고가 산학일방의 세태를 불러온 것은 아닌가? 과학과 기술, 나아가 학문일반과 교육정책은 깊이있는 철학과 문명사적 안목을 가진 지성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과학기술의 내용은 물론, 문명사, 철학 나아가 종교의 관계까지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지성으로 김용준(金容駿)을 꼽는다. 오늘날과 같이 사태가 점점 더 산학으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그의 ‘노니는 학문’〔遊學〕의 정신을 되살펴보고 저서 『사람의 과학』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도올 김용옥(金容沃)이 이 책의 서문이라 할 만한 「나의 큰형, 김용준」에서 “나의 형은 분명히 내가 역사가로서 심판하건대 20세기 한국역사에 있어서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다리를 놓은 최초의 사상가”(50면)라고 평했듯이, 저자는 1960년대 미국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첨단의 과학자이면서 과학과 철학·역사·신학, 그리고 과학기술과 정책을 자신있게 넘나들며 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하이데거(Heidegger)의 기술론을 말하고, 불트만(Bultmann)의 신학에 심취하며, 노장(老莊)의 사상과 셸리(Shelley)의 시를 노래하는 그는 그 폭을 잴 수 없는 광대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폭넓은 지성과 실천적 삶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기술의 의미와 역사적 개괄 그리고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왜 두려운가」에서는 우주론을 짤막하고 정확하면서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글은 전문가들이 쓰면 난해한 용어들의 나열로 어려워지고 아마추어가 쓰면 군데군데 틀린 말을 하고 핵심을 벗어나기 십상인데, 이 글은 물리학자도 아닌 저자가 그 내용을 탁월하게 요약해낸 명문이다.

「다윈의 진화론, 어디까지 왔나」와 「뇌과학이 던지는 새로운 메씨지」는 생물학 분야에서 철학 및 종교와 가장 밀접하게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핵심테마를 다루고 있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소개나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상 및 문화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지성 화이트헤드, 샤르댕(고생물학자), 바버(『과학시대의 종교』의 저자), 스페리(뇌과학자), 자끄 모노(분자생물학자) 등에 관한 짤막하지만 깊이있는 인용을 들을 수 있어 좋다.

「과학, 기술, 과학기술의 차이」 「기술발달의 역사」 「문명화된 문화」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기술의 역사적 고찰과 철학적 조명의 파노라마식 비유를 제시하고 있다. 선사시대나 원시시대의 ‘우연의 기술’(technology of chance)은 우연한 기회에 어쩌다가 발명된 기술로, 예를 들면 불의 발명 같은 것들이다. 다음 단계는 장인(匠人)에 의한 기술로, 대장장이나 석공 등의 기술은 조각가의 재능이나 화가의 예능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과학기술은 17세기의 과학혁명을 기점으로 18세기의 산업혁명, 19세기의 전기기술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20세기 원자핵과 유전자 기술로 이어진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사상적으로 ‘진보’라는 개념을 정착시켰고, 뉴턴의 패러다임에 바탕한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근대적(modern) 세계관을 확산시켰다.

과학기술 발달사의 중요 사건을 그저 나열만 했다면 평범한 교양서적으로 그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다루는 문명사적·사상사적 관점은 저자의 광범위한 지적 편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글에는 문명사가 슈펭글러(O. Spengler), 세계적 베스트쎌러 『아프리카의 창세기』를 쓴 극작가 아드레이(R. Ardrey), 인류의 발상지를 아프리카에서 찾은 생태학자 다트(R. Dart), 고고인류학자 리키(L. Leaky), 인류학자 러브조이(C. O. Lovejoy), 문명비평가 멈포드(L. Mumford), 기술사학자 가세뜨(J. O. y Gasset), 과학철학가 베이컨, 경제학자 케인즈, 『인간등정의 발자취』의 저자 브로노프스키(J. Bronowski), 기술사 교수 화이트(L. White Jr), 듀보(R. Dubus), 하버마스, 하이데거, 슈마허(E. F. Schumacher), 다이슨(F. Dyson) 등이 언급되는데 과학기술을 보는 저자의 눈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짐작케 한다.

과학과 기술의 철학적·역사적 고찰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전지구적 위기에 관한 진단과 경고의 글들로 이어진다. 「다이나모 시대의 비극」 「현대기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경고」 「로마클럽의 재경고, 『첫번째의 지구혁명』」 「왜 지구만이 우주 유일의 생명권일까?」에서 볼 수 있듯이, 흔히 접하는 핵무기,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에 관한 일차원적 설명이 아닌 깊이있고 역사와 철학에 바탕한 논의를 펼쳐 남다른 바가 있다.

현대 과학기술을 그 뿌리부터 이해하면 당연히 과학기술의 정책과 교육에 관한 통찰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발상의 대전환 요구되는 과학기술 정책」 「21세기는 기술주권시대」 「과학기술의 문화적 토착화로 장기적 전망 확보해야」 「한국과학기술 정책의 어제와 오늘」 등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큰 흐름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방향전환에 관한 대석학의 충고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은 저자 자신의 삶과 인생관이 담긴 글들이다. 그는 가치있는 삶,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하여 젊어서 옥고를 치르고, 유신과 전두환정권하에서 해직되어 8년간이나 교단을 떠나 있기도 했는데, 유신시대를 살아가는 깨어 있는 지성으로서 인간 김용준의 바른 삶을 이끌어준 이는 그가 스승으로 모신 함석헌(咸錫憲)이었다. 「함석헌옹에 이끌려 부끄럽지 않은 삶: 나의 삶 나의 생각」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글에서 함석헌과의 깊은 인연과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자유분방하고 호쾌한 도올이 그래도 자기 모습을 낮추고 ‘절제’를 한 글은 이 책의 서문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김용준 선생과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하고 가르침도 받았던 나도 도올의 글을 통해서 그에 대해 더 많이 안 것 같고,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없는 독자라면 도올의 서문과 「한 자연과학도의 반생기」만이라도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잘 절제되고 정련된 지사형 과학자의 모습에서 그 지식의 범위가 광대하고 두루 막힘이 없는 우리시대의 한 지식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