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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진행중인 기억으로서의 햇볕정책
이원섭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 필맥 2003
김창호 金蒼浩
중앙일보 학술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wjsans@joongang.co.kr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엄격한 인과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는 현재 속에 투영돼 현재를 규정한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현재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현재 자신의 존재조건에 따라 과거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에 투영돼 현재화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과거는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가 과거를 현재화한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일 뿐이다. 나아가 이같은 기억방식의 차이는 역사해석 사이의 인식론적 경쟁을 야기하게 되고, 그것이 역사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수많은 논쟁도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로 표현될 수 있다.
이원섭(李元燮)의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햇볕정책에 대한 ‘기억’을 하나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당시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오히려 지금도 동일한 대립이 재현되고 있는만큼 차라리 과거의 기억이라기보다 바로 현재 우리의 일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햇볕정책이 현재에 ‘계승’되고 있고, 그에 비판적인 세력 또한 변한 것이 없는만큼,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은 바로 햇볕정책을 둘러싼 인식론의 현재적 논쟁중에서 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책은 햇볕정책을 변호한다. “곤경에 처한 햇볕정책이 민족사 차원에서 응당 받아야 할 평가와 대우를 받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9면) 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는 머리말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우리사회의 변화를 추동한 가장 강력한 정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햇볕정책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비록 그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시비를 걸어봐야 결국 그 방법에 국한될 뿐 그 이상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방법을 빙자해 결국에는 그 ‘역사적 결과’를 폄훼하려 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성공적이질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거꾸로 그 엄청난 ‘역사적 결과’를 이유로 방법론에서의 논란마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 책은 김대중정부의 5년간의 대북정책을 정리, 기록하고 있다. 취임사에서부터 시작해, 보수적 성향의 강인덕 장관, 서해교전, 금강산관광, 정상회담, 노벨평화상, 부시대통령 당선, 9·11테러, 북·미 핵갈등, 대북송금 의혹과 특검수사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 5년간의 햇볕정책의 흐름을 파노라마로 보는 듯하다. 남북한 내부의 요인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으로 햇볕정책이 좌절(?)을 겪는 과정을 현장중심으로 생생하게 기록(억)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죽은 과거의 기록에 현장감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전적으로 오랜 기자 경력을 가진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순안비행장에 내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과정에 두 사람의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대목은 차라리 소설을 보는 듯 현장감이 넘친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남북관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하나의 사태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망원경 역할을 하고 있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두 정상이 벌이는 설전을 묘사하는 대목은 인간학적이며 심리학적 접근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어 오랜 기자생활이 아니라면 우려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내 대학에서 인공기 게양으로 야기된 논란을 끄집어내 허를 찌른 김위원장,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김대통령의 교수 같은 태도, 주한미군을 둘러싸고 쉽게 다가가는 두 정상의 실용주의적 면모, 연방제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추상적 수준에서 매듭을 지은 두 정상의 정치력, 김위원장의 답방과 서명 주체를 둘러싼 김대통령의 끈질김…… 이 모든 것이 경륜 있는 기자가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대목들이다.
사실 기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특정 입장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건과 사태 중에 구태여 햇볕정책을 선택해 기록하고자 한 것도 햇볕정책에 대한 저자의 애착이 전제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많은 논란대상인 햇볕정책에 대해 ‘기록하는 것’으로 과연 얼마나 의미있게 햇볕정책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우받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가진 여러가지 미덕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햇볕정책이 받아야 할 평가와 대우를 받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 비해 과연 이같은 일지형식의 기록이 얼마나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제목도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이어서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를 변호하자는 것이다. 지금도 햇볕정책을 둘러싼 상반된 입장이 있는만큼 상대의 입장과의 긴장은 불가피하다. 상대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긴장된 과정 없이 당위를 반복한다면 오히려 그 당위가 주는 무게 때문에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자의 무기는 ‘사실의 힘’이다. ‘이론적 설득력’을 힘의 원천으로 삼는 학자가 따라올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사실의 힘’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연대기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진부함 때문에 그 힘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우리 사회에 아직도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존재한다면,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논증에 필요한, 나아가서는 이를 통해 불가피하게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들’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5년간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상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더욱이 저자의 현장감과 배경지식은 단번에 이 책의 끝자락으로 달려가게 할 만큼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성의에 비춰볼 때, 그 흡인력이 이미 햇볕정책에 동의하고 그 영욕을 안타깝게 봐온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면 아쉬운 일이 아닌가. 햇볕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이 지난 5년의 영광을 반추하는 것을 넘어 이 책이 햇볕정책에 더 많은 동의를 이끌어내는 결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에서 필자도 엄두를 낼 수 없는 기대를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