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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형사 · 사법 성찰을 촉구하는 범죄이야기
H. 페핀스키 · P. 제씰로 『범죄에 관한 10가지 신화』, 한울 2003
김성언 金成彦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twinfather@kic.re.kr
해럴드 페핀스키(Harold E. Pepinsky)와 폴 제씰로(Paul Jesilow)의 『범죄에 관한 10가지 신화』(Myths That Cause Crime, 이태원 옮김)는 일반사람들에게는 범죄에 대한 당연시되던 믿음을 파괴해버리게 하고 학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들이 동원하는 사례는 분명 10여년 전에 씌어진 머나먼 미국의 얘기들이지만, 그것은 너무도 정확하게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범죄의 원인이 되는 신화’이다. 범죄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하지만, 형사·사법 기관, 범죄학자, 매스컴, 그리고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 공모하여 만든 인공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페핀스키와 제씰로는 범죄가 왜 발생하는지, 범죄를 행하는 자는 누구인지, 범죄통계는 믿을 수 있는지, 범죄통제를 위해 경찰은 무엇을 하는지, 누구나 공평한 재판을 받고 있는지, 형사·사법 기관은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성공적인지, 교정기관은 범죄자를 선량한 시민으로서 복귀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 등 범죄와 형사정책 전영역의 주요쟁점들을 검토하고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지배적인 담론들을 거짓된 ‘신화’로서 거부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범죄가 있어 형사·사법 기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형사·사법 기관이 오히려 범죄를 생산한다(24면). 범죄가 증가한다면 정치가들과 매스컴은 아무 역할도 못하는 형사·사법 기관들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고 공격할 것이다. 여론도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세가 형사·사법 기관 종사자들에게는 권력확장의 기회로 작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로 범죄문제가 악화되었음을 자인하는 대신, 현재의 인력과 장비로는 급증하는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고 변명한다. 대신 범죄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과 자원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29, 46면). 범죄통계는 형사·사법 기관들이 예산을 확보하는 중요한 간계의 수단이 되어 왔다(53면). 형사·사법 기관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범죄의 공포를 조장하지 않으면 안되며, 신문과 방송은 엽기적인 사건들만을 선택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그러한 공포를 심화시킨다.
저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범죄를 저지르는가?”의 질문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체포되고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편견과 낙인이 가난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든다(136면). 경찰은 가난한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고 감시하기 때문에 그들의 불법행위는 더 쉽게 포착된다. 부유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은밀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대기업이나 의료기관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것은 어렵고 골치아픈 일이다(123면). 그들이 체포된다 하더라도 유능한 변호사 덕택에 감옥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감옥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저자들은 이러한 법집행 기관의 정치적 선택성이 없다면 범죄자의 계층구성상 차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67, 132면).
또한 이들은 미국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만들려는 문화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고 강조한다(178면). “가난한 사람은 악하고 위험하다”는 관념은 지배적인 가치가 되었다(68면). 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위험한 자를 사회에서 추방하는 일이다(34면). 가난한 사람들은 지리적·공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선량한 ‘우리’들과 격리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자기보고조사(self-reports) 결과들은 ‘선량한’ 우리들이 거짓말하고 있음을 폭로한다(27면). 우리와 전혀 다를 게 없는, 그렇지만 사회의 다양한 기회들에서 배제된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분노를 갖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범죄는 그러한 분노의 기호이다.
저자들은 형벌은 범죄행위에 상응해서 부과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범죄행위에 대응하는 형벌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190~91면). 부자들의 불법행위는 포착되지도 처벌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행위의 죄질만큼 처벌받는다는 응보주의 행형(行刑)철학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형벌이 범죄억제와 범죄자 교정을 위해 부과된다는 것도 의심스럽다. 사회 속에서 처우가 개선되면 교정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지역사회 교정프로그램들은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민간부문을 통한 간접통제 혹은 대리통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히려 사회통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인해 통제의 그물망은 더욱더 확대되었다(180, 183면).
범죄문제에 대한 이들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분명하다.범죄문제는 억압적인 국가개입이 축소되고 시민들의 역할이 강화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144, 206면). 이들은 자국의 역사와 중국·스위스·스웨덴과 같은 다른 사회들의 경험으로부터 이 교훈을 이끌어낸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망있는 제3자의 중재로 서로 화해함으로써 범죄발생 이전의 원상태를 회복하려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국가형벌권적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제시된다(146면). 정부가 범죄문제에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평화와 복지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업과 프로그램들에 투자하는 것이다(235면). 따라서 범죄억제정책은 빈곤정책·고용정책 등의 복지정책들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법이 사회통합을 이끌어낸다는 믿음은 ‘신화’일 뿐이다(16면). 사회통합은 사회구성원간의 상호인정과 연대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범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국가의 역할은 사회구성원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으로 축소되어야 한다(211면).
저자들이 범죄해결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은 낭만적인 것처럼 보인다. 아쉽게도 이들의 논의 속에는 이미 상실되어버린 지역공동체의 사회통합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들이 생략되어 있다(146면). 이미 ‘그들’로 낙인찍어 추방해버린 범죄자들을 어떻게 다시 끌어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세상은 무섭고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그리고 범죄에 대한 공포는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여전히 두려움과 삶의 질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사법 전문가들이 범죄자 처벌권한을 독점함으로써 범죄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지역공동체 스스로 그들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힘을 잃고 있다(35면)는 저자들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범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립하고 있는 당사자들 즉 경찰·시민·범죄자 들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범죄문제 해결을 위해 새롭게 요구되는 것은 국가개입의 축소가 아니라 개입방식의 변화임을 저자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