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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촛불시위

 

12월 31일 촛불시위를 다녀와서

 

 

김수진 金秀珍

울산 거주 주부. parksa100@hanmail.net

 

 

2002년 12월 31일 시댁식구들이 모두 우리집에 모였다. 이유인즉슨 한해의 마지막 날을 촛불시위와 함께하려 했기 때문이다. 망년회를 겸한 이 자리는 또한 남편의 노래공연을 듣기 위함이기도 했다. 남편은 가수는 아니지만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공무원 노래패 ‘비상’에서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는 노래패장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시간이 벌써 아홉시 이십분이었다. 나와 큰형님은 춥다고 남자들만 가면 안되냐고 했는데도 남자들은 완고하게 어머니까지 모시고 차에 올라탔다. 시간이 늦었지만 성남동 시내로 가는 길목은 많은 승용차들로 붐볐다. 강변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모두들 성남동 주리원백화점 골목으로 향했다. 약간 쌀쌀한 정도였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누가 알아주겠노, 하면서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모두 촛불 하나씩 들고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백화점 주변에는 여중생 추모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나이 지긋한 부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그리고 중·고등학생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참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 사람들이 나라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1부 행사 때 울산에서 노래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퍼킹 유에스에이」는 정말 박진감도 넘치고 한마디로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노래였다. “미국놈들 통일되면 두고 보자”라는 가사가 들어 있었다. ‘통일 한국’이란 후렴구는 정말 통쾌한 가사였다. 제 목소리 못 내고 있는 우리 정부의 한심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노래가 좀더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다면 우리의 통일도 머잖아 될 것 같기도 한데.

2부에서는 미선·효순양을 추모하는 시낭송이 있었고,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을 연극으로 공연했다. 중학교 여학생으로 보였다. 장갑차 역할을 맡은 한 남자가 무시무시한 장갑차의 힘을 두 팔과 다리로 표현하면서 두 여중생을 죽이는 모습이 너무도 섬뜩했다. 음향효과가 그 섬뜩함을 더해준 것 같았다. 우리 딸은 무섭다고 하면서도 계속 보고 있었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사물패의 공연이 이어졌다. 한 20분간 계속된 꽹과리, 장구, 북 소리는 정말 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신명나는 한판이었다. 흥이 더해갈수록 사람들은 거기에 흠뻑 빠지는 분위기였다. 또한 중고생들이 부르는 「아침이슬」 노래는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가 했던 말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어두운 시절 우리 선배들이 부르던 노래가 여기 지금 사랑하는 청소년들에게도 불려지고 있다. (…)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

거의 열두시가 되어가자 나의 사랑하는 남편도 함께하는 합창이 있었다. 남편은 여승선씨랑 나란히 서서 화음을 넣는 것 같았다. 간간이 저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전교조 노래패 선생님들과 어린 남녀학생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노래는 「그날이 오면」이었다. “그날이 오면 (…)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으로 막을 내렸다. 자발적 반미시위가 일어난 것이 처음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의 이 촛불시위가 젊은날의 한낱 헛된 꿈이 안되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