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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경화 文景和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창착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언 강물에 발을 녹인다』가 있음. poemlettercom@hanmail.net
12월에
채찍 같은 빗줄기가 내리는 밤
젖은 나뭇잎들은
매질에 문드러져 흥건해진 재즈를
노래한다. 사람들도
노예처럼 흥얼거리는가.
시간의 문신에 대해.
나의 영혼은 난데없이 이곳에
끌려왔다네. 나는 달아날 수 없다네.
너는 상처의 지팡이를
두드리는 맹인의 손처럼 시작되는가.
두드려 빛나는 별 하나를 만들고 있는가.
차가운 현실의 마구간에서,
12월이여.
달항아리
임오년(壬午年) 윤오월 광주관요(廣州官窯)
朔
거친 도공의 손이 매만지는데도
물레 위에서, 자꾸만 어려지는
그녀의 살결.
그럴수록 비밀스럽게 그녀 안으로
상감(象嵌)되는 도공의 상처,
미칠 것 같았던 그의 청춘.
가질 수 없으므로 불을 지펴야 하는
滿月
가마 안은 세차게
열기를 빨아들이고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몸에 ‘금’을 긋는다.
도공은 무심히 불꽃의 길이를 올리는데
가마 밖의 이별이란
합방을 위한 진상품이 되는 일.
교태전(交泰殿)의 왕비 얼굴 뒤에서
임금이 그릴 법한 애첩을 비추는 일.
그러나 소박한 의도의 애첩은
얼마나 가여운 이중고 속에 있는가.
朔
그녀는 세상이 아닌,
단 한사람에게 진상(進上)되고 싶었을 것이다.
제 몸의 ‘흠’ 한줄이면 사랑이
지켜질 줄 알았을 것이다.
식어가는 가마 안에서
그녀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이별에 익숙한, 다른 달항아리들은
훨씬 적은 욕심을 부렸다는 걸.
사랑을 믿는 것이 파기(破器)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