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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80년대 후반 이후 경제구조 변화의 의미

 

 

유철규 劉哲奎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주요 저서로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공저), 주요 논문으로 「한국자본주의의 현안과 갇힌 진로」 등이 있음. yoocg@mail.skhu.ac.kr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성립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87년 헌정질서를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고, 또 그 경제구조의 변화는 우리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가? 이것이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87년체제’라는 표현은 최근 정치계나 사회학계에서 자주 사용되지만,헌법체제를 의미하는지, 사회경제적 씨스템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사회이념이나 시대정신 혹은 이를 담고 있는 특정 민주화세대에 공통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현 사회체제를 민주화체제라고 부르는 데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결과로 민주화시대가 열렸고, 현싯점에서도 민주개혁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통해 ‘건국’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던 시기, 잘살아보세의 산업화시대, 그리고 지금의 민주화시대로 우리 현대사의 시대정신을 나누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87년체제라고 부르든 민주화체제라고 부르든, 최근 현재의 우리 사회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정략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느정도는 공통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한 우려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 사회가 반독재투쟁을 통해 형식상의 민주주의는 얻어냈지만, 실질 내용상의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치절차상의 민주주의 핵심을 일컫는다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이다. 실제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경제적 삶이 어느정도 이상의 수준에서 평등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란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재벌과 외자(外資)가 주도하는 독과점 구조의 고착화는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이에 따른 배제와 차별현상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한 주체였던 노동계의 분열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필두로 해서 절대 다수 노동자의 이해를 배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민주화 이후 사회적 갈등이 엄청나게 분출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를 해결한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는 한탄도 민주주의에 대한 또다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창출하고 한반도에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87년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종엽)

 

올해 7월에 개최된 창비·시민행동 공동 심포지엄‘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의 문장이지만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많다. 약간 자의적으로 풀이해보자면, 우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틀이 19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에 속해 있다는 것이고, 이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함께 폭발하듯 터져나오고 있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그것들을 관리하고 처리해갈 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된 한반도를 이끌어가고 탈냉전 이후 무한경쟁의 세계경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좀더 보편적인 사회이념이 부재(不在)하다는 것과, 민주화가 반드시 사회정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석해본다면 87년체제의 극복이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이념, 사회적 과제를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체제를 극복하자는 표현이,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분기점으로 이전과 구별되는 시대적 과제로 ‘민주화와 그것에 부합하는 사회개혁’이 제기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연장선에 있는 2005년 지금 민주화와 사회개혁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과제인지를 다시 묻는 것이라면 그 의미가 크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의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인 ‘국민경제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임기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아래에서 차례로, 시대적·사회적 과제의 변화와 연관지어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경제구조상의 중요한 변화들을 살펴보고,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민주화체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금융자본의 세계화 이념(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린다)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 경제에 파고들게 된 내부적 조건을 점검해볼 것이다. 그리고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양극화·파편화된 경제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1. 1980년대 후반의 경제·제도적 변화

 

정치적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이전 시기와 구별짓는결정적 계기로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투쟁을 설정하는 것에는 어느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나 경제분석의 영역에서 이 시기를 이전과 다른 경제체제를 형성시킨 기점으로 설정하는 데는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경제변수의 시계열 분석이 갖는 성격상 시기구분점으로 통상 산업순환의 공황기 혹은 불황기가 선택되게 마련인데, 1987년을 전후한 시기는 당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렸던 1986~88년의 이른바 ‘3저호황’ 시기에 속한다.1987년은 경기순환에서 통계청 기준에 따른 제4순환기(1985년 9월~1989년 7월, 정점 1988년 1월)의 확장기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기순환상의 공황 혹은 경제위기를 시기구분의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한다면 1987년을 기준으로 삼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1979~80년이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박정희(朴正熙)의 사망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이전 시기의 마감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경기순환 측면에서도 당시의 경제공황은 대단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과제와 갈등 그리고 위기의 근원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 측면에서 관찰되는 1987년 이후의 변화를 경제구조 측면에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또 후자로부터 발생해서 지금까지도 한국경제의 ‘위기구조’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87년을 이전 시기와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사회적 과제가 변화했는가에 촛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연속된 사회발전 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하는 일에는 여러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사회발전의 과제를 포착하려는 목적이 중요할 것이다. 즉 이전 시기를 평가하고 그때 제기되었던 사회적 과제가 여전히 유효한지, 또 새로이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1979~80년을 시기구분의 경계로 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당시의 경제위기와 이를 계기로 촉발된 노동계의 반발에 대해 이전 시기와 동일하게 국가가 우위를 차지하는 ‘노동배제적 국가―재벌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계급관계에서도 70년대의 사회적 과제가 유지되고 온존되었다.1987년을 시기구분의 기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개발독재기 외형적 산업화의 성과를 인정하여 1987년 이전을 산업화시기로 그후를 산업화이후 시기로 보자는 제안이며, 이는 그전을 민주화시기로 그후를 민주화이후 시기로 보는 정치적·사회학적 견해에 조응시키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1987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경제에 일어난 무수한 사건과 변화들 가운데 ‘민주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와 짝이 맞는 변화는 ‘자율화’ 혹은 ‘민간화’였다. 그전의 경제개발과 산업화시기를 움직인 제도적 틀의 핵심이 노동억압적인 정부―산업(재벌) 관계였던만큼, 자율화 혹은 민간화는 정부가 이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리고 재벌이 정부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노동이 정부로부터 풀려나 시장으로 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불완전했다. 노동에 대한 독재적 억압체제가 약화되어 노동운동이 정치적·조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지만,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기업별 노조체제의 유지,제3자 개입금지는 여전히 족쇄로 남았다. 또한 자본의 경우도 정부주도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실효성은 현저히 약화되었지만(그후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김영삼정부의 출범과 함께 폐기된다), 정부의 산업통제의 핵심인 금융규제가 제도적으로 풀린 것은 1996년 OECD 가입 이후였다.

노동조합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되어 87년 이후 민주화체제를 구성하는 한 축이 되었지만, 재벌에 대한 정치적 관리와 규제의 고삐가 풀려 이후 재벌도 민주화체제의 다른 한 축이 되었다. 노무현정부 초기에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尹永寬)의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은 현정권의 핵심에 많은 영향을 준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좌,우 그리고 집중구조를 넘어서’이다.‘좌’는 대기업 노조의 강화된 영향력을 의미하고 ‘우’는 재벌의 집중된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는 곧 ‘민주화체제를 넘어서(〓87년체제를 넘어서)’로도 읽힐 수 있다.물론 현정부가 과제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정당한 방식으로 과제풀이에 도전할 것인가, 또 그것이 성과를 보일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여하튼 87년 민주항쟁의 성과가 시장에서 자본의 권력를 강화하는 결과를 동반한 것에 대해 민주화운동의 한계, 또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화가 정부의 후퇴를 의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 민주화와 시장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둘이 분리될 수 있으려면 정부 역할의 축소가 아니라 정부 기능의 재조직화 길로 가야 했는데, 노동과 자본 공히 정부의 축소를 지향했던 것이다.

경제체제를 구성하는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87년이후 체제의 과제는 과거의 정부―산업(재벌) 관계의 단순 제도에서 벗어나, 정부―노조, 정부―재벌,대기업노조―재벌, 금융―재벌, 정부―금융 관계라는 훨씬 다양한 제도들을 형성하고, 이 제도들이 각각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전체로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경제체제가 되도록 묶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제체제의 재구축 과제는 달성되지 못한 채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이 과제가 실패한 핵심에는 금융제도 구축의 실패가 있으며, 금융제도 구축이 실패한 주된 이유는 재벌문제 때문이다. 재벌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정부가 빠진 상태에서 금융(은행)과 산업(재벌) 간에 안정적인 제도적 관계가 형성될 수 없었다. 시장에서 힘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87년을 지나면서 한국경제에는 이전의 산업화체제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났다.1988년은 산업화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던 제조업 비중이 정점에 달해서 하락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또한 1980년대 후반은 임금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노동자의 소득안정성이 높아지면서 ‘폭발적 대량소비’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것만으로도 내수는 현저히 확장되었고, 저임금에 기초한 국내소비시장 억압이라는 이전 산업화시기의 성격은 해체되었다.

‘폭발적 대량소비’의 주요 대상은 내구소비재로서, 서구적 대중소비사회가 현실로 다가왔다. 독재하에서 산업화시기를 지탱해온 경제적 비전은 아파트, 가전제품, 자동차를 하나의 묶음으로 하는 중산층 가정의 표준적 소비틀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희시대 산업화의 비전 혹은 대중동원 이념인 ‘잘살아보세’가 이런 모습으로 실현된 것이다. 일단 비전이 실현된 것이 각 계급간에 공히 인식되는 순간, 우리 사회는 비전의 공백기로 들어섰다. 민주화체제의 비전은 ‘민주화’이지만 민주화는 가시화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가치의 문제이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적 비전으로 확정되기 어렵다. 어느 사회세력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좀더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사회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민주화체제는 사회적 가치, 미래의 사회상, 사회적 게임의 룰을 둘러싼 계급·계층간 갈등의 체제가 된다. 더구나 우리의 민주화체제는 밑으로부터의 6월 민주항쟁과 위로부터의 6·29선언이라는 상반된 힘의 결합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의 사회적 격변 당시에는 성장과 효율을 최우선의 사회경제적 가치로 삼아 구성되고 작동해온 구(舊)경제체제의 작동원리를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관철될 조건이 충분했다. 왜냐하면 1987년의 민주항쟁은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운동에서 벗어나 전사회적 계층을 포괄하는 운동으로, 협의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체제의 변화를 요구한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높았던 분배와 형평,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가치는 연대임금제·사회복지체제·산업민주화로 승화되어 제도화되지 못하고, 개별적 임금인상의 형태로, 그것도 노동계급의 물적 조건을 노동계 내부에서 분단시키고 이원화시키는 방식의 차별적 임금인상이라는 형태로 왜곡되었다. 사회안전망의 구축이냐 기업별 개인별 임금인상이냐라는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민주화체제의 이후 발전방향이 결정될 수 있었다. 즉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소득불균형을 정당화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1988년 국민연금제의 도입은 그나마 빼놓을 수 없는 성과지만, 그 실체는 민주화체제가 내건 가치에 비해 당장에는 초라했다.

 

 

2. 1997년 경제위기와 민주화체제 내부의 신자유주의 도입 조건

 

1997년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로 한국사회는 경제체제(system)의 전환이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해 12월 3일 경제부총리와 IMF 총재의 협약에서 IMF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내건 구조조정 방안은 사회경제적 이념, 정책이념, 법제도의 변화와 아울러 각 경제주체의 행동방식과 상호관계의 설정을 바꾸는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예상되는 구조조정의 효과가 ‘체제전환’(system transition)에 비견될 정도로 전면적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직 중심의 고용관행, 강하게 억제된 주주권한, 은행을 중심축으로 하여 간접금융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금융씨스템, 국적기업에 의한 산업육성 등을 과거 한국 경제씨스템의 외형이라고 한다면,IMF가 요구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주주권의 급진적인 강화, 주식시장을 축으로 하는 직접금융 씨스템으로의 전환, 산업과 금융 소유구조의 개방과 외자의 적극 도입 등은 87년 민주화체제 전반에 걸쳐 온존되었던 과거 경제씨스템을 거의 완전히 해체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환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더 치열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초기에는 학술적 시각과 이론의 차이,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예측과 전망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계급간·계층간 구조조정 비용과 혜택의 불일치가 인식되고 이들간의 엇갈린 이해관계가 점점 분명히 드러남으로써 현실의 문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과 저항이 강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놀랍도록 빠르게 신자유주의 이념이 우리 사회에 내재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내부에서 신자유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세력은 재벌이다. 기존체제의 최대 기득권자가 기존체제의 개혁을 앞장서 요구하는 형상인 것이다. 이를 민주화체제의 성격과 관련시켜 이해하기 위해서는 97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위기 직전 일정기간 지속되었던 계층·계급 구조의 교착상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체제에서는 산업화체제에 있었던 국가주도의 사전적·사후적 투자조정이라는 안정화 요소가 해체되었으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체제의 안정화 및 조정장치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 직전 정책의사결정기구가 사실상 전면적으로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국가에 의해 육성되던 독점재벌과 노동세력이 동시에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했고, 이 두 세력은 어느 쪽도 새로운 체제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것이다.

독점재벌과 노동대중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달랐는가를 검토해보는 것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특수성을 찾아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산업화체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노동대중은 산업화시기에 뒤로 미루어졌던 민주주의와 실질적 분배를 요구했고, 산업화의 성과 때문에 독점재벌은 이에 대응할 만한 논리를 갖지 못했다. 국가권력도 구독재권력의 연장선에 있는 한 이를 억압할 논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 결과로 활성화된 노동운동은 1986~89년간 연평균 15~20%를 넘어서는 실질임금률의 급상승을 쟁취했다. 3, 4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실질임금의 2배 상승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독점자본은 기꺼이 새로운 이데올로기, 즉 신자유주의의 ‘창조적 수입’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대응은 민간정부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경제개발의 성과로 인해 노동계급에 대한 정치적 대응능력이 약화된 국가를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전의 뒷면이지만 탄생의 원죄로 인해 국가와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했던 사적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과 부채의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독점재벌에 있어서 미국식 사적 소유권의 확립은,그 자체의 순수한 의미가 아니라 조세와 강제저축에 의해 육성된 사적 대기업의 출생에 대한 대중의 불온한 기억을 지우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구체제의 해체가 시작된 80년대 후반 이래 모든 제도개편의 밑바닥에 깔린 문제는 바로 이 재벌의 사적 소유권의 범위와 근거에 관한 문제였다.독점재벌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축적률을 몇퍼센트 더 올리는 것보다는 자산에 대한 소유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훨씬 더 중요했을 수 있다.

축적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화체제에서 국가의 후퇴는 또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바로 노동을 규율해왔던 핵심기제가 상실된 것이다. 구체제의 노동규율은 정치적 권력에 의해 지탱되어왔기 때문이다. 국가의 표면적 후퇴를 통해 지배계급의 정치적 부담을 완화하고, 역사로부터 단절된 사적 소유권을 확립하면서, 동시에 실업과 불안정 고용을 통해 노동규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독점재벌과 노동대중의 상이한 지향과 이해관계는 1996년 노동법 파동을 중심으로 정면 충돌했고, 그 결과는 지배연합의 패배로 나타났는데, 뒤이어서 지배연합의 해체와 정치적 의사결정의 일시적 마비가 일어났다. 노동을 배제한 채 정·재계가 야합하듯이 밀어붙인 노동법은 즉각 격렬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쳐 법안을 도로 물리는 웃지 못할 사태를 초래했던 것이다. 민주화체제의 시대정신과 사회경제적 구조, 사회세력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지배블록의 참담한 패배였다. 노동계와 재계 어느 쪽도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할 능력은 없었어도 진행되는 일을 막을 수는 있는 역관계에 있었다. 이것이 위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지배블록의 분열과 결과적으로 정책적 무력함을 초래한 사회적 교착상태였다.

이렇게 본다면 씨스템의 총체적 부정을 수반한 1997년 경제위기는 산업화체제에서는 뒤로 미루어놓았고,민주화체제에 들어서는 형식만 갖추어놓았던 실질적 민주주의와 성장과실의 공평분배 요구에 대해 여전히 배제의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던 자본의 계급적 배신에 기인한 것이다. 독점재벌은 정치적 제약 때문에 국가를 통해 계급적 이익을 관철하기 곤란해지자 국가 자체의 해체와 후퇴를 도모한 것이고, 경제위기는 그 해체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체제 자체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노동대중의 이해는 국가의 해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치민주화를 달성하고 이에 근거한 비시장적 권력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관철시키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의 주체였던 노동대중의 입장에서는 사적 소유권의 범위를 사회적 책임의 범위 내로 제한하면서,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민주화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3. 민주화체제에 조응하는 경제체제의 재구축 과제

 

87년체제에 신자유주의 이념과 구조조정이 조응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초래하는 제도간 마찰(부정합성)은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초인 국민경제를 파편화함으로써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고 침식시키고 있다.

OECD 가입을 위한 제도정비와 1997년경제위기 구조조정과정에서 배제되었던 것은 노동계급과 민중의 삶이다. 위기관리를 위해 노동은 자본에 협조했다. 또 국민은 공적 자금의 형태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사적 자본에 공여했다. 그러나 그 모든 혜택은 내외 자본의 사적인 수익으로 바뀌고 있다. 사적 자본의 비용을 사회 전체가 부담해주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체제의 기준에서 보면 노동대중의 보상 없는 희생을 댓가로 자본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는 구조조정은 민주화체제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켰다.

구조조정의 이념과 실행정책을 주도한 것은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90년대 중반까지 한미금융협의회나 OECD 가입협상 등을 통해 한국의 독점재벌과 국가기구 그리고 국제자본 간 합의의 형태로 마련된 경제개방안과 성격상 동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순전히 가상이지만 IMF 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경제개혁안이 원안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아마도 본질적으로 현재와 동일한 제도개혁과 구조조정이 취해졌을 것이다.IMF 이전의 개혁안과 이후의 개혁안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96년말부터 97년초에 걸친 노동법개정 파동에서 드러나듯이 실행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과 국제자본의 몫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대자본과 재벌의 입지는 강화되고 노동계급의 이익은 결정적으로 침해되는 과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취업의 질은 유례없이 악화되었으며, 국민경제의 잉여는 노동소득에서 자산소득으로 이전되었다.

민주화체제를 잠재적으로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우선 경제개발기에 국민의 호주머닛돈과 국가를 담보로 한 외채를 기반으로 성장한 독점자본가의 오랜 소원, 즉 부(富)의 정당화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더이상 부는 매판의 댓가나 정경유착의 결과가 아니며, 이 땅에 착취는 없다. 이제 고용자는 구직자에게 개별계약을 통해 자기 몸값을 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므로, 고용계약은 불평등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게 되었다. 빈곤과 실업은 당사자의 무능과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한국민중의 역사적 경험 속에 명확하게 드러났던 부의 기원, 그것과 관련된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지배계급의 부패와 유착을 청산하지 않은 채,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현실과 역사를 거짓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처방은 기껏해야 적대적인 국제환경에 개별 국민경제가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화체제의 가치를 버리고 ‘자본의 독재’에 투항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두고 87년 민주화체제의 한계를 선언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체제의 가치를 옹호하고 그것을 통일된 한반도를 이끌어가고 무한경쟁의 세계경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좀더 보편적인 사회이념으로 발전시켜서 이에 조응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해갈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전자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므로 선택할 수 없다. 후자를 위해서는 국내 계급간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계급타협의 조건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외부 금융자본과 재벌의 결합이 진행되는 동안은 결코 계급타협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기 어렵다. 일단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산업재벌 간에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국면이 발생해야 한다. 이 국면은 정부정책과 규제에 의해 어느정도는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어렵다. 사회적 타협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국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역할이 함께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차원의 자본주의 체제를 적절히 관리하고, 그것을 민주주의와 결합함으로써 한층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이다.

한편 국제 금융자본의 지배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은 국내 독점자본에도 한가지 중요한 딜레마를 제기한다. 국민경제의 건설과 세계경제에서의 지위 상승이라는 표어가 담당한 이념적 역할을 폐기하고, 국가의 공권력과 공적인 이데올로기에 기초해서 유지된 노동규율 방식을 버리고, 이것들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동원과 노동규율의 이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노동자의 창의와 자기계발과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주인의식을 필요로 하는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실업과 고용불안이라는 시장의 채찍만으로는 자본과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동자의 헌신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 만약 노동자의 배제를 지속하고 실업의 위협을 통해서 국민을 자본의 이해에 종사시키려 한다면, 이미 스스로 폐기한 낡은 국민경제의 이념을 기업의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바꿔, 자본간 경쟁전의 논리에 계급간 갈등과 모순을 복속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 국내 독점자본과 다국적 자본의 공통이익이 자리잡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안을 고민하는 일은 민중의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벌문제는 그 형성의 역사적 과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부담과 세금에 의존해서 형성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어떤 해결책도 민주화체제와 조응할 수 없고 체제불안정을 해소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가능하게 할 물질적인 조건, 즉 소득재분배와 투자결정의 민주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진정한 구조조정과 개혁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화체제를 극복하자는 주장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이념, 사회적 과제를 모색하자는 제안이라면 필자도 공감한다. 그러나 동시에 약간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민주화체제의 한계를 논하는 것이 정치적 극우의 입장에서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모재벌의 위헌소송을 계기로 약간은 논란이 되었듯이 1987년 헌법의 경제조항들은 많은 부분에서 시장근본주의에 입각한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자본의 독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신자유주의 이념의 주창자가 헌법개정에 쉽게 동의할 유인이 있다.

새로운 비전의 제시로 1987년 헌정질서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헌법조항에 반영된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확대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헌정질서의 극복을 헌법개정으로 두루뭉술하게 엮고자 하면 그것은 자본독재의 길을 명시적으로 열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여러 방식으로 제기되는 민주화체제의 극복론 가운데, 경제민주화의 가치를 핵심으로 유지한 구상만이 미래지향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은 민주주의와 더불어 나아갈 때만 가능했다. 자본주의의 효율성만을 추구하고 무한경쟁과 이윤추구를 위해 제반 사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희생한 경우는 전쟁이나 자기파괴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민주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적 확장과정을, 억압과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서구나 일본의 대외진출 과정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희망의 고리가 될 자격이 있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