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쟁점토론 │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묻는다

 

민중운동과 여성운동

 

 

손낙구 孫洛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선전실장. 조선노동조합협의회 교육선전국장,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교육선전실장 역임. snk313@empal.com

 

최상림 崔相林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부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역임. 공저로 『깨어 있는 여성, 당당한 노동자』가 있음. sangrim@kwwnet.org

 

 

발제 1: 손낙구

 

1. 현실의 여성운동 흐름도 상당히 다양할 뿐 아니라, 여연(한국여성단체연합)과 같은 연합단체와 회원조직인 부문단체의 구실도 서로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성운동이 상대적으로 민중적인 의제들에 대해 둔감하고 중산층 중심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싸잡아서 단정하긴 조심스럽다. 또 민중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도 성장 발전단계에서 불가피한 한계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호주제 폐지, 성차별·성희롱·성매매 근절, 보육법 제정 등의 과제는 일반 여성운동의 과제일 뿐 아니라 기층여성운동에도 매우 긴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의 거리가 그전에 비해 멀어진 것만은 사실이며, 어느새 여성운동은 민중운동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시민운동의 한 영역으로 분류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90년대를 거치면서 군부독재 종식에 모두가 힘쓰던 시대를 지나 민주화가 진전되고 사회의제도 다양해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도 성장했고 주력하는 과제도 일반여성을 상대로 한 법·제도 개선을 힘있게 추진하는 등 다양해졌지만, 상대적으로 노동자·농민 등 민중진영의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력은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활동 영역에서는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의 거리를 좀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상층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제도정치권에 진출한 모습은, 여성들의 권리확장을 위한 제도개선 활동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정책을 펴는 두 정권에 대한 분노로 치닫는 민중운동의 정서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조조직률 상승처럼 다양한 활동의 성과가 구체적인 조직의 확대로 귀결되는 것을 중요한 활동원칙으로 삼는 민중운동의 눈으로 보면, 여성운동이 여성조직화를 위해, 특히 기층여성 조직화를 위해 어떤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지 궁금하다. 고학력 전문직 여성과 오랜 활동경력을 쌓은 개인들의 활약 못지않게 대중적인 여성운동 발전이 어우러진다면 좀더 지속적인 운동의 성장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운동만의 경우는 아니나 1998년 김대중정권이 등장하면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더욱 분화되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때로는 견해가 다른 일도 잦아졌다. 2000년 모성보호법 제정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며, 매년 함께 열어왔던 3·8여성대회도 노동계와 여성계가 따로 여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를 두고 시민적 여성운동과 계급적 여성운동의 분화로까지 해석해야 될지는 모르겠으나, 노동계가 여성노동자 문제를 중심과제로 하는 반면, 여성계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확보를 위한 활동에 주력하는 식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2. 민중운동이 사회진보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가부장제적인 문화와 관행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회분야와 마찬가지로 민중운동진영 또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문화와 관행에 푹 젖어 있는 게 사실이다.

노동운동만 보더라도 우선 운동주체 자체가 남성중심이다. 전체 1400여만 노동자 가운데 열 중 넷이 여성이지만 노조에 가입한 160만 노동자 가운데 여성은 30만명을 밑돌고 있다. 남성노동자 조직률은 16%에 이르지만 여성노동자 조직률은 5%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주요 노동운동조직인 민주노총만 하더라도 전체 조합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20%를 밑돌고 있다. 이조차도 간부급으로 가면 더 심각해 2001년 기준으로 대의원 가운데 14%, 중앙위원 가운데 6%만이 여성이다. 임원 9명 중 여성은 ‘어쩌다 한명’ 꼴이다.

좀더 냉정하게 말하면 남성이 중심이 되어 남성에 익숙한 방식으로 활동한 게 지난 10여년의 민주노조운동이라 하겠다. 특히 여성노동자 열 가운데 일곱이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대기업 정규직이 중심이 되어 대기업 정규직에 익숙한 방식으로 활동해온 노동운동으로서는 여성노동자 문제를 대변해 활동하는 데는 명백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된 활동에서 여성·비정규직 등 소외된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왔을 뿐 아니라, 조직운영이나 운동풍토에서도 남성중심인 게 솔직한 현실이다. ‘100인 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떠오른 운동진영 내 몇차례 성추행사건 처리과정에서도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조직상황을 고려해 조용히 처리’되길 바라는 데 뿌리를 둔 논리가 만만치 않았다. 일반 노동자뿐 아니라 일부 활동가조차도 성을 상품화하는 퇴폐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 몇년 사이 민주노총은 1999년 여성위원회 설치, 중앙과 산하 연맹 대의원·중앙위원·지도부 여성할당제 도입, 성폭력 추방을 위한 제도 도입과 캠페인 등 양성평등과 여성참여 실현을 위해 나름대로 힘쓰고 있다. 오늘의 현실이 노동운동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구속과 해고 심지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척박한 운동역사 자체의 제약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나, 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장애인 노동자 문제 등 약자의 절박한 문제를 대변하지 못하고서는 민중운동이 한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는 점에서 냉정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 점은 노둥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나아가 사회운동 전반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민중운동의 남성중심 활동을 개선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민주노총은 여성위원회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조직내 여성참여제도 확장, 여성노동자 권리확보 중심의 활동에 머무르고 있다. 이 활동을 더 강화해나가는 한편 여성이 더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운동주체를 확대 개편하려는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3. 일정한 분화 양상이 있고 주력하는 활동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은 아직 끈끈한 연대의 끈을 잡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여중생·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한 반전평화 등 폭넓은 영역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은 민중운동과 적극 연대해왔다.

여성·비정규직 등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주체로 당당히 자리잡고 양성평등의 문화를 꽃피우고, 여성운동이 민중지향성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 발전해나가는 것 자체가 양 진영운동의 성장과정이자 긴밀한 연대과정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 여성의 다수는 일하는 여성이며, 일하는 여성은 자본으로부터 계급적으로 착취받지만 또한 호주제, 성매매 보육제도 미비 등 사회적으로 극심한 차별을 받거나 불리한 사회제도의 피해를 입어왔다. 따라서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이 연대활동을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여성노동자의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모성파괴, 육아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을 강화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긴요한 의제라 하겠다.

중앙단위의 연대활동뿐 아니라 지역과 현장 등 더욱 폭넓은 단위별 연대활동을 모색하고 생활과 운동이 통일되도록 부부문제, 집안문제, 육아와 가사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각 지역의 민중운동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피난처를 여성단체와 함께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민중운동은 여성할당제 등 현재 시도하고 있는 양성평등 제도를 끈질기게 추진하는 것과 함께 조직 내에 양성평등 교육을 전면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 여성운동의 경우 민중지향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농민·빈민 등 기층여성 할당제를 도입한다거나 이들을 조직하기 위한 끈질긴 전략을 세우는 데 민중운동과 머리를 맞대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하겠다.

 

발제 2: 최상림

 

1.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이던 1977년에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운동이란 정치권력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 행위였다. 전사회가 병영체제화되어 학교에 학도호국단이라는 학생조직이 있고, 정보과 형사가 늘 상주하던 시절에 운동은 극도의 보안을 요구하였다. 전화를 받더라도 도청의 위협에 대비해야 했고, 모임에 나갈 때도 미행에 신경써야 했다. 개인의 실수는 조직의 보위와 연결되어 있어 운동조직은 군사조직과 같은 위계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조직과 개인의 통일, 민주적 조직운영, 가부장적 조직문화의 변화, 운동권내 성희롱 등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나머지는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전까지 한국에서의 운동은 모두 민중운동이었다. 지식인운동이건, 노동운동·농민운동·빈민운동이건, 여성운동이건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의 이견보다 연대가 더 중요했다. 여성운동은 개발독재의 희생양인 여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1987년 대투쟁으로 성장한 운동역량과 확보된 운동공간은 10여년을 거치면서 정치·경제·사회 민주화와 진보정당 결성에서부터 대중적인 평화통일운동·환경운동·지역운동, 운동권내 가부장제 문화 극복 등 다양한 생활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여성운동도 모성보호의 사회화, 성폭력특별법의 제정, 호주제 폐지, 보육의 공공성 확보, 남북여성 교류, 전쟁반대, 여성의 정치적 참여확대, 여성 실업 및 비정규직화에 대한 대응 등 활동영역을 확대해왔다. 여성운동의 이같은 발전은 사회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 등 우리 사회의 주요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면서도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민중적인 의제들에 둔감하고 중산층 중심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을 논하려면 “2000년대의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은 어떤 운동을 말하는가?”에 대한 정리가 우선 필요하다. 민중운동이라는 개념은 70년대 한국 상황에서 변혁의 주체세력을 정의하기 위한 운동용어여서 현싯점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이 글에서 민중은 노동자·농민·빈민과 같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계급을 말하고,민중운동은 이들 계급의 경제·정치·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운동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로 사용하겠다. 그리고 여성운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정의하겠다(부산여성사회교육원 『지역여성학강의』). 이는 전 계급계층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로부터 출발하는데, 여기서 성차별의 해결이란 단지 남녀차별의 해결이란 협의의 개념만이 아닌, 이를 재생산하는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 즉 변혁운동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는 체제모순과 성모순에 대한 저항이며 새로운 대안모색 운동이다. 여성운동을 논하기 위해서는 여성문제가 전 계급계층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로 대변되지 않는다는 현실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내부에 체제내적인 여성운동에서부터, 여성단체연합으로 대변되는 진보적 여성운동,‘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모토 아래 일상생활의 식민성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급진적 여성운동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표출도 정치·경제·사회적 평등, 평화와 통일, 여성문제의 구조적 해결에서부터 여성주의적 생활방식 및 인간관계 맺기, 가부장적 조직문화의 극복, 여성의 자아찾기와 자매애, 여성간의 연대회복, 여성주의 문화의 확산 등 다양하다. 이같은 현실이 보는 사람에 따라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라는 편견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이 중산층을 위한 것인가? 수많은 민중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노동운동 내 남녀차별을 없애는 것이 계급전선에 분열을 일으키는 이기적 행위인가? 할당제에 대한 요구나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는 민중운동 내 여성지도력의 계발과 여성들의 조직화에 기여한다.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관계를 논할 때 여성운동은 민중운동 혹은 과제중심적인 시민운동과는 확연히 대별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같은 이해가 선행된다고 해도 현재의 여성운동이 민중적인 의제들에 소홀해 보이는 이유는 있다. 여성운동이 세계화 속에서 심화되는 여성의 빈곤화·비정규직화 등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중여성의 힘이 조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다른 과제보다 상대적으로 그 목소리나 행동이 작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운동이 민중적 의제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여성운동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일반 민중운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민중운동 내의 여성지도력과 여성조직화를 활성화해야만 여성운동 내 민중여성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 여성운동이 민중적 의제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빈곤화·실업·비정규직화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여성운동의 주요과제이다. 그런데 민중운동은 여성운동의 과제에 대해 그만큼 공감하는가? 혹시 사소한 문제이거나 일부 여성들의 분열적 문제제기로 폄훼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는 오히려 적대적이거나 뒤로 제쳐둘 수밖에 없듯이, 임금이나 승진에서의 차별해소 요구, 할당제 요구나 운동권내 성폭력 문제를 여성들이 내부에서 제기했을 때 그같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가. 지난 몇년간 운동권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진보적 사회운동을 내부로부터 공격하는 행위는 결국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행위라거나, 조직을 보위하기 위해 사소한 피해는 그대로 묻어두라는 압력에 직면해야 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은 1999년 8월 기존의 노동운동이 여성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출범하였다. 여성노동조합은,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조합운영과 조합내 남성간부의 보수성 등으로 여성의 능동적 참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존 조합활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여성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조합원의 조합활동 애로사항으로 ‘조합의 남성중심성, 남성간부들의 보수성, 기혼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으로 인한 시간배치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1997년 민주노총 자체조사에 따르면 여성조합원 비중은 20%이나 중앙대의원은 전체 338명의 3%인 10명에 머물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어려움, 직장과 가사·육아의 이중부담, 직장일과 가정일의 양립을 위한 출산·육아에 대한 제도적 지원, 직장과 사회에서의 불평등한 지위 개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은 활동은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을 높이고 노동운동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3.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은 그 대상과 운동방식을 달리하지만 공통의 과제도 가지고 있다. 전체 여성 중 다수가 민중여성이며, 민중운동 내 과반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들 여성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위한 의제들은 일정부분 수렴되어 제도화되는 성과가 있었다. 부패방지법 제정,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립,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여성부의 신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와 같은 제도들을 통해 정치·사회적 민주화는 진전되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사회내의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민중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으로 이의 극복을 위한 과제―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조세제도 확립, 교육·의료·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일과 가사의 이중부담을 덜기 위한 모성보호와 보육지원 확대, 노동조합의 권리확대, 여성조직 확대, 여성지도력 계발과 남녀차별 해소, 일자리 창출, 정치적 대표성 확대, 우리농산물 지키기 등―는 공통의 과제이기도 하다.

연대는 활동가 개개인의 지향이 아니라, 각각의 운동이 서로의 의제에 대해 공감하고 각자의 운동영역 내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연대가 힘을 가질 수 있다. 여성운동은 여성노동자·여성농민·여성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들이 주요과제가 되어야 하며, 민중운동은 내부의 가부장적 사업관행과 남녀차별, 여성지도력의 계발과 여성조직화를 주요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연대를 통한 조직의 성장이 가능하며, 자기 대중의 내적인 요구에 의한 대중적 연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토론: 최상림

1987년 이후 여성운동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후한 부분은 여성의 정치참여이다. 모성보호의 사회적 확대,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 성인지(性認知)적 국가예산 수립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여성인사들이 제도정치권에 진출하여 역할을 해야 한다. 민중운동 영역에서도 당연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인사들을 정치권에 진출시켜야 한다. 단, 민중운동이 개인의 진출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같은 이념정당을 통한 진출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데 비해, 여성운동은 내부에 다양한 계급계층을 아우르기 때문에 단일한 정치(정당)적 성향을 가지지 않는다. 2004년 총선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당선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성계는 ‘맑은정치 여성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정당에 관계없이 총선에 나서고자 하는 여성을 추천받아, 청렴성과 개혁성 등에 대한 내부심사를 거쳐 102인의 여성 명단을 발표했고 전여성계의 힘을 모아 이들의 공천과 당선을 위한 활동을 천명했다.

손낙구님의 글에서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어서 바로잡고 싶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견해를 달리하는 일례로 2000년 모성보호관련법 개정과 3·8여성대회를 따로 연 사례를 예시하고 있다. 모성보호관련법 개정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국여성노동조합과 서울여성노동조합 등의 노조단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한국여성민우회 등의 여성노동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여성단체협의회 등이 함께했으며 법개정 수위에서 견해를 달리한 것은 민주노총과 서울여성노조뿐이었다. 그리고 3·8여성대회는 노동계와 여성계가 같이 하다가 따로 연 게 아니라, 애초부터 여성단체연합은 따로 3·8대회를 해왔으며, 민주노총·한국노총·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등도 3·8여성노동자대회를 각각 해오다가 ‘공통의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1998년과 99년에 공동주최를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독자대회를 고집하면서 함께 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이 비슷한 여성노동사안을 가지고 따로가 아니라 공동집회를 하자고 제안한다면, 여성노동단위는 별 이견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다른 점이 있지만,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 필요성과 가능성, 방식에 대해서 상호공감하는 부분이 크다. 계급적·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와 여성 내부에서 빈곤여성이나 비정규직 여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것은 사회진보운동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며, 특히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함께 해결해가야 하는 영역이다.

 

토론: 손낙구

최상림 위원장의 의견 전반에 대해 크게 다른 생각은 없다. 군사독재와 겨루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여성운동의 과제가 소홀하게 됐던 운동풍토나, 군사독재를 물리친 뒤 운동영역이 넓고 다양해진 과정, 여성문제가 전 계급계층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다.

특히 여성운동이 민중여성을 대변하고 조직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 일인만큼, 여성운동의 과제에 둔감한 민중운동이 변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정규직 노동운동이 실제로는 비정규직을 대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적대적이듯이, 남성중심의 민중운동이 여성문제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실감나고 뼈저리기까지 하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민중운동 안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는 노력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대중적인 운동과제에 힘쓰고 그 성과로 대중조직화를 이루는 식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 안에서도 여성활동가가 아닌 일반 민중여성의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대중적인 실천을 펼치는 데 아직 인색하다는 생각이다. 민중운동 여성활동가들은 일반 민중여성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운동에 좀더 치열하게 다가서야 하리라 생각한다.

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의 거리를 좁히는 일과 관련해 한가지 덧붙인다. 민중들이 신자유주의 공세로 고통받는 가운데 이를 대변하려는 민중운동에 대해 주류사회와 주류언론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하며 ‘왕따’시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동운동에 독설을 퍼붓는 데서 보듯 군사독재를 물리치는 데 함께 힘을 모았던 세력이 이 일에 앞장서니 더 속이 쓰리다. 대신 여성운동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다르고, 이 점이 조직화된 대중의 힘과 구별되는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한 시민운동 같은 강점을 여성운동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향력을 좀더 민중여성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쓰고, 민중운동과도 적극 연대해 운동지평을 넓히는 데 나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