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강은교 姜恩喬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사상계』로 등단. 시집 『허무집』 『빈자일기』 『소리집』 『벽 속의 편지』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등이 있음. pilgrimk1412@hanmail.net
어떤 회의장에서
L.J.N.을 추모하며
당신은 보는가, 지금
L.J.N.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이 서늘한 회의장
분홍 리본을 등에 예쁘게 묶은 통통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나를.
저 키큰 연단 위에 서서
빛나는, 아뜩한 조명을 받으며
대회선언을 하는
이제는 노인이 된 한 시인을.
구름에 걸터앉아서 지금
당신은 보는가.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모 문학평론가, 오늘 아침 내 가슴을 밀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네.
시는 넘쳐난다고.
무엇 때문이었느냐고?
내가 그만 어제 감격에 겨워 금강산에서 ‘금강산 풀에게 돌에게…’ 하며
징을 울렸고
그 징소리에 관한 시를 오늘 아침 썼기 때문이지.
자랑스레
바쁜 문학평론가인 ‘그’에게 읽어달라고 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는 시가 넘친다,고 말했다네.
그렇다. 이 시대에
정말 시는 넘쳐나는구나.
평화를 노래하는 시들이
전쟁처럼 도시에 넘쳐나는구나.
미국의 한 시인이 강연을 한다.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 후훗 웃는 소리가 들린다.
L.J.N. 저 소리가 들리는가.
저 후훗 숨죽이고 웃어대는 소리가.
크게는 못 웃고 숨죽이고 웃어대는 저 소리가.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오늘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육감적인 웨이트리스, 내가 어제 ‘금강산’ 갔다 왔다고 했더니
‘소름이 돋는다’고 아양을 떨었다.
놀란 내가 “정말 소름이 돋아요?” 하고 물으니
“그럼요, 이렇게요, 이렇게, 좌악―”
그 여자는 온몸을 쓸어내리면서 소름이 돋는 흉내까지 냈다.
아주 섹슈얼하게 몸을 비틀었다.
“아아~아↗ 전율 말이지요?↗”
“네~에~에↘ 전율 말이에요.↘”
홍천에는
그때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우리는 덜덜덜
아마도 시외버스를 타고 있었을 거야.
시외버스가 덜덜거리는 바람에
우린 서로 부딪혔어.
허벅지도 부딪혔고
허리도 부딪혔고
그곳 이름은 홍천
그래서 아마 당신이 나를 처음 껴안았을 거야.
부끄럽게 부끄럽게 껴안았을 거야
그리고 사랑했을 거야. 부끄럽게 부끄럽게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다아―)
나는 운다.
깃발 흔들던 당신을 생각하며
동시통역 이어폰들을 꽂고
엄숙히 앉아 있는 시인들의 황금빛 귀를 보며 운다.
L.J.N.
당신의 부러진 안경테 위에 눈물이 흐르고,
어제 만났던 노르스름 뾰족한 북한군 병사의 얼굴 위에 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미국의 시인이여
너는 자꾸 웃는구나.
미국은 인류에게 기술을 제공했다고 하며 기름진 웃음을 웃는구나.
당신도 잘 아는 문학평론가, 항상 바쁜, 유능한 K교수
“시가 넘쳐나요. 낭송한 시들만으로도 넘친다구요. 잘 고쳐서 발표하세요~↗”
비웃듯이 살짝 올라가 회의장 복도에 울리던 마지막 어구
그래, 시는 넘쳐난다. 우리 시대에 시인은 너무 많다.
시인들이 넘쳐나는 탓에 평화의 노래도 넘쳐나는구나.
전쟁의 반대가 평화가 아닐 수 있다고,
기아, 지구의 온난화, 질병…이라고
외치는 미국 시인이여.
옆에 앉은 여류시인 열심히 그 말 받아쓴다.
그렇다. 온난화,
온난화를 모든 시는 걱정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올여름 너무 덥구나.
미사일만이 아니다, 온난화를.
아― 저 인류의 적, 온난화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가슴 뜨거운 시인들, 문학연구가들 모두 생태시만을 썼구나, 연구했구나
어서 써라, 강은교 너도, 어서, 모던한 생태시를.
이 지구를 구해야지
펜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어야지……
깃발 한장 찢어져 누워 있던 당신의 장례식은 너무나 고요하였다.
신발끈 푸는 소리 결코 들리지 않았어, 바람만 불었어.
봄바람만 당신의 어설피 만든 영정을 핥고 지나갔어.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무덤도 없었어
화장하였지. 너무 말라 한시간 겨우 걸렸을까, 당신의 뼛가루
그래도 예쁜 단지에 담기던 당신의 뼛가루
봄바람이 핥고 지나가던 당신의 뼛가루
부산 가톨릭쎈터 앞길을 해방구라며 뛰어건너던 당신의 웃음이 그 뼛가루 속에서 출렁이는구나.
국제시장 상인들이 주었다며 하얀 러닝셔츠를 흔들어 보이던 당신의 팔
이제 이 도시를 떠났겠구나, 훨훨 해방되었겠구나.
……다른 남자시인들은 모두 그 시절들을 잘도 노래하던데……
그동안 무얼 했는지, 부산에서도 못 살고, 서울에서도 못 살게 된 당신
나의 마음 밖으로도 쫓겨난 당신
그러나 시는 결코 잘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결코 아름답게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나무와 같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뿌리깊은 것이다.
시는 나무와 같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잎들 세상에 출렁이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북한군 병사, 아주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주었지.
“시인이 직업이야요?”
“네, 시가 직업이긴 하지만, 돈은 못 벌어요. 잡원고도 쓰고, 대학에도 나가고 하면서 돈을 벌죠”라고 희미하게 말하는 어떤 시인 앞에서,
‘노동자’도 시를 쓸 수 있으며, ‘목수’도 시를 쓸 수 있다고, 그러니 거짓말한 게 아니냐고, 그 시인 눈을 쏘아보며 말한 북한군 병사.
아, 강은교여, 부끄러워하라.
그렇다. 시인은 직업이 아니다.
시인이 직업인 사람들이 많고 많은 세상에
시인이 결코 직업이 되지 못하였던 당신이여.
하지만 황량한 책상 위에선 언제나 오색무지개 날리고 있던 당신이여.
너울너울 오색무지개 넘고 넘던 당신이여.
당신의 머리카락에 부는 봄바람처럼.
우리의 대학 사진에 부는 여름바람처럼.
시인인 당신이여, 시 몇편 남겨놓지 않고 가버린 시인 당신이여.
매일 거기 서서 열 권이나 넘는 내 시집들을 질타하는 당신이여.
당신이 옳았다. 마치 내던지듯 세상에 노래를 울리지 않은 당신의 가슴줄이 옳은 것이었다.
그때 홍천에는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지.
—2005년, 8월
홍천을 지나 금강산 다녀온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