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김훈 金薰
1948년 서울 출생. 소설가, 자전거레이서.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개』 등이 있음.
항로표지(航路標識)
16시 30분께부터 갈매기들은 날아다니지 않았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먼 바람의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그것들은 일시에 멸종이 되듯이 사라졌다. 수평선 너머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고 해수면은 뜨거운 습기를 뿜어냈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등대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혀서 흘러내렸다. 해수면은 흔들리지 않았다.
17시 정각에 남해 서부해상의 폭풍주의보가 파랑경보로 바뀌었다. 초속 20미터 넘는 바람과 파도높이 6~8미터가 예고되었다. 라디오가 정규뉴스의 첫머리에서 기상특보를 전했고 그보다 10분 앞서 지방항만청 수로국은 소라도 등대로 전화통지했다. 수로국 안전계장은 황천(荒天) 대비수칙을 외우듯이 고함쳤다.
―각 등대는 비상발전기 가동에 대비하고 모든 지상시설물을 고박(固縛)하라.
―시정(視程)이 흐려지면 등대장의 판단으로 일몰 전에 점등하라.
―직원 가족들의 옥외활동을 금하고 등대장은 통신축선상에 대기하라.
등대장 김철(40세, 6급수로직)은 7급직원 두 명을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의 선착대들이 이미 섬에 당도해 있었다. 해안단애 꼭대기에서 물푸레나무 줄기들이 일제히 쓰러지며 뒤채었다. 백색 등탑 뒤쪽으로 바람을 등지는 사면에 발전실 축전지창고 유류저장고가 들어섰고, 그보다 높은 개활지에 풍향계 풍속계 백엽상과 태양열 집광판이 한울타리 안에 모여 있었다. 등대장 김철은 풍향계 철탑지주와 태양열 집광판에 와이어로프를 걸어서 말뚝에 묶었고 발전실 창문에 철제 덧문을 내렸다.7급직원들이 숙사 문짝에 각목을 대고 대못을 질렀고 숙사 유리창을 판초로 덮었다.
일몰시각은 1시간 30분쯤 남아 있었으나 비구름이 연안으로 몰려와 해는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찢어지는 틈새로 핏빛 석양이 쏟아져 물 위에 꽂혔다. 바람의 방향은 남남서와 서남서 사이에서 무질서했다. 풍향계 화살이 쉴새없이 방향을 바꾸며 어두운 원양을 가리켰다. 풍향계 화살 끝은 공격각도를 탐색하는 뱀 대가리처럼 긴장되어 있었고 긴장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가벼웠는데, 그 가벼운 끝이 가리키는 방향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면을 밀면서 몰려오는 바람의 대열은 해안단애에 부딪치면서 치솟았고 흰 물줄기들이 바람을 따라 단애를 넘어왔다. 바람의 흐름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골짜기에서 풍향계 화살은 진저리를 치며 갈팡질팡했다.
바람이 취주(吹走)거리를 길게 끌면서 휩쓸어올 때 풍속계 바람개비는 맹렬히 돌면서 환(幻)으로 흐려졌다. 환은 맹렬할수록 희미했다. 맹렬한 환이 어둠속으로 잠적할 때 바람에 끄달리는 물푸레나무 숲이 후진하는 파도소리를 냈고, 허공에서 서로 쓸리우는 바람의 대열들은 길게 우는 짐승의 울음을 잇대었다.
물은 파구(波丘)를 횡렬로 연대해서 산맥처럼 달려들었다. 어둠의 바닥은 썰물이었다. 육지로 향하는 바람이 원양으로 나아가는 물의 대열을 뒤집었다. 바람에 부딪친 파도의 떼들은 대가리가 부서지면서 벌떡벌떡 일어섰다. 깨어진 대가리에서 흰 물보라가 쏟아졌다. 물보라는 갈기를 너울거리면서 바람 속으로 길게 흘러갔다.
18시에 지방항만청은 당직 교대했다. 야간 당직주임은 다시 관하 일곱 개 등대를 전문으로 다그쳤다.
―각 등대는 축전지와 연료 재고량을 보고하라.
―각 등대는 관측장비와 통신시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인접등대와 수시로 교신해서 이상 유무를 상호 확인하라.
―새벽에 농무(濃霧)가 예보되어 있다. 소라도, 서청도는 포그씨그널(fog signal)에 대비하라.
기상대 상황실도 항만청 당직실을 경유해서 등대에 전문을 보내왔다.
―각 등대는 관하 해상기상관측 부이(buoy)의 안전상태를 확인해서 명일 05시 30분에 보고하라.
소라도 부이는 등대 서남쪽 5마일 해상에 돌출한 암초 위에 가설되어 있었다.8미터 높이의 철탑에 기압, 수온, 습도, 파고, 파향, 파주기를 자동 측정하는 장비와 측정된 정보를 기상대로 전송하는 전자장비와 축전지가 장착되어 있었다. 철탑 끝에 빨간 등이 켜져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배들에게 거기가 암초임을 알렸다. 김철은 부이 쪽으로 망원경을 들이댔다. 렌즈 속에서 부이의 등불은 물보라에 휩쓸리며 가물거렸고 철탑은 꼭대기를 넘는 파도를 견디고 있었다.
등대장 김철은 18시 25분에 점등했다. 등명기 필라멘트가 하얗게 사위면서 할로겐램프가 빛을 뿜어냈다. 빛의 입자들은 태어나는 순간에 광원을 떠나서, 필라멘트에는 한점의 빛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필라멘트는 재처럼 적막했고 빛들은 그 재 속에서 다시 뿜어져나왔다. 반사경이 빛을 한 방향으로 몰아서 튕겨냈고, 프리즘 렌즈가 빛을 꺾고 합쳐서 먼 바다로 쏘아냈다. 등명기가 회전했다. 빛의 다발들이 어둠을 휘저었다. 바람이 물보라의 끄트머리를 고공으로 몰아왔다. 뻗어나가는 빛의 다발 속에서 물의 입자들이 나부꼈다.
소라도 등대 등명기는 1분에 5회전했고 광달(光達)거리는 25마일이었다.25마일 밖 해상에서 그 빛은 12초에 한번씩 명멸하는 백색섬광으로 보였다. 밤의 바다에서 어둠과 물보라에 가리워 섬은 보이지 않았고 12초에 한번씩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12초 1섬광, 거기가 소라도였다.
18시 50분께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는 밀도가 높았다. 바람이 억센 빗줄기들을 사선으로 몰아왔다. 섬의 지형은 가팔랐다.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이 해안단애에서 바다로 떨어지면서 단애를 치받는 바닷물과 부딪쳤다.
19시에 등대장 김철은 다시 옥외시설물을 점검했다. 7급직원 두 명이 김철을 따랐다. 발전실에서 관측장비 쪽으로 이동할 때 김철은 배수로 고랑을 따라서 기었다. 김철은 부하직원들에게 고함쳤다.
―발전실 굴뚝을 떼어내라.
직원들은 보조로프를 붙잡고 앉은걸음으로 이동했다. 김철은 흔들리는 유류저장고 문짝에 대못을 박았다. 풍향계 철탑이 바람에 갈리면서 쇳소리를 냈다. 김철은 허리춤에 찬 비너로 철탑에 몸을 묶고 풍향계 전달장치를 와이어로 묶었다. 김철은 발전실 뒤쪽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땅에 바짝 붙어라. 바람이 끊어질 때 이동하라.
김철은 다시 배수로 고랑을 기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등명기가 쏘아내는 빛의 다발들이 김철의 머리 위로 어둠을 휘저었다.
연안 유자망 어선들은 16시 무렵부터 어망을 거두어 귀항했다.27해역 남단에서 장기조업중이던 중대형 어선들은 송일만 북쪽 어업전진기지로 대피했다. 송일만으로 향하던 여객선은 회항했고 연안화물선은 중간기착지인 서청도에서 묘박(錨泊)했다.
송일만 안쪽 중화학공단 전용부두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유조선,LNG 탱크선들이 그 황천(荒天)의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아라비아반도를 떠나서 인도양과 남지나해를 건너온 그 배들은 27해역 북단에서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불빛을 확인했고, 거기서부터 남남서로 방향을 돌려 송일만으로 향했다. 송일만 어귀에서 대형 수송선박들은 만의 양쪽 돌출부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뻗어나온 방파제 끝의 좌록우적(左綠右赤) 무인등대 사이를 통과했다. 대형선박들은 컨테이너 부두 타워크레인 아래 우현을 접안했다.
송일만을 떠나서 남지나해로 나아가는 철강제 수송선박들은 무인등대 사이를 빠져나와 200마일을 북동진해서 27해역 남단에 진입했다. 그 해역에서 당직항해사들은 광달거리 25마일을 건너온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불빛을 확인했다. 어둠속에서, 빛과 배 사이의 거리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바늘끝 같은 백색섬광은 12초에 한번씩 어둠을 찔렀고, 빛의 방향은 북북서였다. 항해사들은 12초 1섬광을 확인하고 나서, 소라도를 등지고 남남동으로 항로를 수정해서 원양으로 나아갔다.12초 1섬광에 의해서 항로를 수정할 때 항해사들은 교습생 시절에 배운 항해교본의 밑줄 친 페이지를 떠올렸다.
…항해술의 핵심은 진행방향의 설정과 변경이다.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진행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항해사는 선박 외부의 육상표지물을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도(海圖)는 항해사의 육안과 육상표지물 사이의 매개물이다.
소라도 등대는 12초에 한번씩 백색섬광을 쏘아내며 여기는 소라도…… 여기는 소라도,라고 어둠을 향해 깜박였다. 보이지 않는 섬을 지표로 삼아 배들은 제 위치를 확인했다. 배들은 섬으로 가는 방향을 버리고 남남서, 서남서로 선수를 돌려 원양으로 나아갔다. 등대로는 아무런 배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라도 등대는 러일전쟁 때 남해를 우회해서 서해의 싸움터로 나아가는 제국함대의 뱃길을 인도하는 항로표지로 건설되었다. 벽돌로 쌓은 8각형 등탑은 그후 몇번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도 옛모습을 잃지 않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초기에 설치된 등명기는 광달거리 10마일 정도의 제4등급 청동제 가스등이었다. 초기의 가스등은 수은 위에 떠서 톱니바퀴에 물려 회전했고, 밑바닥에 메이지(明治)의 연호가 찍혀 있었다. 그 청동제 가스등 시절부터 소라도 등대의 불빛은 12초 1섬광이었다. 섬광의 주기를 바꾸면 다른 등대와 혼동이 빚어질 것이므로 12초 1섬광은 변경이 불가능한 신호였다.
검은 연기를 뿜는 제국함대의 증기선들은 12초 1섬광을 지표로 북서진했다. 압록강 어귀까지 북상했던 함대는 몇달 후 승리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펄럭이며 남하했고, 다시 12초 1섬광을 지표로 삼아 열도의 모항으로 돌아갔다. 군함이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해풍에 밀려 섬에까지 흘러왔고, 물을 할퀴는 증기터빈의 흰 거품이 27해역 남단을 멀리 돌아갔다. 그후, 식민지의 밤바다에서도 어선들은 등대를 확인하고 나서 등대를 돌아서는 항로를 따라 포구에서 포구로 이동했다. 다시 전쟁이 터지자 아메리카의 군함들은 12초 1섬광을 지표로 삼아 소라도를 우회해서 북으로 나아갔다. 배들은 모두 광달거리 너머로 사라졌고 섬에는 아무런 배도 들어오지 않았다. 등대에서는 늘 섬을 멀리 우회하는 밤배들의 초록색 항해등만이 보였다.12초 1섬광, 거기가 소라도였다.
동틀 무렵에 바람의 세력은 쇠퇴했다. 취주의 대열을 이루지 못하는 바람은 옷감을 흔들듯이 너울거렸고 풍향은 남서로 안정되었다. 기압골은 빠르게 반도를 건너갔고 농무예보는 빗나갔다. 고깃비늘 같은 잔물결이 수면을 뒤덮고 북동으로 흘렀다. 기상특보와 비상대기가 해제되었다. 해안단애에서 솟구친 갈매기들이 간밤의 허기를 채우느라고 수면으로 급강하했다. 등대장 김철은 06시 30분에 소등했다.
―각 등대는 인원 장비 시설물의 이상 유무를 보고하고 순번제근무로 전환하라.
비상대기 해제를 알리는 당직주임의 전화를 끊으면서 김철은 유리창 너머로 새벽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어장으로 나아가는 채낚기 어선들이 푸른 고리연기를 토해내며 항진하고 있었다. 잔물결들이 뱃머리에 엎드려 가지런히 밟혔고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갔다. 그 수면 위에 무슨 비상이 있었던 것인지 김철은 기억할 수 없었다.
07시에, 김철은 숙사로 돌아왔다. 태양열 집광판 아래쪽으로 직원용 숙사 세 동이 들어서 있었다. 슬래브형 단층 벽돌건물이었다. 등대장 김철은 가족들과 함께 숙사에서 살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직원들은 혼자서 등대에 들어와 있었다. 김철은 물에 만 밥에 멸치젓을 얹어서 아침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밤을 새운 눈은 물기가 말라 쓰라렸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망막 안쪽으로 간밤의 물보라가 일어섰다. 갈매기들이 숙사 지붕 위까지 날아와서 짖어댔다. 투명한 대기 속에서 갈매기 울음은 도끼처럼 허공을 찍었고 울음의 끝자락에 목울대 흔들리는 소리까지도 가까이 들렸다.
사흘 전에 아내는 둘째아이를 낳으러 육지로 갔다. 섬으로 건너온 장모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려갔다. 일곱살 난 첫째아들 민식이도 그때 장모를 따라갔다. 등대에 디젤연료나 장비부품을 가져다주는 보급선이 열흘이나 보름에 한번씩 섬에 와 닿았다. 장모는 그 보급선 편에 다녀갔다. 등대가 들어선 언덕 아래는 선착장이 없었다. 보급선은 밀물의 만조에 맞추어 언덕 아래 모래톱에 뱃머리를 들이댔다. 배를 고정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보급선은 물건을 내려놓으면 곧 후진으로 모래톱을 떠났다. 모래톱에서 등대 마당까지는 도로가 없었다. 물가에서 배를 기다리던 등대 직원들이 케이블에 보급품을 실어서 전동활차로 감아올렸다. 만삭의 아내는 그 케이블을 타고 모래톱까지 내려가서 보급선에 옮겨 탔다.
―여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견뎌요.
배가 떠날 때, 담요로 몸을 감싸고 뱃바닥에 주저앉은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바람이 아내의 목소리를 씻어갔다.
―빨리 올 생각 말고,애기하고 병원에서 며칠 편히 지내구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김철은 한달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두달 후에 사직서를 수리할 테니, 후임자를 물색할 때까지만 소라도 등대를 맡아달라고 항만청 인사과장은 회신을 보내왔다. 그 두달이 이제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2년 전에 김철은 서청도 등대에서 6급으로 승진했다.6급은 초임 등대장으로, 원격지 등대를 맡아야 했다. 김철은 승진과 함께 소라도 등대장으로 부임했다. 서청도 등대는 20초 1섬광이었다. 맑은 날, 서청도는 소라도 동남쪽 수평선 위에 말미잘 같은 해안선을 드러냈으나 20초 1섬광의 서청도 등대는 섬의 단애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다.
일곱살 난 민식이는 해월도에서 태어났다. 그때 김철은 8급이었다. 민식이는 섬에서 섬으로 옮겨가며 자랐다. 갈매기들은 해월도 단애 꼭대기에 모여 집단번식했다. 봄이면 알에서 깨어난 어린 갈매기들이 단애 끝에서 새까맣게 날아올랐다. 암초 위에서 우는 늙은 갈매기들의 울음은 깊이 울리면서 바다를 건너왔고, 단애 끝에서 날아오르는 어린 갈매기들의 울음은 짧고 날카롭게 부스러졌다. 그것들의 울음소리는 생명을 가진 것들의 몸통이 내지르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나도 메말랐고, 무엇을 부르고 무엇에 대답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는 난해할수록 절박하고 다급했다. 바람이 원양으로 몰려간 아침에 그것들은 높은 목청으로 울면서 단애를 떠났고, 저물어서 돌아온 그것들은 노을 속을 선회하면서 울었다. 섬의 시간은 부스러져 흩어지는 그것들의 울음소리에 실려 있었고, 울음과 울음 사이를 해풍이 쓸고 갔다. 첫돌이 지난 민식이는 옹알이를 시작하면서 깍깍, 갈매기 울음을 흉내냈다. 그때마다 아내는 민식이를 끌어안고, 민식아 엄마 엄마 엄마……라고 얼러주었다. 아이를 어르는 아내의 목소리는 갈매기 울음처럼 다급했다.
해월도 등대는 6초 1섬광이었다. 빠르게 명멸하는 백색광선이 광달거리 30마일 안쪽을 찔렀다. 야간당직 때 김철은 풍향 풍속 기압 운량(雲量)을 시간별로 보고했다. 해월도 등대 관할해역을 야간 항해하는 선박들은 25해역 동단 제비꼬리 암초 부근에서 남남동으로 방향을 돌렸다. 거기가 빛의 한계점이었다. 빛들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없었다. 돌아선 배들의 초록색 항해등은 광달거리 밖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멀어지고 어둠의 저쪽으로 방향을 잡은 항해사들의 눈에 등대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 등대에서도 선박의 항해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 초록색 항해등을 바라보면서 김철은 민식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등대를 떠나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등대들의 명멸주기는 달랐지만, 잠을 기다리며 누운 김철의 혼곤한 의식 속에서 해월도 서청도 소라도는 한 덩어리의 섬으로 들어붙어 있었고, 모든 섬은 갈매기 울음에 떠가는 시간이었다.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좋은 소식인 모양입니다.
7급직원이 숙사 문짝을 두들겼다. 김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갔다. 장모의 목소리가 바다를 건너왔다.
―또 아들일세. 아주 크고 힘차. 에미는 별 고생 안했어. 지금 막 잠들었는데, 깨면 전화할걸세.
―고맙습니다. 한 며칠 쉬었다가 다음 배편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새벽 세시에 나왔어. 거기 바람 많이 불었지?
―다 지나갔습니다.
―축시(丑時) 생인데, 사주가 어떨는지 몰라. 얘는 육지에서 자랄 테니까 이름에 땅 육(陸)이나 언덕 원(原)을 넣을까봐. 작명소에 들러서 이름을 받아가지고 갈 테니 그리 알게.
03시에 물결의 높이는 8미터가 넘었다. 깨어진 대가리로 흰 물보라를 내뿜는 파도와 어둠 너머에서 그 아이는 태어났다. 아내의 몸속에서 그 아이가 수태되던 밤에도 바다는 물결이 높았던 것 같았다.
송곤수(55세, 무직)는 불도저를 천천히 몰아갔다. 분속 80미터였다. 수직으로 고정된 삽날이 흙을 밀고 나갔다. 삽날에 돌부리가 걸릴 때, 타이어는 하중에 밀리면서 헛돌았다. 송곤수는 액쎌을 밟아서 밀어붙였다. 실린더가 급회전하면서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액쎌을 밟는 장딴지에 다시 땅에 들러붙는 타이어의 진동이 전해졌다. 돌부리가 뽑혀나오자 삽날은 안정된 밀착으로 땅을 밀고 나갔다. 삽날 양쪽으로 흙이 밀려나가면서 긴 고랑이 패었다. 개활지 끝에서 암벽의 밑동이 드러났다. 불도저는 U턴할 수 없었다. 송곤수는 레버를 밀어서 후진했다. 개활지 한가운데서 송곤수는 작업방향을 바꾸었다. 가로로 밀던 방향을 버리고 세로로 밀었다. 가로로 밀 때 삽날 밖으로 밀려났던 흙이 세로로 밀 때는 고랑을 메웠다. 들뜬 흙을 몰아서 고랑을 메우면 삽날 앞에서는 다시 흙이 일어섰다. 송곤수는 가로로 다섯 번 밀고 세로로 다섯 번 밀었다. 불도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개활지 도랑은 패어지고 메워졌다. 개활지가 펼쳐진 언덕 아래서 두 강줄기가 만나서 하류 쪽을 향했다. 내륙을 굽이쳐온 파행천의 양안으로 산들은 아득히 멀었고 저녁이면 유로(流路)의 먼 쪽이 노을에 빛났다. 불도저는 다섯 번 가로로 밀고 다섯 번 세로로 밀었다.
―심심한 동네에 웃겨주는 놈 하나 들어왔구만. 저게 대체 뭐하는 자식이여. 생긴 건 멀쩡하구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니 저 짓거리를 하면서 연료를 태우나?
송곤수가 우편취급소 옆 식당에 내려와 밥을 먹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으나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불도저는 무게 3톤의 스트레이트 형이었다. 흙을 앞으로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6기통 디젤엔진의 최대추진력은 500마력이었다. 무한궤도가 없는, 타이어 식이었다. 추진력이 약하고 지면에 밀착하는 힘이 적어서 모래땅이나 진땅에서는 힘을 못 썼지만 송곤수의 개활지는 황토흙이었다. 삽날이 흙과 닿는 부분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어서 돌부리를 걷어내며 나아갔다. 땅을 깎고 흙을 미는 중기 중에서 가장 작은 장비였다. 개활지 저쪽 끝에서 암반 밑을 긁적거릴 때 송곤수의 불도저는 중장비라기보다는 흙에 들러붙어 뒹구는 땅강아지처럼 보였다.
무림전자는 외환위기 직후에 부도액 50억을 안고 무너졌다. 연간 5천억이 넘는다는 매출액과 3천억의 자산평가는 대부분이 분식회계였다. 부도액 50억이 큰 액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관이 적발한 분식회계 수법과 액수가 신문에 보도되자 거래은행들은 구제금융을 거절했고 분식된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늘려주지도 않았다. 신문보도 직후부터 지방지사들은 판매대금을 입금시키지 않았고 환차손 누적액이 매출신장액을 모조리 잠식해버린 상태에서 증시를 통한 증자도 불가능했다. 최종 부도처리된 오후 4시부터 회사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거래은행들이 채권단을 결성했고 직원들은 노조 사무실로 몰려가 회사의 대책을 요구했다. 비상총회에 모인 주주들은 청산을 주장하는 패와 매각을 주장하는 패로 나뉘어서 며칠을 지지고 볶았는데,소액주주들은 어느 쪽도 아니면서 다만 경영자를 성토했다. 회계를 분식해 거품과도 같은 재무제표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항목과 출납을 기업 회계기준에 맞추어놓은 위장수법에 소액주주들은 격분했다. 폭력배들까지 동원된 닷새간의 회의를 마치고 주주들은 결국 청산방식의 정리를 의결했다.
무림전자 재무관리상무 송곤수는 그 청산절차를 관리했다. 회사의 모든 유무형 자산을 처분해서 그 매각대금을 주주와 채권자들의 지분율에 따라 배분하고 미불임금과 체납국세를 정리하고 나서 회사의 법인등기를 말소하는 일이었다.
송곤수는 등기이사였다. 회사의 채무에 연대보증되어 있었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개인소유 임야 7만평을 담보로 7억을 대출받아 법인회계상으로 증자했다. 재무관리상무로 승진하기 전에 인사관리이사직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외환위기 전해에 무림전자는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40%를 점유했고 그 신장세를 바탕으로 정보기술산업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뒤처진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신규 설비투자를 늘려나가고 있었는데, 환율이 무너져나가자 핵심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생산업체가 환차손을 감당해내기는 어려웠다. 매출이 늘어도 수익은 줄었고 영업이윤의 장래는 불투명했다. 내부자금이 없이 주로 대출금융으로 굴러가던 회사는 분기말과 월말마다 목을 죄는 듯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외환위기 전부터 회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제조업에서의 이윤의 장래가 불투명하기도 했지만, 자본과 경영의 주력을 정보기술산업으로 집중시키려는 전환기에 기존의 제조업에서 머리가 굳은 고위직 인력들은 호봉이 높을수록 낙후되어 있었다.
―이봐, 이 피바다를 버리고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나가야 해. 아무도 입을 대지 않은 이윤의 바다 말이야. 모두 다 데리고 갈 수는 없어. 갑판장은 풍랑이 치면 짐을 바다에 버려야 하는 거야. 그래야 블루오션으로 나갈 수 있어. 내 눈엔 그 바다가 보여. 자네 눈엔 안 보이나? 우선 조직을 좀 가지런히 만들어봐. 가볍고 민첩하게 말이야.
6개월 안에 구조조정을 끝내라고 지시하면서 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 구조조정의 효과로 연간 인건비 80억 이상이 절감되어야 하고 정보기술산업에 적응력이 빠르고 호봉이 낮은 사원들을 팀장으로 기용할 수 있는 인적 환경을 조성해놓으라고 회장은 지시했다. 일주일 후에 인사담당이사 송곤수는 정리해고의 원칙을 회장에게 보고했다.
―인건비 절감목표액 80억에 맞추어 부장급부터 고액 봉급자 순으로 정리할까 합니다.
회장은 화들짝 놀라면서 안경을 벗었다.
―아니, 고액 봉급자부터…… 무조건 말이지?
―네. 그 편이 앗살하고 뒤탈이 없지 싶습니다.
―무조건 일렬로 세워놓고 고액부터라! 인사고과는 어떡하고?
―인사고과라는 게 원래 불신받는 것이어서 오히려 부작용이……
―그래도 부장급에서 건질 만한 자들이 없지 않을 텐데……
―하나나 둘을 선별하면 전체를 진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회장은 눈을 감고 소파에 목을 기대었다. 회장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일렬로 세워놓고라……
회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송곤수를 바라보았다.
―자네, 보기보다 다부지군, 좋아. 한둘이 문제가 아니지. 나도 살리고 싶은 자가 있지만, 난 일절 간여하지 않겠네. 시행하게.
돌아서 나오는 송곤수를 회장은 다시 불러세웠다.
―이봐, 곧 추석이잖아. 명절은 지내놓고 시작해.
부장급 사원은 노조원이 아니었다. 노조는 부당해고를 규탄하고 생존권을 절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부장급 70명을 포함해서 고액봉급자 85명이 3개월 안에 정리되었다.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하는 사원에게는 퇴직금과는 별도로 12개월치 급여가 위로금조로 지급되었고 목을 내밀고 버티는 자들에게는 해고통지와 함께 3개월치 급여가 지급되었다. 해고된 사원 다섯 명이 부당해고 철회와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소송사건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회장은 말했다.
―미친놈들. 소송으로 복직되면 일백만 실업자가 왜 생겼겠나. 그렇게 아둔하니까 조직에서 낙후되는 거지. 법원이 밥 먹여주던가.
―신문들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편들고 있어서 여론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그게 신문의 생존이야. 생존권이라! 누가 살지 말랬나. 법인도 생존권이 있어.
송곤수는 공업경영학을 전공한 공과대학원 출신으로 25년 전에 기술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창업 초기에 무림전자는 전기밥솥과 선풍기, 토스트오븐을 만드는 제조업체였다. 송곤수는 초기의 공장건물과 작업장 내부의 생산라인을 설계했다. 입사 10년 후에 송곤수는 기술직에서 관리직으로 전보되었고, 정리해고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후에 인사담당이사에서 재무관리상무로 승진했다.
회계장부를 압수해간 금융감독기관은 권한의 한계에 부딪치자 사건 전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무림전자의 분식회계는 최고경영자부터 전속회계사, 경리실무자까지 결재라인이 모두 가담한 조직적이고 관행적인 위장경영이었으며, 분식은 과장분식과 축소분식 두 갈래로 전개되어왔다고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노조와 임금협상을 벌일 때나 법인세 소명자료를 제출할 때는 매출액과 수익금을 반 이하로 줄여서 회계장부를 작성했고, 거래은행이나 증권시장에 제출하는 회계장부에는 수익금을 10배 이상 부풀려서 기재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에서 송곤수는 혐의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먼저 조사받은 부하직원이 모두 시인한 판에 감추고 버틸 것도 없었다. 분식을 걷어내면 사실상의 순익이 얼마였던가를 분기별로 진술하라는 검사의 추궁에 송곤수는 난감했다.
―검사님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잘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금은 실체가 없는 겁니다. 그냥 흘러다니는 거지요. 그래서 유동성입니다.
채권단이 청산절차를 단계마다 검증했고 절차는 더디게 진행됐다. 회장은 부도 직후에 미국으로 도피했다. 한달 후에 회장은 국제전화를 받았다.
―다 나눠줘. 그래도 모자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목을 따도 피밖에 안 나와. 없다는 놈을 어떡할 건가.
분식을 모두 걷어내자 회사자산은 3분의 1 이하로 오그라들었다. 건설중인 새 공장은 설비투자액을 인정받지 못하고 토지매각대금만 자산으로 계상되었다. 공장부지는 용도변경이 안되는 땅이었다. 자산평가액은 최우선 면제항목인 퇴직금 전액과 최종 3개월분 급여총액에도 미치지 못했다. 차액은 10억이 넘었다. 해고된 근로자들은 회장의 빈집 앞에 몰려가서 꽹과리를 때리며 농성했다.
회사채무에 연대보증되어 있던 송곤수의 임야 7만평과 45평짜리 아파트는 그때 압류되었고, 해직된 사원들은 압류채권자의 자격으로 송곤수의 임야와 가옥을 경매에 붙였다. 해직사원들은 경매대금 9억을 미수임금지분율에 따라 나누었고 나머지 체불임금 1억5천에 대해서는 또다른 등기이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청산은 더디었지만 적법하게 진행되었다. 체불임금 지급내역을 보고받는 국제전화에서 회장은 말했다.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이다.
자금은 실체가 없이 안개처럼 흘러다니는 허깨비였지만, 그 허깨비는 숨쉬는 목통을 조이는 오랏줄이었다. 오랏줄이 허깨비 같기도 했고 허깨비가 오랏줄 같기도 했다.
청산절차가 몇건의 민사소송으로 번져가고 있을 때, 송곤수는 매각된 공장의 생산설비를 철거하기 위해 작업인부들을 인솔하고 현장에 내려갔었다. 동해안 남쪽 항구에 가까운 배후지역의 경사지였다. 공장부지를 인수한 사업자가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땅을 갈아엎고 있었다. 포클레인의 바스켓이 땅을 파서 흙을 땅위로 끌어올려놓으면, 삽날을 앞세운 불도저가 흙을 밀고 나갔다. 삽날 양쪽으로 붉은 흙이 구름처럼 일었다. 포클레인 바스켓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유압실린더에서 뻗어나온 쇠기둥이 팔뚝처럼 불거졌고 거기에 청동색 윤활유가 흘렀다. 송곤수는 설비철거작업을 인부들에게 지시해놓고, 경사지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흙을 밀고 당기는 중장비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포클레인의 무한궤도는 바스켓의 하중을 넉넉히 장악했고 철제 암(arm)이 관절을 굽혀서 바스켓을 당겼다. 불도저는 무한궤도가 땅을 밀어내는 힘만큼 앞으로 나아갔고 그 힘만큼 삽날은 흙을 밀어냈다. 포클레인이 이쪽으로 돌아설 때 바스켓 위로 드러난 관절이 햇빛을 튕겨냈다. 바위와 나무밑동이 뽑히면서 땅은 고르고 넓게 깎여나갔다.
……저런 기계가 있었구나.
송곤수는 중장비를 들여다보는 자신의 몸이 기계 속으로 녹아들어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환영을 느꼈다.
청산절차가 끝나자 송곤수의 통장에는 1억이 남아 있었다. 육촌조카의 명의로 등기해두었던 점포 한 개를 처분한 돈이었다. 명의를 빌려준 조카에게 1천만원을 주었다. 아내는 새벽이나 밤중에도 들이닥치는 채권대행업자들을 피해 미국에 유학중인 아들에게로 가 있었다. 송곤수는 8천만원을 아내에게 보냈다. 돈을 보내는 날 송곤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이 돈으로 거기서 작은 임대점포라도 얻어서 살아갈 궁리를 해보구려. 나는 정리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 당분간 한국에 머물겠소. 양수리 강가에 회장의 땅과 허름한 별장이 있는데, 간신히 압류를 모면했소. 거기서 얹혀지낼 요량이오. 허술하나마 숙식은 해결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남은 돈 1천만원은 내가 지니고 있겠소.
그 1천만원으로 송곤수는 중고장비 매매쎈터에 가서 3톤짜리 소형 불도저를 구입했다. 불도저를 트럭에 싣고 양수리 언덕 개활지로 옮겨왔다. 회장의 별장은 낡은 단층 목조건물이었는데 비가 새지는 않았다. 건물 앞에 강 쪽으로 낮아지는 사면을 따라 2천평 개활지가 펼쳐져 있었다.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송곤수는 불도저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작동방법을 알 수가 있었다. 운전석 위에 올라앉아서 송곤수는 불도저를 다섯 번 가로로 밀고 다섯 번 세로로 밀었다. 고랑은 패어졌다가 다시 메워졌고, 메워졌다가 다시 패어졌다. 디젤연료를 싣고 온 주유소 배달원이 물었다.
―아니 땅을 파는 거요, 메우는 거요?
―히히, 둘 다요.
―연료값이 꽤 들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하고 있소.
강물의 먼 쪽에서 노을이 사위고 먼 산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는 저녁 무렵에 송곤수의 불도저에 후미등이 켜졌다. 그때 송곤수의 소형 불도저는 땅을 헤집어 구멍을 뚫는 벌레처럼 보였다.
김철은 모래톱에서 기다렸다. 갈매기들이 단애에서 새까맣게 날아올랐다. 비가 개자 젖은 나무의 비린내가 해풍에 끼쳐왔고 가을빛이 수면 위에서 자글거렸다. 단애 모퉁이를 돌아서 보급선은 물비늘을 헤치며 다가왔다. 갓난아기를 안은 아내와 장모, 민식이가 배에 타고 있었다. 뭍이 가까워지자 배는 속력을 낮추었다. 가족들은 신기루를 헤치고 나타나듯이, 빛이 자글거리는 바다를 건너왔다. 선원이 고리밧줄을 던져 배를 묶었다. 물결에 배가 흔들렸다. 선원들이 아기와 짐을 받아서 뭍으로 건너왔다.
―여보, 둘째예요. 젖 빠는 힘이 겁나요.
아내의 얼굴은 산고의 기색도 없이 발갛게 피어 있었고, 머리카락에서 빛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아내의 몸속에 고이는 체액의 냄새가 아내의 몸 밖으로 번져나왔다. 김철은 아기를 받아안았다. 잠이 들었는지 침을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포대기 속에서 삭은 젖냄새가 풍겨나왔다. 아내의 몸냄새와 닮은 냄새였다. 장모가 말했다.
―이름을 지어왔네. 육지에서 기를 아이니까 물 하(河)를 써서 민하라고 했어.하(河)도 땅이라데. 획수가 사주하고도 맞는대.
선원들은 연료드럼과 건전지 박스를 내려놓고 배를 돌렸다. 등대직원이 보급품을 케이블에 실었다. 김철은 가족들을 케이블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위쪽에 있던 직원이 전동활차를 감아서 케이블을 당겼다.
아내는 가방을 열어서 덜 마른 기저귀와 속옷을 등대 마당에 널었다. 섬에서는 일회용 기저귀를 구할 수 없었다. 장모는 부드러운 면포를 잘라서 기저귀를 만들어왔다. 아내는 기저귀마다 빨래집게를 물렸다. 빨랫줄에서 기저귀들이 바람에 길게 나부꼈고, 가을빛이 기저귀 위에서 출렁거렸다. 바람은 북동풍이어서 기저귀들은 섬의 남쪽 바다를 향해 펄럭거렸다. 손바닥만한 아기바지도 한뼘 가랑이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가족들이 돌아온 날 밤에, 김철은 갓난아기를 가운데 재우고 아내와 나란히 누웠다. 삭은 젖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커튼을 내렸는데도,12초 1섬광의 빛줄기가 등대마당을 비출 때마다 창문에 희미한 나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여보, 우리 정말 육지로 나갈 수 있는 거지요? 학교에서 무슨 연락 있었어요?
―아직은 없었어. 잘될 거야. 저번에 교장이 전화했었잖아.
김철은 잠든 아기를 옆으로 밀쳐내고 아내를 안았다. 부푼 아내의 젖이 김철의 가슴을 팽팽히 눌렀다.
교장이 보낸 부임요청서는 이틀 후에 왔다. 지방항만청 관리과장이 교장이 보낸 문서를 섬으로 전송했다. 복사된 문서에 교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겨울방학 이전에 부임하셔서, 개학 전에 이곳 마을주민들과 인사도 나누고 낯을 익혀주십시오. 외지인을 낯설어하는 산골마을 주민들의 정서를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급여는 방학기간 분까지 지급하겠습니다. 학교 근처에 쓸 만한 빈 농가들이 있어서 조금만 손보면 가족과 함께 기거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외지로 나간 농가주인들과 교섭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교사가 모자라서 김선생님의 담당인 국어과목 안에서도 1,2,3학년을 모두 가르쳐야 하는 사정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주시면 면소재지 버스종점에 자동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해월도에서 근무하던 8급 시절부터 김철은 2급준교사자격 검정시험을 준비해왔다. 교육학개론, 아동청년심리발달, 아동청년생리발달, 교육평가지침, 국어음운론, 국어통사론, 국어발달사 같은 책을 김철은 우편판매망을 통해 사들였다.3교대하는 등대원 생활에서, 악천후 때가 아니라면 책을 들여다볼 시간은 넉넉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시간을 가득 메우는 대낮에 김철은 국어음운론, 국어품사론을 읽었다. 김철은 시험날짜에 맞추어 휴가를 내고 도청소재지로 가서 검정고사를 치렀다.1년에 한 과목이나 두 과목씩 합격했다. 과목별 합격 유효기간은 2년이었다.2년 뒤에 김철은 같은 과목을 다시 응시했다. 등대장으로 승진해서 소라도로 부임할 무렵에 김철은 최종면접과 실습과정을 통과해서 준교사자격증을 받아냈다. 김철은 육지의 여러 중학교에 지원서를 보냈다. 소라도에서 둘째아기를 가진 아내가 임신 7개월이 되었을 때 김철은 강원도 북부 산간마을의 한 사립학교 교장으로부터 부임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김철은 지방항만청에 사직서를 보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김철은 말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는 일이 믿기지 않았다. ‘소’라고 말하면 밭에서 쟁기 끄는 그 소인가. ‘소’라는 소리가 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소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의 실체가 김철은 의아했다. 학교에는 이름을 부르면 뒤돌아보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아이들이 살아서 뛰어놀고 있을 것이었다. 김철이 등대 사무실에서 캄캄한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소, 소, 소, 개, 개, 개를 중얼거리던 밤에 초록색 항해등을 켠 배들은 12초 1섬광을 지표로 삼아 등대를 등지고 원양으로 나아갔다. 등대에는 아무런 배도 닿지 않았다.
―교장선생님이 착한 분 같지요?
교장의 전문을 읽은 아내는 갓난아기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풍향계 화살이 남동을 가리켰고, 빨랫줄에 널린 기저귀가 해풍에 나부꼈다.
송곤수는 닷새째 불도저를 움직이지 못했다. 가을장마에 땅이 젖어서 바퀴가 진흙에 빠졌고, 무한궤도가 없는 타이어식 불도저는 젖은 흙의 하중을 감당하지 못했다. 송곤수는 불도저를 헛간에 끌어다놓고 부품을 뜯어서 윤활유를 칠했다. 관절을 풀어서 찌든 기름을 닦아내고 볼트를 조였다. 타이어 고랑에 묻은 흙까지 말끔히 털어냈다. 관절마다 흰 피스톤이 반짝였다. 삽날 이빨 사이의 녹을 쌘드페이퍼로 벗겨내고 도장용 스프레이를 뿜어주었다. 구동축의 베어링을 풀고 알맹이들을 닦아서 다시 끼워맞추었다. 기름칠을 한 베어링들은 영근 옥수수 알맹이처럼 가지런했다.
아내는 보내준 돈 8천만원으로 LA 한인촌 주택가 골목에 5평짜리 임대점포를 얻어서 1달러짜리 티셔츠를 파는 가게를 열 작정이라고 편지를 보내왔다. 전문면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잡(job)은 그것밖에 없다고 아내는 말했다.
개활지 2천평은 채권은행으로 넘어갔다. 미국으로 달아난 회장은 사촌동생 앞으로 그 땅을 명의이전 해놓았었다. 회장의 사촌동생은 회사 대출금에 보증을 연대하고 있었다. 해고된 사원들은 회장의 은닉 부동산을 색출해내고 압류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덤벼들었다. 땅은 연대보증의 담보로 은행에 저장되어 있었다. 해고사원들은 담보의 권리를 주장하는 은행과 충돌했고 소송을 벌일 기세였지만 양측 변호사들은 은행의 권리가 우월하다는 점에 합의했다. 절차는 적법하게 진행되었다. 송곤수는 국제전화로 회장에게 상황을 알렸다. 회장은 말했다.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이라고, 내가 말했잖나. 전화하지 말게.
가을비가 쏟아지기 전날, 송곤수는 개활지 2천평을 인수한 건설회사로부터 무단점거중인 사유지에서 자진 철거해달라는 통지를 받았다. 강제집행까지 시한은 40일이 남아 있었다.
비는 닷새를 계속 내렸다. 모래가 섞이지 않은 황토흙은 깊이 젖었고 물기가 오래 머물렀다. 비가 개어도 땅이 마르기 전에는 불도저를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었다. 송곤수는 남은 돈을 헤아렸다. 땅이 굳어도 연료비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영농사업자등록이 없어서 면세유를 구입할 수도 없었다.
송곤수는 면소재지 중고장비 가게에 전화를 걸어서 불도저를 흥정했다.
―물건을 봐야 값을 매기지요.
가게주인은 비가 그치면 트럭을 몰고 와서 불도저를 싣고 가겠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닷새 동안 송곤수는 불도저를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 동력전달장치를 풀어서 마디마다 기름을 쳤고 흘러내린 기름을 걸레로 닦아냈다. 강물의 내륙 쪽 유로에 내려앉는 석양이 헛간 안쪽으로 스밀 때 피스톤과 관절들은 피가 도는 근육처럼 발갛게 빛났다. 가게주인은 닷새 후에 왔다.
―아이구, 이렇게 작은 게 다 있었나? 이런 장난감은 어디서 구하셨소. 앙큼하구만.
―얼마나 쳐주실라요?
―이걸 부려서 뭘 할 수가 있나. 텃밭이나 쑤시면 딱 맞겠구만.5백만원 드리리다.
―일시불로 주시오.
―그런데, 이걸로 그동안 여기서 뭘 하셨소? 하루종일 왔다갔다는 하던데……
―왔다갔다 했었소.
가게주인이 트럭 적재함에서 땅바닥까지 비스듬히 철판을 깔아서 비탈을 만들었다. 송곤수는 불도저에 올라탔다. 송곤수는 키를 돌려서 시동을 걸었다. 송곤수는 레버를 당겨서 전진기어를 넣었다. 송곤수는 헛간 밖으로 불도저를 몰고 나왔다. 젖은 땅을 밀어내는 타이어가 흙에 파묻혀 요동쳤다. 타이어 뒤쪽으로 젖은 흙이 튕겨져나갔다. 핸들을 잡은 송곤수의 팔에 오른쪽 타이어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차체의 하중이 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송곤수는 오른쪽으로 급히 핸들을 꺾어서 균형을 수습했다. 불도저는 비탈을 따라 올라가서 트럭 적재함에 실렸다. 비탈을 오를 때 엔진이 검은 연기를 토해냈고 액쎌을 밟는 송곤수의 장딴지가 떨렸다. 송곤수는 적재함에서 뛰어내렸다. 가게주인이 트럭을 몰고 개활지를 내려갔다. 철거시한은 35일이 남아 있었다.
김철은 이삿짐 보따리를 케이블에 실어서 모래톱으로 내렸다. 보급선이 이삿짐을 포구로 옮겨놓으면 거기서부터 택배회사가 강원도 산골마을까지 배송해줄 것이었다. 이삿짐은 일주일 먼저 섬을 떠났다. 숙사에는 이부자리와 기저귀, 젖병 그리고 양재기 몇개가 남아 있었다.
업무를 인계할 후임자를 발령해달라는 김철의 요청에 지방항만청은 한달째 회신하지 않았다. 이삿짐이 떠나던 날 오후에 지방항만청 인사과장이 전문을 보내왔다. 후임 등대장 발령과 후속 인사조치에 관한 사항이었다.
…지방청 내 수로직 6급 중에서 후임자를 선정할 수가 없었네. 인원이 모자라는 사정은 자네가 더 잘 알 것일세. 별수 없이 지금 소라도에서 근무중인 7급 중에서 선임자를 우선 등대장 직무대행으로 발령했네. 청장님 지시일세. 그대신 직원 1명을 충원해서 보내겠네.
새로 소라도에 보내는 직원의 이름은 송곤수, 나이는 55세, 직급은 계약직 임시직원일세.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도산한 대기업 경영진 출신으로 전기설비, 기계설비, 발전설비에 경험이 많은 사람일세. 본인의 말로는 면허는 없지만 중장비도 다룰 수 있다고 하네. 등대에서 발전이나 배전, 장비관리 업무에 유효히 쓸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되네. 본인이 오지근무에 지원했는데, 청장님도 면접보시고 만족하셨네. 송곤수는 11월 5일자 보급선 편으로 소라도에 부임시키겠네. 송곤수가 부임하면 등대 실무규칙을 잘 일러주어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게. 육지로 가는 길에 틈이 있으면 청장님께 들러서 인사드리기 바라네…
송곤수는 이틀 후에 왔다. 김철은 등대장의 의자에 앉아서 송곤수를 맞았다. 송곤수는 긴 코트 위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김철은 지방항만청에서 보내온 송곤수의 이력서를 들여다보았다.
―인사과장한테서 얘기 들었습니다. 연세가 높으신데, 이런 험한 섬을 지원하셨군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대끼다보니……
―여러가지 기술이 있으시더군요. 중장비도 하십니까?
송곤수는 히히 웃었다.
―그저 장난으로 조금……
김철은 송곤수를 데리고 등대 구내를 안내했다. 김철은 등탑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서 등명기가 설치된 꼭대기로 올라갔다. 송곤수가 뒤를 따랐다.
―이게 할로겐 등명기인데, 광달거리 25마일입니다. 전기점화식이죠.
―전기점화라면 나도 배선망을 만질 수 있지요. 저도 좀 배우면 이걸로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할 때 송곤수의 목소리는 머뭇거리면서 떨렸다.
―회전식입니다. 멀리서 보면 섬광으로 보이지요.12초 1섬광.
―그렇겠군요.
김철은 등대장 직무대행을 맡은 7급직원을 불러서 송곤수를 소개했다.7급직원이 송곤수에게 『항로표지실무지침』을 한권 주고 숙사에서 쉬게 했다. 그날 밤 송곤수는 깊이 잠들었다.
닷새 후에 김철은 섬을 떠났다. 보급선은 저녁 무렵에 모래톱에 닿았다. 선원들이 갓난아기를 안은 장모와 아내를 부축해서 배에 태웠다. 배는 후진으로 모래톱을 떠났다. 저물어서 단애로 돌아오는 갈매기들이 높은 목청으로 울었다. 등대직원들이 멀어져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배가 전진으로 돌아서면서 속도를 높였다. 수평선에 걸린 해가 모래톱까지 빛의 다리를 펼쳤다. 빛을 부수며 배는 나아갔고 배 지나간 자리에서 빛들은 다시 들끓었다. 송곤수는 등대 사무실에서 멀어져가는 배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물 위에서 마지막 빛 몇점이 퍼덕거렸다.
송곤수는 18시 25분에 점등했다.12초 1섬광의 빛다발이 저녁의 어스름을 휘저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멎었다. 배는 단애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바람은 동남에서 불어왔다. 맑고 가벼운 바람이었다. 버리고 간 기저귀가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배가 사라진 쪽으로 기저귀는 길게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