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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슬람세계를 경험한다

T. 알리 『근본주의의 충돌』, 미토 2003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jykim@hanshin.ac.kr

 

 

 

9·11 테러사건이 벌어졌을 때, 오래된 갈등이 극적으로 분출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미국이 폭탄을 퍼부을 때, 강자의 무분별한 복수심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진격하자, 미국의 행동양태에 어떤 단순한 복수심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커다란 전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 지금까지보다 더 나쁠지도 모르는 어떤 세계의 도래에 대한 불안이 번지고 있다. 촛점이 북핵문제로 옮겨가고 있는 현재 상황은 한반도가 그런 거대한 전환의 미묘한 분기점의 자리에 놓여 있다는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대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기 위해서 책을 읽고 그도 모자라면 귀동냥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때임에 틀림없다.

이런 느낌이 엷을지언정 넓게 퍼져 있음은 속속 출간되는 여러 종의 이슬람 관련 책들이나 동아시아 상황을 진단하는 책들로 방증된다. 타리크 알리(Tariq Ali)의 『근본주의의 충돌』(The Clash of Fundamentalisms, 정철수 옮김)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이 책이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논쟁의 대상은 쌔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저자는 책 제목대로 현재 이슬람세계와 미국의 대립을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라 근본주의간의 충돌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슬람근본주의와 미국 개신교 일파의 기독교근본주의 사이의 충돌을 뜻하진 않는다. 대립의 한축은 이슬람근본주의지만, 다른 한쪽의 근본주의는 이슬람세계의 사람들에게 근본주의 이외의 출구를 남겨놓지 않은 미국의 군사적 제국주의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타리크 알리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존재하는 대립의 축이 거대한 문명권 전체가 아니라 각 문명권 안의 특정한 분파임을 지적하는 동시에 대립의 인과적 관계를 분명히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도는 설득력있기는 해도 개념적으로 그렇게 견고하지는 못하다. 미국의 군사적 제국주의를 굳이 근본주의라고 개념화할 이유는 없으며, 그런 점에서 그가 제시한 분석틀은 다분히 수사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충돌전체 구성에서도 허술한 구석은 많다. 제1부에서 제3부에 이르기까지 책의 3분의 2 이상이 이슬람세계의 이해를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제4부는 앞부분과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지 않다. 마치 이슬람세계에 대한 분석을 중심에 놓은 책을 집필하던 중에 목전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긴박성 때문에 책의 현재성을 높이기 위해서 머리말과 제4부가 덧붙어 엮어진 듯이 보인다. 책이 자체 완결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구성이 그 자체로 탓할 일은 못된다. 하지만 책 제목이 품게 하는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은 작은 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적으로 말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며, 애초 이 책의 중심부분으로 보이는 이슬람세계의 이해를 위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슬람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이슬람교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 제1부는 이슬람세계의 역사를 간결하고 생동감있게 요약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의 여러가지 교리상의 문제점, 특히 여성억압 문제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동시에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이슬람 내부의 종교적 혁신과 이슬람 페미니즘의 시도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2부에서는 지난 100여년간 이슬람세계가 서구 열강의 침탈 속에서 신음해온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국주의의 침략, 오토만제국의 몰락, 와하브주의와 결합한 이븐 사우드의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서구의 도움으로 발흥한 여러 왕조들과 그들의 민중에 대한 억압, 나쎄르주의의 부상과 몰락, 중동전쟁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그것이다. 그런 사건의 끝에서 타리크 알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보들의 반제국주의’, 그러니까 서구의 지배에 저항하는 이슬람세력들의 어리석은 분열상이며, 그런 저항의 실패로 그들이 빠져들게 된 ‘테러의 바다’이다.

제3부는 시선을 중동에서 남아시아로 돌려, 영국으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의 역사와 서구의 개입으로 인해 두 나라가 빠져든 핵무장, 그리고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상황, 그리고 소련의 침략과 미국의 개입에서부터 탈레반의 지배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이 걸었던 역사를 다룬다.

타리크 알리가 다루고 있는 이런 내용을 여타의 책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비근한 예로 『케임브리지 이슬람사』(시공사 2002)를 통해서도 대체로 섭렵할 수 있다. 그러나 알리의 책에는 그런 역사서에는 없는 어떤 정조가 흐르고 있다. 자유로운 에쎄이 풍으로 쓰인 알리의 글은 사태를 서술할 뿐 아니라 그 사태에 대해 반응하는 이슬람세계 사람들의 분노와 탄식과 저항의 노력들을 생생히 전하며, 사태에 대한 분석과 그 분석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알리 자신의 감정 또한 전한다. 알리의 책에 흐르는 성찰에 동반되는 비애의 감정으로 인해 그의 책을 읽는 행위는 정보의 획득을 지나 공감으로 이끌린다.

타리크 알리의 책이 공감을 유도하게 된 이유는 이 책 자체가 그 자신에게 순례적인 행위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머리말과 제1장은 그런 점을 가만히 내비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슬람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1990년 ‘걸프전’이었다고 말하는 동시에, 어린시절 아무런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향, 파키스탄을 휩쓸고 지나간 인종청소적 종교갈등의 편린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파키스탄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영국 유학을 가서 뜨로쯔끼주의자가 되었던 무신론자 알리는 걸프전을 계기로 근대적인 좌파 정치담론 속에서 억압해온 자신의 존재근거를 되묻기 시작했고, 이 때늦은 학습의 노정에서 형성된 것이 『근본주의의 충돌』이다. 그는 에드워드 싸이드의 말을 빌려 20세기의 가장 커다란 사건은 1917년 러시아혁명일 뿐 아니라 같은 해에 있었던 벨푸어 선언이라고 말한다. 전자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던 그가 이제 후자를 통해서도 세계를 이해하려 하는 셈이다.

역자의 실수라기보다는 출판사 편집진의 실수로 여겨지는 오식과 탈자로 인해 책의 꼴이 좀 엉성해졌지만, 그리고 책 제목이 풍기는 인상으로 인해 혼란을 겪을 수 있지만, 1부에서 3부까지는 빛나는 대목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