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5회 창비신인시인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소설상시상식과 함께 11월 18일(금) 오후 6시 30분 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5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김성대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외 4편
심사위원
김사인 김기택 박형준
2005년 10월
(주)창비
심사평
좋은 신인을 발굴하는 것은 보람있는 만큼 힘들고 조심스럽다. 기존의 유형화된 비유법을 뛰어넘어 자기 나름의 상상력으로 세계를 보는 신인을 찾아내는 것이 선자(選者)들의 취향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심사위원이 예심부터 참여하도록 한 창비신인시인상의 제도에서 나름의 엄정성을 기하려는 고심이 느껴졌다.7백 50명의 응모자들이 보내준 시들을 세 명의 선자들이 나눠 읽고 일차로 20명을 추려낸 다음, 본심에서 심도있게 논의한 응모자는 모두 7명이었다. 군계일학의 신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저마다 만만치 않은 시적 역량을 보여준 예심통과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습작수업을 마치고 문예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하지만 한 선자의 말처럼 ‘고만고만하게, 잘 쓴 작품들’이 많은 탓인지 심사위원 각자가 염두에 두고 뽑아온 응모자들이 거의 겹치지 않았다. 결국 논의 끝에 한 작품씩 제외해나가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박봉희씨의 작품은 카메라로 찍어낸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이미지의 선명함이 돋보였으나 작품의 편차와 시인으로서의 개성이 부족한 것이 흠결이었다. 김윤희씨의 작품 역시 감수성이 좋으나 정제되지 않은 시적 표현에서 나타나는 수다와 ‘나울나울’ 등의 의태어가 시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의 참신성으로 현실을 알레고리로 드러내고 있는 배지웅씨의 작품은 시적 발랄함에 비해 절실성이 부족했다. 「사물함」 「무제」 등을 보내준 김연희씨는 시적 훈련이나 기량이 잘 눈에 띄지 않는 반면 그 너머에 아주 신선한 감각이 있다. 그러나 손때 묻지 않은 ‘원석’ 같은 감각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일 수 있지만 시가 지속적인 학습과 수련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심사과정에서 선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본심통과작 중에서 운문형의 시보다 산문형으로 된 알레고리나 환상적인 시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단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 경향뿐 아니라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응모자들에게서도 이런 현상은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다. 이것이 현대시의 부인할 수 없는 문화적 감수성이며 시적 현실이라면 이런 감수성이 좀더 곰삭아서 우리 시의 새로운 산맥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포용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랫동안 토론된 응모자는 박기영씨와 김효진씨였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외 8편을 보내준 박기영씨의 작품은 대단히 유려하다. 기존의 시 어법에서 탈피한 신세대적 상상력 안에서 심미적 균형감을 갖추고 있다. 시어나 상상력을 전개하는 흐름에 있어 거의 꺼칠꺼칠함이 느껴지지 않게 잘 만져낸다. 하지만 젊은 시인들이 즐겨 쓰는, 그 세대에서는 익숙한 시적 문법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 응모자의 앞날은 발랄과 재기를 가장한 나름의 상투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와 달리 「이상 식으로 쓴 연서」 외 8편을 보내준 김효진씨는 시에 지적 통제력을 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기 세대의 일상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음을 생래적인 순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지니는 소박성, 일차원성이 작지 않은 난제였다. 장기적으로 자기수련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연초록의 새 힘으로 바퀴를 밀어준 오월의 잔디”(「의자 위에도 봄이 왔어요」)와 같은 순수성이 미적 견고성으로 이어져 다음 세대의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본심통과작들의 발랄하며 환상적인 언어가 만발한 가운데 김성대씨의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외 9편의 작품이 남았다. 그는 전통 서정시를 계승하고 있는 빼어난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식물성의 언어에서 뽑아올린 자연스런 시상의 전개를 통해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천성적인 서정의 눈길이 발군이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둔 열정을 “잔설처럼 남은 햇살”(「빨래하는 여자」)에 비유하고,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들의 발톱에서 반짝거리는 먼 별’(「물옥잠」)을 포착할 만큼 그의 시편들은 예민하다.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의 시편들 속에서 고전적이고 안정되어 있는 섬세한 감각이 미덕으로 다가왔으며, 내면의 구심점이 뚜렷한 점 역시 여린 듯한 감수성에 어른스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응모작 중에서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물옥잠」 등의 시가 이에 해당된다. 반면 「춘천 은희」 같은 시편에서처럼 절제와 긴장이 늦춰지면 감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金思寅 金基澤 朴瑩浚
당선소감
김성대
1972년 강원도 인제 출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
지난여름 미시령에 갔다. 장마의 뒤란, 안개가 골짜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길을 꽉 잡으며 아직도 서툰 운전연습을 했다. 동승한 친구들의 얼굴에서 불안이 피어올랐다. 미시령을 벗어나 내가 태어났다는 곳에 잠시 내렸다. 출생지라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곳. 그래도 배꼽이 조금 간지러웠고 목이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시와 대면했지만 나는 시작(始作)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시를 만나지 못했다. 일상의 축제와 헛구역질만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때론 민화처럼 납작하고 즐겁게 때론 거칠고 무거운 밀담으로 시절들이 흘러갔다. 연주되지 않는 악보와 반성 없는 기록들이 하나둘씩 음영 없는 그림자로 사라져갔다. 안개 짙고 가파른 고갯길에서 운전연습을 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잘못된 이야기들과 무모하게 동거해왔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닿는지도 모르고 가닿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난여름 나는 질문들을 가지고 놀았다. 알 만하다고 주억거렸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했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다. 질문이 다른 질문을 불러오고, 질문의 파장이 동심원으로 퍼져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대답은 질문의 경로를 헤매는 흔적일 뿐 중요한 건 질문을 캐내는 일이었다.
그러다 처음 질문과 다시 맞닥뜨렸다. 이번에는 주어와 술어가 반대로 되어 있었다.“무엇이 시인가.” 처음에는 이미 ‘쓰인 시’를 가지고 “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이번에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쓰는 시’에 대해 “무엇이 시인가”라고 묻고 있었다. 문득, 그런 태도를 취할 때 현재형으로서 시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의 생명력이 계속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질문들과 함께 긴 여름이 갔다. 지금 미시령에는 단풍이 휘황할 것이다. 기온차 큰 삶 속에서도 곱게 단풍 들어가시는 어머니와 내년이면 회갑을 맞으시는 아버지께 감사하고 송구스럽다. 조금 이상한 사위를 늘 귀엽게 봐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큰절을 올린다.
큼직한 가르침을 주셨던 윤재근 선생님께 인사 올리고, 늘 격없이 실천적인 가르침을 베푸시는 박상천 선생님과 이상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미리 시인이라 불러준, 누구보다 기뻐할 석진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망가지면서도 서로 다독이던 명연형과 창운에게 고맙고,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여행을 같이 꿈꾸는 동화와 선희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그리고 나의 첫번째 독자인 상미와 온전히 기쁨을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정표를 세워주신 심사위원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이 시작은 꼭 기억할 것이다.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시인상시상식과 함께 11월 18일(금) 오후 6시 30분 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김사과 「영이」
심사위원
은희경 임규찬 임홍배 김영하 백지연
2005년 10월
(주)창비
심사평
창비신인소설상이 올해로 8회를 맞는다. 가능성있는 신인은 어디에서건 예고없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마련한 등용문이 이들의 존재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증가한 응모작의 숫자(총 659편)는 좋은 예감으로 다가왔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응모작들이 보여주는 소재의 다양성과 비교적 밀도 높은 문장들은 좋은 작품을 발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주었다. 물론 신인과 기성문인의 경계를 오가는 모호하고 불안정한 작품도 많았다. 패기와 도전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급급해 정작 본질적인 주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반대로 안정된 형식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기존 문학과의 차별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당대의 문학적 고민을 함께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얼굴을 찾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본심을 통과한 19편의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집중 거론된 작품은 5편이었다. 박선우의 「크랙」은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남자와 뇌사상태에 빠진 그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삼아 균열의 일상에 대한 성찰을 엮어낸 소설이다. 차분하고 안정된 문장, 세밀하게 공들인 관찰적 묘사의 힘은 이 소설이 드러내는 뚜렷한 장점이다. 그러나 가족적 일상으로부터 파급되는 균열의 위기를 응시하는 작중화자의 시선이 수시로 드러내는 감상적인 일면은 소설의 차분한 묘사력이 갖는 힘을 떨어뜨린다. 결말부분에서 안전진단을 의뢰했던 집주인이 털어놓는 의외의 사연들도 돌연한 사건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소외의 풍경을 담아내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예각화되지 못하고 사건을 엮어나가는 데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하언의 「차가운 손」은 산부인과 여의사를 통해 제도와 관습에 질식당할 수밖에 없는 사랑, 가족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일단 스토리의 흡입력이 있고 주인공의 행로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가족제도가 부여하는 상처와 결핍을 견뎌내는 주인공의 대응방식이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다가왔다. 주관적 심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서술방식이나 정교함이 떨어지는 문장들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박정윤의 「에이전트 오렌지」가 소재로 삼은 궁핍의 현실이나 국제결혼의 문제 등은 자본주의의 모순적 삶이 전면화된 우리의 일상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담담하게 인물의 사연을 풀어가는 작가의 차분한 서술방식은 소외된 삶에 대한 감정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잔잔한 세태묘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소설의 결말은 왜 이러한 소재를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명전의 「더티 와이프」는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심하게 만든 작품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 섬세한 심리묘사는 기성작가 못지않은 완결미를 자랑한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에피쏘드를 축적해나가는 힘이며, 물화된 소외의 풍경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결핍의 심리를 서정적으로 드러낸 장면들도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뛰어난 솜씨가 ‘리얼 돌’(real doll)이라는 문명비판적 소재와 안이하게 연결되는 감상적인 서술의 행로는 진부한 결말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최근 소설들이 유행처럼 내세우는 문명비판의 상상력을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한계로 다가왔다.
거듭된 토론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사과의 「영이」는 전통적인 소설의 형태에서 바라볼 때 불안하고 미숙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 작가가 보여주는 과감하면서도 경쾌한 어법이 무의미한 언어유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성장이나 가족 모티프에 집중된 글쓰기 방식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그러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고립과 결핍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민한 시선을 통해 절실한 감정들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호감을 준다. 무심하고 가벼워 보이는 문장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직정적(直情的)이고 절박한 육성은 폭력과 애증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고단한 가족일상을 개성적으로 주조해낸다. 가족일상에 대한 쿨하고 매끄러운 경멸적 시선, 혹은 동경과 집착의 시선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이 솔직한 아웃싸이더의 화법은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도전적인 첫걸음이 앞으로 우리 소설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더불어 창비신인소설상 공모에 관심과 열정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건필과 정진을 기원한다.
殷熙耕 林奎燦 林洪培 金英夏 白智延
당선소감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재학중
정말로 사랑한 개가 한 마리 있었다. 그 개도 나를 아주 사랑했다. 나는 그 개를 위해서 글을 썼다. 가끔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꺼지라고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개를 떠올리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글만 쓰려고 하면 놀아달라고 보채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그 개를 위해서, 나는 글을 썼다. 그런데 어느날 그 개가 사라졌다.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감했다. 이제 나는 누구를 위해 써야 하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영원토록 생각해도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썼다. 앞으로도 계속 그냥 쓰겠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개는 사라졌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겠다. 살아남아서 아주 많이 쓰겠다. 쓸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것으로 그 개와 멋지게 이별하고
단정히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제12회 창비신인평론상 심사평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한 창비신인평론상은 창비의 신인문학상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시각과 언어로 무장한 신예비평가를 꾸준히 발굴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한국 비평계에 활기와 역동성을 부여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비평적 개성의 출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는 최근,2년에 걸쳐 연속해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면서 안팎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올해 신인평론상 부문의 응모작은 총 20명 21편으로 평균적인 분량이었지만, 고른 수준과 다양한 시각, 독자적인 문제의식 등 전반적으로 질적인 향상이 두드러진 편이어서 3년 만에 당선작을 낼 수 있으리라는 좋은 예감으로 심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았던 탓일까, 안타깝게도 올해 역시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심사위원들은 1차로 21편을 돌려 읽고 추려낸 6편을 중심으로 2차 논의에 들어갔고, 그 가운데 특히 함돈균과 문혜윤의 2편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심사과정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응모작들은 아래와 같다.
‘귀환’ 모티프를 중심으로 황석영의 최근작에 나타난 ‘방법적 쇄신’을 논한 류수연의 「귀환의 서사, 모성의 회복을 꿈꾸다」는 의욕적인 착상이 돋보이고 특히 『심청』을 재평가하려는 독자적인 문제의식이 눈길을 끌었지만, 텍스트를 정밀하게 독해하고 그것을 일반적인 결론으로 이끄는 능력에서 미숙한 대목이 더러 눈에 띄었다. 한편, ‘시간의식’에 촛점을 맞춰 1990년대 이후 이시영 시의 변모과정을 조명한 오윤정의 「시간과 기억의 재생술」은 일관된 논지와 온건한 균형감각에 비해 평자의 독창적인 시각이 부족하여 평가보다는 분석이 승한 논문식 평론이 되고 만 아쉬움이 있었다.
시인론 분야에서는 각각 다른 접근방법을 취한 두 편의 김기택론이 주목을 받았다. 박정선의 「일상의 고현학(考現學)」은 우리 시대의 도시적 일상에 집요한 관심을 기울여온 김기택 시의 고현학적 측면에 주목하며, 강영준의 「속도를 거스르는 시의 모험」은 김기택 시의 주제와 전략에서 현대문명의 무한속도경쟁을 거스르는 ‘시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발견한다. 그런데 박정선의 글에는 종종 치밀한 분석보다 상식적인 일반화가 앞서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그의 글은 작품 자체에 직핍하기보다 대상에 대한 어떤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이런 규범적 성향은 안정된 어조와 꼼꼼한 논지 전개력이라는 그만의 미덕을 가리고 있다. 강영준의 글은 상대적으로 분석의 촛점이 명확하고 설득력도 있으며, 논지의 일관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기택의 시적 전략이 지니는 맥락과 의미에 대한 적극적 평가가 너무 소략한 편이다. 평론가에게 한편의 글이 한번의 지적·정신적 모험에 값하는 것이라면, 그의 글에서는 이런 비평적 투기(投企)의 태도가 아쉽게 느껴졌다.
함돈균의 「실재 없는 거울, 현실 없는 허구―그 이상한 나라 캔디들의 찬가에 대하여」는 정이현 소설에 나타난 새로운 욕망의 존재방식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바야흐로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우리 시대 소설의 위상과 문학의 미래를 타진하는 의욕적인 착상이 돋보였다. 그의 글은 발랄한 감각과 진지한 문제의식, 세부와 전체를 아우르는 스케일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비평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분석 능력에서는 완전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작가론이라기에는 정치한 작품분석이 부족하고 일반론이라기에는 특정 작가에 지나치게 의존한 글의 형식적 애매함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평적 독자의 소멸이나 소설의 반성적 기능 상실이라는 이 글의 주장은 그 자체로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이현 소설이라는 특정한 징후나 예시만으로는 이런 문학적 정황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하기 어렵다. 함께 투고한 김선우론에서도 비슷한 성취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올해의 응모작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 문혜윤의 「‘그’의 프로필―김영하의 서술자에 대하여」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커지는 최근 소설의 형식적 변화를 다매체사회의 도래라는 현실적 변화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문혜윤의 글은 분석의 수준이 적절하고 분석의 촛점도 비교적 명확하며, 세부적인 현상에서 출발하여 일반화된 결론으로 나아가는 유려한 솜씨가 돋보인다. 그러나 정교한 분석에 비해 비평적 패기가 모자란 느낌이고, 김영하 소설의 예술적 성취와 한계에 대한 적극적 평가도 지나치게 자제되어 있다. 서술자의 위상 변화에 내포된 문학사적 의미가 실제 분석에서는 ‘매개자적 속성’이나 ‘미래완료의 화법’ 등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수 없는 결론으로 축소되는 현상도 아쉽게 느껴졌다.
심사위원들은 문혜윤의 글을 두고 마지막까지 망설였으나, 고심 끝에 결국 올해도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합의했다. 분석과 평가, 텍스트 장악력과 자기주장이 완미하게 결합된 새로운 비평적 개성의 출현을 고대하며, 응모자 여러분의 건필과 정진을 아울러 기원한다.
金英姬 陳正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