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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과학사상연구회 엮음 『온생명에 대하여』, 통나무 2003

온생명론의 사상사적 함의

 

소광섭 蘇光燮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kssoh@phya.snu.ac.kr

 

 

온생명에대하여

최근 가톨릭 서울대교구는 ‘성체줄기세포’연구에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배아줄기세포’가 갖는 생명윤리 문제를 피하면서 각종 난치병 치료에 서광을 비추는 생물연구에 종교계가 직접 후원을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라 하겠다. 이른바 생명공학 또는 유전공학 등의 발전으로 생명과 윤리 및 종교의 문제가 일상의 화제가 되었다. 이제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만큼 실제적인 문제가 된 셈이다.

사실 ‘생명’ 에 대한 철학과 사상 및 과학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학자들의 관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명쾌한 답이 제시된 바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장회익(張會翼) 교수가 현대과학에 바탕한 생명의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다.‘온생명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온생명’의 정의는 현대 물리학과 생물학의 성과를 총망라하여 종합한 결과로 출현한 이론인만큼 매우 현학적인 진술로 되어 있다.“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질서가 형성 지속되어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삶과 온생명』 178면).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태양–지구로 구성된 태양계 전체가 하나의 ‘온생명’이다. 이것은 생명현상이 자족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단위이며,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의 단위라는 것이다.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생물들은 ‘낱생명’(individual life)이며, 이들은 온생명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 단위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온생명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나의 낱생명은 온생명 내에서만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이를 ‘보생명’co-life이라 함)에의지하여 삶을 영위한다. 온생명은 태양–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이므로 행성이나 달, 공기, 바다를 무생물로 보는 기존의 익숙한 생명관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면서, 산이나 강, 바위까지 생명체로 보는 원시적 생명관을 포괄하기도 하지만 종래의 생기론(生氣論)이나 미신과는 차원이 다르게 과학적이란 점에서 특별한 의의가 있다. 또한 인간적 의식의 출현을 온생명의 중추신경계의 형성으로 보는 관점도 지금까지의 어느 생명관과도 다른 탁월한 생명사상이라 할 수 있다.

온생명의 개념은 1988년 봄 유고슬라비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있었던 ‘국제과학철학 모임’에서 처음 발표된 이래 국제적으로는 『자이곤』(Zygon)지에 “Human Being in the World of Life”로 발표되고, 국내의 여러 학술회의에서 토론되었으며 『삶과 온생명』(장회익 지음, 솔 1998)이란 저술로 출판된 바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제4호, 2000년 5월)의 특집주제로 선정되어 「온생명과 인류문명」이란 논문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바도 있다. 『온생명에 대하여』는 관련 학계의 적지않은 관심 속에 온생명사상이 조금씩 깊이와 넓이를 키워가는 중에 2003년 장교수의 퇴임을 맞이하여 11명의 각계 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온생명사상을 비판하고, 질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글을 써 모은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첫 소감은 온생명사상이 얼마나 광범위한 함의를 갖는가 하는 놀라움이다. 이는 단순히 생명의 단위에 관한 학술적 전문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메타과학’(meta-science)으로서 과학철학적 측면과 생명의 철학으로서 영혼과의 관계(소흥렬), 온생명의 정신을 천지의 마음과 대응시키면 낱생명과 보생명의 상보적 관계는 주역의 음양대대(陰陽對待)적 관계에 대응된다고 보는 동양사상과의 관련성(최영진), ‘온생명의 윤리학’으로 시작하면서 고찰한 온생명과 과학문명의 관계(신중섭),“온생명 개념을 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자연철학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비판하면서 제기하는 형이상학과의 관계(이봉재),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데까르뜨·니체·베르그쏜·딜타이 등 철학사에서 제기되어온 생명의 문제를 개괄하면서 제시하는 온생명론의 생명철학적 의의와 현대 생태사상과의 관계(구승회), 온생명의 독립성과 자족성 측면에서 고려되는 라이프니츠의 ‘단자’와의 관계, 스피노자의 무한실체로서의 신과의 관계, 법장의 화엄사상 및 용수보살의 중론(中論)사상과의 관계, 생명의 단위라는 측면에서 토인비의 문명의 단위와의 관계, 그리고 러브록의 지구생명론(가이아 학설)과의 관계(조용현), 과학적 측면에서 가이아와 온생명의 닮은 관계와 서로 다른 관계(홍욱희), 불교의 연기론에서 보는 생명세계의 구조와 온생명론의 관계 및 화엄철학의 육상원융(六相圓融)에서 본 낱생명과 온생명의 관계(양형진),NASA의 지구권외 생물학 프로그램 등 현대 생물학적 생명의 정의와의 관계(강광일), 물질과 생명의 존재론적 범주구분 관점에서 보는 요나스의 생명철학과의 관계(김재영), 개체주의적 생명관 및 범생명관과의 비교에서 본 온생명관의 범주적 관계, 가치관의 성격 및 윤리학적 의미의 상호관계(최우석). 이 논문들을 읽으면 생명의 기본단위에 관한 고찰이 생태와 환경, 종교와 윤리, 문명과 과학, 주역과 불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 어떻게 깊숙이 관련되는가를 볼 수 있으며, 이 사상의 광대함을 짐작케 한다.

이 열한 편의 글들은 온생명론에 관한 우호적 비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온생명론이 더욱 정치한 이론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그 의의를 논하고 부족한 점을 밝히며 더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최우석의 「환경윤리 관점에서 본 온생명론」은 현재 환경윤리학 분야가 크게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와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 양 축으로 나뉘는 ‘가치 패러다임의 이분구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온생명관에 입각함으로써 환경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여는 가치관을 얻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온생명론은 현대 과학문명이 부딪힌 제반 문명사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보고 근원적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원대한 사상이지만 아직은 학설 수준에 이를 만큼 정치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의견들이다. 이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장회익이 「회고와 반추: 기여 논문들에 대한 답글을 대신하여」에서 간략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온생명사상이 나오게 된 개인적 회고를 곁들였다. 어쩌면 이 마지막 글을 먼저 읽고 나서 열한 편을 숙독해보는 것이 온생명론의 쟁점을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성싶다.

이 책은 장회익이 온생명사상의 철학적 관점과 환경과 문명의 위기에 관한 함의를 담은 첫글 「자연, 환경인가 주체인가: 온생명론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에서 보여주듯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환경이라는 생존의 조건 정도의 개념 대신에 ‘보생명’이라는 대등한 생명의 용어로 바뀌었다는 것이 한 예가 되겠다. 김재영의 글을 인용하면 이 전문적 술어의 변화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 있는 천연의 습원을 보호하려 하는 사람들이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하면서 흥미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이 그것인데, 신청인은 ‘도롱뇽’이고 신청인의 대변자가 ‘도롱뇽의 친구들’이다.(…) 이 소송은 소송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 외에도 꼬리치레도롱뇽이 1급수 지표종이라는 점 때문에 흥미롭다. 온생명론의 용어로 말하자면, 꼬리치레도롱뇽은 인간이라는 개체생명에게 보생명의 일부이다. 인간이라는 개체생명이 보생명에 존재하는 물 중에서 그 생존에 유리한 1급수를 판별하기 위해 꼬리치레도롱뇽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롱뇽 소송’을 통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꼬리치레도롱뇽이라는 개체생명에게 인간이 보생명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2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