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백석문학상 발표
백석문학상의 제7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으며, 상금은 1000만원입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11월 18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7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정양(鄭洋)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심사위원
본심: 백낙청 황현산 이시영
예심: 김수이 김행숙 박성우
2005년 10월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2005년 9월 13일 모임에서 제7회 백석문학상 심사위원으로 백낙청·황현산·이시영 3인을 위촉하고, 예심위원 선정은 예년과 같이 운영위원 중 문단인사에게 위임하였다. 이에 따라 심사대상 시집이 없는 인사로 김수이·김행숙·박성우 3인을 예심위원으로 위촉하고,각자가 4권 이내의 후보작을 추천토록 의뢰했다. 세 사람은 각기 4권의 시집을 추천했는데,3권이 중복되어 아래와 같은 9권의 시집이 본심대상이 되었다.
김신용 『환상통』, 박형준 『춤』, 송재학 『진흙 얼굴』,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오규원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이경림 『상자들』, 이문재 『제국호텔』, 정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천양희 『너무 많은 입』.(가나다 순)
본심은 10월 27일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김신용·박형준·이문재·정양 등의 시집으로 대상을 압축하였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김신용과 정양의 시집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중에서도 감정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있는 것들의 예지와 훈기를 보여준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의 깊이있는 울림을 높이 평가해 기쁘게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평
白樂晴 문학평론가
박형준의 『춤』이 심사위원들의 고른 칭찬을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후보로 남은 것은 삶의 무게가 더 짙게 느껴지는 김신용과 정양의 시집이었다.
김신용의 『환상통』은 노동하는 삶, 때로는 노동에서조차 탈락한 삶의 실감이 가득하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요즘 시단의 흐름 속에서는 귀중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표제작을 비롯해서 「물렁해, 슬픈 것들」 「幻?」 「比目魚」 「그 두 발」 「아내의 재봉틀」 등 여러 작품은 단순히 가난과 비참을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렬하고 개성적인 이미지의 시를 만들어낸다. 다만 이런 작품조차 더러는 조금 짧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설명적으로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양의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도 제1부의 고향마을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는 무언가 최선에 미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초기 『만인보』 시편에서 익숙해진 정서가 지배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투리로 된 연(聯)을 끼워넣는 기법이라든가 「내외」나 「작대기」 같은 작품적 성취가 모두 이 시인 고유의 것이려니와, 제2부에 이르면 또다른 경지가 열린다. 시인 자신 및 우리 사회의 현재 삶에 밀착한 시편들일 뿐 아니라, 「어금니」 「꽃불」 「낙화암 2」 같은 시에서 만나는 분노, 허탈, 관용, 애정 등 복합적 감정의 절묘한 균형은 뛰어난 시적 역량을 증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상작으로 손색없는 시집이라는 데 나 또한 기꺼이 동의했다.
그밖에 이문재의 『제국호텔』도 감명깊게 읽었다. 요즘 한국시단에는 생태주의 시가 가위 ‘범람’의 수준이지만, 생태적 감성이 진실한 서정 및 정련된 언어와 만나는 경우는 드문 만큼이나 값지다.
이경림의 『상자들』은 때로는 시 자체가 상자에 갇혀버린 듯 답답하고 때로는 감정의 토로가 너무 직설적인 점이 흠이지만 「동백 울타리」 「머리칼 이야기」 등 훌륭한 시편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천양희의 『너무 많은 입』과 송재학의 『진흙 얼굴』은 각기 유형을 달리하면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시집이었다. 이에 비해 오규원의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나 안도현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는, 역시 여전한 솜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매너리즘으로 굳어지는 기미가 더러 보이는 점이 불만스러웠다.
黃鉉産 문학평론가
본심 막바지에 두 시집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김신용 시인의 『환상통』과 정양 시인의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각기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환상통』은 도시의 밑바닥과 변두리에 ‘버려진 사람들’의 하나가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산한 삶을 살아온 시인이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 없는 고통의 자리들을 단정하고 명석한 언어로 짚어내어 진지하게 성찰한 시집이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어디에나 왜곡된 문명과 고통받는 삶의 관계를 드러내는 철학적 알레고리가 있다. 그러나 그의 성찰은 지나친 열정의 탓으로 자주 답답하고 폭압적인 언어를 몰고 온다. 어쩌면 시인이 너무 길게 너무 많이 말하고 있는 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 같다.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이제는 벌써 옛일이 되었다기보다 차라리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 한 시대 전의 농촌풍물을 비애와 해학의 언어로, 다시 말해서 푸짐한 전라도 방언으로 엮고 풀어낸 시들을 1부에 담고, 그 해학이 물러가고 그 비애마저 힘을 잃는 자리를 쓸쓸하게 지켜내는, 그러나 그 쓸쓸함의 힘으로 새로운 시의 길을 어렵게 모색하는 시들을 2부에 담고 있다. 풍성하고 구성졌던 한 집단의 언어에 아득하게 적막한 한 시인의 언어가 대비되어 빚어지는 아름다움은 비극적이다. 이 시집을 백석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나날의 삶이 가난하지만 즐거운 잔치이기도 했던 산골 농촌의 가멸진 정서와 나라 잃은 백성의 북방정서를 차례로 읊었던 백석의 문학적 생애를 다른 조건과 다른 형식으로 만난다는 감회 또한 없지 않다.
李時英 시인
좋은 시는 그것 자체로 생동하게 마련이다. 정양 시집은 언뜻 보면 오래된 재래의 서정시들인 것 같지만 내용의 교훈주의나 시적 방법의 낡음에서 벗어나 우선 그의 시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가 스스로를 말하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정양 시들이 모두 이처럼 살아있는 것만은 아니다.1부의 ‘설화 속의 농촌시’들 중 어떤 것들, 이를테면 「판쇠의 쓸개」나 「호랑이 피」 같은 그만의 곡진한 서사성과 화법의 독자성을 상실한 시들은 지나친 사투리의 사용과 저자의 단조로운 개입으로 시가 본디 드러내고자 한 사물의 실상(實像)이 그의 육성에 의해 가려진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인은 ‘뜻이 세면 소리가 죽는다’고 하는 판소리를 원용한 최원식의 최근 시론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은 2부의 ‘현재’로 넘어오면서 돌연 생동하는데 “미당 선생 고향에 묻히는 날/어금니 뽑으러 치과에 간다”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시작”되는 「어금니」로부터 「백초즙」 「가을 햇살」 「기울던 햇살이」 「참숯」 「별」 「봄비」 「음주운전」 등 어느것 하나 버려야 할 것들이 없이 범속(凡俗)을 뛰어넘어 시적 수일(秀逸)에 닿는다.
말하자면 2부에 수록된 편편은 이순을 훌쩍 넘긴 이 삼남(三南) 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혼자 발견하고 혼자 감당하며 혼자서 다독거려온 양심과 고독의 시들로 때론 긴장하고 이완하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예지와 훈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안으로 따뜻하고 밖으로 얼음처럼 차갑다. 그러면서도 정다운 이웃들과 나긋나긋 이야기하는 듯한, 마치 판소리에서처럼 청자(聽者)를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대화적인 시쓰기 방식도 이 시집이 가진 미덕 중의 하나다. 쉬운 시가 최고의 미덕은 아니지만 이 시집 전편에 소위 타자와의 소통을 거부한 시는 단 한편도 없다.
이밖에도 끝까지 나의 관심을 끌었던 시들은 박형준의 시집 『춤』 중 표제작인 「춤」과 「흔적」 「밤 산보」였는데, 특히 「밤 산보」는 “고독은 습관적으로 비둘기를 사냥한다”에서부터 “야외공연장의 난간에서 고독은/다시 냄새를 맡는다”까지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된 언어와 리듬으로 고양이의 습관적인 비둘기 사냥을 그야말로 잡아채듯 묘파한 수작이다. 그러나 이 시인의 약점은 모든 살아 움직이는 사실들을 환상으로 대치시켜버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의 결과들을 “고통의 미묘한”(「빛의 소묘」) 빛 속에 가두어버린다는 점이다. 현실의 드넓고 푸른 하늘을 향해 그의 시들이 좀더 툭 터질 수는 없을까?
체험의 직접성이 형상을 압도하는,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시들을 산문적 지상으로 끌고 내려오고 마는 김신용의 『환상통』(그러나 「환상통」 「그 불빛」 「아내의 재봉틀」은 최고의 성취에 다다랐다고 본다), 오규원의 진지하고도 그칠 줄 모르는 실험, 이경림의 ‘상자’에 대한 그 끈질긴 집착(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집착이 오히려 ‘시’를 휘발시켜버린 측면이 없지 않다), 나로서는 처음 완독한 송재학의 『진흙 얼굴』도 수려했다. 그의 「국경」이나 「순수」는 모든 풍경이 그의 내면에 걸어들어와 일점에서 균형을 이루는 듯한 ‘순수시’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의 감수성이 편벽된 것인지 모르지만 (하기야 엘리어트도 어느 강좌에서 “가장 숙달된 비평가조차도 필경에는 그에게 진품으로 보이는 시를 가리킬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내 기억을 강타한 정양의 시들을 압도하진 못했다.“누가 보거나 말거나”(「꽃불」) 그의 시들은 생활하는 사람들의 정서로 경건하게 빛났다. 아니 고적하게 빛나고 있다. 전통에서 일탈하는 것이 임무인 70년대생들의 ‘다른 서정들’이 바로 그 70년대 이래 한국시가 유신독재와 고투하며 쌓아온 소중한 문학적 자산 중의 하나인 ‘민중성’을 극단에서 해체하면서 이른바 다른 ‘감각의 제국’을 세우고 있는 시대에 특히 그의 백석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수상소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정양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까마귀떼』 『수수깡을 씹으며』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눈 내리는 마을』 등이 있음.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백석 시인의 시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옛날 내 신춘문예 당선작품에도 바로 거기서 따온 ‘높고 가난하고 또 쓸쓸한’이라는 말이 섞여 있다.38년 전, 대한일보 문화부에서 일하시던 박재삼 시인한테서 신춘문예 당선통보를 받는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나는 퍼뜩 그 구절이 떠올라 혼자 낯붉히던 기억이 새롭다.
끊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담배를 꺼내어 막 불을 붙이기 직전에 수상소식을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다. 신춘문예 당선통보를 받던 38년 전과 어쩌면 이렇게 그 느낌이 비슷한지 어안이 벙벙한 중에도, 시방 내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은가 싶어 스스로 계면쩍기도 했고, 나로서는 가늠하기 한참 어려운 백석 시의 높이를 되짚어 떠올리면서, 내가 평소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선후배 동료 시인들의 시를 떠올리면서 나는 또 자꾸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소년시절의 되풀이되었던 가출처럼, 몇차례나 시쓰기를 그만두었다 말았다 했던 부끄러운 내 시의 길을 뒤돌아보면서, 낯을 붉힌 채,담배에 다시 불을 붙인다.
문학소년 시절, 어렵사리 백석 시를 찾아 읽으면서, 비록 높지는 못할지 몰라도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아가는 데에는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던,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 ‘높고’의 필요충분조건인 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한치 앞을 모르는 채 끝끝내 헛것에 매달려 살다 가는 게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비록 높지는 않을지라도 나이 들수록 사람들은 거의 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다 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잽싸게 알아버린 가을바람이 자꾸만 내 반백의 머리칼과 붉힌 낯빛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새로 시인이 된 것만 같은 가을날 오후의 담배 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