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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실미도에 대한 명상
신대철 申大澈
시인
1989년 가을 어느날 나는 처음으로 실미도에 들어갔다. 주문도나 덕적도 일대의 작은 무인도를 떠돌다가 우연히 들른 섬이었다. 그곳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실미도라는 것을 아는 순간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잊고 있었던 어두운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돌아설까 하다가 그대로 들어갔다. 현장에 다가갈수록 오히려 다리에 힘이 느껴졌다. 둔덕을 넘어 다리에 긴장이 생길 만한 지점에서 바다가 트였다. 수평선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사람이 없어도 우물에는 물이 솟고 있었다. 우물가엔 무너진 계단 조각이 굴러다녔다. 그때 실미도는 그냥 폐허였다. 시멘트로 만든 지형도 몇개와 불에 타다 남은 나무토막, 칡덩굴로 뒤덮인 연병장과 막사터, 단두대같이 떠오르던 수평선, 죽은 이들의 혼령같이 어른거리던 해당화와 참꽃마리…… 그 모든 사물들이 한데 어울려 형장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공작원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따가운 포옹과 몸 자국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마치 그때 그 현장으로 되돌아가 공포와 굶주림과 불안 속에서 더듬더듬 돌아오고 있을 그들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계속 오는 중이고 나는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만 가도 마음은 덜 무거웠다. 내 시 「실미도」(『창작과비평』 2001년 가을호)는 그때 초고가 잡혔다. 그후 나는 북극으로, 고비사막으로 떠돌아다녔다. 순수한 삶의 원형을 복원하고 싶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와 다시 실미도를 드나들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고 ‘빗방울화석’ 시인들과 함께 가기도 했다.‘빗방울화석’ 시인들과 같이 갔을 때는 녹슨 스테인리스 국자를 발견하고 모두들 실미도가 비극적인 현장임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은 그 고통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나는 2000년부터 실미도를 아예 ‘시와 체험’ 과목의 야외실습장으로 삼았다.
작년 여름엔 학생들과 실미도에 들어가려다 쫓겨 나왔다. 어느새 영화쎄트장이 되어 있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시야가 막힌 망루 위치와 넓어진 막사 자리가 낯설었고 실감을 주려고 세운 건물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훼손된 역사적 현장에는 산길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닳고 닳은 돌과 울퉁불퉁한 축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사건의 실상이 제대로 밝혀지기 전에 영화가 제작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사실을 알기 전에 영화만 본 젊은이들은 사실까지도 허구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영화 「실미도」의 실제 모델인 실미도 특수부대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김일성 주석궁(처음엔 124군부대가 목표였다고 한다)을 폭파하기 위해 보복용으로 급조된 북파공작부대였다. 남파된 북한 124군부대에 맞대응하기 위해 훈련병도 똑같이 31명으로 만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24군부대가 정예군인들인데 비해 실미도 훈련병은 물색요원들이 물색한 모집병이라는 점일 것이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공군 편제상 공식명칭이 2325전대 209파견대였지만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 하여 ‘684부대’ 혹은 작전명을 붙여 ‘오소리’부대라 불렸다. 이 북파공작원들은 다른 공작원처럼 위험수당에 특식을 제공받으면서 살인적인 훈련 끝에 살인병기가 된다. 두 차례 출동명령을 받았지만 대기상태에 그치고 만다. 더욱이 중앙정보부장이 바뀌고 남북이 화해 무드를 타자 그들은 존재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점차 훈련은 긴장이 풀어지고 급식이나 난방상태는 나빠진다. 오직 주석궁을 폭파하고 살아 돌아와 새 삶을 가지려 했던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삶의 방향을 잃고 집단발작을 일으켜 1971년 8월 23일 5시 40분경 교육대장을 망치로 죽이고 무기고를 탈취하여 기간병을 살해하고 청와대로 돌진한다. 도중에 탈취한 버스 속에서 수류탄으로 집단 자폭하지만 그중 네 명은 살아남는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이 실미도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전임 소대장을 시켜 훈련병들이 입을 다물면 월남에 데리고 가겠다고 설득한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지만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실미도」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에 사실 같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 준비과정에서 수집한 사실을 확인하거나 변형만 하지 않았어도 현실성 없는 허구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영화 「실미도」는 단순한 블록버스터형 액션물에 지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면서도 등장인물이 살인병기로만 다루어져 실제인물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교육대장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이나, 훈련병과 군경이 대치한 상황에서 조중사가 등장하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이다. 특히 자폭하기 전에 혈서로 이름을 쓰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부분은 사건의 실상을 흐리게 하고 감상으로 몰아간다. 구성면에서 볼 때도 앞부분 훈련과정에 비해 뒷부분의 탈출이 허구처럼 느껴져 긴장감도, 완결된 느낌도 주지 않는다. 단순한 폭도들의 감상적인 자살극 같다. 만일 끝부분을 사실 그대로 처리했다면? 창고의 녹슨 캐비닛 대신 어두운 장막 속에서 탁! 탁! 탁! 탁! 처형되는 소리만 울렸다면 어떠했을까? 자폭보다 처형에 비중을 두어 재판과정이라도 삽입했다면?
사실이 사실대로 밝혀지기 전 영화를 개봉해 아쉽긴 하지만 다행히 영화가 흥행되어 잊혀졌던 국가폭력과 분단상황 아래서의 비극적인 사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에서 실패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에 촛점을 두지 않고 내용을 변형하면서까지 대중적인 상상력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실미도」를 본 사람들은 이 액션물을 통해, 예술의 생명적인 힘은 상상력을 통해 완성되지만 어떤 상상력도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경우, 그리고 현실을 더 현실답게 창조하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내용을 현실과 유리시키고 예술을 비생명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만난 북파공작원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근육질 인물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중키에 날렵하고 눈이 강렬한 사람들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눈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깡마른 체구에 번득이는 눈, 움직이지 않아도 옆으로 길게 찢어지는 눈, 어른거리는 것은 무엇이나 내리칠 듯한 눈, 뚫어지도록 노려보다 촛점 잃고 문득 고요해지는 눈…… 그들의 눈 속엔 당당한 얼굴과 표정이 들어 있었지만 오그라든 비좁은 어깨로 고독과 절망을 간신히 받치고 있었다. 그들은 HID 후속 부대인 AIU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별말이 없었다. 한동안 같이 지내면서 인간적인 소통을 하게 되자 공작원이 된 경위, 작전규모, 새 삶에 대한 계획 등 특별한 기밀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장비도 보잘것이 없었다. 자살도구와 육포, 독침과 미숫가루가 전부였다. 작전도 5박 6일이나 7박 8일 사이 교량을 폭파하거나 주요시설 위치를 확인하거나 상주요원과 접선하는 정도였다. 살기 위해선 인명살상이 불가피하겠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그들은 작전만 끝나면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했다. 잘못 든 길을 바로잡으려는 게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그들은 생을 바꿔보려고 공작원이 된 것이다. 가난하여, 혹은 가정이 파괴되어 어린 나이부터 부랑자생활을 해왔으나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농사짓고 장에 가 아이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소박한 꿈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연히 물색요원(브로커)을 만나게 되어 절망을 애국심으로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과 마주선 것이다. 항간에서는 북파공작원들이 대부분 사형수들이거나 무기수 혹은 죄수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에서 설득되어온 사람도 있었고 자원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우연히 비무장지대 ○○○장(長)이 되어 북파공작에 합류하게 되었다. 작전은 대부분 천둥번개 치는 날 새벽에 이루어졌다. 다른 곳에선 도중에 공작원이 죽거나 호송원이 다치기도 했으나 운좋게도 내가 있던 곳에서는 사고 한건 없었다. 공작원들은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넘어갔다. 어떤 때는 한 사람만 돌아오기도 했고 혹은 도중에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지프차에 실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는 새로운 작전명령을 받았다. 지금도 살아 있는 ○○○장군의 명령이었다. 작전에 돌입하기 위해 전보다 자주 군사분계선을 드나들며 목표 접근로를 확보해나갔다. 인명살상을 전제로 한 작전이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전방에서 20일 앞서 철수명령이 내리지 않았던들 내 운명도 실미도 훈련병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은 누구나 자기 생을 결정짓는 어떤 순간을 맞이한다. 그 순간이 언제 와서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그러나 생을 바꾸는 변화의 순간에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살아남아도 가던 길을 더 갈 수도 없고 일상인으로 되돌아올 수도 없다. 그 고통이 깊은 상처로 남겨진 경우에는 상처가 흐려진 뒤에도 잠복된 상태로 들어앉은 순수회상이 매순간 구체적 이미지로 바뀔 때마다 괴로울 것이다.
분단상황 하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적? 죽음이란? 적? 민족이란? 이념이란? 영화 「실미도」를 보면서 나는 아직도 이십대 때의 질문을 그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