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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신인문학상
제10회 창비신인평론상 심사평
10회째를 맞이한 창비신인평론상이 2회에 이어 두번째로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투고작들 대부분이 다양한 관심영역에 걸쳐 비교적 고른 수준을 유지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 문제작도 적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비의 문학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발군의 개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장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결국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역량있는 신진비평가의 출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싯점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여러모로 아쉽고 민망한 일이지만, 아무쪼록 이 결정이 안일한 등단의 풍토를 경계하고 창비의 비평적 정체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반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신인평론상 부문의 투고작은 예년보다 약간 적은 총 19명 21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9월 24일 첫 모임에서 일단 5명의 6편을 선별한 뒤, 9월 30일 2차 논의에 들어갔다.
남기택의 「경계에서 길 위로: 백무산론」과 정명중의 「잃어버린 ‘루빈의 술잔’을 찾아서: 하성란론」은 작가론의 형식을 빌려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문학적 흐름을 큰 틀에서 개관하려는 의욕과 패기가 돋보인 글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주장이 앞서 논리적 단절과 비약을 범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전자는 관습적인 문제의식이, 후자는 불안한 문장이 또다른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2차 논의에서는 이 두 편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4편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앎에의 욕구가 낳은 하나됨의 영광: 정현종론」과 「존재와 의미의 뿌리를 응시하는 글쓰기: 정영문론」 두 편을 투고한 이현석은 시평론과 소설평론이 기형적으로 분업화된 최근 풍토에서 보기 드문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섬세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을 추상적 개념어로 미봉하는 사례가 더러 눈에 띄었고, 지식이 해석에 앞서다보니 독자적인 입장이 뚜렷이 부각되지 못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최하림 시에 나타난 언어의식과 시대감각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김종훈의 「말의 변모, 시의 중심」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이해, 차분하고 설득력있는 논지 전개, 글의 전반적인 안정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변모의 과정과 양상에 대한 유려한 분석에 비해 그 원인과 의미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소략하며, 차분함이 지나쳐 상식적인 결론으로 귀착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차연우의 「신주류 서사의 존재론」은 이만교와 김영하의 소설에 나타난 ‘계열화의 상상력’을 통해 영화, 게임 등 신종 서사와 경쟁하는 소설장르의 곤경을 진단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이 글은 대담한 구상, 논지의 일관성, 활달한 문체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으나 서술의 균형감각과 시야의 복합성이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요컨대 이 글은 영상세대의 문화감각에 민첩한 반면 활자세대의 역사감각에 둔감하고, 판타지의 진실성에 호의적인 대신 리얼리즘적 재현에 인색한 편이다. 이에 비하면 다소 산만한 인용이나 지나치게 파격적인 구성 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1차 심사 통과자들에게는 좀더 견실한 출발을 위한 분발과 재충전을, 그밖의 투고자 모두에게도 변함없는 건필과 정진을 기원하며, 내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