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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희덕 羅喜德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등이 있음. rhd66@hanmail.net
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삼짇날 아침 나는 발견되었다
방앗간에 앉아 있던 한 시인1에 의해,
그가 하릴없이 뒤적이던 묵은 여성잡지 속에서,
생불이라 불리는 숭산스님의 수행담과
전도연이 알몸 섹스 연기를 했다는
기사 사이에서, 성과 속 사이에서,
그가 보았다는 내 산문집 기사 속에서
그의 눈동자에 발견된,
그의 시에서 자신을 발견한
나는 누구인가
시집을 덮고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씻는다
무엇에 찔린 듯 아프다
물이 손등을 흘러내려 먼 곳으로 가는 동안
어떤 말들이, 기억들이 흘러내린다
십여년 전 영등포 후미진 다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등뒤에는 수족관이 놓여 있었고
내 시선은 열대어들을 따라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그는 쫓기고 있었으나 자유로워 보였고
나는 어떤 날보다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인파 속으로 사라졌던 그가
몇달 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푸른 수의를 입은 그를 한번쯤 더 보았던가
면회창 사이로 말은 자꾸 끊어지고
문 밖에는 진눈깨비가 바람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날의 진눈깨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덧 봄이 오고,
진눈깨비 대신 황사 날리는 삼짇날 아침
방앗간에 앉아 있던 그에 의해 나는 발견되었다,
낡아가는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거대한 수족관 속에서.
북극성처럼 빛나는
멀리 보이는 흰 바위섬,
뱃사람은 그것을 오지바위라 부른다
가까이 가보니 새들의 분뇨로 뒤덮여 있었다
가마우지떼가 겨울을 나는 섬이라고 한다
수많은 바위섬을 두고 유독
그 바위에만 날아와 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마우지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사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포식자의 눈과 발톱을 피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떼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바위를 희게 만들었다
절벽 위에서 서로를 견디며
분뇨 위에서 뒹굴고 싸우고 구애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지상의 집들 또한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지 않은가
가파른 절벽 위에 뒤엉킨 채
말라붙은 기억, 화석처럼 찍힌 발톱자국,
일렁이는 파도에도 씻기지 않는
그 상처를 덮으러 다시 돌아올 가마우지떼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힘은
파도 위 북극성처럼 빛나는 저 분뇨자국이다
방을 얻다
담양이나 평창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저어, 방을 한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서 일할 공간이 필요해서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켰고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이씨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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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무산 「삼짇날 아침」(『初心』, 실천문학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