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여름호 문학특집을 읽고
●육신만 대충 걸치고 좇기에도 모자란 세상에서 일년에 네번 각성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모름지기 대학생이라면……’이라는 말에, 진지함보단 허영심으로 『창작과비평』을 구독하게 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두렵고 이에 대해 발언하기를 주저하는 소심한 학생에게 『창비』는 때마다 챙겨야 하는 소화제와도 같은 것이다. 지난호에서는 특집‘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가 인상적이었는데, 비단 한국문학뿐 아니라 문학도를 자처해온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한기욱의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와 김형중의 「성을 사유하는 윤리적 방식」은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 한국문학을 파악하고 미래를 모색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어 반가웠다.‘6·15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6·15공동선언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논의는 따로 하더라도 현실과 문학, 우리 현실과 우리 문학을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한기욱의 글에서 필자의 진지함과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작품들은 지난봄 창간 40주년 기념호에 실린 백낙청의 도전인터뷰와 맞물려‘분단체제극복’이란 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문학이 실제로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현실로부터의 탈주로 흔히 읽혔던‘경계의 무너짐’이 사실은 현실의 반영이며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해석은‘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이 시대가 새겨야 할 성찰이다. 김형중의 글은 경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경계는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넘어서야 할 것이고, 그 경계를 인정하는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를 인정하는 것은 경계를 짓는 것과 달라서, 말하자면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나, 우리가 아닌 존재는 타자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이상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 타자를 대하는‘윤리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문학은 경계를 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았고, 이는 경계를 인정하고 상대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 안에서 확립될 수 있다. 남성인 필자가 여성,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이 글 자체가 경계를 인정하고 넘어서려는 시도로 읽혀 참신하게 다가왔다.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라는 표제 아래 다섯 글이 수록되었지만 이들을 묶어 우리의‘시대적 징후’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만큼 다양한 경계가 우리 문학에 존재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현재를 직시하고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비평가들의 분투를 응원하며, 2000년대에 활동하는 작가들이 바라보는 한국문학은 어떤지 들어보는 자리가 좌담이나 도전인터뷰를 통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정인혜 ehdrud38@hotmail.com
긴장과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소설들
●지난호 『창비』에서 신예작가들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백가흠의 「웰컴, 베이비!」를 연이어 읽고 나니 마치 뭉크의 그림 「절규」를 본 듯한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마치 그 속에서 얼른 빠져나와야 할 것처럼 두 소설은 잔혹한 이미지로 이 사회를 그려낸다.
「사육장 쪽으로」의‘그’는 집행인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파산한 가장이다. 그는 경고장을 받고 그것을 찢어버리지만, 파산한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아내와 노모의 비명, 아이의 울음과 개 짖는 소리 같은 이 글의 청각적 이미지는 이런 불안감과 음산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결국 아이가 투견에게 물리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들은 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사육장 쪽으로’향하지만 그 길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정답을 모르고서 문제를 풀어나갈 때 더 긴장되고 불안하듯 엉켜버린 그들의 모습은 불 꺼진 도시 속에서 참혹하게 느껴졌다. 사육장 쪽에 닿길 희망하지만 제자리를 돌고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곳에 도착하더라도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떠올리자 황량한 사회의 처량하고도 미약한 인간이 연상되었다. 이처럼 앞뒤가 막힌 미로 같은 결말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결국 이 불길하고 잔혹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읽은 「웰컴, 베이비!」는 황량함에 음침함까지 더해준다. 후미진 골목 끝 낡은 집 사이에 우뚝 솟아 네온싸인을 밝히는 모텔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된 이미지다. 관계를 맺는 중년 커플을 비롯해 모텔에 머무는 사람들을 장롱 속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소년에 촛점을 두자니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는 사회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고아원에서 도망친 어린 부부는 이 모텔에서 네번째 출산을 하는데, 태어난 아기는 눈과 귀가 없다. 마치 우리 사회가 도달할 미래가 비정상임을 암시하는 듯, 그 잔혹한 일그러짐에 안타까웠다. 현재와 미래 모두 불안한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웰컴’이라고 말할 수 있다니, 소름이 끼친다. 반면 모텔 주인 미스터 홍은 말없이 이 모두를 감싸는 듯하다. 그러나 동성애자인 그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리는 장면에서, 삐걱거리는 사회에서 상처입은 인간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두 소설은 한껏 뒤틀리고 잔혹한 현실의 이미지를 통해 긴장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행복한 미래사회에 대한 현실도피적인 상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 제시된 황량하고 처참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일그러진 단면들에 해당하리라 짐작한다.
강효경 rulru23@hanmail.net
도전인터뷰 심상정 의원 편을 읽고
●요사이 민주노동당을 지켜보고 있으면‘이러다 영영 잊혀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든다. 적어도 지방선거나 보궐선거, 의정활동 등 현실정치에 드러난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 뒤‘진보정치’를 상품처럼 취급하며 호들갑떨던 언론도 관심을 접은 지 오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들의 호감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여름호의 도전인터뷰‘민주노동당은 진보운동의 희망인가’는 여러모로 반가웠다. 한미FTA, 비정규직 문제, 부유세와 조세개혁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고민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또 당의 이념과 강령을 놓고 여전히 당내에 건강한 논쟁이 벌어지고, 당의 진로를 놓고 진보운동판 정계개편 논의가 불붙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그러나 인터뷰 제목에서 느껴지듯 민주노동당을 진보운동의 틀에 지나치게 가두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인터뷰에서 확인되는 바, 민주노동당은 여느 시민단체의 정책대안을 넘어서는 비전을 내걸지 않고 있다. 이른바 진보적‘대중’정당을 자처하는 셈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늘 굳은 표정을 짓는다. 이것이 실체 없는 선명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고전하는 이유는‘정치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현실정치를 무시한 채 생존을 논할 수 없다.(민주노동당에 부여된 또 하나의 과제는 국회를 벗어난‘거리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논의의 차원을 달리해서 접근해야겠지만, 여하튼 민주노동당은 이 양축을 균형있게 굴려가야 하는 난제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이 잉태한 자식들인 것을.) 민주노동당이 왜 현실정치에서 무기력한지, 현실정치에서 진보정당이 힘을 가지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냉철하게 분석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집권정당이 되고,‘진보’의 희망을 넘어‘국민’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종찬 jong8@hanmail.net
창비만의 문화평을 기다리며
●『창비』 2006년 여름호가 하품하듯 입을 벌렸다. 그리고 많은 것을 뱉어냈다. 최근 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한미FTA, 특집‘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2000년대 문학의 역사상 계기에 해당하는 1997년 IMF사태와 2000년 6·15공동선언을 중심으로 이번 특집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집을 계기로 시대적 영향을 느낄 수 있었던 시와 신예소설가 7인의 소설 등. 거기에다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그리고 세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FTA협상에 관해 편집진이 제시한 논리적인 해석과 우리가 풀어가야 할 당면과제들, 그리고 도전인터뷰의 FTA협상에 대한 이유있는 반대를 접하며 점점 더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에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계의 동향에 민감한 나로서는 한미FTA의 대표적인 먹이사슬에 걸린 스크린쿼터에 대한 『창비』의 좀더 심층적인 논평이 기다려진다. 40주년 기념호 이전에 있었던 영화 관련 문화평이 기념호 이후 실리지 않은 것이, 특집이나 신예소설가의 소개에 따른 지면 부족 탓인지 아니면 아주 없어진 것인지 의문이 들어 결국 독자의 목소리에 기고하게 되었다. 최근 소설과 영화까지 인상깊게 본, 그리고 종교계와 사회 각층에서 진실 여부를 두고 논란거리로 대두된 「다 빈치 코드」 같은 영화를 『창비』만의 독특하고 섬세한 문화감각으로 분석하여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한나 76tjhann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