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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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鄭映周

1952년 서울 출생. 199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버지의 도시』가 있음. mukho2@hanmail.net

 

 

 

뼈마다 눈부신

어머니를 보내며

 

 

어머니가 지상의 길을 툭 내려놓으니

하늘이 대신 어머니 길을 간다

그러니 뼈마다 눈부신 것이다

 

손으로 어머니 마른 몸을 더듬으며

자식들에게 길을 내던 곳을 찾아 나선다

어머니 몸에 난 길이 다 소금길이다

여기저기 허옇게 각질이 피어나 있다

평생 어머니 몸은 염전이었다

맨발로 당신을 밟으며 수레를 돌리고

살과 뼈를 다 부숴 소금밭을 일궈 들이던 방주

내 손바닥이 어머니 몸에 쑥쑥 빠진다

깊고 마른 뼈들의 골짜기

어머니는 마른 가시손을 자꾸 내젓는다

그 가시에 울컥, 목젖이 찔린다

 

뼈마디 마디에서 서늘한 종소리가 난다

맑을수록 추워져 어머니 뼛속에 들어가 운다

나 또한 그 뼈에서 떨어져나온 새끼뼈였으니

그 골수에서 흘러나온 진액을 남김없이 받아 마셨으니

 

축축한 어머니 젖가슴에 손을 넣고

온기의 뼈를 찾는다

지상을 건너뛰며 에미와 자식을 갈라놓는 마지막 다리

가장 빛나는 돌을 찾는다

 

 

 

새들의 토지

 

 

하늘이 난자당하고 있다

 

지상을 맨발로 차고 오르는

수천 수만의 가창오리떼들

그 발길질에 놀란 하늘

홍해로 갈라졌다가 다시 고인다

 

사람의 땅을 떠메고 올라가 쌓는

새들의 토지

삽으로 푹푹 퍼서 던져올리는 검은 흙덩이마냥

새들이 공중에 쩍쩍 달라붙고 있다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저 거대한 노동

강물을 거스르며 빠른 물살로 튀어오르는

새들의 비상을 보다가

우리의 노역이 하찮은 것을 본다

 

소리의 물결 하나가

바람을 밀고 남아 있는 진흙뻘을 들어올린다

새들의 번지점프가 일제히 시작되고

출렁이는 하늘이 새들의 대지인 듯 와락 펼쳐진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오후

날개도 없이 공중으로 번쩍 들리는

나를 보고 있다

흙으로 빚은 한 마리 새

 

 

 

몇번 죽을 수 있을까

 

 

발바닥이 꿈틀한다

신발의 면적만큼 밟았는데

왜 뱀이라고 느꼈을까

소름의 촉수로 몰려드는 피

찰나에 몇번이라도 죽을 수 있겠다, 싶은

 

가마 속

뱀의 혀로 낼름거리는 불꽃을 보다가

도기들의 몸뚱이를 칭칭 감아가며 물어뜯는

천이백도 불의 이빨을 보다가

뒷걸음치는 그 찰나에 밟아버린 뱀의 허리

보는 것도 독 없이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까

 

가마 곁에 뜨뜻이 누워

마악 몸을 푼 누렁이

주먹만한 새끼들 젖 물리는데

그 비릿한 어린것들 삼키러 온 뱀을

겁도 없이 왈칵 밟아놓고 공포에 먼저 물린다

 

독사에 물린 것처럼

불의 전갈에 쏘여 제물이 된 몸뚱이, 천형의

도기들을 본다

 

독기 없이 저리 순연히 불구덩에 들어설 수는 없을 터

한 목숨 저리 처연히 수천번씩 죽을 수는 없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