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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 국제심포지엄 발제문

 

동아시아의 국족주의를 넘어

 

 

쳔 이즁 陳宜中

『대만사회연구』 편집위원. 사회정치학 전공. 주요 논문으로 「서양 맑스주의의 쇠퇴와 몰락」(The Decline and Fall of Western Marxism) 등이 있음. ic10006@gate.sinica.edu.tw

 

 

1. 『대만사회연구』의 비판적 역할

 

『대만사회연구(台灣社會硏究季刊)』는 1980년대 대만이 계엄령을 해제하기 이전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기획된 비판적 학술지이다. 1988년 창간된 이래 사회와 정치에 관한 광범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와 토론을 전개해왔으며, 2006년 중반까지 통권 61호를 발간했다. 그리고 학술연구와 사회현실의 긴밀한 연계를 표방하며, 매호마다 민주화, 분배정치, 세계화, 이민/노동, 계급, 젠더, 매체개혁, 족군(族群)충돌, 국족주의(國族主義)1같은 대만의 사회현실 및 모순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어왔다.

수년간 학술잡지, 학술토론회, 논단 등의 형식을 통해 『대만사회연구』는 많은 소장학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대만의 인문사회학계, 사회운동단체, 학생조직 등 여러 단체들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격월간지 『21세기(二十一世紀)』는 「중국대륙·대만 학술잡지 평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만사회연구』가 제기하는 토론주제야말로 대만 독자들이 이 잡지에 그토록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읽게 만드는 힘이다. 과거 국족주의, 족군문제에 대한 시의적절한 분석 및 토론과 대응은 대만 지식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적절한 의제설정으로 토론과 반성을 이끌어가는 『대만사회연구』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대만사회연구』에 있어 ‘진보’는 대만과 동아시아에서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소위 ‘진보’란 이론적 실천과 사회적 행동이 동반되어야만 비로소 구체적인 정치적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 『대만사회연구』는 비판적 지식단체로서, 단지 상아탑의 학술연구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각종 사회정치활동에 참여하고 개입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진보’가 현실적 함의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대만사회연구』의 성원은 학술연구에 종사하는 한편 강좌나 논단의 개최, 신문·잡지의 전문칼럼 기고, 그리고 소수자집단과 사회운동단체 지원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비판적 지식공동체로서 『대만사회연구』 성원들의 전문영역은 매우 다양하고 관심분야도 제각각 다르다. 창간초부터 『대만사회연구』는 매우 다원적인 진보적 토론의제와 관점을 종합하고 연계함으로써 상호지원하는 연대관계를 형성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대만사회연구』의 성원이 개입해왔던 사회 및 정치 논쟁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외성인(外省人) 차별, 반전, 학생운동, 민주화, 언론자유, 사회공정성, 노동체제, 여성인권, 동물권리, 매체개혁, 다원문화, 문화보존, 국족주의, 족군충돌, 역사기억, 대륙—대만 평화, 동아시아 화해, 탈냉전화,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처럼 『대만사회연구』 성원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광범하고 다양하기는 하지만, 수년간 공동활동을 하면서 대만의 진보발전 방향에 대해 일정한 공통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민주 추구, 정치평등 촉진, 족군대립 해소, 대륙—대만의 평화적 관계 추진, 동아시아 화해 지향이 『대만사회연구』의 진보에 대한 기본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회와 경제정의의 문제에서 『대만사회연구』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노선과 여기서 파생된 부정적 영향을 강력히 비판하고, 각종 사회·경제 약소집단의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지지해왔다. 또 넓은 의미의 정치평등 문제에서 기본인권과 공민권의 보편적 실현을 주장하고, 소수자집단 및 그들의 종교와 생활방식에 대한 모든 차별정책에 반대했다. 동시에 ‘정치의 공공화’라는 개념을 제창하고, 매체 공공화를 통해 정치/공공영역이 부단히 약화되고 독점화되는 시대적 추세를 바로잡으려 했다. 족군충돌의 문제에서 『대만사회연구』는 족군대립을 조장하는 족군정치를 반대하고, 국족정체성의 차이를 이간하는 권위적인 인민주의정치를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대륙—대만 관계에서는 지역평화, 진보발전의 관점에서 양안(兩岸)의 미래를 모색하고, 단순화된 ‘통일’이나 ‘독립’같은 입장 및 담론에 반대했다. 동시에 양안의 평화가 반드시 동아시아의 화해, 탈냉전화 운동의 맥락 속에서만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대만사회연구』는 진보주의를 내세우며, 가까운 장래에도 계속해서 대만사회의 각 영역에 뛰어들어 비판적인 글쓰기와 정치적 개입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학술잡지의 형식으로는 성원들의 비판적 역량을 모두 담아내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에, 『대만사회연구』 역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2. 대륙—대만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최근의 논쟁에서 한국 정치계와 지식인사회는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 한국은 동아시아 화해를 위해 일본, 중국 및 대만보다 앞장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한국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남북한의 평화를 지향하는 정치적 의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화해에서도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2005년 4월, 대만 야당(국민당)의 롄 쟌(連戰) 전 주석은 중국대륙을 방문했다. ‘평화의 여행’이라 명명한 이번 방중 기간에 롄 쟌과 후 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회담을 통해 양안평화를 촉진하기 위한 5개항에 대해 초보적이나마 인식을 같이했다. ‘평화의 여행’은 사실 김대중의 ‘햇볕정책’에서 적잖이 시사를 받은 것이다.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한국의 노력은 ‘평화발전’의 관점에서 양안관계의 향후 방향을 다시 사고할 수 있도록 대만의 각계 인사들을 고무시켰다.

널리 인식되는 것처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대륙과 대만의 평화발전은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한 초석이다. 만약 양안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거나 전쟁이 벌어진다면, 대만의 생존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현대화 노력도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혹은 한국마저)도 어쩔 수 없이 휘말려들어 동아시아 전지역의 안정 역시 매우 엄중한 시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1987년 7월 대만이 계엄을 해제한 이래, 그리고 같은해 11월 중국대륙의 친척 방문이 허용된 이후, 양안은 곧 경제·문화와 사회 방면에서 광범한 교류를 시작했다. 대륙의 친척을 방문한 대만인의 수는 1987년에 수천명에 불과하던 것이 2005년에는 4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양안간 쌍무무역은 1987년에는 1억 달러가 채 안되었지만, 2005년에는 71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또다른 통계를 보면 대략 75만명의 대만주민이 중국대륙을 여행했는데, 이는 전체 대만 인구의 3%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치를 통해 대륙과 대만 사이에 매우 빠른 속도로 교류가 진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중국대륙의 정치관계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최근에 더욱 악화되었다. 1996년 대만 총통선거 전야에 중국공산당이 지룽(基隆)항과 까오슝(高雄)항 외해를 향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바람에 양안관계는 다시 경색국면에 빠졌다. 1998년 대만측에서 기업가 꾸 젼푸(辜振甫)를 중국대륙에 파견하여 협상에 임함으로써 상황은 다소 개선되었지만, 총통 리 떵후이(李登輝)가 1999년 외국언론과의 특별담화 중 “국가와 국가의 특수관계”라고 언급한 발언으로 양안의 정치는 재차 정체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00년 민진당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후, 쳔 슈이뼨(陳水扁)이 민진당 내의 분리주의자들을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여러 조치들이 양안관계를 설상가상으로 악화시켰다. 2005년 3월 중국대륙이 ‘반분열국가법’을 제정하자, 민진당도 이에 맞서 타이뻬이시에서 27만5천명을 동원하여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대만 ‘독립파’ 정치인 중 상당수가 헌법제정, 중화문화와의 탯줄 단절, 출생 성적(省籍) 대립의 고취, 양안간 국족주의적 증오심 촉발, 점증하는 각종 양안교류에 대한 제한, 심지어는 중국과의 군비경쟁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라도 분리주의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사회연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러한 정치노선에 동의할 수 없다.

대만 독립운동의 국족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당신은 대만인인가 중국인인가’에 대한 태도 표명을 요구한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은 ‘중국인’혹은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정체성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면, 그의 대만 국족정체성은 아직 확고하지 못하고, 애국심도 부족하며, ‘독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만 국족’소속이 될 수 없다고 간주한다. 대만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이른바 이 ‘국족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기관의 힘을 동원하여 ‘대만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은 대만의 적대국’이라고 강하게 호소하거나 주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래 대만에서 벌어지는 ‘대만 성적인(省籍人)’과 ‘타 성적인’간의 ‘족군충돌’악화와, 국족이라는 기호를 둘러싼 남색(국민당 진영)과 녹색(민진당 진영) 두 진영의 싸움은 바로 이러한 국족정체성에 기반한 정치의 필연적 산물이다.

『대만사회연구』는 국족정체성에 기반한 정치와 국족만들기 운동이 국족이라는 부호로써 다른 토론의제를 압도하고 전체 정치환경을 사회와 경제 정의 실현에 불리하도록 만들며, ‘자유롭지 못한 민주’라는 방향으로 대만 민주주의를 이끌고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쟝 졔스(蔣介石)와 쟝 징꿔(蔣經國) 부자의 정권하에서 주입된 반공이데올로기와 냉전의식이 아직 근절되지 않아 반동적인 ‘국가안보’담론이 부단히 등장하고 있으며, 아울러 대만 내부의 족군관계도 점차 악화일로에 있다고 파악한다. 만약 대만 독립운동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기어코 ‘독립해야 할 새로운 국족’을 만들어낸다면, 양안간 전쟁의 발발 여부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누적되어 회복할 수 없는 폐해 때문에 대만의 민주주의는 예측할 수 없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대만 독립운동에 대한 『대만사회연구』의 비판은 단지 대만 내부의 정치와 사회 진보의 측면뿐만 아니라 양안관계와 동아시아 평화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중국대륙 역시 완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대만 독립은 매우 고통스런 댓가를 치러야 할 뿐만 아니라 성공할 확률도 매우 낮다. 반대로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지 않고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에 더욱 힘쓴다면, 이는 중국대륙의 정치 자유화와 민주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탈냉전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의실현에도 기여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양안간에는 통일을 협상할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다. 대만국민은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어떠한 통일 로드맵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이 자국의 경제발전을 고려하여 양안통일 문제를 서둘러 정치일정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극단적 상황(예컨대 대만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거나 미국·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결정하는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양안간의 분담통치 상태는 일정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경색된 정치국면을 타개하고 군비경쟁에서 벗어나 화해를 촉진하고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양안은 실로 적대적 상태 종식, 군사상 상호신뢰 구축, 외교상의 휴전, 대만의 국제사회 참여와 정치적 자주 인정, 안정적인 상호 평화체제 구축 등의 과제에 대해 단계적인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양안평화는 결코 대만 단독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대륙이 800개의 미사일로 대만을 겨누고 있고 국제공간에서도 계속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에 대만민중은 강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은 대만 내부의 정치혁신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대만정책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만약 중국공산당 당국이 국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대일통(大一統)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종의 연방제형태를 통해 대만의 정치적 자주와 국제공간에서의 기본적인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양안관계의 경색국면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바꿔 말해서, 만약 중국대륙이 대만의 정치적 자주를 존중하고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을 포기하며, ‘양안은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라는 전제하에서 대만의 국제사회 참여에 협력하고 동아시아 화해와 지역적 조정·통합을 적극 추진한다면, 대만 독립운동은 그 세력이 약해질 것이고, 굳이 반독립·통일촉진이라는 정치적 운동도 필요없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 화해와 지역적 조정·통합의 진행과정에서 중국대륙은 대만의 정치적 자주와 국제공간이 대만의 독립을 야기할지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대만 역시 중국대륙에 대한 초조와 공포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중국이 부상하는 패권국을 자처하며 대만과 동아시아를 안보상의 곤경에 빠뜨린다면, 대만은 아마도 미제국주의의 바둑돌이라는 비극적 운명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은 대만 독립운동의 부침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부상하는 중국대륙이 ‘동아시아 화해’를 지향하느냐 아니면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느냐에도 상당정도 의존하고 있다. 중국대륙은 다음을 특히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대만문제는 중국의 내정(內政)으로만 협소하게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공내전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유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제를 와해시키려면 중국대륙은 전통적인 주권국가의 안보논리를 넘어 ‘안보의 곤경’이라는 진흙탕에서 벗어나 지역평화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점진적으로 실현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선을 지향한다면 대만 내부에서 독립에 대한 목소리도 점차 수그러들고, 중국도 이른바 백년의 굴욕에서 벗어나 전체 동아시아의 태평성대한 미래 창조에 힘쓸 수 있을 것이다.

대만 역시 중국대륙의 의도가 어떠하든 쟝씨 부자정권이 과거에 주입한 매우 협소한 냉전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대만의 정치적 자주를 지키는 동시에 양안의 진보·화해에 유리한 각종 교류를 촉진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 그리고 중국대륙과 한국, 일본의 진보세력과 적극 협력하여 평화로운 동아시아 미래를 위해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이처럼 동아시아가 화해와 통합을 위해 매진해나가는 과정에서 양안의 통일이든 대만의 독립이든 점차 긴장이 해소될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동아시아의 국족주의 문제

 

오늘날 동아시아를 돌아보면 국족주의 정서가 중국대륙,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동시에 대두되고 있으며, 서로를 부추기는 추세이다. 동아시아 각국의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은 강화되고 있지만 국족주의간의 모순은 오히려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지지를 받는 일본의 우익세력은, 일본민중이 애국심이 부족하고 일본은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관료의 신분으로 군국주의 색채가 농후한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를 계속 참배하는가 하면, 역사교과서를 개정해 일본군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과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까닭은 단지 ‘역사라는 카드’를 써서 일본으로부터 이익이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정치의 계속되는 우경화와 미·일 안보의 확대추세에 따라 중국과 한국의 반일정서도 더욱 고양되었다. 한편 중국 국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대만 국족주의 역시 지속적으로 고양되었다. 이같은 추세로 인해 이 지역 전체는 점차 국족주의들이 대치하는 늪 속에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대만사회연구』는 비판적인 지식인단체로서 동아시아 화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는 국족주의가 현대국가체제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상황에 따라 진보적인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항상 충돌과 원한의 근원이 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족주의의 정치적 조정·통합 기능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해도,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식민주의·제국주의·2차대전·내전·냉전으로 생긴 과거의 심대한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적 의의를 지닌 어떠한 역사적·정치적 교훈도 추출해내지 못하는 듯하다. 유럽이 점차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지금, 동아시아는 오히려 새로운 국족주의의 대치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이것은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중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이에 맞서 『대만사회연구』의 일부 성원은 ‘포스트국족주의’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 포스트국족주의는 정치윤리적 측면에서 각각의 집단이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중시하는 한편, 차이들 사이의 상호대화, 상호삼투, 정체성의 공유와 공동확립을 촉진하는 것을 실천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요한 기점은 아마도 ‘근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살육의 역사를 공동으로 대면’하는 것이며, 역사기억에 대한 ‘공동서술’을 통해 공동의 정치 및 도덕적 교훈을 응축해내는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용기있게 자신의 국족주의와 관련한 잠재의식을 검증하고 반성해야 한다. 한국, 중국대륙과 대만에게 일본 우익의 국족주의는 동아시아 평화의 일대 장애물이다. 그렇지만 국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쟁에 대한 기억상실을 성토하는 것도 큰 문제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편적이며 진보적 의의를 지닌 과제를 ‘중국 대 일본’혹은 ‘한국 대 일본’같은 국족대치의 협애한 틀 속에 국한시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의 수립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 국족주의가 보이는 주요 병적 증세는 역사 기억/망각에 대한 국족형성 운동의 조종, 전쟁범죄 은폐, 종족차별 선동, 보편가치와 진보가치에 대한 억압, 인성왜곡, 인간의 존엄 유린 등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화해를 추구하는 진보운동은 동시에 ‘포스트국족주의’혹은 ‘탈국족주의’운동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만사회연구』는 이러한 사고방식과 운동방향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공통된 인식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부단한 모색과정에 있다.

 

 

4. 동아시아 비판그룹의 상호연대

 

『대만사회연구』는 일찍이 동아시아 화해문제와 관계된 일련의 포럼을 주최하고, 이 문제에 대만 지식계가 좀더 주목하도록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그러나 대만의 특수한 역사와 정치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노력의 실제적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대만사회연구』는 동아시아지역의 다른 진보잡지와 협력하여 동아시아 화해문제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한층 더 확대해가고자 한다.

창비와 세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의 목적은 “동아시아질서의 변화와 자국개혁의 관계에 대한 토론을 한층 촉진시키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더욱 발전시키며” “잡지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 사고하고 상호연대하며 협력하는 실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대만사회연구』는 이러한 목표와 의도에 적극 공감할 뿐만 아니라 『창작과비평』을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와의 협력관계가 더욱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동아시아 비판그룹의 상호연대와 협력이 동아시아의 과제에 대한 대만의 인식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각계의 상상과 토론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대만사회가 무관심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동아시아의 과제들이 제기되었다. 이는 대만이 동아시아에 대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러한 교류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만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한국 진보운동의 발전이나 남북한 화해 및 지역의 당면문제 등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백낙청(白樂晴)의 ‘변혁적 중도주의’개념과 이남주(李南周)의 발표문 「한국에서의 ‘진보’와 동아시아 협력」은 한국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양안문제와 남북한 문제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토론과정에서 평화발전의 중요성, 양안평화와 남북한 평화의 지역적 연동성, 국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성 등 공통된 관심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만사회연구』는 앞으로 잡지를 매개로 하여 참조할 가치가 있는 한국 비판그룹의 논의를 대만의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만 각계는 한국의 발전을 깊이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대륙의 진보사상과 운동에 대해서도 인식이 부족하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세까이』 『겐다이시소오』 『임팩션』 『젠야』 『케—시까지』 『민졘』 등의 잡지가 보여준 각종 관점과 관심은 대만 독자들에게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참여잡지 중 『뚜슈』와 『인터아시아 문화연구』는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우리는 『뚜슈』와 비교적 밀접한 교류를 해왔고, 왕 후이 주간의 대작을 여러 차례 소개하기도 했다.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쳔 꽝싱은 『대만사회연구』의 편집위원을 겸하고 있기에 역시 낯설지 않다고 하겠다). 『대만사회연구』는 이들 잡지와의 교류뿐만 아니라 향후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여러 잡지들의 관심을 대만의 비판적 그룹들에게 적극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2006년 9월에 발행하는 『대만사회연구』 제63호에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에 발표된 여러 논문을 게재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비판적 잡지들이 다방면에서 상호 교류와 협력을 계속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창작과비평』이 앞장서서 큰 일보를 이끈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차태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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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족군(族群)은 영어의 ‘ethnic groups’을 번역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종족(집단)/민족(집단)에 상당한다. 일반적으로 민족/국민/국가로 번역하는 ‘nation’이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족군은 다민족국가 내의 다양한 종족/민족을 지칭하거나 혹은 다민족 내의 소수민족이나 이민집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국족(國族)은 기존의 민족이나 국민의 개념이 자연적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고, ‘국민’이 근대국가의 장치에 의해 인위적으로 ‘통합’된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