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 제21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6년 11월 29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
심사위원
본심: 이선영 현기영 이시영
예심: 백지연 박성우
2006년 7월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2006년 6월 5일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예심위원 2인(백지연 박성우)과 본심위원 3인(이선영 현기영 이시영)을 위촉하여 제21회 만해문학상 심사를 시작했다. 시에서 5권, 소설에서 4권이 추천되어 총 9권의 작품집이 본심에 올랐다.
고형렬 『밤 미시령』,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윤중호 유고시집 『고향 길』, 김규동 『느릅나무에게』(이상 시) 구효서 『시계가 걸렸던 자리』,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배수아 『훌』, 은희경 『비밀과 거짓말』(이상 소설).
7월 7일 진행된 본심에서 심사위원 각자가 견해를 밝히면서 소설과 시 분야 추천작이 경합했으나, 점차 시 분야의 주목할 성과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시적 성취와 형이상학적 깊이를 획득하여 인간조건의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고투의 흔적으로 기록된 고형렬의 『밤 미시령』과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화엄사상과 유연한 동양적 사유를 담은 도종환의 『해인으로 가는 길』, 그리고 60년 가까운 시력(詩歷)의 저력을 보이며 분단극복 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김규동의 『느릅나무에게』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들이다. 논의가 깊어지면서 심사위원들은 실향의 아픔과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는 절실함이 사적 경험을 넘어선 숙연한 감동을 자아내며 진정한 시적 성취로 이어진 점을 만장일치로 높이 평가하여 김규동의 『느릅나무에게』를 제2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이선영(李善榮) 문학평론가
본심에 오른 소설 네 권과 시집 다섯 권은 하나하나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평가를 요할 만큼 무게있는 작품들이었다. 소설 분야는 대체로 전통소설 양식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의 소산들로 평가된다. 배수아의 『훌』은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기왕의 사실주의 소설을 거부하면서 한편으로 그 유산의 일부를 수용하기도 하여 신개지(新開地)를 열어가려 한다.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탈근대적 감성과 비관적 세계관으로 인간·역사·세계의 의미를 깊이 추구한다.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은 비밀과 거짓말 속에 내장된 한국 근대화과정의 진실, 곧 비리와 부도덕과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또렷이 그려낸다. 그리고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는 과거와 미래, 탄생과 소멸,‘나’의 있음(존재)과‘나’의 없음(비존재)을 통일적으로 깊이 보는 데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또 시 분야에는 근대화과정에서 토박이 고향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애틋하게 긍정적으로 되짚어 살려놓은 윤중호의 『고향 길』, 이미 사라진 것들과 지금 버림받고 있는 것들의 중심부 되찾기의 탈문명적 사유와 섬세한 미적 감성이 잘 아우러진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그리고 인생의 부조리로 인한 비애를 미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높은 시적 상상력과 언어적 조형력을 보여준 고형렬의 『밤 미시령』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선자가 주목한 것은 도종환과 김규동의 시집이다.
도종환의 『해인으로 가는 길』은 불도(佛道)와 시도(詩道)를 닦는 시인 자신의 수행경험을 읊은 것이다. 시인은 앓는 심신을 고치려고 산사를 찾아가며‘아름다운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시간은 화엄을 떠나 해인으로 가는 시간이자 자연과 불교에 대한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시간이다. 이를테면 그는 자연의 물소리 바람소리를,“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12면) 곧 연기(緣起)의 소리로 깨닫는다. 따라서 이 시인은 화엄사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연기사상은 바로 화엄사상의 기초이니 말이다. 모든 것을 분리·단절된 것으로 보는 이 시대에 그는 오히려 그것들을 서로 의존하고 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화엄경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그가 화엄사상에 통달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도 표제시에서 읊고 있듯이 아직은‘고요한 암자’격인 해인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그는 다만‘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을 생각하며 우선 해인으로 가는 중이다. 한편 이런 화엄사상은 그의 자연관과도 연결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거나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숲이 내 폐의 바깥이고 내가 숲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134면)이다. 과학기술문명의 편향된 발전으로 야기된 환경악화에 생태학적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이처럼 동양적 사유가 탈근대적인 한 길을 암시하기도 하는 그의 시는 막힘없고 유연한 리듬과도 잘 어울린다.
김규동의 『느릅나무에게』는 맑고 깨끗한 향수와 예리하고 굳건한 역사의식 그리고 단조로운 시들과 복합성을 띤 시들이 공존하여 오랜 적공(積功) 없이는 얻기 어려운 결실에 이르렀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은 개인 차원의 서정에 그치지 않고 분단극복·통일성취의 의지로 발전한다. 또 문명과 세태에 대한 반어적 비판이 날카롭고 존재·운명·노쇠·죽음 등에 대한 사색은 심오하지만 그 표현은 간결하다. 표제시처럼 소박한 서정으로 마음의 울림을 촉발하는 단시(短詩)들이 있는가 하면, 「모순의 황제」처럼 겉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무의식의 자극에 내맡겨 병치시키는, 이른바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장시(長詩)도 있다. 후자에서는 예컨대“탯줄에서부터 세상살이에 맞게 나온 자는/오만불손해서 못쓴다”며 세상과 불화하는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하고,“텔레비전 광고 많이 봐라/걸레 수세미 될 때까지 보아라”하여 상업문화에 중독된 세태를 신랄히 꼬집는 합리성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시를 쓴다는 아가씨야/해바라기씨 많이 먹어라”는 식으로 통상의 논리로는 연결되지 않는 자동기술적 실천도 눈에 띈다. 그리고 시인이 꾸준히 정진해온 60년의 알찬 시력과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경험은 이 시집의 가치를 한층 드높인다.
현기영(玄基榮) 소설가
본심에 진출한 아홉 작품을 보름 남짓 주야로 몰두하여 열독하면서 보냈는데, 모처럼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대부분 이미 일독한 바 있지만, 심사자로서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처음 읽을 때의 안이하고 방심한 눈이 놓쳤던 숨은 의미와 아름다움들이 새록새록 나타날 때의 경이로움이라니! 고도로 언어를 절약하는 시의 경우는 물론이고, 소설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숨어 있거나, 새로운 언어실험들이 있어 작품 감상에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생의 긍정으로서의 허무,‘따뜻한’허무주의라는 형용모순을 가능케 한 『시계가 걸렸던 자리』, 냉소와 위트의 발성법에서 돌연 정공법의 서사세계로 옮아가 삼대의 가족사를 통한 한국사회의 변천을 탐구한 『비밀과 거짓말』, 지적 모험을 하는 두 소설가의 작품들, 즉 심지어 역사까지도 우연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는 철저한 전복적 부정정신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단독자라는 새로운 자아를 절대화하면서 파격적인 형식실험을 선보인 『훌』, 그리고 낡아가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비애를 정련된 시어로써 그려낸 『밤 미시령』, 꽤 오랜 침묵 끝에 태어나, 안달하며 기다려온 우리의 기대를 십분 만족시킨 『가만히 좋아하는』, 그리고 그와 비슷한 정조의 『고향 길』, 잃어버린 공동체의 기억, 즉 꿈과 말에만 남아 있는 그 기억을 공동체 모어로 형상화해냄으로써 근대화를 강하게 부정하는 이 두 시집의 시정신, 진실한 공동체주의자의 울림 좋고 젖어드는 목소리인 『해인으로 가는 길』, 요컨대 이 여덟 경주자들은 저마다 만만찮은 역량으로 자기 존재를 뚜렷이 부각하고 있는데, 당대 최고 수준의 예술적 성취에 육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식력 천박한 이 심사자의 눈에도 우열의 관계는 분명히 보였다.
만약에 심사자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젊은 작가군에서 수상작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계급장 떼고 작품만 보자’에 충실했다면 선택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준에서도 『느릅나무에게』의 간곡하고 순정한 언어를 배제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자신의 체험이 곧 한국문단사가 될 정도로 58년 세월을 가파르게 걸어온 시인의 역정, 해방공간에 데뷔하여 분단상황 속에서 이념적 시련을 겪고,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변신한 모험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의 노경에 이르러 심기일전, 쇠약해진 심신을 일으켜세워 혼신의 힘으로 부르는 이 최후의 절창을 들으면서 뒤따라 늙어가는 후배 문인으로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시영(李時英) 시인
시는 때로 시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김규동 선생의 시는 보여준다. 나는 심사과정에서 무엇보다 이 의외성의 발견이 기뻤다. 가령 다음과 같은 한편의 시, 기교라거나 리듬이라거나 이미지라거나 그 무엇을 모두 생략한 채 뼈마디만으로 낮게 속삭이는 짧은‘전언’.
닭이나 먹는 옥수수를/어머니/남쪽 우리들이 보냅니다/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셨듯이/어머니/형제의 우둔함을 용서하세요
—「어머니는 다 용서하신다」 전문
남북이 갈라선 지 60여년, 6·15공동선언으로 이미‘낮은 단계’의‘1단계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획기적인 세상에 살게 되었지만, 인식으로써가 아니라 분단 자체를 온몸으로 살아온 이 노시인의 시는 그 모든 모순을 향해 날리는 한방의 탄환처럼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닭이나 먹는 옥수수”를 놓고 형제들에게 우리의 우둔함을 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란 이처럼 절규를 절규 아닌 것처럼 대화하듯 깊이 풀어쓰는 산문문학의 한 양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시는 평범으로 의장(意匠)한 모더니스트 김규동의 창조적인 형식파괴의 결과이기도 한데, 이 창조적인 시적 방법의 혁신 뒤엔 사무사(思無邪)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순정(醇正)한 마음의 발현이 있게 마련이다. 시집 『느릅나무에게』의 최량의 작품들—이를테면 표제작을 비롯하여 「봄빛은 이불처럼」 「아침의 편지」 「묘지에서」 「시인의 죽음」 「천년 전처럼」 「비문」 「저승에서 온 어머님 편지」 「오늘은 가고」 등등—은 다른 무엇과도 교환 불가능한 이 순정한 마음의 발현이 눈부시게 성취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여자집에/중매가 들어왔다/그가 자공이라면 하고/모두는 바랐으나/나타난 신랑감은/자공이 아니라 했다/가진 건 없어도 착해 뵈는지라/딸을 그에게 줬다/혼인을 하고 며칠 만에/신랑은 자기가 자공임을 비로소 밝혔다/후한 마음씨 가진 이에게/복이……
—「행복에 대해」 전문
이 작품을 두고‘현대시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형식에 둔감한 듯한 이 시에는 저 50년대‘후반기’한국모더니즘의 파산이 아니라 그것의 일정한 지속이면서도 70년대 이래 민족현실에 정면 도전했던 당대 민족문학으로의 고투어린‘참여’의 정신이 숨쉬고 있다. 김규동은 그야말로 그 대열에 자신을 전면 투기함으로써 그 정신을 얻었고 자신의 시를 열었다.
이밖에도 소설에서의 역작들은 물론 시 분야에서의 다른 업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자신이 태어난 본향으로의 귀환을 예감하는 듯한 고(故) 윤중호 시인의 섬뜩하면서도 그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어수굿한 표현의 『고향 길』, 한국시의 또다른‘형이상’을 발견한 『밤 미시령』에서의 고형렬의 고고한 독자성, 그리고 저 가여운 눈길로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는 듯한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도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러나 오랜 망설임 끝에 나는 김규동 선생의 평범 속의 간명한 시적 진실을 올해의 만해문학상에 기꺼이 추천했다.
수상소감
만해의 문학정신에 부끄럽지 않도록
김규동 金奎東
1925년 함경북도 종성(鍾城)에서 태어났다. 1948년 『예술조선』에 시 「강」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나비와 광장』 『현대의 신화』 『죽음 속의 영웅』 『깨끗한 희망』 『오늘밤 기러기떼는』 등과 평론집 『새로운 시론』 『지성과 고독의 문학』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 산문집 『시인의 빈손』 등이 있다. 자유문인협회상·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상을 받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미안하고 황송한 마음뿐입니다.
보건대 상이란 받는 사람 있는 반면에 못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받는 사람은 못 받는 이들에게 늘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아요.
그런데 창비에서 이번에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시니 얼른 감당이 아니되는 일이올시다.
여기에 만해 한용운님의 짤막한 글 한편 옮겨놓는 것으로써 수상소감을 대신할까 합니다.
지금은 벌써 옛날이야기로 돌아갔읍니다마는 기미운동이 폭발될 때에 온 장안은 ××××× 소리로 요란하고 인심은 물 끓듯 할 때에 우리는 지금의 태화관, 당시 명월관 지점에서 ××선언 연설을 하다가 ×××에 포위되어 한쪽에서는 연설을 계속하고 한쪽에서는 ××되어 자동차로 호송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나도 신체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자동차에 실려 좁은 골목을 지나서 마포 ×××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입니다. 열두서넛 되어 보이는 소학생 두명이 내가 탄 자동차를 향하여 ××를 부르고 두 손을 들어 또 부르다가 ××의 제지로 개천에 떨어지면서도 부르다가 마침내는 잡히게 되는데, 한 학생이 잡히는 것을 보고도 옆의 학생은 그대로 또 부르는 것을 차창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그 학생들이 누구이며, 또 왜 그같이 지극히도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듣던 나의 눈에서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비오듯 하였읍니다. 나는 그때 그 소년들의 그림자와 소리로 맺힌 나의 눈물이 일생에 잊지 못하는 상처입니다.
—산문시 「평생 못 잊을 상처」 전문
그렇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만해문학상을 받음으로써 혹시라도 만해문학정신을 흐리게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기 짝이 없나이다.
심사위원 제씨, 그리고 창비에 황송하다는 인사 다시금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