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제24회 신동엽창작상 발표

 

신동엽(申東曄)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고 역량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신동엽 시인의 유족과 창비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상 제24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6년 11월 29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4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박후기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심사위원

본심: 김사인 임규찬 이광호

예심: 손택수 전성태

 

2006년 7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2006년 6월 7일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는 예심위원 2인(손택수 전성태)과 본심위원 3인(김사인 임규찬 이광호)을 위촉하여 제24회 신동엽창작상 심사를 시작했다. 시집 7권과 소설집 4권 총 11권의 작품집이 본심에 올랐다.

고영민 『악어』,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문성해 『자라』,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박후기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이상 시), 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윤영 『타잔』, 김중혁 『펭귄뉴스』, 이기호 『최순덕 성령충만기』(이상 소설).

본심은 1차 모임(7월 10일)에서 논의 대상을 압축하고 2차 모임(7월 13일)에서 박후기 이기인 황병승의 시집과 김애란 김중혁의 소설집을 집중 논의했다. 그중에서 참혹한 개인의 삶을 뜨거운 시적 진정성으로 담아낸 박후기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를 올해의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심사평

 

김사인(金思寅) 시인

문학상의 운영은 자칫 상의 운영주체(심사위원을 포함하여)가 수상자에게 베푸는 시혜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실인즉 그 반대이다. 반대이어야 마땅하다. 새 수상자의 발탁과 그의 수락이야말로 상의 생명이다. 새 수상자에 의해 상은 다시 젊어지는 것이다. 상의 표지인 작고 문인은 새 수상자를 통해, 새 수상자의 문학세계가 구현한‘한결같음과 새로움’을 통해‘재림’하는 것이며 그로써 기념은 기념다워지는 것이리라. 수상의 수락 여부 또한 부수되는 얼마간의 명예와 부상의 수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고 문인의 문학적 이상과 자신의 세계 사이에 부과되는 문학사적 연관을 자신의 몫으로 수락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결정일 것이다. 이때 심사위원이 하는 역할은 양자간의 관련의 적정성을 잘 가늠하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예심위원들의 검토와 두 차례의 본심위원회를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황병승 김애란 박후기 세분이었다. 황병승의 전위적 에너지는 매우 근본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 체험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김애란의 환상과 현실의 교직, 유머와 페이소스의 교직이 이루어내는 생동감은 슬프고 아름다웠다. 박후기의 시들은 생의 척박함의 복판에서 뜨겁고 깊었다.

긴 논의 끝에, 지난해 이 상이 소설가에게 주어졌던 점까지를 감안,‘신동엽적 가치’의 창조적 계승이란 짐을 금년에는 박후기 시인에게 의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보기에 따라 그의 시들은 이기인에 비해 거칠고, 황병승에 비해 덜 전위적이다. 그러나 그는 삶의 참혹을 자기연민과 시적 미학으로 비켜서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몸으로 앓아내려 애쓰고 있다. 무모해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미더운 시적 기교와 전위성의 역설적 근거일 것이다. 신동엽적인 시적 미덕 역시, 그러한 견딤과 그를 통해 저다운 형식을 나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오직 삶과 세계에 대한 깊고 오랜 응시와 몸섞음만이 시의 시다움을 이룰 뿐이다. 그는 아마도 더 먼 길을 가야 할 듯하지만, 그의 뜨거움과 기품으로 미루어보건대 얼마든지 굳굳하게 오래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임규찬(林奎燦)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집과 소설집 들을 통관하면서, 또 특별히 주목한 이기인 황병승 박후기의 시집과 김중혁 김애란의 소설집을 심독하면서 우리의 젊은 문학 역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언어의 애매성이 한층 심해진 듯하고, 언어와 현실 사이에서 상상적 가공력이 이제 가공할 위력을 행사하는 듯하다.

그 구체적 표지가 제작성(공작성)이라 지칭할 만한 지적 능력이다. 사회·정치적인 내용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 공간을 상상으로 체험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문체를 형성하려 하는 예술적 시도가 참으로 팽팽하다. 황병승과 김중혁의 경우가 그 가장 적극적인 사례일 터인데 새로운 초월성, 특히 우리들이‘문화’라고 부르는 저 비밀스러운 혼종의 사회적인 개성이 자못 화려하다. 그만큼 구성적·제작적 포즈가 막강해졌다.

그러나 사회심리적 반향에 집착하여 해석의 실타래를 푸는 데에만 골몰함으로써 원초적인 차원의 깊은 울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폭풍우 같은 무수한 이미지가 펼쳐내는 황병승의 현란한 상징이나 비유, 자본주의적 기계문명을 순진한 동화적 어투로 무심하게, 그런만큼 위악적으로 무섭게 부조한 이기인의 전략적인 이미지들, 첨단문화의 상상적 공간을 자유롭게 질주하며 문명세계의 운명을 환기하는 김중혁의 문화적 아이콘들이 결국에는 단순한 심상 혹은 암호로 응고되면서 일종의 숙명론을 연상시켜서일까, 아직은‘자기완성’이라기보다는‘운반’중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생생한 현실감은 아무래도 김애란이다. 가장 젊은 작가답게 재기발랄하면서도 나이에 비해 성숙한 시선이 미덥다. 무엇보다 외부의 삶과 사회를 흡수하는 지적 감수성이 탁월하다. 그의 작품은 무색무취한 듯한 일상적 삶을 가지고 비범상한 것을 범상화함으로써 상상력이 형성해내는 사회 형식으로서의 상상적 삶의 좋은 사례이다. 단순히 상상력의 방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논리의 기적을 일으키는 미묘한 미학적 율동, 분석을 넘어서는 상상의 활력이 싱싱하다.

그런데 외관상 새로움이라고는 찾을 길 없는 박후기의 시집이 뜻밖에도 뒷덜미를 오래 붙든다. 자기 존재의 저 깊은 곳에 파고들어, 자기 소리의 깊숙한 바닥을 훑는 예민한 숨결이 있다. 매우 사소한 것 속에서도 가난, 계급, 제국주의와 같은 사회적인 것들이 시적 심연을 출렁이듯 이루고 있다. 그렇게 안으로 파고들자 의외로 이전의 시들과 구별되는 참신함으로 충일하다. 과거처럼 어떤 것을 향해, 또 이것저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어 이미 말해진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시들이다. 그렇게‘평택’이란 구체적 지역에서 오늘을 사는 한 사내의 이모저모를 조용히 보여줄 따름인데 현실적 울림이 크다. 거기다 단단하게 정교한 세공을 거친 싯구들은 때로 전율적이다. 물론 근원적 활력이 약해서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그림자의 세계로만 파고드는 존재의 섬세한 촉수 탓일까, 아직 선명한 개성으로 우람하게 인지되지 않아 주저되는 바 없지 않았다.

하여 김애란과 박후기를 두고 고민하다, 이미 작품집에 수록된 두 편의 작품이 각기 문학상을 수상해 실력을 입증받은 김애란을 잠시 밀쳐두고, 이번에는 일종의 발굴과 격려란 의미로, 다소 생소한 박후기를 신동엽의 치열한 문학정신과 결부시키기로 했다.

 

이광호(李光鎬) 문학평론가

신동엽창작상의 심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상의 문학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신동엽’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이니까‘신동엽적인’문학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있었다. 문제는‘신동엽적인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의 문제인데, 나로서는 그것을 유연하게 이해하고 싶었다.‘신동엽 미학’을 좁은 범위에서 해석한다면, 최근 한국문학의 새롭고 의미있는 움직임들을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상이 젊은 작가와 시인 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은, 이 상의 정체성을 판단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적 미학을 보여주는 젊은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상은 많지만, 대부분의 문학상은 제도적인‘사후승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문학상은 문학적‘발견’의 의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예심에서 추천된 목록 중에서 나는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중혁의 『펭귄뉴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가 지금 한국문학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젊은 미학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신동엽적인 가치에 대한 다른 심사위원들의 입장 역시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 뜻밖의 선택사항으로 떠오른 박후기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전위적 미학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미덕들을 가진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서 재래적인 서정성은 뜨거운 상처와 역설적 희망의 투지로 담금질되어 있었다. 이 시집에 대한 다른 심사위원의 평가에 동의하게 된 것은, 박후기 시인이 시단의 주목을 받는‘주류’공간의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박후기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신동엽창작상이 아직 호명되지 않은 젊은 문학을 발견하는 문학상의 의미를 형성해가기를 바란다.

 

 

수상소감

 

환상의 애드벌룬을 묶어둔 지상의 말뚝처럼

 

박후기 朴後氣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되물었다. 내가 맞느냐고. 박후기, 맞단다. 원고청탁인 줄로만 알고 습관처럼, 고맙다는 말이 막 목구멍을 기어오를 때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야 이미 열여덟에 튀김집 술값 외상장부 끝에 달아두었으나, 정작 스물하나에 이르러서야 신동엽이란 이름 석자 마음에 품었더랬다. 고란사에 머물던 늦봄 달포, 매일같이 강변을 걸어서 詩碑에 다녀오곤 했던 것은 아마도 무언가 닮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신동엽이란 이름을 賞으로 얻었다. 몸으로 얻고 싶었던 그 이름을.

 

전화를 끊고, 시집을 꺼내 읽었다. 물론 내 시집이다.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가 쓴 반성문을 내가 읽듯, 心耳에 들릴 듯 말 듯 읽어내려가는데 자꾸 먹먹해져온다. 「철봉은 힘이 세다」에서 한번 쉬고, 「검은 장화 속의 날들」에서 또 한번 쉬고, 마지막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까지 숨 들이내쉬며 천천히 읽는다. 처음이다. 내가 내 시집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게.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마지막 장에 숨어 있는 시인의 말! 흉터로 남겠지만 부끄러워하진 않겠다고, 왜 썼을까?

 

아들 셋이 문학이라는 나무에 빛 좋은 개살구처럼 매달렸다. 그중 하나는 비바람에 떨어져 일찌감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또다른 하나는 세파에 떠내려가다 겨우 다리 난간을 붙잡은 채, 끝까지 나뭇가지에 매달려 물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버둥거리고 있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배고플 텐데…… 문학을 하겠다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말대로 배가 고팠다. 진정성이란 허기에서 시작되는 건지 속을 비우니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도 배가 고픈 건 마찬가지였다.

 

도두리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마을 앞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미제 정찰기의 깜박거림처럼,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멀어져만 가는 이내 심사여! 멀어진 것은 몸이지 마음이 아니라고 썼다가 지워버린다. 마음조차 멀어졌다고 쓰는 게 솔직한 걸까? 가련한 내 서정은 아직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 18번지에 뿌리박고 있는데, 늙으신 어머니가 어두워진 수돗가에 앉아 바스락 바스락 쌀 씻으며 날 기다리고 있는 곳인데, 왜 자꾸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내 고향 도두리는.

 

현실에 한발 딛고 서 있기를! 한줌 머릿속에 담긴 지식이야 세치 혀를 내세워 한껏 유식을 자랑하며 둥둥 떠다닐 테고, 가슴이야 뜨겁지만 죽기 전엔 좀처럼 땅 위로 내려오길 거부하며 끝없이 위를 향해 타오를 것이니, 나의 詩여, 가장 미천한 발바닥이 되어 땅을 딛고 서 있기를. 환상의 애드벌룬을 묶어둔 지상의 말뚝처럼, 부디 팽팽한 긴장 놓지 말고, 그렇게, 외롭게 한세월 서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