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특집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를 읽고
●연일 쏟아져나오는 미국관계 출판물들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식을 줄 모르는 관심을 보여준다. 반미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조기유학과 원정출산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보다 세계평화에 더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미군의 존재가 동북아에 평화를 유지시켜준다는 모순된 대미인식도 미국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나오는 것 같다.
지난호 특집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는 우리가 과연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더 나아가 한국의 현주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직접적이고도 절박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황정아와 이병한의 문제제기는 통렬한 자기성찰로 다가왔다. 황정아는 미국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강조하며 ‘한국’에서 미국학의 차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차라리 다른 나라의 미국학 연구에서 배우자는 뼈아픈 성찰은 나 자신부터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병한의 글에서는 십대 시절부터 누려온 한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적 활력’ 위에서 우리 안에 들러붙어 있는 ‘미국성’을 치열하게 문제삼는 건강한 이십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이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다층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미국 자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은 분명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창환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부시정부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적 패권주의를 선택했지만 결국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았고 소위 ‘깡패국가’의 양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경고는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몰아닥친 상황에서 되새겨볼 주장이다. ‘아시아·태평양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양다리’를 걸칠 것을 제안하는 마크 쎌던의 글 역시 공감이 갔다.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면 국지전도 감내해야 한다는 높으신 분의 입장에선 차마 생각조차 못할 방법이지만 ‘한미관계 유지’와 ‘대북협력 강화’ 모두가 남한의 현실에선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진정 냉철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는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 위에서 어떤 대응 논리를 개발할 것인가이다.
지난호 특집이 지닌 문제의식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주제가 새삼스럽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좀더 다양한 기획시도와 한층 논쟁적인 글을 통해 우리의 주체성에 입각한 미국 이해가 다각적인 측면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부산대 사학과 강사 김인선 skrosa@hanmail.net
노무현 독트린은 좌절인가 실패인가
●지난호 특집에서 강태호의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을 잘 읽었다. 이 글은 현 한미관계의 핵심사안인 ‘한미FTA’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 노무현정부에 대해 ‘정교한 비판’을 할 것을 요구한다. 즉 한미동맹이 재편되고 있는 동북아라는 공간과 탈냉전이라는 시대에 대한 이해 속에서 ‘누가 해도 힘든 대목’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독트린’이 비록 현실적 제약조건으로 인해 ‘좌절’됐지만 분명 성과가 존재한다며 현정부를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독트린’의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다. 이것의 심각성은 한반도 주변분쟁의 연루 가능성에 있다. 그런데 이 글은 “한국이 자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존중한다”는 한미 공동성명의 문구만을 갖고 주한미군의 활동반경에 대한 제약을 확약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주일미군의 이동(유연성)을 ‘사전협의’로 의무화한 일본의 경우와 달리 어떠한 구속력도 없다. 한국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직결된 ‘기지이전’이나 ‘전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허구적인 주권’ 개념을 내세웠으나 결국 미국의 요구는 그대로 관철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미동맹의 성격이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될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이근 「시나브로 변해가는 한미동맹과 반기문 UN총장」, 『프레시안』)
다음으로 ‘노무현 독트린’이 표방하는 동북아 평화와 번영 문제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필수조건은 한반도 냉전질서의 해체이며 여기서 남북관계는 핵심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남북관계를 핵문제와 연계하면서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우를 범했다. 또한 대북정책의 바로미터였던 대북송금의 특검을 수용함으로써 남북간 신뢰는 현정부 출범과 함께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 없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노무현 독트린’의 태생적 한계였다.
미국은 2차 북핵위기를 빌미로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일관계의 정상화를 저지하여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는 것을 막았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재편함으로써 현상 유지(status quo)를 더욱 공고히했다. 서동만 교수의 지적대로 미국의 촛점은 애당초 북핵이 아닌 동맹 재편이었던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이승복 salbon@hanmail.net
정현백—정희진 도전인터뷰에 대하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 대표의 인터뷰는 이론과 실천의 각축이라는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논의에서부터 여성운동의 현실정치 개입 문제, 민족과 젠더에 대한 사유, 성매매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 저출산에 대한 담론적 지형, 그리고 ‘여성적 글쓰기’라는 다분히 추상적 차원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그런 쟁점들이 페미니즘과 진보를 사유함에 있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정현백과 정희진이라는 두 여성주의자 사이에 펼쳐지면서 뜨거운 논쟁의 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이슈를 망라하다보니 논의가 더 깊게 들어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중심을 해체’할 것이냐 ‘총체성을 견지’할 것이냐라는 여성운동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논의였다. 이 문제는 체제 안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체제 자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목표 설정에도 맞닿아 있다. 여기서 ‘총체화되지 않은 투쟁은 허약하다’는 정현백 선생의 관점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사회 운동은 이미 다양하게 ‘분화’되고 점차 소규모의 운동단위로 ‘분열’되고 있다. 최소 운동단위들의 게릴라적 침투가 견고한 구조의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파워’와 ‘효율’은 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현구조 속에서 ‘새판짜기’란 이런 새로운 운동지형의 출현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운동의 중심에 물음표를 매긴다’라는 도전인터뷰의 제목은 상당히 불편하다. 더이상 여성운동에 ‘한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중심’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심’에 물음표를 매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심은 상정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여연’ 자체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손희정 filmaniac@gmail.com
김사과 단편소설 「준희」에 관한 단상
●가을호 소설란을 통해 김사과와 처음 만났다. 작년부터 80년대생 작가들의 데뷔가 도드라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막내뻘인 듯싶다. 단편 「준희」는 미숙하고 거칠면서도 에두르지 않는 패기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불량소녀의 입사식으로 요약(?)할 수 있을 이 작품은 십대소녀가 겪는 절망과 고통, 수치의 여러 빛깔로 그려낸 음울한 청춘화다. 주인공 소녀는 자퇴, 원조교제, 가출, 날것 그대로의 폭력과 수모 앞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늘어놓는다. 말투는 능청스럽게 공손하기 그지없지만 친절하지는 않다. 짧은 호흡으로 조근조근 중얼거리다가도 이내 욕설을 내뱉고, 선형으로 구성된 시간을 신경질적으로 흩뜨린다. 결국 그녀는 총천연색으로 둘러싸인 보편적인 세계와 어울리지 못하고 쎄피아톤 사막과 권태의 차원을 향한 모호한 날갯짓을 계속한다. 그녀는 유독 자신의 시선에 사로잡히는 이름도 낯선 그 ‘색채’들에 집착한다. 크롬빛 안개와 준희의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 오렌지와 멜론색이 어른거리는 불투명한 유리, 쎌룰리언 블루와 버밀리언의 듀오톤 기억. 선명한 색채들은 선연한 기억들 혹은 상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99%의 복수심과 1%의 과거”로 이루어진 그녀는 어두운 과거를 애써 밀어내며 부정하는 전략 대신 과거를 방목시킴으로써 무위의 시간들을 견디어낸다. 앞으로도 창비에 이처럼 새로운 목소리가 계속 가세해주길 기대한다.
류영흔 la_dox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