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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형서 朴馨瑞
1972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이 있음.
너와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
또다시 우릴 불러낸 건 너였다. 나른한 일상과 곤한 휴식에서 깨어난 우리는 수풀 사이로, 언덕 너머로, 호숫가로 너를 쫓았다. 마침내 저 불운한 도약의 끝, 어둠에 갇혀 발버둥치는 너의 뒤로는 낯익은 살인자들이 몰려들었다.
네가 살았던 작고 외진 마을은 특징이랄 게 없었다. 텁텁한 열매가 나는 과수원, 암탉 삼십여 마리가 있는 오래된 양계장 외에는 야트막한 산과 잡목과 작은 콩밭들뿐이었다. 산중턱에 맑고 깊은 호수가 있긴 하지만 연못에 가까울 정도로 작았고, 그나마 주민들 외에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구름 그림자가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닭이나 돼지처럼 그저 태어나고, 밋밋하게 살아가다 조용히 늙어 죽었다. 다만 칠년 전인가 이장이 마을에 꿀벌을 들여온 걸 계기로 주민들 대부분이 양봉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그나마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벌에 쉽게 쏘이곤 했다. 그럴 때면 평생 무료에 길들여진 그들의 입에서는 “아야” 하는 짧고 심심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너는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어릴적 친구네가 멀리 이사가는 걸 보며 시작된 그 소망은 세월이 흐를수록 간절해졌다. 너는 항상 읍내를, 먼 도시를, 아니 어디건 마을 밖을 꿈꾸었다. 남루하고 따분한 생활 속에서 그 꿈만큼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열네살 때 너는 처음으로 도망쳤다. 아무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벌인 짓이었다. 읍내의 더러운 공원과 뒷골목을 외로이 배회하다, 사흘 만에 굶주린 배를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너는 하루 종일 울었다. 열아홉살이 되어 홀어머니를 졸라 마련한 목돈을 들고 두번째로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역시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빈털터리로 돌아온 너의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고 마음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너는 천장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에 처박혀 며칠 동안 울었다. 남들만큼 가진 게 없고, 남들만큼 영리하지 못하고, 남들만큼 굳세지 못한 게 서러워 울었다. 하지만 눈물이 마르자 너는 또다시 도망을 꿈꾸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마을에서는 라디오 전파도 잡히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바깥세상이 빠르게 변해갈수록 너의 마을은 자꾸만 자기 내부로 숨어드는 것 같았다. 주민들은 콩밭에 가거나 벌을 보살피거나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자기 집을 고쳤다. 늦은 오후가 되어 일이 대충 끝나면, 아이들은 저보다 약한 아이를 잡아 두들겨 팼고 주정꾼들은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으며 노름꾼들은 쩨쩨한 표정으로 화투를 쳤다. 그마저 지치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별것도 아닌 일을 부풀려 온갖 거짓소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숨막힐 듯한 적막과 무료함과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곤 했다.
모든 건 저 폭우에서 비롯되었다. 짙고 검은 먹구름이 삽시간에 마을을 뒤덮고는 굵은 빗줄기를 뿌려댔다. 능선의 잡목림, 언덕의 전신주와 과수원 한쪽에는 새하얀 벼락까지 내리꽂혔다. 이윽고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자 열댓명 남짓한 주민들은 벼락 비린내 자욱한 산중턱 호숫가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호수 바로 곁에는 본디 벼랑에 위태로이 매달려 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굴러떨어져 있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겉을 감싸고 있던 얇은 사암층이 벗겨져나가 어른 키 정도의 둥근 화강암만 남았는데, 전체가 은빛 광택을 품은 돌비늘로 덮여 있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운모바위에는 호수를 등지고 지름이 한뼘쯤 되는 깊은 구멍이 언덕을 향해 나 있었다. 누군가 용감하게 팔을 넣어보았지만 끝에 닿지 않았다.
너와 주민들은 감탄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바위의 비늘은 수면에 반사되거나 나무 이파리 사이로 흘러들어온 일광을 받아 끊임없이 은빛으로 명멸했다. 그건 마치 고통과 간지러움과 배고픔을 느끼는, 독립된 영혼을 가진 존재 같았다.
모두가 돌아간 후에도 너는 홀로 남아 바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멋지게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바위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러다 곧 너 자신에 관한 얘기로 옮아갔다. 너는 네가 그 무료한 마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중얼거렸다. 함께 자란 친구들처럼 도시에 나가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고 중얼거렸다. 두번이나 실패해 겁이 나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떠날 거라고,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운모바위가 그걸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시커멓게 죽어가는 개암나무 뒤에 숨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사건이 터진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호숫가의 운모바위에 난 틈, 그 자그마한 구멍에 낯선 외지 사내가 머리를 처박고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하릴없이 읍내에 다녀오던 중 이를 목격한 양계장 최씨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 있었다. 그처럼 이상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건 마치 바위가 사내를 머리부터 먹어치우다 잠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손등이 따끔해 “아야” 하고 탄식을 흘렸다. 꿀벌에 쏘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따끔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었다. 손등이 화끈거리며 부풀어오르자 그게 독한 땅벌의 침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순간 등줄기를 훑으며 오싹한 기운이 몰려왔다. 최씨는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괴성과 함께 몸을 돌려 읍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두명의 주민과 마주쳤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최씨를 잡아 세우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람이 죽었어, 사람이!”
셋은 함께 읍내 파출소로 달려갔다.
두시간쯤 지나 경찰 세명이 자전거를 타고 네가 살았던 마을로 들어섰다. 각각의 보조안장에는 읍내까지 줄곧 달리느라 완전히 녹초가 된 양계장 최씨와 두명의 주민이 앉아 있었다. 산길이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일행은 걸어서 호수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산중턱의 자그마한 호수와 그 곁에 놓인 바위가 나타났다. 온통 반짝거리는 은빛 비늘로 뒤덮여 있어 거대한 보물처럼 보였다. 입성으로 미루어 삼십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외지 사내가 바위구멍에 머리를 처박은 채 늘어져 있었다. 팬티는 제대로 걸쳤으나 바지가 무릎까지 흘러내렸고, 윗옷도 한쪽 팔에만 꿰인 상태였다. 허벅지와 옆구리에 작고 붉은 반점이 서너개 나 있었는데, 하지만 벌을 치는 마을에서 그건 별다른 특징이 되지 못했다. 주민들 모두가 몸 여기저기에 작고 붉은 반점을 지니고 있었다.
강력사건을 별로 접해보지 못한 신출내기 경찰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 툭툭 건드려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퍼렇게 죽어 있고, 부어오른 팔목에서는 맥이 잡히지 않았다. 바위에 난 구멍이 목 굵기와 비슷했기에 그보다 큰 머리통을 도대체 어떻게 쑤셔넣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식을 들은 마을의 이장과 주민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며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에 참견했다. 너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운모바위와 낯선 사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경찰들은 낡은 카메라를 이용해 현장사진을 찍었다. 정면을 찍고, 측면을 찍고, 무릎까지 흘러내린 바지를 찍고, 한쪽 팔목에만 꿰여 있는 윗옷을 찍었다. 손톱이 죄다 빠지고 피로 범벅이 된 손을 찍고, 삼 미터가량 뒤쪽에 벗겨져나간 한쪽 신발을 찍었다. 강간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민들을 돌아서게 하고는 팬티를 내려 똥구멍도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경찰 한명이 들것을 가지러 돌아간 사이, 남은 둘은 사내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용을 써보았다. 목 부분이 약간 움직이는가 싶었지만 단단히 틀어박힌 머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둘은 작은 목소리로 상의하더니, 주민들을 향해 정과 해머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건 뭐 하려고?” 오십대 중반의 이장이 건들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시체 때문에 저 바위를 부수려고? 그렇게는 못하지.”
이장의 말이 끝나자 주민들 역시 웅성대며 바위 편을 들었다. 운모바위는 벼랑에서 굴러 호숫가에 제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을에서 제일가는 보물이었다. 주민들 모두가 바위의 아름다운 은빛 비늘에 성스러운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도 거칠어 경찰들은 계획을 황급히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때 어깨가 떡 벌어진 바보 용철이 어슬렁거리며 왔고, 제 아비인 이장의 등에 뺨을 비벼댔다. 낯선 사내가 운모바위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걸 본 용철은 헤헤 웃으며 다가가 가슴을 껴안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막일로 단련된 근육이 무섭게 씰룩댔으나 사내 목의 피부만 쭉 찢어먹었을 뿐이었다. 그 사이로 팽팽하게 부푼 혈관이 붉은 팥알처럼 튀어나왔다. 주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만류했다. 바보 용철은 짜증이 나는지 입술을 씰룩거리다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사이 들것이 도착했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 바위는 지켜야 하고 머리는 온전히 빼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그 커다란 바위를 깨버린다 한들 구멍에 단단히 박힌 머리가 온전할 리 없었다. 너는 조용히 다가가 사내, 저 이방인의 목에 기름칠할 것을 제안했다. 읍에서 온 경찰이 고개를 끄덕이자 너는 마치 읍을 이기기라도 한 듯 으쓱해졌다. 주민 한명이 잽싸게 가져온 콩기름을 목 틈새에 정성껏 발랐다. 그런 후 경찰 셋을 포함한 도합 다섯명의 장정이 몸뚱이를 잡고 당겨보았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아, 너는 망신이라도 당한 양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바보 용철이 돌아왔다. 손에는 이가 듬성듬성 빠진 낫이 들려 있었다. 주저앉아 조그마한 숫돌에 호수의 물을 끼얹으며 예리하게 갈았다. 운모바위에 다가섰다. 낫을 이방인의 목울대 아래에 걸었다. 뭐라 말릴 틈도 없이 똑, 하고 따버렸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몸뚱이는 잠깐 꿈틀대는 듯하더니, 풀썩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경찰들은 입이 떡 벌어져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용철은 목 없는 이방인의 시신을 옆에 눕힌 후, 손끝을 가지런히 모아 구멍에 틀어박힌 머리통을 파내기 시작했다. 뼈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몇개로 쪼개진 두개골과 충혈된 눈, 상한 두부처럼 으스러진 뇌가 차례차례 나왔다. 얼추 들어낸 후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놋쇠 숟가락을 뽑아들어 구멍 안쪽에 들러붙은 나머지까지 박박 긁어냈다. 머리카락이 붙은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은 살점들이 묻어나왔다.
경찰들이야 당황하든 어쨌든, 시신은 이제 바위와 분리되었다. 경찰들은 몸뚱이를 거적에 싸고 박살난 머리는 누군가 가져온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 터덜터덜 읍내로 향했다.
어떠한 인간도 진심으로 타인의 불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미물조차 동족이 폭우에 떠내려가면 슬퍼한다. 하지만 이방인의 죽음으로 인해 네가 살았던 마을은 이제 막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를 띠었다. 주민들이 그걸 즐겼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눈엔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자기 날이 다해 고목처럼 늙어 죽은 이야 많았지만 누군가 살해당한 건 처음이었다. 주민들은 저마다 친분이 있는 이를 찾아가 이방인의 죽음에 관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러다 뜻이 맞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내며 말다툼을 시작했는데, 그럴 땐 도를 지키지 못해 험악해지기 일쑤였다. 얘기만 주워들은 아이들은 전례 없이 친근하게 모여 저 참혹했던 장면을 과장해 떠벌렸다. 화투판은 사라졌고, 괜히 술 마시는 남자들도 줄어들었다. 여자들은 모였다 하면 가여운 이방인 얘기를 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고 음침했지만, 벌에 쏘여 “아야” 하고 탄식을 흘릴 때보다는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너 또한 저 놀라운 사건에 대한 남들의 생각이 궁금해 집에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직 어른들의 대화에 함부로 끼어들 만한 나이가 아니었기에, 저만치 물러앉아 어떤 의견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어떤 설명에는 실실 웃곤 했다. 말을 한 당사자들은 네가 고개를 끄덕이면 좋아했지만, 실실 웃더라도 화내지 않았다. 어른들은 널 가엾게 여겼다. 그들은 네가 도망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 마을을 떠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두번에 걸친 실패와 허리를 다친 어머니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맞는 생각이었다. 너는 늘 도망을 꿈꿔왔고, 그 꿈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사건 이후, 너는 도망을 꿈꾸는 시간만큼 이방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골몰했다. 그 역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언쟁은 점점 과격해져갔다. 독한 놈이 자살한 거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고 호기심에 머리를 집어넣어보았다가 빠지지 않아 질식했다고 우겨대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그 구멍은 사실 운모바위의 탐욕스러운 아가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해 잡아먹은 거라고 단언하는 어른도 있었다. 그러면서 바보 용철이 두개골 조각들을 그리 쉽게 빼낸 이유는 머리통이 구멍에 씹혀 이미 반쯤 으스러진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자살이라는 의견은 쉽게 묵살되었다. 그건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자잘한 에피쏘드에 불과하니 더이상 왈가왈부할 계제가 없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구도 그걸 바라지 않았다. 이방인의 죽음이 불러온 적당한 소란과 적당한 반목과 적당한 흥분으로 그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팽팽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 느슨하고 맥 빠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머리는 바보 용철의 힘으로도, 장정 몇의 힘으로도 빠지지 않을 만큼 단단히 틀어박혀 있었다. 그 정도로 독하게 자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이유에서, 호기심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질식해 죽었다는 의견 역시 별다른 동조를 얻지 못했다.
운모바위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얘기는 모두들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을 한 건 평생 입을 열지 않을 것처럼 과묵했던 과수원 허씨였는데, 이튿날에도 이방인이 몰래 운모바위를 머리에 이고 가려다 변을 당한 거라 주장하는 바람에 남들의 비웃음을 샀다.
너는 어려서부터 도망을 꿈꿔왔다. 마을에 오래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열네살 때 무작정 집을 나와 읍으로 도망쳤다. 배가 고파 사흘 만에 돌아와야 했다. 열아홉살이 되어 다시 한번 도망쳤다. 악한에게 붙들려 죽도록 맞고 돈까지 빼앗긴 후 터덜터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너는 방구석에 처박혀 울었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너는 어리석고, 배짱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닭이나 돼지처럼 밋밋하게 살다, 어느날 슬그머니 뒈져야 마땅할 인간이었다. 그게 서러워 며칠 동안이나 지루하게 울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꿈을 꾸는 동안만큼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년쯤 지나 너는 또다시 마을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전보다 용기가 생겼고, 어떤 사람을 조심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네가 세번째로 떠나려고 마음을 굳히던 바로 그때,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드러누웠다. 너는 콩밭과 벌통을 돌봐야 했고, 식사를 준비해야 했으며, 어머니 요강을 비워야 했다. 너는 하루에도 몇번씩 뒷마당으로 달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제 너를 가로막는 장벽은 너 자신이 아니었다. 네 문제는 모두 잊혀지고 오직 어머니의 병환만이 남았다. 너는 마을에서의 남루하고 무료한 생활이 고통스러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네 젊은 피는 혈관을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정오의 콩밭에 멍하니 서 있다가도 갑자기 가쁜 숨을 내쉬며 주먹으로 흙바닥을 내리치곤 했다. 저 이방인의 죽음이 없었다면, 그래서 네 피가 그쪽으로 끓어오르지 않았다면 너는 아픈 네 어머니를 너무 많이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이방인의 죽음이 있고 나서 아흐레 되던 날 새벽에 두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이번엔 너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보 용철의 아버지, 네가 살았던 마을의 이장이었다.
읍내에 다녀오겠다던 이장이 밤새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새벽부터 찾아나섰다. 호숫가의 언덕을 지나가다 바위구멍에 머리가 처박혀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이장은 엉거주춤하게 서서는 운모바위를 박박 긁어대는 중이었다. 손끝이 닿는 곳마다 피가 묻어나왔다. 그녀는 적막한 산속을 시뻘건 비명으로 적시며 이장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장은 자기 팔을 뒤로 꺾어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서운 힘으로 조였다. 그건 마치 아내의 행동을 꾸짖고 만류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아파서 힘을 빼자, 이장은 다시 바위를 밀고 때리고 할퀴었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봐야 했다. 이장의 손놀림은 시간이 갈수록 둔해졌다.
그녀는 거기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구르듯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곧 너를 포함한 세명의 주민이 호숫가로 달려왔다. 너는 또 사건이 발생했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현장에 도착해 이장의 몸부림을 보는 순간에는, 심장이 무섭게 뛰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손톱은 죄다 빠졌고, 돌비늘에 갈린 손가락 끝으로 새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머리통이 구멍에 완전히 처박힌 채로, 이장은 팔과 다리를 때로는 힘없이 휘청거리며 때로는 근육을 씰룩이며 바위 여기저기를 걷어차고 긁고 밀었다. 그러면서 차츰 손마디가 파랗게 질려갔고, 기력이 다한 양쪽 무릎은 이리저리 휙휙 꺾였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달려들어 어깨며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장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팔뚝을 할퀴고 반항하는 것이었다.
“잡아당기지 마! 그렇게 잡아당기면 목이 부러져!”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은 이장이 자기들의 도움을 왜 그토록 거부했는지 비로소 알아채고는 뒤로 물러섰다. 이장은 다시 바위를 밀고 걷어차며 안간힘을 썼다. 주민들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주먹만 꽉 움켜쥐었다.
경찰 다섯명이 현장이 도착했을 때에는 그러한 끈질긴 몸부림도 완전히 멎어버린 후였다. 이장의 아내는 남편이 미동도 없이 축 처져 있자 벌에 쏘여 여기저기 부어오른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다가는 기절했다. 주민들은 공포와 동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위에 머리를 붙잡힌 채 힘없이 늘어진 이장을 바라보았다. 너 또한 그랬다. 현기증 때문에 시커멓게 썩어가는 개암나무에 기대어 서서 그 모든 광경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켜보았다. 네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고 입안은 바싹 타들어갔다. 독한 몸살을 앓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그보다는 훨씬 황홀하고 짜릿했다.
너는 무슨 단서가 될 만한 거라도 있는지 자세히 둘러보았다. 지난번 이방인 때와 너무나 흡사했다.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바지, 한쪽 팔목에만 꿰여 있는 윗도리가 그랬고 등과 허벅지의 벌에 쏘인 자국, 손톱이 모두 빠져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걸음쯤 뒤에 놓인 신발까지 거의 모든 게 똑같았다. 그저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경찰 하나가 다가가 이장의 다리를 툭툭 건드리고, 꼬집어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장은 이제 상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해 보였다. 경찰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시신을 파출소로 옮기겠다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옮기는 거야 문제될 게 없지만 이번에도 역시 빼내는 일이 말썽이었다. 경찰들은 상의 끝에 더이상의 무고한 희생도 막을 겸, 중장비를 동원해 바위를 아예 깨부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뒷짐지고 있던 두 노인이 게거품을 물며 반대했다. 심지어 운모바위를 깨부수겠다고 말한 경찰의 싸대기를 갈겨버리기까지 했다. 궁지에 몰린 경찰들은 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젊은 네가 그나마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바위를 깨는 건 좋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왜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벼랑에서 떠밀려 죽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떠민 사람을 잡아내야지 벼랑을 없앨 수는 없잖아요.” 경찰들이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상식적이고 이성적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는 사이 밭에서 일하던 바보 용철이 불려왔다. 어눌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달려들어서는 등에 자기 뺨을 비볐다. 용철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축 늘어진 아비의 다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헤헤 웃기까지 했다. 경찰들은 결국 그냥 뽑아보기로 결정했다. 벌써 축 늘어져 죽어 있으니 잡아당기다 목뼈가 부러져도 별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경찰 다섯과 바보 용철과 또다른 장정 두명이 달려들어 이장의 몸 여기저기를 잡아당겼다. 바위가 살짝 흔들릴 정도였으나 구멍에 처박힌 머리는 미동도 없었다. 사람들은 좀더 단단히 잡고는 용을 썼다. 용철이 너무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이장의 왼쪽 팔이 어깨에서 쑥 빠졌지만, 그 와중에 머리통도 조금쯤은 나온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힘을 주면서 몸뚱이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가 싶더니 척추 끊기는 소리와 함께 턱끝이 구멍 밖으로 드러났다. 용기를 얻은 사람들은 한번 더, 하고 고함치면서 얼굴이 흙빛이 되도록 힘을 주었다.
마침내 빠졌다. 여덟명의 장정들은 이장의 몸을 껴안고 뒤로 자빠졌다. 아, 하고 누군가 아득한 신음소리를 냈다. 아래턱까지는 나왔는데 코를 비롯한 인중 윗부분이 걸렸던 것이다. 쪼개진 얼굴 위쪽은 누런 윗니를 드러낸 채로 여전히 구멍 안에 처박혀 있었다. 거기서 피가 뱀처럼 흘러나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입을 막고 지켜보던 이장의 아내는 또다시 기절해버렸다.
바보 용철이 다가가 아비의 얼굴 윗부분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부드러운 입천장의 살을 헤집고 들어가 비강 안쪽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렇게 십여분간 애를 쓰고 나서야 간신히 빼낼 수 있었다. 어찌나 단단히 박혀 있었던지 얼굴 가죽이 윗입술에서부터 정수리까지 훌러덩 뒤집힌 채였다. 경찰들은 말려올라간 얼굴 가죽을 원래대로 펴 내렸지만, 그렇게 수습된 얼굴은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다.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멀리서 꿩이 울었다.
“이럴 바에야 전처럼 용철이 낫을 이용하는 게 나았을 텐데.” 누군가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응, 내 말이, 맞아, 하고 동의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자기 이름이 불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꿩 울음소리 때문인지 바보 용철이 입을 헤벌리고 웃었다.
경찰들은 현장 주위에 노란 띠를 치고는 출입을 막았다. 도시에서 전문가를 불러와 바위구멍을 검사하고, 주변에 찍힌 발자국을 조사했다. 구멍 속은 예상보다 넓었을 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심지어 썩은 낙엽 한장, 벌레 한마리도 없었다. 호숫가에 어지럽게 난 발자국은 죄다 주민들의 것이었고,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다. 경찰들은 마을 주변에 임시초소를 세우고 낯선 사람이면 무조건 붙잡아 신원을 확인했다.
네가 살았던 마을은 더욱 분주해지고 활기가 넘쳤다.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격론을 벌였다. 주민들은 더이상 벌이 모아놓은 꿀이나 손바닥만한 밭의 소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마당과 담벼락 곁에는 하루가 다르게 잡초가 자라났다. 방구석에 앉아 참견을 일삼는 노인네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되레 고함을 쳤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그러할 때 그들의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고, 이 참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기가 나서야 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경찰의 무능함을 참다못한 마을의 장정들은 따로 규찰대를 조직했다. 너는 거동이 불편한 홀어머니 때문에 그 일에 끼지 못했다. 그게 서운해 몇번이고 규찰대 뒤를 쫓아다녔지만, 이웃 어른한테 심하게 꾸중을 듣고는 결국 포기했다. 규찰대는 붉은 천을 만들어 완장처럼 차고 다녔다. 둘씩 움직였는데, 찬바람을 일으키며 산에 오르거나 마을 외곽을 돌 때 그들의 굳게 다문 입술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말투도 바뀌었다. 그들은 더이상 “아야” 따위의 소리는 내지 않았다. 돌보지 않아 밭이며 벌통은 엉망이 되었지만 평소 심드렁하게 부어 있던 그들의 얼굴에는 생동감이 가득했다. 평생 자기만의 구멍에 갇혀 있다가 이제 막 도망쳐 나온 사람들 같았다. 읍내 파출소에 찾아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기 생각을 설명하곤 했다. 대부분 무시해도 좋을 만큼 허황된 얘기였다. 엉뚱한 사람을 모함하거나 경찰에게 욕하는 바람에 괜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들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럴듯한 설명이라도 하나 있으면 일단 그걸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해볼 텐데, 이 기상천외한 사건에는 단서라곤 전혀 없었다. 희생자의 몸에 난 작고 붉은 반점이 이상해 부검까지 실시해봤지만, 아니나다를까 역시 벌에 쏘인 자국이었다. 경찰들은 점점 해결의 의지를 잃어갔다.
그와 달리, 규찰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좀더 오랫동안 그 일에 매달렸다.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혹 범인이 숨어 있을지 모를 덤불을 막대기로 쑤셨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희생자와 범인의 동선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무작정 의심하고 순찰을 도는 건 두 죽음이 위치한 미궁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도록 별 소득이 없자,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급기야는 서로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네가 살았던 마을은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곳이었다. 무료하던 시절에는 그게 주민들 사이에서 아교 역할을 했으나, 이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주민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자기보다 어른을 만나면 허리 접어 인사했고, 의례적인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눈빛만큼은 상대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릴 것처럼 무례하게 빛났다.
너는 늘 도망을 꿈꿔왔다. 사정만 되면 언제든지 읍내로, 도시로 나갈 작정이었다. 두번에 걸친 실패와 허리를 다친 홀어머니 때문에 주저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네 마을이 싫어서, 떠나고 싶어서 밤에 몰래 울기도 했다. 마을을 그토록 증오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 끔찍한 무료함 때문이었다. 두 통의 벌을 치고, 마당의 채소를 가꾸고, 콩밭의 김을 매는 일은 영원히 반복되는 따분한 형벌 같았다. 너는 떠나길 원했다. 떠나, 좀더 활력이 넘치는 도시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너는 그곳을 떠날 돈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으며, 무엇 하나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없었다.
너는 밤낮으로 이방인과 이장, 그리고 그들을 죽인 이름 모를 범인 혹은 범인들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다. 그것만이 당장에 네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전부였다. 어떻게 된 걸까? 그들은 왜 거기 그처럼 머리를 처박고 죽어야 했던 걸까? 도대체 누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인 걸까? 쓸쓸히 무너져가는 이장의 집 앞에 서서, 향기로운 진이 흐르는 참나무숲에 앉아, 운모바위에 기댄 채 가을의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일렁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멀리 읍에 있는 파출소까지 가 새로 밝혀진 사실이 있는지 물었고,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비웃는 표정으로 파출소를 나섰다. 집에 돌아와서는 천장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구석에 드러누워 병든 홀어머니를 상대로 온갖 해괴망측한 추측을 늘어놓았다.
너는 매일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현장에 가보거나 마을 주변을 배회했다. 두 죽음의 비밀을 밝혀낼 때까지, 혹은 그 마을에서 멀리 도망치기 전까지 너는 어쩌면 영원히 지치거나 싫증내지 않고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너처럼 끈질기고 집요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이 넘어서자 서서히 긴장을 풀고는 예전의 익숙한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을의 어떤 이는 슬그머니 콩밭에 나갔으며 또 어떤 이는 꿀벌을 보살폈다. 가끔은 벌통이 늘어선 마을 변두리에서 낮게 “아야” 하는 소리도 났다. 사건이 터진 이후 처음으로 노름판까지 벌어졌다. 뜸하게 순찰을 돌던 규찰대마저 해산되자, 너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는 돌아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터벅터벅 마을로 되돌아오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너는 장롱에서 붉은색 천을 꺼내어 완장 크기로 오려냈다. 다음날 새벽, 너는 그걸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서 규찰대가 다니던 길을 밟았다. 이후로, 그러니까 우리와 만나기까지의 사흘 동안 너는 마을의 유일한 규찰대원으로서 온 산과 밭과 호숫가를 바쁘게 누비고 다녔다. 네 삶의 마지막 사흘은 그렇게 흘러갔다.
네가 살았던 마을은 외진 곳이었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려왔다. 너는 서둘러 집에 가기 위해 길에서 벗어나 숲을 가로질렀다. 진이 흐르는 참나무를 돌아 발을 내딛는 찰나, 낮게 깔린 덤불 사이에서 무언가를 밟았다. 발바닥을 타고 흐르는 그 느낌은 물컹했고, 섬뜩했다. 뒤돌아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건 우리였다. 나른한 일상과 곤한 휴식에서 깨어난 우리, 마을 한구석에서 너처럼 무료하게 살아가던 땅벌들이었다. 너는 놀라 뛰기 시작했다. 우리의 날갯짓 소리가 너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우리 중 몇이 셔츠 안쪽으로 들어가 등에 침을 놓았다. 너는 날카로운 고통을 느꼈다. 그건 평소 네가 쏘이던 꿀벌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일어나 정신없이 뛰면서도 윗도리를 벗어 한쪽 팔목에 꿰었다. 두피에 통증을 느낀 너는 마구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었다. 그곳에도 역시 우리가 있었다.
호수,라는 단어가 섬광처럼 스쳐갔다. 호수로 뛰어들면 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주저없이 능선을 따라 뛰었다. 너는 평생 그렇게 빨리 도망친 적이 없었다. 그리 빨리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순식간에 고개를 넘고 대나무숲을 지났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뜀박질을 늦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손가락을 놀려 허리띠를 풀어버렸다. 어느새 바지 안쪽까지 기어들어간 우리 때문이었다. 드디어 호수 뒤쪽 언덕에 닿았다. 어둠속에서 희미한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너는 그 반짝임을 물결의 일렁임으로 알고 있었다. 너는 그렇게 알고 자라왔다. 종아리에 따끔한 통증을 느끼는 순간 양손으로 바지춤을 내리며 힘껏 뛰어들었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너는 아찔한 어둠에 갇혔다. 머리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깜짝 놀라 네 머리를 삼킨 그 거대한 물체를 밀고, 차고, 손톱으로 마구 할퀴어댔다.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바지 탓에 다리도 맘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한참 지나 흥분이 가라앉자, 너는 네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다.
놀랍게도 너는, 그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힌 너는 탄성을 지르려 했다. 두 죽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내었다는 생각에 격렬한 환희를 느꼈던 것이다. 입과 턱이 구멍 안쪽에 뻑뻑하게 물려 있고 또 부풀어오른 목 때문에 아무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모든 걸 척척 설명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자꾸 탄성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너는 네가 알아낸 비밀을 영원히 남에게 알릴 수 없는 처지였다. 저 두 사람을 죽인 건 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아니었다.
모든 죽음엔 사연이 있고, 모든 사연은 슬프다. 너는 늘 도망을 꿈꿔왔다. 꿈꾸는 동안에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발가락에서부터 힘이 빠져나가자 무릎이 휙휙 꺾이면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지 점점 사지가 마비되어갔다. 오직 구멍에 단단히 처박힌 머리통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목 아래로는, 더이상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는 곁을 빠르게 달려가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 구멍 안쪽의 빈 공간이 집음기가 되어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중계해주고 있었다. 너는 늘 도망을 꿈꿔왔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무거운 녀석에게 붙잡혀버렸다. 얼마 후 네 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네가 살았던 마을의 어른들이었고, 늘 보아오던 경찰들이었다. 그들이 팔이며 다리를 건드렸지만 너는 반응하기는커녕 느낄 수조차 없었다. 때문에 모두들 네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운모바위에 처박혀 축 늘어져 있는 건 그저 너의 시체일 뿐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저 익숙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 모든 대화가 바위를 타고 들어와 네 귀를 쩌렁쩌렁 울렸다.
숫돌에 낫 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바보 용철을 격려하는 소리도 났다. 너는 어떻게든 신호를 보내려고, 움직여보려고, 도망치려고 발악했으나 소용없었다. 용철이 헤헤 웃으며 네게 다가왔다. 차갑고 예리한 금속이 목울대 아래에 닿았다. 너는 늘 도망을 꿈꿔왔다.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착각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네 몸뚱이는 잠깐 꿈틀대는 듯하더니, 풀썩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