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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남남갈등에서 한반도 선진사회로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올해 출간한 저서로 사회비평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문학평론집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이 있다. paiknc@snu.ac.kr

* 이 글은 ‘한반도 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2006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학술회의’(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2006년 9월 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의 제2부 ‘남남갈등 해결의 길—상호이해와 협력 그리고 사회통합’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당일 구두발표가 시간에 쫓겨 부실한데다 자료집의 내 발표문에서 모든 각주가 누락되는 사고마저 겹쳤기에 이렇게 보완할 기회가 생겨 더욱이나 다행스럽다. 회의중 토론과 이후의 사태진전을 감안해 추가한 내용을 더러는 본문에, 더러는 각주로 담았다. 논평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1. 시작하는 말

 

죽은 사회는 갈등이 없다. 그러나 갈등이 생명현상의 일부일지라도, 소모적인 갈등을 가급적 줄이고 불가피한 갈등을 생산적·창조적인 동력으로 활용하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이며 남들이 본받음직한 선진사회일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통합을 말하는 것도 모든 갈등이 제거된 상태를 겨냥하기보다 소모적 갈등을 생산적 대화로 바꾸려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취지에서 ‘중도개혁주의’ ‘중도보수’ ‘화해와 상생’ ‘사회적 대타협’ 등 중도를 표방한 여러 노선이 제시되었고 나 자신 ‘변혁적 중도주의’1라는 것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을 굳이 ‘남남갈등’으로 표현할 때는 남북간의 갈등을 포함한 남북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2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은 남북화해를 위한 획기적 사건이었지만 남쪽 내부의 갈등을 오히려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것이 남북문제를 둘러싼 다툼만이 아니고, 예컨대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료대란’처럼 국내문제에 관한 이해대립이 대대적인 사회혼란으로 치닫기도 했다. 물론 당국의 미숙한 대응 등 여러 다른 요인이 개재했지만, 크게 볼 때 분단체제의 억압적 장치에 짓눌렸던 모순들이 표출된 것이며 과거에는 ‘안보 차원’에서 억제할 수도 있었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는 점에서 선진화의 한 과정이기도 했다. 사실 그 점은 남남갈등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전인 1987년에도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의 철권통치가 완화되자마자 노사갈등이 폭발한 ‘7·8월 노동대투쟁’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1987년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표출된 내부갈등들이 해결되거나 생산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채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한국사회는 소모적 논쟁과 대결이 넘쳐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이를 87년 6월항쟁과 그 직접적 후속사태들의 소산인 ‘87년체제’가 한계에 달한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하는데,3 달리 표현해서 ‘87년체제’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갈 계기에 해당하는 ‘2000년체제’ 내지 ‘6·15시대’가 아직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그 점은 지난 10월 9일 북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남쪽의 내부갈등이 전에 없이 심해진 데서도 확인된다. 나 자신은 10월 말에 6자회담 재개합의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도 6·15시대와 한반도식 통일이 여전히 진행중임을 공언하고 다녔지만, 남남갈등의 한쪽 당사자로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옹호하던 인사들조차 한때 6·15시대의 존속을 의심했을 만큼 공통의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의—물론 아직도 미해결인—한반도의 핵위기가 분단현실 및 그 일부로서 북의 존재를 제쳐둔 채 남쪽 사회의 여러 문제와 갈등의 근본적 해결을 논하는 것이 허황된 일임을 일깨워준 점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4

아무튼 기계적인 중간지대 찾기가 아닌 참된 중도(中道)는 당연히 시대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근거해야 할 터이며, 그러한 중도만이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고 적절한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중도적 시각

 

‘보수’와 ‘진보’가 흑백논리를 내세워 소모적 논쟁을 키우곤 하는 본보기의 하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다. 물론 이것이 공허한 논쟁만은 아니고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힌 다툼이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좀더 차원높은 논쟁을 통해 다툴 것을 다투는 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일 터이다.

국가정체성을 즐겨 들먹이는 세력 중에는 1987년 이전의 강압체제와 거기서 비롯한 기득권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현실적 위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담론 차원에서는 ‘보수’와 구별되는 ‘수구’로 돌려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1987년의 의의를 인정하고 6월항쟁 이래의 민주화과정이 국가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고 인식하는 새로운 보수논객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극단론에 비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 또한 자신이 설정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못박아 공인된 담론의 세계에서 배제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발언을 최근의 한 예로 들 수 있겠다.

 

“저는 한국사회의 세력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반(反)대한민국 세력과 진보, 보수입니다. 반대한민국세력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 자체를 부정합니다. 이들은 흔히들 좌파적 역사관 또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갖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역사를 민중과 외세의 대립으로,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갈등으로 파악합니다. (…) 이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에서 진보·보수를 논해야 합니다.”5

 

본인이 직접 쓴 기고문이 아닌 대담기사이니만큼 엄밀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성질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3분법이 수구세력의 2분법과 흡사한 결과가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6 포용과 통합 및 민주적 소통의 논리라기보다 배제와 갈등조장의 논리로 작용하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흑백논리가 보수진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세일(朴世逸) 교수가 비판하듯 대한민국의 기형적 출발을 문제삼아 오늘날까지도 그 국가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른바 진보진영 일각에 엿보임은 사실이다. 게다가 진보담론의 또다른 일각에서는 오히려 박세일 교수와 비슷하게—그러나 물론 박교수와 같은 식으로 ‘배제’를 주장하지는 않으면서—‘분단시대적 시각’ 대 ‘대한민국 인정’이라는 이분법을 구사하기도 한다.7

이처럼 일견 다양하게 갈리는 입장들이 결과적으로 서로를 굳혀주고 키워주는 형국이 되는 데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이라는 것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작용하고 있다. 한 국가의 정체성은 ‘역사적 정통성’과 ‘현재적 정당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내용이며, 복수의 잣대로 평가한 결과도 호적에 적자(嫡子)로 올리고 말고 하듯 흑백으로 갈라지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행에 따라 상대적 비중이 달라지는 사안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일제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나라가 타율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친일세력이 사회적 우위를 점한 국가로 출발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뒤이은 폭압과 전쟁 및 분단고착의 상황에서 이런 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런저런 저항논리에는 각기 그나름의 합리적 근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많은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을 통해 한국사회가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2000년 6월을 기해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게까지 된 것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직접 싸우고 희생한 저항세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이러한 성취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며,8 오히려 사립학교법이 조금 개정되거나 미국조차 합의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논의되기만 해도 ‘국기(國基)’가 흔들린다고 절규하는 인사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신뢰가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9

동시에 온갖 놀랍고 자랑스러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아직도 분단국가이며 일종의 결손국가인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자주성’이나 ‘민중성’ 같은 모호한 잣대를 들이대서 이념적으로 재단하는 말이 아니라, 예컨대 ‘영토’라는 국가구성의 기본요인에 관해서조차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합의가 안되어 있다는 초보적인 사실을 지목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이 나라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들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휴전선 이북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함께 주권국가로 국제연합에 가입한 상태다. 그렇다고 둘 사이의 군사분계선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선도 아니다. 양쪽 당국 스스로도 이것이 국경선임을 부정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서명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재가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단답식 판정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그야말로 뭐가 뭔지 모를 혼란을 낳고 있다. 물론 법리상의 이런 혼란은 안보국가의 존재를 포함하는 분단체제의 온갖 결함들을 단적으로 표상한 데 지나지 않는다.

기본합의서의 이런 모호한 현실인식을 추인하면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상통할 수 있는 어느 지점에서 이 혼란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한 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이다. 나 자신 양자의 접점은 일단 국가연합 중에서도 꽤나 느슨한 연합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명백해지리라고 믿지만,10 요는 6·15공동선언 자체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꾸준히 향상하는 과정을 대표하는 사건이라는 ‘친대한민국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대한민국사적 의의는 1997년의 경제위기, 이른바 IMF사태와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확인해볼 수도 있다. IMF사태는 87년체제의 한계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무작정 선진화를 추구한 국가경영의 파탄에 해당하는데, 사회의 양극화 심화 등 그 뒤탈은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저력으로 그나마 비교적 단기간에 구제금융사태를 수습하고 2000년에는 ‘6·15시대’라고도 일컫는 새 전기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야말로 예의 ‘저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인바, 경제위기가 독재체제로의 회귀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완전 투항이 아니라, 위기를 계기로 남북대결상태에서의 독자적 선진화와 독일식 통일이라는 헛된 꿈을 청산하고 남북의 화해·협력 및 점진적 통합 과정에서 선진사회를 향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11

물론 6·15공동선언의 순탄한 실천을 가로막는 국내외의 장애물이 여전히 즐비하고 선언에 대한 양 당국의 해석에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12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볼 때, 6·15공동선언 발표는 한국전쟁의 참화가 결단코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다는 국민적 공감과 4·19를 비롯한 장구한 민주화투쟁, 1960년대 이래 본격화된 산업화의 성과, 1987년 6월항쟁의 성취, 그리고 IMF사태의 시련과 교훈 들의 연장선상에서 평화지향과 민족통합을 국가정체성의 중요한 지표로 설정하기에 이른 또 하나의 획기적 진전이다. 이렇게 선진사회 건설의 기반이 한층 튼튼해진 계기가 6·15공동선언이라는 인식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자세일 것이다.

 

 

3. 남북관계와 ‘북한문제’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의 이러한 ‘대한민국사적’ 위상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보수논객들이 별로 인정을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 점에서는 참신한 우익을 자처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들이 87년이전 세력보다 더 부정적이어서 남북교류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마저 나온다. 아마도 여기에는 정권교체 이전 시기에 국정의 주역으로 분단현실을 관리하며 더러 북측과 뒷거래도 해본 경험자들과,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북한인권문제 등을 중심으로 이념적 접근을 하는 논객들 간의 차이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북한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이는 남남갈등을 격화시키는 또 하나의 주요 쟁점이다. 그리고 이것도 좀더 정교한 논리와 곡진한 현실인식을 통해 최대한의 접근점을 찾아볼 대목이다.

‘북한문제’에 대한 보수진영의 문제제기는 진보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아직도 2000년 이전, 아니 1987년 이전의 ‘북한 바로알기운동’ 수준에 머물고 있는 데 대한 비판으로는 유효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북의 교류와 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보수진영 고유의 과제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현대사의 기본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선진화와 통일 중에서 선진화가 배타적 국정과제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13는 단호한 주장이 나온 바 있는데, 공동선언 발표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었던들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고조되고 북의 모험주의적 행동이 강화되며 서해교전 같은 충돌사태만 벌어져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외국자본이 철수하는 ‘제2의 IMF사태’를 초래하기 십상이지 않았겠는가. 긴장이 긴장을 부르는 악순환 속에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외쳐댄 2002년 월드컵마저 위태롭지 않았을까.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는 것이 논증의 효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높아진 현시점에서도 남과 북, 미국 등 주요 당사자들이 모두 6·15공동선언과 9·19공동성명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제신인도가 그나마 유지되고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봐야 한다.14

6·15시대의 이러한 저력은 북의 핵실험이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더욱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런데도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미·일의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라는 소란스러운 요구가 나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진영이 예의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보수진영 고유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이 과연 있는지가 새삼 의심스러워진다. 물론 그동안 한국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대해서는 그 일관성 부족이나 안이한 정세판단 등 여러 비판이 가능하며, 동시에 핵문제는—6·15공동선언에 평화체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본질상 남북관계보다 북미관계의 자장(磁場)에 속해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지적해야 한다. 게다가 군사적 대응을 우선시하는 북측 체제의 작동원리가 엄연한 현실인데, 이 논리와 미국의 대북압박노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서 그나마 한국경제의 안정을 수호해온 화해협력정책을 앞으로 개선하고 보완할지언정 이제 와서 포기할 이유가 없다.

6·15시대가 한국경제에 대해 갖는 의미를 이런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볼 일도 아니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개발독재시대에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한 한국경제는 세계적으로는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경제의 급성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여러가지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세계적인 추세와 지역정세를 감안한 새로운 발전패러다임이 요구되는바, 여기에는 6·15공동선언 제4항에 언급된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한반도 경제권에 대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물론 6·15선언이 단계적 통일을 명시했듯이 경제 역시 일거에 남북을 합친 단일 국민경제를 형성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15 남북이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장기적인 목표로 공유하면서 교류하고 협동하기만 해도 남한의 선진화나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제의 구축 작업에서 결정적인 걸림돌 하나가 제거되는 것이다. 다만 정치공동체로서의 남북연합 구성을 한반도의 실정에 맞춰 슬기롭게 추진해야 하듯이, 한반도 경제권의 점차적 실현 역시 남북 경제에 가장 이로운 동반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주밀한 계획을 갖고 진행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북녘은 단순한 지원이나 포용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경제를 위한 공생의 신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선진화는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 평균치의 증대를 뜻하지 않는다. 정말 남들보다 앞서가는 훌륭한 사회로 진화하는 것이 선진화일 텐데, 사실 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주춤거리고 있는 데 대한 박세일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는 바 적지 않다.

 

이렇게 자랑스럽던 대한민국이 21세기에 들어 지금 선진국 문턱에 서서 주춤거리고 있다. 도대체 왜 주춤거리는가? 5천년 고난의 역사를 지나 이제 세계에 당당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머뭇거리고 있는가? 왜 여기까지 와서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가? 나는 몹시 안타깝고 답답하였다. 무엇이 우리를 흔들고 있으며, 무엇이 국가가 풀어야 할 당면과제이고, 어떻게 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16

 

물론 나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자랑스러운 성취에 대한 정당한 긍지와 우리가 저지른 불의에 대한 적절한 반성을 병행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할 때 또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기리라고 믿는 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원인이 아직도 분단의 멍에를 지고 있고 분단체제로부터의 탈출전략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한만의 선진화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일부 ‘반대한민국 세력’ 때문에 안되고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우리 지성계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징표의 하나일 게다.

따라서 북의 현실이나 정책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우리가 남북대결 구도로 복귀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계획에서 결정적인 패착(敗着)이 될 것이 뻔하다. 경제발전을 떠나서도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한국 국적을 갖지 않았거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해외동포 들에 대한 관심은 국가의 경제발전수준이나 국민들의 교육수준에 비해서 세계적으로 낙후한 실정인데, 이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운동이 (여성운동의 경우는 연조가 훨씬 오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부쩍 활발해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분단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의 후진적 획일성에 그나마 이 정도의 변화가 온 것이며, 6·15공동선언이 폐기되거나 그 실천에 심각한 후퇴가 일어날 경우 가부장주의와 군사문화, 성장지상주의의 온갖 폐해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17

위에 열거한 여러 집단의 권리를 말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북녘 주민들의 인권문제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른바 ‘북한인권문제’는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논객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현안인데, 남쪽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이른바 진보진영이 유독 북녘 주민이나 탈북 동포들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이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옳다. 실제로 나는 그러한 ‘이중잣대’와 ‘위선’에 대한 비판이 적중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중잣대’ ‘위선’ 등은 말로는 보편적인 인권을 말하면서도 유독 북한의 인권문제에만 열을 올리는 국내외의 상당수 인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도, ‘북한인권문제’에의 관심이 정녕 진실된 관심이라면 그 표현방식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고 심각해야 한다. 총부리를 겨누고 상대방의 생계수단을 봉쇄해놓은 상태에서 도덕적 비난을 퍼붓는 일이 응분의 효과를 낼지도 의문이려니와, 무엇보다도 인권의 내용과 그 실현방법에 대한 사람들의 진지한 고민을 담아 각자가 놓인 처지에 따라 그때그때 최선의 해답을 찾아내기를 요구해야 옳다.

나아가 ‘북한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할지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을 아우르는 하나의 ‘분단체제’가 한반도에 작동하고 있다는 관점은18 남한사회의 문제든 북한사회의 문제든 분단체제를 떠나서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남북의 사회가 반드시 대칭적이라거나 매사가 분단 탓이라는 단순논리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북한문제’의 경우도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건간에 분단체제 전체에 귀속하는 측면과 이 체제의 작동에 가담하는 다양한 행위자들 각각의 책임에 해당하는 면을 동시에 고려하며 식별해야 옳다. 물론 휴전선 이북에 관해서는 북측 정권과 그곳 주민들이 일차적 행위자들이다. 그러나 가령 미국처럼 국가 단위로 볼 때는 외부로 분류되는 주체도 북측 주민의 생존권이나 복지를 좌우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분단체제의 행위자’이며, 실제로 선제공격 위협과 각종 봉쇄조치를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남한의 정부와 주민 또한 당연히 중요 행위자들이다. 그런데 분단체제론의 시각과 관련해서 특히 강조할 점은, 북측이 단순한 접경지대라든가 ‘적성국가’라는 이유, 또는 그곳 주민이 ‘동포’라는 이유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북한의 문제가 남쪽에 사는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남한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문제가 나의 직·간접적인 책임사항이 되는 것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같은 분단체제에 연루되어 사는 주체적 인간으로서 ‘북한문제’ 또한 원칙적으로 나의 문제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그러한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나의 책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해야 하며 분단체제의 각 행위자들의 책임을 따지는 행동도 이 맥락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북한문제’가 도리어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도덕적 자기성찰을 막는 방패 구실을 하기 일쑤다. 대한민국의 역사나 남쪽 기득권세력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북은 더 못하지 않나’ ‘북에 가서 살고 싶으냐’라는 응수로 넘어가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억압적인 담론행태가 보수진영의 의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툭하면 상대방을 ‘반통일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습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딱히 이렇게 노골적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억압과 자기억압이 분단체제 속에 살아온 우리 누구나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성찰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이 나오기를 바라며, 동시에 ‘북한문제’의 제기가 그러한 마음공부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4. 어째서 ‘변혁’인가

 

한때 우리 사회에서 ‘변혁’은 ‘혁명’의 동의어 내지 위장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나 사회구조의 급격하고 폭력적인 변화라는 의미의 혁명이—그것이 1980년대의 양대 급진세력이 부르짖던 ‘민족해방’과 ‘남한 민중혁명’ 중 어느 것이건—오늘날 한국에서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현안이라 믿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가 되었다. 지구상 모든 곳에서 혁명이 과거지사가 되었다고까지 말한다면 그것은 과언일 테고 언젠가 세계 차원에서 또다른 혁명이 현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속단할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살벌하게 무장한 세력들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관리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남북 어느 쪽도 폭력으로 상대방을 병합할 수 없으며, 한반도와 동북아 전역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내부의 폭력혁명을 성공시킬 방도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지금처럼 갈라져 살면서 남한은 미국에 의존한 채 조금씩 ‘선진화’하고 북은 ‘북한문제’로 남아서 국제사회의 골치를 썩이면서도 남한이 얼마나 더 잘사는지를 끊임없이 환기해주는 고마운 악역을 맡는 씨나리오가 달콤하게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이는 북쪽의 실패가 분단체제에 함께 얽혀들어 있는 남쪽 사회의 선진화에 치명적인 장애가 될뿐더러 자칫 분단체제의 파국적 붕괴로 귀결할 수 있음을 간과한 낭만적인 환상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라는 지구 차원의 상수(常數)에 대해서도 극도로 안이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 단독의 선진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공공연하게 신자유주의자로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자유주의’ ‘공동체자유주의’ ‘공화주의’ 등을 표방하면서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식이다.19 문제는 이들 모두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대두한 필연성과 그에 따른 위력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내가 깊은 연구를 한 바는 없지만, 근대 초기의 자유주의가 부단한 진화를 거쳐 민주주의와 결합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했다가 이러한 공동체주의적 성격이 가미된 자유주의로써는 자본축적이 힘들어진 위기상황에 이르자 원래의(즉 민주주의 이전의) 자유주의 이념으로 되돌아간 것이 신자유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0 다시 말해 원래의 자유주의 나름의 역사적 진보성마저 결여한 반민주적·반공동체적 이념인 것이며, 자유주의가 강조해온 ‘개인’의 권리를 웬만한 국가보다 거대한 실체인 다국적기업 법인들에게 보장해주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개인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를 목청 높여 규탄하고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변혁에의 궁극적 투항을 재촉하는 수구적 자세일 수 있다. 아니, 한반도의 통일이 달성되더라도 그것이 곧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이탈이나 세계체제의 변혁을 뜻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나의 지론인바, 바꿔 말하면 한반도의 점진적 통합이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도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시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일방적 투항이 아니고 진정으로 능동적인 참여가 되려면 신자유주의를 견제하며 독자적인 활동공간을 마련하는 범한반도적 프로젝트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분단체제가 좀더 나은 체제로 바뀌는 ‘변혁’의 과정에서만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공동체자유주의, ‘진정한 사회주의’ 등의 미덕을 포함한 대안적 가치를 실현할 틈새가 확보되며 이를 위한 대중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시민참여야말로 한반도의 통합과 선진사회 건설이 진정으로 ‘변혁’의 수준에 이를지 여부를 가늠할 핵심사항이다. 점진적·단계적으로 진행되는 한반도식 통일에 대한 기득권층의 불신과 저항도 바로 이러한 시민참여가 열어갈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에 대한 몰이해와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바 크다고 본다. 매사를 권력자와 엘리뜨층이 결정함을 전제할 때 점진적인 통일이 결국 한쪽에서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야금야금 흡수하는 과정으로 비치며, 다른 한쪽에서는—훨씬 비현실적인 전망이지만—적화통일로 귀결되는 수순으로 보일 수 있다.21 하기야 시민참여의 확대로 소수의 잘사는 사람만 점점 더 잘살게 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 제동이 걸리는 것 자체를 ‘적화(赤化)’ 현상으로 본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분단체제에 대한 성찰과 중도주의적 대응을 통해 대중 스스로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수반하는 통일사업이라면 그 결과는 민주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기존의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에도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창안이 될 것이다.

그때 한반도에 이룩되는 사회가 모든 면에서 남보다 우월하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살기등등한 새 국면에 분단체제의 질곡과 온갖 후진성을 떨쳐내고 성취한 새로움이라는 점에서 진정 선진사회의 이름에 값할 것이며 한반도는 인류문명의 일대전환을 추동하는 하나의 거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는 ‘선(先)선진화, 후통일’도 아니려니와 ‘선통일, 후선진화’도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활로요 진정한 중도인 ‘선진화와 통일의 병행’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6·15공동선언의 화해·협력 및 점진적·단계적 통일 노선에 근거한 선진화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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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2006) 30~31, 58~69면 참조.
  2. 실제로 6·15공동선언 이후의 국내갈등을 대상으로 이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편 『남남갈등—진단 및 해소방안』, 경남대학교 출판부 2004, 13~4 및 102면).
  3. 예컨대 『창작과비평』 2005년 겨울호 특집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참조.
  4. 나의 창비주간논평 「북의 핵실험으로 한가해졌다?」(2006.10.24) 참조(magazine.changbi.com).
  5. 「경향과의 만남: 박세일 ‘선진화국민회의’ 공동상임위원장」, 『경향신문』 2006.9.19, 29면.
  6. 당일 토론에서 나성린(羅城麟) 교수는 박교수가 지칭하는 ‘반대한민국 세력’은 대한민국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극소수에 한정될 따름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3대세력의 하나로 지목한 점이나 “좌파적 역사관 또는 수정주의 역사관” 같은 포괄적인 표현들을 볼 때 박교수가 과연 얼마나 ‘극소수’를 말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려니와, 설혹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인사들일지라도 그들이 (행동을 통해 국가전복을 꾀하는 것이 아니고) 담론의 장에서 활약하는 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일 것이다.
  7. 후자에 관한 논의로는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62~3면 참조.
  8. 나는 이러한 자부심을 여러차례의 개인적 발언을 통해서뿐 아니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로서도 올해의 8·15 기념사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1945년 8월 이후의 61년간이야말로 고난과 통한으로 얼룩진 역사였지만 우리는 1948년에 건립된 기형적인 분단국가를 이만큼이라도 민주화하고 경제적 자생력을 지닌 국가로 만들어왔습니다.”(http://i615.org/zboard/zboard.php? id=report&no=30)
  9. 이 대목에 대해 나성린 교수는 “우파의 우려를 너무 가볍게 보는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사립학교법이나 작통권 문제에 관한 우파 일각의 진지한 우려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책 차원의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국기’를 들먹이는 상당수 인사들의 행태가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부족을 드러냄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10. 연방에는 영연방(The British Commonwealth)도 있는만큼 이런 느슨한 연합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한 유형으로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연방공화국’에 대한 북측의 공식 번역에서 Federal 대신 Confederal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볼 때 호칭 문제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정치학교과서를 따른다면 도저히 통일로 인정될 수 없는 느슨한 국가연합이 한반도 현실의 맥락에서는 ‘1단계 통일’로 간주될 수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졸고 「한반도의 통일시대와 한일관계」,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35~7면 참조.
  11. 손호철(孫浩哲) 교수는 학술회의 당일 배포된 별지의 논평에서, “사실 백교수가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지만〔자료집 54쪽〕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위에서 비판한 6·15선언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관계 분석도 그러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제는 대부분 해체된 87년체제(그리고 6·15시대의 2000년체제)를 이야기하면서 1997년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7면)라고 비판했다. 물론 내가 손교수가 명명한 대로의 ‘1997년체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87년체제가 비록 한계에 다다랐어도 “이제는 대부분 해체”되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2000년체제’에 손교수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6·15가 열어준 가능성을 십분 인식하고 활용하지 않은 채 ‘1997년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반도 차원의 변혁에 대한 시각을 결한 채 신자유주의 거부를 남쪽에서만 외쳐대는 것이 반드시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 충실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12. 6·15남측위원회 내부에서도 견해차가 심하며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의 접점에 대한 나의 언급이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13. 안병직(安秉直) 「한국의 정치경제동향—선진화모델의 정립을 위하여」, 『時代精神』 2006년 가을호 69면.
  14. 안교수는 같은 글 맺음말에서 “선진화는 국제협조노선으로써만 수행될 수 있고, 통일은 김정일체제를 전제로 하는 한 자주노선으로써만 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두 과제는 서로 排斥的이다. 그리고 통일은, 김정일체제가 붕괴된다고 하더라도 남북간에 異質化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장 수행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선진화가 한국이 당장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정과제인 것이다”(88면)라고 거듭 강조한다. 나는 안교수를 비롯한 많은 극단적 북한비판자들이 6·15공동선언의 해석이나 ‘민족자주 대 국제협조’의 배타적 설정 등 여러 문제에서 북측과 입장을 같이하는 점을 볼 때마다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어쨌든 통일(즉 단일 국민국가로의 통일)이 “당장 수행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라는 지당한 명제에서 출발하여 “이 때문에 선진화가 한국이 당장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정과제인 것이다”로 넘어가는 논리의 비약과 ‘선진화’에 대한 비현실적 단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선진화라는 국정과제를 한국이 추구하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수행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더라면 (애초의 이분법적 설정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한결 원만하지 않았겠는가.
  15. 당일 토론에서 ‘남한만으로도 선진화가 어려운데 북한까지 함께 선진화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는 문제제기(나성린)가 나왔는데, 이런 질문은 첫째 북과 함께 가는 선진화를 남북의 단일 국민경제 건설로 오해하고 있으며, 둘째로 선진화를 가령 1인당 GDP의 증가 등 물량적 성장을 기준으로 보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짙다. (계수 위주로 생각한다면 남북의 경제를 합산하는 순간 1인당 GDP가 급락할 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원만한 남북협력이 진행될 경우 연간 GDP 성장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지만, 촛점은 그런 계량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16. 박세일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1세기북스 2006), 머리말 6면.
  17. 이 대목에 관해 손호철 교수가 ‘분단환원론’이라는 낯익은 비판을 들고 나온 것은 실망스러웠다. “예를 들어, 가부장주의의 원인을 분단체제와 반공주의에서 찾는 분단환원론적 주장에 여성운동가들이 동의할지 의문이다”(별지 자료 6면)라고 했는데, 가부장주의가 분단 이전에도 있었고 오늘날 분단 안된 사회에도 있음이야 너무나 초보적인 상식이며, 분단체제가 자기완결적인 체제가 아니고 근대 세계체제의 모순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현되는 하나의 양태임은 여러차례 설명해둔 바 있다. 실제로 가부장주의의 문제점들이 분단체제에 의해 가중되고 있다는 주장은 이효재(李效再)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제기해왔으며, 책임있는 사회과학자라면 ‘여성운동가들이 동의할지’를 기다릴 것 없이 스스로 분석과 점검을 시도할 일이다.
  18. ‘분단체제’라는 용어는 근년에 꽤 자주 쓰이게 되었지만 나 자신의 개념규정 시도가 널리 받아들여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긴 설명을 내놓을 일은 아니고(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외에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참조 바람), 앞서 밝혔듯이 ‘분단체제’ 또는 ‘분단시대’를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논리가 아님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19. 이인호(李仁浩) 교수 같은 이는 ‘시장경제’에 대해서도 이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사회주의’를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동의어로 쓰는데, 그것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잘못된 체제로 선고받은 지 오래되었어요.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맑스 이전부터 이미 지적이 되었고,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비맑스주의 계열에서도 비판이 엄청 많이 나왔어요./좋은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성공을 해서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 효과를 발휘하려면 지금 북구나 영국 등의 나라에서 보는 것처럼 건전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발달한 위에서 사회주의가 발달되어야지, 개인주의의 전통이 전혀 없는 속에서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이인호—보수적 러시아학의 개척자」, 대담 한정숙, 『역사비평』 2002년 가을호 224면)
  20. 이에 관해 졸고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104~5면 참조.
  21. 실제로 나와 함께 기조발제를 한 이인호 교수가 이런 의구심을 표명했다. “백낙청 교수는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이것저것 미리 따질 것이 아니라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절묘하게’ 절충된 6·15공동선언 제2항의 공식에 따라 통일을 위한 교류를 ‘어물어물’ 진행하다가 ‘어느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 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말하면 그게 우리식 통일이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른바 보수—우파 세력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백교수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이다. 폐쇄적 세습독재체제와 개방적 민주주의체제가, 표피적인 교류가 많이 이뤄졌다 해서 불쑥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된다면 그렇게 통합된 체제는 결국 북한식 독재가 되지 민주주의체제가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자료집 63면) 이교수의 이런 의구심은 내가 말하는 ‘1단계 통일’이 연방제에도 미달하는 느슨한 연합체제로서 북한식이든 남한식이든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통해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설혹 더 높은 수준의 통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북한체제로 흡수되어버리는 통일이 될 것”(같은 면)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앞서 말한 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 부족’을 또 한번 드러내지 않는가 한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종착점을 정해놓지 않고 어물어물 진행하는 통일과정을 내가 긍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민참여형 통일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집권자들만이 좌우한다고 할 때, 어떤 통일을 할지도 모르면서 진행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요, 속으로 알면서 국민에게 감추고 어물어물 해나간다면 국민을 속이는 짓이 된다. 그러나 통일의 내용이 시민참여·민중주도로 정해지도록 내맡기기 때문에 당국이 미리 결론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한 자세이며, 시민들의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