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신인시인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과 함께 오는 11월 29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6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고은강 「푸른 꽃」 외 4편
심사위원
나희덕 박형준 김수이
2006년 10월
심사평
여름 햇볕을 뚫고 도착한 총 638명 응모자들의 작품에는 시를 쓸 때의 열기와 투고할 때의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최근 시단의 흐름을 기민하게 반영한 시들과 수십년 전의 시적 감성을 여전히 호소하는 시들 사이에서 응모작의 스펙트럼은 꽤 넓었다. 작품의 편수와 수준에서 오래 시를 써온 흔적이 보이는 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시류의 유혹을 견디고 아류의 위험을 성찰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시세계를 만들어나갈 신뢰할 만한 시인을 찾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심사는 세 사람의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통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예심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은 각자 5, 6명의 후보자를 골라냈다. 시적 완성도, 독창성, 새로움, 신인다운 패기, 자유로운 상상력과 미학, 언어를 다루는 솜씨 등을 두루 고려한 결과 모두 17명을 본심 대상으로 확정했다. 이들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며 후보자를 압축한 본심은 당선자에 대한 기대지평을 좁히는 과정이었다. 실력과 패기, 새로움과 발전 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하기는 어려운 일임을 절감했다는 의미이다. 그중 마지막까지 논의된 사람은 박은희, 최설, 방수진, 고은강 네 사람이다.
우선 박은희의 「바리데기」는 여성적 상상력을 신화적인 모티브를 빌려 현대사회 여성의 삶의 서사로 구축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종래 여성시들의 모험을 종합하면서 거기에 자신만의 개성을 보탠 이 시에는 강렬한 상상의 이미지들이 현실의 삶을 그대로 견인하는 풍경이 이채롭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같은 계열에 속하는 「피아노」와 「달」을 제외하면, 자연을 노래한 나머지 시들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미흡하다. 좀더 집중된 주제의식과 균일한 시적 역량을 확보해나갈 필요가 절실하다.
「숨바꼭질」을 비롯한 최설의 시들은 신선하고 발랄한 상상력과 화법이 눈길을 끈다.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완급 조절을 잘하는 모습에서는 상당한 숙련도가 감지된다. 섬세한 감각과 안정된 완성도, 비약적인 상상력도 좋게 읽힌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설의 접근법은 끝까지 신선하지 않다. 대표작으로 내세운 「숨바꼭질」이 단적인 예다. ‘담배공장공장장이씨’의 반복되는 노동과 삶을 우화적이며 알레고리적으로 노래한 이 시는 예측 가능한 상상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뢰가 가는 대신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방수진의 「허바허바 사진관의 이력서」 등은 끝까지 당선작과 각축을 벌인 작품이다. 열정과 패기가 돋보이고, 신선하며, 시인이 쓰고 싶은 것을 눈치 안 보고 쓴 흔적이 역력하다. 어법과 리듬에도 생기가 돈다. 방수진은 호흡이 길고, 시적 긴장을 고르게 유지할 줄 안다. 하지만 주제와 대상을 깊이있게 파고들기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며 직유를 남발하는 흠이 있다. “제 속을 들어낸 것만이 보존될 수 있다”(「허바허바 사진관의 이력서」), “한번 잡은 사냥감은 절대 놓지 않는다……”(「사냥학개론」) 같은 부분은 너무 쉽게 결론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몇년 사이에 젊은 시에서 유행한 산문적 스타일이 이제는 어느정도 신선함을 상실한 탓일까. 재기발랄한 언어와 럭비공처럼 튀는 상상력도 독자가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을 때는 지루해지고 만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아 시적 공간이 전유화(專有化)되면 시는 리듬을 잃고 산문적 인식에 점령된다. 이를 염두에 둘 때, 고은강의 「푸른 꽃」 외 4편은 활달한 리듬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이 장점이다. 시적 착상이 새롭다고 하여 그것에 모든 시의 언어를 집중시켜 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타 투고작들과는 달리, 눈에 띄었다. 이 시인은 우리 시대의 연애시인이다. 최승자의 시를 연상시키는 여성성의 언어로 세계에 치명적인 유혹을 던지는 데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낯설고 신선한 이미지가 외연에 머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마저도 깊은 상처를 입은 연애의 쓰라린 어조에 의해 푸른 독(毒)으로 피어난다. 시인은 그 풍경을 “다 닳아빠진 절개로 활활 접속하고 싶은 서정도 있었지만 서정시보다 더 빨리 부패하는 건 없다고 내 안의 박테리아가 딱따구리처럼 쪼아대요”(「호텔 캘리포니아」) 하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 의해 서정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깨는 ‘뒤통수에 달린 음부’(「푸른 꽃」)로 세계에 도발하는 여성성의 언어가 진정성을 획득한다. 다만 앞으로 시에서 직유를 쓸 때는 이미지가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심사숙고하길 바라며 연애시의 어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야를 넓혀나갔으면 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독해지시길……
羅喜德 朴瑩浚 金壽伊
수상소감
고은강
1971년 대전 출생
상명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영혼이 눈뜨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온통 생사의 기로인 무림의 게릴라들을 밤마다 내 방에 데리고 와 놀았다. 그들은 고독의 지존, 은유의 고수.
그게 언제였을까. 아마도 바빌로니아 시대였던 것 같다. 내 책상 위의 천사가 자폐근성을 안고 에덴동산 위를 날아 티그리스 강을 건너간 적이 있었다. 화가 난 강물은 범람하여 대낮을 삼켜버렸고 세상은 온통 어둠이었다, 어둠뿐이었다. 어둠이 번성할수록 나는 눈이 맑아지게 되었다. 대체 누가, 내 칼 속에 달을 빠뜨렸는가. 그날 이후 나는 그 교교한 빛을 순교하는 그림자처럼, 내 생의 첫줄에 매복한 푸른 역모처럼 사납도록 온순해지는 거였다.
문학의 뼈대를 세워주신 강영주 선생님과 감성을 나누어주신 윤태수 선생님께 그 누구보다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첫 단추를 예쁘게 끼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내가 꿈꾸는 것을 함께 꿈꾸어주신 사랑하는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랑한다, 진화하는 세상 모든 것들이여.
제9회 창비신인소설상 심사평
올해 신인소설상 공모에 응모된 작품은 총 686편이었다. 5명의 심사위원은 예심에서 투고작들을 각각 나눠 읽은 뒤 10편의 작품을 추려 본심에 올렸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다시 5편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최종 논의된 작품들의 수준은 대체로 고른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도드라지는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소설의 미래를 이끌어갈 특출한 재능을 발견해 자랑스럽게 내세우고픈 심사위원들의 욕심을 모자람 없이 충족시켜주는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다. 우리의 논의는 그중에서 다른 작품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작품을 골라내 감추어진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자는 것으로 모아졌다. 당장은 작품 수준이 썩 흡족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선한 패기와 개성을 갖춘 작품이면 되겠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이 합의하고 공유한 생각이었다.
이처럼 심사의 기준이 결코 까다로운 것이었다 할 수 없음에도, 원고들은 모두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불안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아쉽지만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심사를 맡은 당사자들로서도 개운하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해를 더 묵히더라도 우리의 아쉬움을 보란 듯이 잠재울 수 있는 문학적 개성과 재능이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 까닭이다.
올해 투고된 소설들도 대개의 신인 투고작들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익숙한 문학적 주제를 큰 무리 없이 꼼꼼하고 안정감있게 끌고 나가는 작품들이 그 하나라면, 기존의 문학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의 개성을 펼쳐 보이려는 새로운 시도가 다른 하나다. 이는 물론 분류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소박한 차원의 것이지만, 문제는 흔히 그렇듯이 이번 투고작들 또한 그럴 경우 각기 부딪힐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위험들을 성공적으로 피해 갔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자의 경향이 밋밋한 상투성과 안이한 해결책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면, 후자의 경향은 기본기에서 부족함을 보이거나 현재 문단의 트렌드가 발휘하는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사회와 현실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미학적인 허술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단편미학의 기본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정형화된 기교의 관성에 별다른 고민 없이 매몰되는 경향을 드러낸다.
이는 모두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대한, 그리고 그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탐구가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즈음의 문학 상황에서는 흔히 무시하고 간과하기 쉬운 것이지만 ‘나’와 타자에 대한,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통찰이 그것을 떠받치는 기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신인에게서 모두가 기대할 법한 사유의 남다름과 신선함이나 문학적 개성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본심에 오른 10편 중에서 최종 논의된 홍은경, 박재희, 채영신, 이승욱, 이자연의 작품들 또한 어김없이 앞에서 말한 결점을 고르게 나누어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작품에서 부분적인 가능성을 보았다. 짐작건대 내년에 우리는 더 좋은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정진을 기대한다.
具孝書 孔善玉 陳正石 鄭弘樹 金永贊
제13회 창비신인평론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신인평론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과 함께 오는 11월 29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3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김종훈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심사위원
한기욱 백지연
2006년 10월
심사평
올해 신인평론상 응모작들은 비교적 안정감있고 고른 수준의 논의들을 보여주어서 반가운 마음을 갖게 하였다. 고답적인 논문이나 보고서 형식의 글은 현저히 줄어들고 현장비평의 최신 감각을 수용한 글이 많이 등장하였다. 김수영에서 김애란, 김연수, 김선우, 문태준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대상작가도 다양하고, 비평방법론 역시 세분화되어 있어 최근 문학비평의 동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응모자들의 비평적 논의 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들에서 필자 고유의 개성과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쉬운 일이다. 여러 글들이 작가, 작품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손쉽게 반복하거나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이미 인정된 작가에 대해 상찬과 지지를 보내거나 작가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비평이 그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비평의 기본 책무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 있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몰입을 넘어, 그 작품과 작가가 왜 거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열정적인 의미 탐구와 함께, 그 성과와 한계를 가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신인이라면 그 평가의 과정에 더욱 도전적이고 의욕적일 필요가 있다.
총 21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검토된 작품은 다음의 4편이다.
임태훈의 「다인종사회의 도래와 마모되지 않는 겹」은 비평적인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눈길을 끄는 글이다. 필자는 이명랑, 하종오, 김재영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민족사회로 향해 가는 우리 사회현실의 변화와 이를 담아내는 문학작품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작품에 대한 내재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이 주를 이루는 최근 비평의 흐름을 상기할 때 사회현실의 변화과정과 문학작품의 관계를 분석하려는 이러한 의욕과 열정은 신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움이다. 그러나 이론적 가설을 정교화하는 구체적인 작품분석에서 허술한 점이 많고 논리의 비약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패기를 모아서 시간을 두고 꾸준히 논의를 정밀화한다면 이후에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류수연의 「패배를 넘어 역사를 기록하는 대지의 서사」는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과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침착하고 자상하게 논의를 풀어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글이 다루는 대상작품의 폭이 지나치게 좁으며, 소설과 씨나리오의 연계성이 소재적 측면 이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현재적인 방현석 소설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전의 방현석 소설과의 연계 속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보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기존의 평가를 넘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해석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금은돌의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 눕혔을까」는 김수영 시에 나타난 ‘아내’의 형상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간 글이다. 전기적 자료와 시인의 시세계 변화과정을 연결하면서 흥미롭게 논지를 전개해가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아쉬운 점은 작품해석의 주요한 근거로 동원되는 여성상에 대한 해석이 논의를 위한 소재적 차원 이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인에 대한 전기적 자료와 시세계의 변화과정이 세밀한 매개나 변수 없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논의의 비약이나 오류를 가져오는 대목들도 자주 보였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독법을 통해 김수영 시가 현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새로운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지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종훈의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문태준·황병승론」은 주제가 지니는 시사적 의미라든지 논의를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안정적인 구도, 차분하고 세련된 문장 등에서 가장 돋보인 글이다. ‘장자’와 ‘처남’의 시적 상징을 통해 서정시와 실험시의 최근 동향을 적극적으로 분석하려는 대목 역시 새로운 코드로써 작품을 읽으려는 필자의 비평적 의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두 시인이 서정시와 실험시의 계보에서 각각 지니는 차이와 새로움에 대한 분석은 좀더 정밀하게 언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상작품이 갖는 이질성과 광범위함으로 인해 논의 전개과정에서 무리가 따르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자기만의 코드를 통해 비평적 문제의식을 예각화하려는 필자의 시도는 신인만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이자 귀중한 개성으로 다가왔다. 등단을 계기로 당대의 시와 시인 들을 향해 좋은 글들을 마음껏 써낼 수 있기를 바란다. 당선자께 다시 한번 축하와 정진의 당부를 드리며, 신인평론상에 지원해주신 모든 응모자들께 깊은 감사와 격려를 전한다.
韓基煜 白智延
수상소감
김종훈
1972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김영승 「반성 21」
처음부터 삼용이가 좋았다. 걱정과 연민과 희망과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술에 절어 살아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타인을 규정하지 않으며, 섣부른 희망과 절망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렇다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삼용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삼용이라는 이름의 친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나의 글이 삼용이를 닮았으면 했다.
자신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에도 궁금해하고, 말로써 타인을 옭아맨 뒤 정작 스스로 상처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규정하는 일은 매혹적이지만 폭력적이기도 한 듯하다. 텍스트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비평도 어쩔 수 없이 규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삼용이의 날씨 이야기와 같이, 상처를 주지 않지만 애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화제로 글을 이어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화와 공감을 거친 규정, 이성의 논리가 마련한 희망과 절망, 현실을 기반으로 모색된 전망이 나의 글에 보였으면 좋겠다.
좋다고 생각한 시들이 ‘다른 서정’ ‘미래파’ 등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비판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안타까움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서둘러 봉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해석학적 지평의 확대라는 비평 본연의 임무를 상기하면 나의 작업은 그 임무를 방기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산재한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안타까움에 주목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애꿎게 분석대상이 된 두 시인께도 감사한다. 좋은 시가 있었기 때문에 서투른 이 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강웅식, 이희중 선배님 등 선후배들과 문학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은 내가 쓸 글의 밑천이 될 것이다. 김인환, 황현산 선생님을 비롯한 모교 은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쓰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행복했다. 특히 최동호 지도선생님, 선생님께는 더불어 학문적으로 인간적으로 엄정함과 다정함을 동시에 배우고 있다. 가족과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은숙에게도 고맙다. 30년 가까이 부모님께서 조그마한 서점을 하신다. 부모님도 잘 아시는 ‘창비’라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