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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인터뷰
새로운 한반도 공간전략을 찾아서
도시설계가 김석철에게 묻는다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경제학.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ilee@hs.ac.kr
1987년 이후 한국에서는 불완전하지만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 그에 따라 이전에 노동·농업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던 축적체제가 일정하게 문명화·선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체제의 폐쇄적·경직적 요소가 잔존하고, 여러 사회세력이 끝없이 갈등하는 불안정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사회 각 계층은 나름대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통합적인 사회경제적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세계화, 기술혁명과 생산방식의 변화, 사회주의권 붕괴 같은 급속한 환경변화로 복잡한 세계가 도래했지만 새롭게 발생하는 사회·경제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개혁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정부는 집권 초기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국가균형발전, 행정수도 이전 등 대형 의제를 내놓았다. 그러나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와 지식인 들은 파당적으로 분열했고 국가비전에 관한 인문학적 통찰력은 실종되었다. 현정부가 조급하게 추진한 한미FTA는 집권세력의 휘황한 말들이 모순에 찬 철학에 기초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난 사례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의 전문성이라는 것도 기실 부박하기 짝이 없다는 문제점도 노출됐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닌데, 도시설계가이자 건축가인 김석철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된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새만금문제에 대해 환경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자는 대안을 내놓았고(「상생의 프로젝트, 새만금-금강유역」,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지역균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굴하지 않고 행정수도 이전을 비판했다. 『창작과비평』에서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공학적 현실성으로 한반도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그와 우리 사회의 갈 길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이일영 올해 2007년은 6월항쟁 20주년, 97년 외환위기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년, 20년 전에 벌어진 두차례의 큰 사회경제적 격동으로 한국사회는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더이상 과거의 씨스템으로는 사회가 잘 작동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새로운 체제는 어떠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일 텐데, 이에 대해서 최근 사람들의 의구심이나 갈망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87년체제’의 한계에 대한 논의에서는 소위 민주파정부들이 들어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불만이 핵심입니다. 사회과학자들도 이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과 도시설계에서 일가를 이루셨고 국토·국가전략 분야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 선생님께 한국사회의 현안과 전망을 여쭙고 싶습니다.
먼저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건축은 쉰이 넘어서야 알고 도시는 예순이 넘어서야 안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건축은 무엇이고 도시는 무엇인지, 또 어떻게 이런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김석철 지식인이나 전문가라고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온 역사는 잘 알 것 같지만, 자기 주변의 상황에 갇혀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많지요. 1972년 관악산에서 밤을 새우며 과천에서 봉천동입구 낙성대까지를 대학도시화하는 서울대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해서 보고하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10월유신이 터진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도시라는 건 역사나 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건축가로서 무력감도 들었고요. 도시는 역사에 참여한다, 더 많은 가능성에 관여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시설계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말해볼까요? 도시설계란 캔버스를 만드는 거고 건축설계는 그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물론 그처럼 단순하게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도시설계는 역사와 사회에 좀더 깊이 참여하는 일이지요. 이런 예는 어떨까요. 삐까소(P. Picasso)가 「게르니까」를 그린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한 참여였어요. 그런데 마띠스(E. Matisse)는 1·2차대전 시기에 살면서도 전쟁이 났다는 걸 겨우 아는 정도였지요. 도시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마치 「게르니까」를 그렸던 삐까소처럼요. 그러나 분노가 아니라 이성으로, 대안으로 참여하는 것이죠. 반면 건축가는 마띠스처럼 자기를 표현해도 역사에 남을 수 있죠.
한국건축사의 두 거목과 맺은 인연
건축가로서 김석철의 출발은 김중업(金重業, 1922~88), 김수근(金壽根, 1931~86) 사무실에서 6년간 일한 경험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평양 출신의 김중업, 청진 출신의 김수근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두 사람과 김석철의 관계는 한국건축사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일영 10월유신이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전에 선생님께서 건축가로 명성을 얻게 된 이력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김중업, 김수근 선생님들과 함께 일도 하시고 배우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죠.
김석철 그게 제가 평생 헤맨 원인이었죠.(웃음)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 도저히 못 있겠어서 외국에 나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두 선생님께 갔는데, 어느 분에게 가야 할지 한참 고민했죠. 먼저 김중업 선생한테 가서 한 3년 일하고 입대를 했다가 사정이 있어서 돌아왔어요. 그다음에 김수근 선생 사무실로 가서 또 3년 있었습니다. 두가지는 전혀 다른 체험이었어요. 그렇게 두 선생님 사무실에 다 있어본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이일영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게 가능합니까?(웃음)
김석철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죠. 그런데 김중업 사무실에서는 건축만 했고, 김수근 사무실에서는 도시설계만 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그러기로 하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요. 김중업 선생은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공부하고 해방후에는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20세기 최고의 건축·도시설계가 사무실에서 일하다 온 분이고, 김수근 선생은 서울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공부는 거의 안하고 전후 일본의 부흥기에 탕게 켄조오(丹下健三)라는 또다른 세계적인 건축·도시설계가를 사숙했던 분입니다. 두분의 체험이 달랐죠.
저는 두분 다 어떤 의미에서는 식민지적이라 생각했어요. 건축이나 도시는 모두 토지와 문명에 깊이 구속되는데, 그것에 대한 이해는 해외에서 공부한다고 얻어지지 않거든요. 나의 DNA가 여기에서 만들어졌다는 토지와 문명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에요. 그런데 두분께 배울 때, 그분들은 한국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도 은연중에 유럽이나 일본의 앞섬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적이 많았지요. 그 가운데 저는 납득하기 어려운 게 더러 있었어요. 저는 한학과 한국학 공부를 했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 한국철학사를 쓰겠다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분들도 다 알지는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6년쯤 지나자 독립을 해야겠다, 두분 밑에 계속 있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일영 저는 문외한이지만 두분의 대표작 중 아주 뛰어난 작품도 있고 논란이 될 만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대사관이나 공간사옥 같은 것은 매우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평가받지요.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나 성격을 규정한 것으로 삼일빌딩이나 세운상가 등이 꼽히고요. 선생님께서는 두분의 작품을 어떻게 보시나요?
김석철 프랑스대사관은 제가 건축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일부러 찾아가봤습니다. 그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건축은 할 만한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공간사옥은 초기단계 스케치에 참여했고요. 둘다 건축물로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축은 문명의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민족적 DNA라든지 토지가 가지고 있는 무엇, 저는 그걸 중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두 작품을 보면 좀 다른 생각도 듭니다. 건물이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어떻게 끌고 가는가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외래 수용으로 시작된 건축물들은, 주변을 초라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론 그런 느낌을 줍니다. 너무 잘나서 주변을 초라하게 하는, 주변이 다 내 거다 하고 멋대로 끌고 가는, 약간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집만으로는 좋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것이 세워졌다고 주변이 더 좋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는 얘기지요.
이일영 저희 또래의 청소년기에는 종로나 광화문 일대에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그때 탑골공원 앞에 우뚝 서 있는 세운상가가 어딘지 부조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석철 세운상가는 김수근 선생도 부정했던 집입니다. 건축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공동작업이니까 프로젝트가 맘에 안 들면 건축가가 중간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요. 물론 책임은 져야 되지만 일의 과정에서는 왕왕 그럽니다.
이일영 그러면 세운상가는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되겠네요?
김석철 그럴 수도 있죠. 그분이 책임져야 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김석철의 건축관은 르 꼬르뷔지에의 말처럼 ‘집은 거주를 위한 기계’라는 식은 아니다. 김석철은 자신의 책에서 콘크리트와 자동차로 가득 찬 20세기 도시를 지속불가능한 문명이라고 하면서, 대안으로 ‘디지털 철강도시’ ‘건축과 도시가 일체화된 철골의 스페이스매트릭스’를 제시한다. 또 여러 건축물에서 표현해낸 한옥풍은 소쇄원에서 보이는 조선 선비의 자연주의를 느끼게도 해준다. 이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었다. 선배 세대의 모더니즘을 추종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감동적인데, 건축가에서 도시설계가, 국토전략가로 진화할 수 있었던 동력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 그를 본격적으로 세상과 대화하게 만든 국토전략의 골격을 이야기해보자.
이일영 제가 이 인터뷰를 맡게 된 것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는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가 안에서 씨스템이 완결된다기보다는 외부의 영향이 상당히 크고 또 지리적인 위치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공간문제가 매우 중요하지요. 그런데 학계에서는 시간의 문제, 즉 경제발전이나 체제이행의 문제 등이 주로 고려되지 공간문제는 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경제학에서도 공간문제를 다룬 연구가 드물고, 대개 공간요소는 뛰어넘을 수 있으므로 배제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러다가 선생님의 저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 2005)를 읽고 많은 자극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굳이 경제학자의 눈으로 잘라서 본다면, 가장 아래의 원소적인 차원에 도농복합체라는 요소가 있고, 중위에는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개념이 있고, 그보다 더 넓은 상위개념으로 황해연합이나 동북아공동체 등이 제시됩니다. 그런데 책 제목은 ‘한반도 프로젝트’인데, 국토균형발전과 황해연합 사이에 한반도 차원이라는 요소가 썩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출간 직후 이 책에 대해서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난 지금 선생님 본인께서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아이디어는 없으신가요?
한반도 공간의 재구성을 위한 프로젝트
김석철 한반도라는 차원을 전제로 한 계획과 작업 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그 기록들이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살려놔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특히 한강 마스터플랜 같은 것은 중요한 제안이었고, 실제로 여의도 개발로 일부 실행됐습니다. 서울대 대학도시안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뜻깊다고 보았고, 종묘에서 남산 사이 지금 세운상가 자리를 서울의 녹지축으로 만들고자 했던 제안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서해안과 중국 동부해안 간의 Pair FEZ, 즉 짝을 이루는 공동의 자유경제특구에 대한 연구도 정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또 새만금도 90년대 초반부터 쭉 연구해왔고요. 그래서 이것들을 모아 책으로 냈는데, 그것이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생각의나무 2003)입니다. 그런데 이 책으로 정리한 35년에 걸친 작업들을 보면 그때그때 생각도 다르고 관점도 일관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쓰다시피 해서 체계화했죠. 지금 얘기하신 도농복합체라든지 어번클러스터(urban cluster), 한반도 삼분지계(三分之計), 황해공동체 같은 개념이나 영역도 그 책을 쓸 때 구상하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후 한반도 프로젝트가 온몸을 던질 만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예전엔 간과했던 통일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깨달았고 백낙청 선생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내가 기획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는 사실 한반도라는 차원에서는 반쪽짜리가 아닌가 생각도 해요.(웃음) 최근 대선후보들 사이에 ‘한반도 프로젝트’라 부를 만한 것들이 공약으로 나와 논란이 있더군요. 국민들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틀 정도는 누군가가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그런 걸 새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쓸 때보다 다소 발전·진화된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일영 선생님께서는 한반도의 하드웨어가 한계에 달해 새로운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면서 한반도의 공간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특정 산업과 지역에 자원을 집중해서 신속하게 육성하는 경제발전전략을 써왔는데요. 이제 그런 전략은 내외적인 환경변화로 인해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는 공간적인 재배치를 통한 새로운 산업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새로운 전략을 짜려면 지난 시기에 대한 평가가 꼭 필요할 것입니다. 요즘 “개발독재정부는 유능해서 전국토를 개조했는데 민주파정부들은 무능하다”는 말이 유행인데, 선생님께서는 역대 정부의 공간전략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석철 저는 공간형식으로 국토를 보는 입장이니까 경제학자들과는 관점이 다르지요. 저는 한국근대경제사 등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간질서는 한말 일본의 강력한 개입과 지배 아래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꿔 얘기하면 한반도 전체가 일본과 대륙의 중간지대로서 일본의 대륙진출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거죠.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철도와 항만입니다. 여기에서 앞으로 우리가 얘기할 도농복합문제도 나올 텐데요, 그러면서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서울을 중심으로 5개의 항만이 생기고(엄밀히 말하면 신의주는 항만이라기보다 강을 낀 국경도시지만요), 이 항만들과 서울 사이에 철도가 놓입니다. 그게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입니다. 그것들이 축이 되어 한반도가 재편되고 하나의 새로운 권력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일영 철도를 통해서 공간이 재편되었다는 말씀이시죠?
개발독재기 공간전략의 공과
김석철 철도와 항만이죠. 일본이 어떤 면에서 제대로 한 일은 철도를 그냥 놓은 게 아니라 항상 항만과 연결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항만은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죠. 역사적·지리적 이해와 상관없이 한반도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방법을 찾으려 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문화의 이어짐이라든지 지역 특유의 것은 고려하지 않았죠. 그것은 이딸리아의 철도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각 지역의 고유함이나 문화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효율 위주로 공간을 경영하는 전략이 나옵니다. 일본과 대륙의 연결로 맞물리면서 경부선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죠. 또 호남선에 중국으로 이어지는 해로가 연결됩니다. 그래서 목포, 군산 쪽도 제각각 역할을 하게 됐는데, 아마 일본에서 만주가 아니라 러시아 본토 쪽으로도 갈 수 있었으면 원산 같은 동쪽 항만들이 굉장히 발달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일본은 한반도를 경영했지요.
그런데 해방후 이런 공간전략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분단과 거대한 인구이동입니다. 이북인구가 넘어와 주로 서울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군사정부가 들어선 후 경제개혁을 하면서 지방인구가 서울로 들어와 서울집중화 현상이 생겼죠. 이 과정에서 불균형발전이 시작된 겁니다. 어쨌든 나름의 효율성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경부선 라인과 수도권으로 투자가 집중됩니다. 서해안은 완전히 봉쇄되고 북쪽은 휴전선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동남해안만이 열려 있고 수도권에 인프라가 집중된 상황에서 투자가 이루어졌거든요. 그건 분단과 이데올로기 장벽을 전제로 한 것이었죠. 그때 호남인구가 대거 구미, 울산, 포항 등 경상도로 옮겨갑니다.
이때의 성과는 산업클러스터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정책이 지역의 고유성이나 문화의 연속성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효율적 관리에 중점을 두었듯이, 개발독재기의 산업화과정에서도 이왕 투자된 곳에 연관산업을 집중하는 클러스터형식을 취했습니다. 포항·울산·구미 일대 그리고 수도권 주변에 투자를 집중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에 종속된 처지를 미래에도 받아들이기로 전제한 거죠. 따라서 어떤 점에서 효율적이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민주정부라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겠죠.
이일영 그렇다면 개발독재시기의 공간전략은,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공간구도를 기본적으로 계승하되 분단이라는 제약상황을 받아들이면서 그걸 발전시켰다고 평가하시는 건가요?
김석철 제약을 고착화하고 전제한 식이 되어버린 거죠.
이일영 그렇다면 80년대 이후의 정부들은 어떤 식으로 평가받아야겠습니까?
김석철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한 공간전략과 국가의 주요 인프라 건설이라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예컨대 한 경제권역이 강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공항과 항만과 철도의 연계장치를 구축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천국제공항을 건설한 것이나 고속철도를 만들고 고속도로의 네트워크를 확충한 것까지는 좋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만, 이해가 안되는 것은 고속철도와 공항과 항만을 연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제는 철도를 만들 때 항만과 연결했거든요. 그들은 전국을 효율적으로 다 쓰려고 한 거죠. 골고루 다 착취하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요.(웃음) 아무튼 8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공항을 4개쯤 지었습니다. 그런데 청주공항, 양양공항, 무안공항 등은 쓰지도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놓은 꼴이에요. 몇가지 집중적인 투자가 성공하기도 했지만, 국가 공간전략으로 봤을 때 한곳에 편중됐지만 산업클러스터를 이루었던 박정희정권 시절만 못했다고 봅니다. 고속철도 등 몇가지를 적시에 힘을 모아서 만들기는 했지만 다른 사업들이 한반도의 전체 공간을 조직화하지 못한 것,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가지 못한 것, 즉 미래를 보지 않은 것은 문제입니다.
농촌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김석철이 정책당국이나 사회과학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농촌을 살릴 대안을 열심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한미FTA 탓하지 말라, 한국 농업은 어차피 다 망하게 돼 있는 것 아니냐”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FTA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입장에서 “시대는 국민들이 농업개방에 맞서 총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 도시설계가가 “농촌이 잘살아야 잘사는 나라”라고 하면서 “도농복합체로서의 새로운 도시”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일영 개발 연대의 성과도 있었습니다만, 그때의 모순이 축적되고 또 이후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대표적인 문제가 농업·농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박정희 모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이미 그 시절부터 도농간 격차가 벌어지고 농업의 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87년 이후에 민주정부들이 들어서서 대증요법은 취했을망정 뚜렷한 농업·농촌의 회생책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농민운동이 그후에 상당히 활성화되었다 해도 역시 책임있는 대안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온국민이 답답해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농업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제안은 사회과학자들에게 부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도농복합체로서의 새로운 도시를 말씀하셨는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아마 이딸리아의 중간규모 도시라든지 중국의 광역도시처럼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모형을 염두에 두신 것 같은데요. 사실 농촌을 잘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역대 정부들이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는 척하다가, 너무 어려우니까 대충 관리하고 넘어가겠다는 속셈으로 정면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을 살리는 대안은 산업적이고 경제적인 기초와 공간이 맞물려가면서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 이후에 진전된 구상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석철 국가로서 혹은 광역의 지역공동체로서, 문화공동체로서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즉 제대로 된 문명국가가 되자면 농촌과 도시가 공존해야 한다는 게 제 관점이에요. 사실 저는 농촌이라는 말이 상당히 거북하게 들립니다. 보통 농촌·도시라는 것을 한국사회를 크게 나누는 두개의 공간형식으로 여기는데, 그런 구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들 급격한 경제성장의 결과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과 농촌의 몰락이 불가피했다고 얘기하는데, 그것도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는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우선 수도권과 지방권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도권도 수도권 외곽과 내부로 나눌 수 있고, 지방권이라고 하더라도 지방 나름대로 대도시가 있고 소도시도 있거든요. 수도권에도 농촌이 있고요. 그러니까 먼저 수도권과 지방권이라는 큰 범주로 나누되, 그 안에서 대도시와 중간규모 도시, 소도시로 나누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의 집합형식을 도시와 농촌으로 나눌 때, 한곳의 농업·농민·농촌이라는 것은 실제 공간형식으로 존재한다고 하기에 너무 규모가 작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그건 소도시의 요소라고 봐야죠.
균형발전의 핵심을 토지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면, 오히려 도시형식이 더 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죠. 인구단위로 본다면, 농촌은 큰 토지를 적은 인원이 관리할 수밖에 없고, 도시는 좁은 토지에 훨씬 많은 사람이 집중해 있기 때문에 부가 집중될 수밖에 없지요. 이제 어떻게 인구와 토지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조직하는가가 중요한데, 도시라는 것은 상당히 우수하고 효율적인 조직방식입니다. 그리고 농촌·어촌은 도시문명과는 다르지만 지역이나 국가에 불가결한 요소라고 봐야죠.
그런데 균형발전이 안되는 가장 큰 이유가 농촌에서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이거든요. 끊임없이 인구가 창출되고 변화가 이어지지 않으면, 경제는 커갈 수 없어요. 그다음으로 도시간의 이동성, 도시와 농촌 간의 이동성이 굉장히 커졌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국도체계가 완성되기 전에 고속도로가 먼저 만들어져서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대도시들만 집중적으로 성장하고 소도시와 농촌은 대도시에 종속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농촌의 역할을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이일영 저 또한 농촌과 도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현실성입니다. 토지문제만 하더라도 도시는 건설교통부에서, 농촌은 농림부에서 정책을 수립합니다. 지방 차원에서는 서로 다른 계통에서 만들어진 원리들이 내려와 뒤죽박죽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농업과 농촌이 중요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교육체계가 그대로여서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따로 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을 개발하는 사람들과 도시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도시와 농촌을 종합적으로 보는 출발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농촌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이고 농촌 없이 도시만 있는 나라는 완전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는 국가 전체 또는 도시가 농촌을 거느려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저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며,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스스로 선택해 살 수 있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토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현실적인 방안이 문제인데, 그런 흐름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집적된 대도시가 아니라 밀도가 낮은 농촌적 삶을 선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뭘까 생각해봅니다.
김석철 울산이나 포항, 창원, 구미 같은 데가 처음에는 다 농촌이었지요. 그게 세계적인 산업도시가 된 것이죠.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농촌이나 어촌을 세계적인 경제권으로 만들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농촌만 가지고는, 지금의 농촌인구로는 안됩니다. 지금 상태에서 주변도시와 네트워크를 맺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거죠. 어떻게 해서든 해안을 따라서 어번링크를 만들어야 하고 중국 동부해안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전에는 농촌과 주변의 소도시 간에 또는 농촌끼리 네트워크를 맺는 걸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소도시는 아무런 견인력도 발전동력도 없습니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제가 진도(珍島)에다 ‘바다오아시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서남해안 일대의 섬과 내륙의 도시를 연결하고 그 비슷한 걸 중국 동부해안에 만들어서 이 둘이 짝이 되게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시장이 생기고 농촌에 인구가 모일 수 있어요. 그저 농업을 과학화·기업화·산업화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한국 농촌의 돌파구를 과거 신라방 같은 국제화된 영역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서 찾자는 거죠. 물론 농촌의 역할이 농수산물 공급만이 아니라 다른 게 있어야죠. 이딸리아에 있으면서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한 특유의 산업들을 많이 봤습니다. 치즈도 만들지만 염직업·디자인업도 하고 조선업도 하거든요. 그것들이 농촌이나 농업·수산업과 연계되도록 하려면 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확보하자면 국경을 넘어 좀더 판이 커져야 합니다.
서남해안과 제주를 잇는 바다오아시스 플랜
김석철은 지난해 말 개인전에서 ‘바다오아시스’ 플랜을 제안한 바 있다. 즉 경제적으로 사막이나 다름없는 서남해안에 오아시스 같은 해안도시를 만들고 이를 내륙과 연계하면서 다도해와 제주도를 다시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관광·휴양업과 신산업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농촌형 도시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담에서 그의 제안은 조금 더 진전되었다. 기존 관광단지 개발프로젝트와는 다른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농촌·농업과의 연계를 좀더 구체화하고, 한층 확대된 시장 형성을 위해 황해 맞은편 중국 동부연안에도 ‘바다오아시스’를 만들어 이것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일영 작년 11월 24일 정부에서 서남해안권 발전구상을 발표했어요. 무안, 목포, 신안을 중심으로 해서 인구 60만명 수준의 도시를 만들고 거기다 물류거점, 고도화된 지역특화산업, 신에너지 재생산업, 복합 관광클러스터를 육성하겠다고 합니다. 2020년까지 총 2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고요. 그러면 선생님의 바다오아시스 플랜과 정부의 서남해안권 발전구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김석철 서남해안권 발전구상안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웃음) 카피라이터들이 만들어낸 거예요.
이일영 알맹이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석철 그렇습니다. 저는 진도만이 아니라 서남해안 일원, 제주도까지 포함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그것이 새만금까지 연결되고요. 그렇게 광역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중인 혁신도시처럼 농촌개발, 어촌개발을 위해 기반시설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낸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영역을 넓히지 않으면, 지금처럼 제주도 혼자 자유화하고 국제화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제주도만으로는 맛있는 먹거리도 볼거리도 부족해요. 그런데 제주도와 진도 사이 거리가 고작 100km입니다. 그리고 서남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을 조직화하면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해안과 섬이 어우러진 남프랑스 해안 같은 것이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주도에 온 관광객에게 서남해안의 먹거리가 공급되고 또 이 사람들을 다도해로 오게 하는 거죠. 게다가 샨뚱(山東)반도 이남의 롄윈강(連雲港)과 연결되면 중국과 일본에서도 오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인구가 모여들어 조직화되면 수도권 못지않은 규모가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추진되는 것은 그게 아니거든요. 무안공항 근처에 뭘 하겠다는 것이며, 또 인구 60만을 어떻게 모읍니까? 수도권에서는 안 갈 것이 확실하니까 그나마 남아 있는 농촌인구에서 또 끌고 오겠다는 얘기가 되죠. 결과적으로는 지방권에서 또 한번 농촌을 황폐화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동해안에서 보듯이, 해안은 한번 망가지면 재생이 안됩니다. 관광업에서 관광객이 주인이 되면 그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닙니다. 왕년의 위대한 문명국가 그리스가 그렇게 관광객으로 먹고살죠. 이딸리아는 좀 다릅니다. 손님도 많지만, 우선 자기들이 잘삽니다.
국가균형발전전략과 통합신도시안
말이 나온 김에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보자. 수도권으로의 일극집중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때 지역혁신의 동력으로서 지역 산업클러스터 전략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자 의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다. 지역발전과 관련한 논의가 국가적·세계적 조건과 거시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지나친 로컬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균형발전담론의 배경에는 지역에 거주하면서 전문직 등에 종사하는 신지역써비스계급(new regional service class)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이일영 지금의 균형발전정책이 중앙정부의 정책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쟁탈전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개발을 추진하는 지역단위도 너무 세분화되어 있고요. 유럽연합의 경우 인구 10만 내외 규모의 상향식 지역개발을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와는 좀 사정이 다르지요. 우리의 경우 자치 경험도 부족하고 농업과 지역산업의 발전수준이 낮아서 소규모 지역단위에서는 발전주체를 찾기 어렵습니다. 좀더 범위가 넓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자립 가능한 거점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김석철 우리는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을 굉장한 문명적 성과라고 자부하는데, 이것들을 만드는 데는 공학적 능력도 필요했지만 사회적인 요구와 수요도 한몫했지요. 지금처럼 농촌문제의 심각성에 크게 공감하거나 균형발전에 대한 국가적 참여, 국민적 동의가 있는 때는 드뭅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계기입니다. 이럴 때 저는 금속활자나 팔만대장경 같은 인류 문명에 공헌할 수 있는 도농복합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도시·농촌의 쏘프트웨어를 도시 규모로 조직화하여 기존 도시와 농촌을 하나의 인간집합으로 묶은 통합신도시입니다. 그런데 농촌들 사이에 있는 지금의 소도시로는 안됩니다. 통합신도시를 중심으로 자족적이지는 않지만 독립적이기를 원하는 농촌들이 나름의 산업권역을 구축하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그런 중간집합체의 예가 이딸리아 몬떼뿔치아노(Montepulciano) 등 중세의 도시들입니다. 거기에는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아주 좋은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 도시를 제가 중간도시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 도시가 세계와 소통케 하는 겁니다. 그런 도시들은 일거에 건설해야 합니다. 지금 항공모함 같은 것은 2, 3년 안에 만듭니다. 완벽한 설계만 있으면요.
이일영 도시와 농촌 사이에 중간도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석철 예. 그런데 이 중간도시는 도시와 농촌을 소통케 해야 할 뿐 아니라 세계와 통해 있어야 해요. 또 지역의 경제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일영 농촌과 중간도시는 어떻게 연결하면 될까요? 도시가 농촌을 흡수하고 종속시키는 지금까지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김석철 농촌들이 자연스럽게 집합하자면 강변을 따라 이어져야 합니다. 낙동강 일대, 섬진강 일대로요. 그렇게 되면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고, 농업과 써비스산업이 역할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라인강 인근에서는 바다 방향으로 작은 제조업들이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별 농촌들은 강을 통해서 하나로 이어지는 거죠. 여기서 강이라는 건 주운(舟運)이 가능한 강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강은 주운이 불가능해요. 옛날에는 가능했는데 그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니 지금 우리 농촌은 전국 사방에 흩어져 있는 셈이에요.
경부운하 계획의 결정적인 한계
마침 흥미로운 화제가 나왔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국토개발 관련된 의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으니, 놓치고 갈 수가 없다.
이일영 주운이 가능한 운하를 통해 농촌을 연결하고 조직하자는 말씀인데, 운하 얘기를 들으니 유력한 대선주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얘기하는 경부운하가 떠오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처럼 농촌을 조직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명박씨가 말하는 것의 핵심은 낙동강 상류와 남한강 상류를 연결하는 것인데요. 그렇게 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600km 물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제학의 상식으로 보면, 그것은 일종의 물류를 위한 프로젝트인데, 물류에는 시간요소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근현대로 오면서 말하자면 시간단위가 상당히 짧아졌지요. 그래서 중세까지는 중요했던 운하가 이제는 비중이 상당히 작아졌어요. 중국의 장강(長江)도 과거에 비하면 물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독일 라인강 정도를 빼면 국제적인 사례도 많지 않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농촌경제를 재조직하는 네트워크라는 구상은 상당히 흥미롭기는 한데, 물길 주변에서 나올 수 있는 물동량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아까 주운이 가능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지 않습니까? 겨울에는 얼마 안되고요. 그래서 주운을 유지·관리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이런 문제는 어떻습니까?
김석철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이으면서 바다로 연속해가는 것이 강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예요. 강변 도농복합체가 그렇게 만들어지고요. 제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설계할 때 한강이 휴전선으로 닫혀 있으니까 굴포천 쪽의 경인운하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새만금과 금강 유역을 주운이 가능한 운하로 연결한 새만금·금강 도시연합안,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을 접속하는 낙동강 도시연합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강으로 조직화된 배후에 작은 도시들과 농촌들이 바다로 이어져서 해안링크와 접속하게 하는 것이 한반도가 가진 가장 큰 가능성이고, 이딸리아보다 나은 점이에요. 세계에서 이런 데가 없을 만큼 좋은 거죠.
그런데 강과 강을 잇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소선후즉근도의(知所先後則近道矣)라고,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이 있겠죠. 낙동강·금강·한강 유역의 소도시와 농촌을 조직화하여 해안으로 연결한 후에 세 강을 연결한다면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 한강도 바다로 끌고 가지 못하고 있는데,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로테르담이 세계 최고의 항만이 된 것은 강과 운하와 바다가 도시와 농촌을 아우르며 도시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이거든요. 강이 바다와 소도시를 연결하면 농촌이 바다로 나아갈 수 있어요. 사회적 수요가 있으면 기술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일영 그러니까 경부운하를 만든다고 해도 서울에서 딱 막히고 마는군요. 그래도 이 대운하계획은 다른 어떤 잇점이 있지 않을까요?
김석철 운하라는 인프라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속도로는 대도시와 대도시를 연결하는 인프라이고, 운하는 운하변의 중소도시와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인프라입니다. 운하계획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지방의 중소도시들과 대도시가 공존공영하는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물류는 대부분 바다를 통해 한반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운하가 어떻게 바다로 나갈지 연구하는 게 우선이고, 낙동강과 한강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는 나중 문제입니다. 그런 준비 없이 경부운하 운운하는 것은 영남이나 충청내륙권에 개발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에 불과하지요. 강이 바다로 가게 하는 것이 운하를 만드는 목적이고, 강에 배가 다니도록 하여 도농복합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 운하의 기능입니다. 운하로 연결된 도농복합체가 대도시 못지않은 경쟁력과 삶의 질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래형 도시가 필요하다
김석철의 ‘한반도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주의적 관점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도시를 만들고 공간을 개발하자는 그의 입장에서는 환경론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아마 근본적인 환경론자들은 도시 자체를 에너지를 낭비하는 장치로 볼 것이다.
이일영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신도시 건설 능력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면서 그것들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신도시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도시가 환경을 파괴하며 건설되었고, 도심으로의 이동거리가 늘어나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에너지 저소비형 도시를 제안하신 바 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석철 지금의 도시로는 미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에너지 부족이나 과도한 인구집중으로 인한 불균형 등 문제가 많지요.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들, 특히 미국 도시에 있는 5%의 인구가 세계 에너지의 25%를 쓰거든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도시가 소비하고 있는데, 발전하는 동아시아의 도시들이 앞다투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도시를 구조개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미래형 도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데, 지금 전세계적으로 한국이 여러 면에서 가장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도시건설의 기반인 건설·전자·철강·조선산업이 세계 최고거든요. 그리고 수요가 확대되어갈 세계 최대의 도시시장이 바로 곁에 있어요.
수도권의 엄청난 부동산값 폭등은 도시 스케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파트단지를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주거지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완전도시를 만들어서 인구가 그리로 빠져나가게 하는 겁니다. 정부기능을 옮기고 공공기관을 내보내서 될 게 아니고, 더 좋은 도시를 만들어 인구를 이동시키고 거기서 살게 해야죠. 좋은 곳에 몰려 살려고 하는 수요가 수도권 부동산값 폭등과 지방도시·농촌의 몰락으로 나타난 거니까요. 새로운 도시에 대한 수요가 있고 경제력이 있고 산업능력이 있는데, 문제는 창조적 능력이겠죠. 우리가 창조적인 21세기 동아시아의 도시모델을 만들면, 중국과 인도 도시의 모델이 될 겁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방을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이다. 거기서는 최근 벌어들인 오일달러를 투입하여 중동의 허브로 도약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160층 규모의 초고층빌딩 ‘버즈두바이’(Burj Dubai) 건설사업인데, 이 건물의 시공사가 한국 업체다. 이뿐 아니라 리비아의 대수로공사,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공사 등 한국 건설업의 시공능력을 세계에 과시한 예는 많다. 그러나 여기에 긍정적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일본처럼 ‘토건국가’의 혐의도 제기되고 있다. 토건국가는 정치인 및 관료, 금융기관, 건설업체로 이루어진 ‘철의 삼각구조’를 중심으로 한다. 토건국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은, 1972년 ‘일본열도개조론’(타나까田中角榮), 1987년 ‘다극분산형 국토개발계획’(나까소네中曾根康弘)을 추진하여, 부동산버블과 자연파괴는 물론 경제위기를 불러온 바 있다. 그러니 도시건설로 부동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김석철의 주장은 꽤 이색적이다.
이일영 선생님께서는 부동산문제도 도시계획으로 풀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까지는 수요를 세제로 압박해서 풀겠다는 해법과 아파트를 더 많이 공급해서 풀자는 양론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3의 길을 제시해주신 셈입니다. 자족적 기능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해서 인구를 이동·분산시킬 수 있다고 하시는데 그걸 대체 어디에 세웁니까?
부동산·주택 개발의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김석철 신도시 몇군데가 거론되고 있는데, 이대로는 문제가 갈수록 확대되고 맙니다. 분당을 만들었어도 주택문제가 해결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교통은 더 번잡해졌고 강남 집값은 더 올랐죠. 중요한 것은 도시의 핵심부분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런던·뉴욕·토오꾜오가 그나마 유지되는 게 그런 이유예요. 우리는 강북에 대학이 다 몰려 있는데, 세계적인 도시에서는 중요한 대학들이 다 바깥에 나가 있습니다. 뉴욕이나 토오꾜오도 고등교육의 핵심기능이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고요. 그런데 대도시의 일극집중을 야기했던 대학군이 21세기 와서는 도시경쟁력의 핵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형 산업은 제조업이나 써비스산업 다음에 오는 창조산업으로서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대학과 관련산업체가 함께 모여 창조적 도시산업을 일으키는 거죠. 행정부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해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만들면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에서 행정수도와 혁신도시의 대안으로 금강유역과 새만금을 아우르는 금강·새만금 도시연합, 낙동강유역의 산학클러스터와 해안링크가 함께하는 낙동강 도시연합을 주장했는데 문제는 어디다 그런 도시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죠. 내부 구조개혁이든 신도시건설이든 결국 토지 창출이 문제예요. 그간에는 경부선축 동쪽의 한강변과 강남을 개발함으로써 토지를 창출해 지난 이삼십년 동안 경제성장에 따른 주거 수요를 확보했거든요. 이제 새로운 공간이 필요한데, 봉쇄되어 있던 경부선 서쪽 한강변과 차단되어왔던 북쪽 한강변의 새로운 토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울의 분단체제적 내부모순을 해결하는 길과 강북에 집중된 대학인구를 중심으로 강북을 창조적 산업도시로 만드는 길이 강남 부동산문제를 푸는 길입니다.
이일영 아직 의문점이 남는데요. 지금까지는 도시를 건설할 때, 처음에 토지를 수용하고 개발하면서 집값이 한번 오르고, 거기에 집을 지으면서 한번 오르고, 분양하면서 한번 오르고, 이렇게 원래보다 집값이 거듭 높아집니다. 또 도시가 생기면 주변의 땅값이 계속 올라가고요. 그래서 신도시를 만들면 그 일대의 지가가 계속 상승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 균형발전이 얘기되지만 지방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그래서 실제로 공장을 새로 짓기가 더 어려워졌다고들 합니다. 결국 개발 자체가 부동산가격을 올리고 지대수익을 얻기 위한 경제활동에 종속되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었는데,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김석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맨해튼이나 베네찌아는 세계적인 고밀도 지역입니다. 그런데 두 도시 다 자연을 잘 이용한 사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계획할 때 1천만평을 수용하는 걸 보고, 저는 정책추진자들이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거나 사고가 황폐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과천 정부청사가 이전하는 데 50만평 이상은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엄청난 토지를 수용하여 결과적으로 부동산 투기자본을 만들어낸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새로운 공간전략으로 한반도를 경영한다면, 그리고 토지 수용과 보상이 부동산시장을 흔들어서 경제를 엄청나게 왜곡하지 않게 하려면, 저는 강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강 하상(河床)의 폭은 굉장히 넓습니다. 어떤 곳은 1km나 되는데, 그런 강들을 주운이 가능하도록 만들면서 수리(水利)를 적절하게 통제하면 토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중 일부만 집중적으로 맨해튼과 베네찌아식으로 개발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지역에서는 강이 어번인프라가 되기 때문에, 외곽의 인프라와 연결만 하면 됩니다. 국토를 가능한 한 그대로 두고, 기존 인프라와 자연 인프라가 조직화될 수 있는 곳에서만 고밀도로 집중 개발하면, 농촌과 도시 사이에 토지를 확보하면서도 도시와 농촌이 다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일영 말씀처럼 하면 토지시장에 환경친화적으로 낮은 값의 토지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넘치는 유동자금이 존재하는 한 부동산문제가 꼭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김석철 21세기 경쟁력의 기반은 창의력과 돈과 시장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바로 곁에 있는데 우리 역량이 부동산에 몰려다니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10년 전부터 황해도시공동체와 동아시아 도시사업을 말한 것입니다. 도시사업의 기반인 전자·조선·철강·건설산업의 경쟁력이 최고인 나라가 역사상 가장 큰 도시건설시장을 외면하고 부동산에 빠져 있는 것은 학자들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일처럼 정신나간 짓입니다. 창조산업과 도시산업 등 한반도의 도약을 이루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돈과 시장이 없어 못하던 일을 돈과 시장이 넘치는 지금 못하면 수백년 만에나 한번 올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수도권의 일부 부동산이 경제규모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도권 규제, 엄청난 토지보상비가 불가피한 신행정수도·혁신도시 추진 등 정책버블을 남발했기 때문에 부동산광풍이 시작된 것입니다. 부동산 해법은 주택수요의 세 요소, 즉 집을 넓히고자 하는 중상층의 주택수요, 신혼과 노후를 위한 주택수요, 그리고 무주택자의 주택수요 등을 수도권·지방권의 기존 택지 및 개발가능 택지와 연계한 부동산매트릭스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한강개발로 동부이촌동과 여의도, 반포와 압구정동, 잠실을 만들었지만 아직 한강 동부만 개발된 것입니다. 한강 서부와 해안지대를 개발하면 앞으로 20년간 수도권 중심부의 도시화된 토지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지방권 대도시와 중소도시 토지는 어번인프라와 토지를 결부시킨 신도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황해를 천혜의 인프라로 삼는 전략
종횡무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면 김석철이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황해연합에 관한 이야기를 짚어야 한다. 아쉽지만 화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통합이나 연합은 국민경제단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통합의 단계는 체약국간에만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약국이 역외국에 대해 공동관세를 부과하는 관세동맹(customs union),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하는 공동시장(common market), 회원국간 경제정책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경제동맹(economic union), 회원국간 화폐·재정 및 사회정책을 통합한 최종단계인 완전경제통합(complete economic integration)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김석철의 황해연합은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제안된 것이다.
이일영 범위를 좀 넓혀 황해공동체 얘기를 해볼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황해연합에서 북한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몇년 전 북한은 신의주 특구계획을 내놓았는데, 그때 건너편에 있는 중국의 딴뚱(丹東)이 위축되기 때문에 중국이 이를 견제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실험을 해서 미국·일본의 반발은 물론이고 한국·중국도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동북아에서 공간적 차원의 네트워크·협력·연합이 증진되고 확대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빼고 가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남한은 서쪽, 북쪽이 막힌 섬처럼 될 텐데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황해연합 개념에 북한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석철 황해도시공동체 또는 황해도시연합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EU 같은 국가연합과는 다른 조직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국가가 아니라 그냥 ‘천하’죠.(웃음) 그리고 일본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대국이고요. 지금 동북아에서는 국가 대 국가의 방식으로는 문제가 안 풀려요. 제가 황해연합을 얘기하는 것은, 지도를 보니까 여기서 뭐가 될 것 같다는 정도의 생각이 아닙니다. 예컨대 베네찌아는 지중해 일대를 조직화하고 그걸 자기의 영역으로 만들면서 유럽과 이슬람 사이를 중개함으로써 크게 번영했거든요. 그러면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뭐겠어요? 우리를 통해 이쪽 저쪽이 연결되고 조직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한반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전제로 한 창의적 도시연합을 제안하는 겁니다.
그런데 국가를 초월한 도시간 경제공동체가 과연 가능할까요? 전 그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도시연합은 그냥 놔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전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창조적 구상과 노력이 필요하지요. 처음에 제가 생각한 것은, 바다를 강력한 인프라로 활용해야 하는데 바다가 인프라가 되려면 거대도시와 규모있는 도시연합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선은 따롄(大連) 일대, 뻬이징과 톈진 일대, 샹하이, 그리고 일본열도의 세또나이까이(瀨戶內海) 일대가 바다로 우리 수도권과 연결될 수 있죠.
그런데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극대화한다고 시작한 황해공동체가 어쩌면 한반도의 불균형을 심화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다음 단계로 생각한 것이 서남해안과 롄윈강 일대, 샨뚱반도와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에요. 또 중요한 게 에너지문제입니다. 러시아는 어떻게든 남쪽으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에요. 에너지의 축이 동시베리아 쪽으로 더 옮아가면, 결국 동해 라인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관계, 또 일본열도와 중국 동부해안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해진다고 봤을 때 우리가 긴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런 역할 속에서 북한과 연결되면 한반도의 잠재력이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반도라는 새로운 인간집합의 형식을 찾아보자는 거죠. 인천과 새만금 연안을 조직해서 중국의 동부해안과 연결하면 중국 쪽에서도 충칭(重慶)과 뻬이징이 연결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이지 않겠어요? 우리가 블라지보스또끄를 원산, 부산까지 끌고 와서 후꾸오까, 시모노세끼를 거쳐 오오사까까지 닿게 하는 라인을 만들어나가면, 그게 역사와 지리의 창조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남북이 서로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일영 황해를 인프라로 사용하게 되면, 중국 동부해안의 도시벨트와 한반도가 바로 교통이 가능한 상황, 네트워크가 가능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한반도 서부의 육로로 연결되는 평안도·황해도 벨트가 지닌 중요성이 감소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김석철 해안의 경우는 벨트라기보다는 링크지요. 그것이 내륙으로 연결되어야죠. 우선 롄윈강에서 칭따오(靑島)까지 보면 지금 한국이 투자를 제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본·미국보다 더 많습니다. 샹하이 일대는 세계적인 경제권역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인천과 새만금과 서남해안을 조직화해서 롄윈강 쪽으로 끌고 들어가면 그게 쉬저우(徐州)를 통해서 카이펑(開封), 뤄양(洛陽), 시안(西安)을 거쳐 우루무치(烏魯木齊)로 빠집니다. 그게 중국을 가로지르는 중국횡단철도(TCR, Trans China Railway)죠. 해안링크만이 아니라 대륙을 가로지르는 라인에 우리가 개입하게 되는 겁니다. 한반도 해안이 조직화되고 또 그것이 중국의 내륙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비전이 우리에게 있어요. 전세계에 그런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데는 한반도밖에 없어요.
이일영 결국 황해를 인프라로 해서 중국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 북한도 빨리 참여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석철 링크가 이어져서 북한과 우리가 하나가 되면, 북한은 우리가 퍼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엄청난 걸 가능하게 해주는 보고(寶庫)가 되는 거죠.
열차페리 구상은 현실성이 있나
이일영 얼마 전 한 대선주자가 열차페리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항구와 연결된 철로를 통해서 화물이나 용역을 실은 기차가 배로 이동해 다시 철도로 환승되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당장 인천항과 옌타이(煙臺), 따롄(大連)을 연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평택, 부산, 목포로 확대할 수 있다”라고 했답니다. 선생님의 황해연합구상에서 볼 때 이것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요? 또 건설교통부에서는 “어차피 항구까지 철도를 놓아야 하는데, 작은 화물을 신속하게 운송하는 데는 적당한 수단이 아니다. 그래서 칭따오와 인천 사이에는 항공기와 연계되는 화물페리를 시도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역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석철 그것도 아까 경부운하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데요.(웃음) 내공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외공의 프로젝트 같군요. 역시 먼저 할 게 있고 나중에 할 게 있어요. 한반도 서해안도 서로 어번링크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 항만을 건설하자고 할 때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목포항과 인천항도 역할 분담이 안되어 있고, 또 광양과 부산도 정리가 안되어 있어요. 먼저 해야 할 문제가 그것이죠. 다음에 해안이 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어져 조직화된 경제권역이 만들어져야 하고, 다음으로 중국 동부해안과 짝이 되는 경제권역이 이루어지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교역만이 아니라 함께 생산하고 시장과 공장을 공동으로 갖게 된 후에 대륙철도를 이용하는 겁니다. 이명박식의 ‘대운하’가 아닌 ‘적지적소의 소운하들’이 강을 통한 도시연합을 이룬 후에 농촌과 도시의 집합을 만들어야 하며, 바다를 건너 중국과 연결하는 것은 그다음에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일영 한반도의 철도화물을 롄윈강에서 시작되는 철도로 연결하는 페리가 굳이 ‘열차’페리여야 한다는 주장이 비단 ‘선후’의 문제에 그치는 것일까요? 또 어떻게 한반도 서해안을 TCR과 연결한다고 새만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요? 해안링크를 형성한다는 것은 항만들 사이에 연계와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는 것일 텐데, 그 구체적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김석철 지금은 우리가 중국에 돈이든 기술이든 사람이든 많이 보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중국의 힘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우리는 주변적인 국가가 될지 모릅니다. 과밀한 수도권이 그 힘을 받아안을 그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열차페리는 중국 동부해안과 한반도 서부해안의 도시연합을 전제로 할 때에야 의미있는 정책이 될 수 있고, 단순한 항구와 항구가 아니라 항구와 내륙이 연결되어 물류를 철도로 집합할 수 있는 항만들 사이를 연결해야 합니다. 지금의 주장처럼 인천과 따롄, 부산과 후꾸오까, 목포와 롄윈강을 연결하는 것은 별 뜻이 없습니다. 그러나 호남선, 전라선의 도시산업과 물류를 익산으로 집합하여 이를 군산과 새만금항을 통해 롄윈강에 닿게 하여 중국 중부내륙과 연결할 때 비로소 열차페리구상이 충청권과 호남권 백년대계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동부해안의 롄윈강에 주목하는 것은 그곳이 유라시아철도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롄과 칭따오가 큰 항구이긴 하지만 중국 본토의 네트워크상에서는 본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롄윈강은 정저우(鄭州), 시안(西安), 란저우(蘭州)로 통하는, 중원을 연결해서 씰크로드로 이어지는 철도의 시발점입니다. 특히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열차’페리라면 이런 점이 당연히 고려되어야겠지요. 중국 중앙정부에서도 동부연안의 개혁개방, 서부대개발에 이어서 ‘중부굴기(中部崛起)’를 국가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구체화된 대책 없이 구호에 그치고 있는 이때, 한국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계획을 제안하면 진정으로 국가대계를 생각하는 안이 될 것입니다.
이일영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저희 사회과학자들이 풀기에 굉장히 어려운 문제들만 주로 여쭈었습니다.(웃음) 평소 고민이 많던 주제에 대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되어 새로운 공부를 했습니다. 창비 독자들에게도 많은 지적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셔서 더 많은 작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석철은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이다. 건축과 도시와 공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겠지만, 사회과학자들의 통상적 사고방식이나 기존의 정책체계와는 전혀 다른 주장과 제안이 많았다. 그래서 사회과학적인 개념으로 그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해설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요약해보면, 그의 생각의 핵심은 해안이나 국토 안에서 농촌과 도시가 연계하고 또 그것들이 인접한 바다를 인프라로 하여 국경을 넘어 다른 도시들과 연계·공존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갈등을 불러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FTA, 국가균형발전 등 굵직한 국가적 의제도 따지고 보면 공간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국가 차원의 자주국방이나 균형발전 논의가 너무 서투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국가간의 자유무역협정 논의에서는 다자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다. 통상적인 국가간 통합이나 협력과는 다른 차원에서 중간단계의 통합과 협력의 경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김석철의 제안은 아직 드문 사례에 속한다.
근대사회에서는 마치 자연지리적 제약은 없어지고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공간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더구나 우리의 근대는 식민지로 시작하여 분단국가를 거치면서 한반도라는 ‘지리적 토대’(geographic referent)의 의미를 박탈당했다. 이제 새로운 시대와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국민국가와 국민경제가 불가분의 배타적인 권력과 영토에 기반한 생각은 점점 힘을 잃고, 새로운 권위의 중심과 새로운 경제영역이 만들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시시각각 한반도와 그 주변이 상호연결되어가는 지구적 공간 속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그중 상당부분은 복합적인 새로운 ‘공간’을 발명해내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공간전략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