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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대화’의 에티카
미하일 바흐찐 『말의 미학』, 길 2006
이장욱 李章旭
시인 wook6297@hanmail.net
철학자나 이론가의 인생에서 어떤 시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게는 스피노자(B. Spinoza)가 그렇고 바흐찐(M. Bakhtin)이 그렇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후 안경렌즈를 세공하며 일생을 보낸 스피노자는 “네개의 벽 안에 매장된 듯” 외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게는 당대의 초월적 선악관념(종교와 도덕)을 넘어 세계의 ‘실체’에 이르는 것 자체가 바로 ‘윤리’(에티카)였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문예학자 바흐찐 역시 비쩹스끄, 싸란스끄 등 러시아의 변방을 떠돌며 주변부적인 생을 보냈다. 쏘비에뜨시대의 유형생활을 견뎌내고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잃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아낸 이 북구의 학자에게는, 하지만 자신의 원고뭉치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카니발적인’ 자유인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았던 그는 러시아를 벗어나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동시대의 이론적 경쟁자이자 쏘비에뜨 구조주의와 문화론에 획기적인 자취를 남긴 로뜨만(Iu. Lotman) 역시 따르뚜 같은 북구의 변방에 머물며 일생을 보냈다. 능력있는 자라면 누구나 서구로, 서구로 망명을 떠나던 그 시절에 말이다.
우리에게 바흐찐이라는 이름은 90년대에 유입된 서구담론과 맞물려 있다. 바흐찐 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화주의’가 한때 다원론이나 상대주의와 관련되어 인식된 것은 불운한 일이다. 그것은 이 다면적 이론가의 내적 유기성을 사상시킨 결과인데, 이는 물론 바흐찐의 이론틀이 러시아가 아니라 (후기구조주의가 번성하던 시기의) 서구라는 필터를 거쳐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리스떼바(J. Kristeva)가 바흐찐의 생각을 변용해서 썼던 ‘상호텍스트성’이라는 표현은 바흐찐의 대화주의보다 더 인기있는 용어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된 바흐찐의 저작들은 바흐찐 수용사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카니발’이라는 어휘를 유력한 비평용어로 등재시킨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이덕형·최건영 옮김, 아카넷)가 2001년에, 이 책 『말의 미학』(김희숙·박종소 옮김)이 2006년에 번역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한국어만으로도 바흐찐의 사유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그전에 번역된 『프로이트주의』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원제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의 제문제』) 등의 목록과 함께 말이다.
특히 바흐찐 연구자 보차로프(S. Bocharov)의 편집본 『말의 미학』(Estetika slovesnogo tvorchestva)은, 「예술과 책임」 등 바흐찐의 초기(1910~20년대) 글들과 「인문학의 방법론을 위하여」 등 후기(1970년대) 글들을 망라하고 있는 핵심 저작이다. 이 책은 옮긴이들의 말대로, “삶의 구체성과 유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문화적 통일체를 창조해낼 수 있는 길을 탐색”(18면)하는 것이 바흐찐적 사유의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주는데, 이 “탐색”은 제목이 된 “말의 미학”, 즉 소설을 비롯한 언어예술 영역에서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유일성’과 ‘통일성’, ‘나’와 ‘타자’ 등의 철학적 범주들이 어떻게 언어예술의 ‘미학’으로 전이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단연 주목을 받아야 하는 글은 「미적 활동에서의 작가와 주인공」이다. 1920년대에 씌어진 이 글은 분량상으로도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흔히 바흐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의 제문제』와 상호보완적인 짝패를 이룬다. 후자가 작가와 주인공, 말과 말 사이의 평등한 대질관계에 기초해 “일치하지 않는 의식들의 복수성”을 강조했다면, 전자는 이와 달리 주인공의 ‘외부’에 창조적 타자로 존재하는 작가가 미학적 건축술을 통해 “미적 전체”를 이룩하는 과정을 탐문하고 있다. 얼핏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두가지 관심사가 실제로 이론적 ‘전회’의 산물인지 혹은 유기적 통일성의 결과인지는 여전히 이런저런 (창조적인) 논란 속에 있다.
이 책에는 이미 번역되어 있는 바흐찐의 도스또예프스끼론과 함께 읽어야 할 몇편의 글들이 더 실려 있다. 「저서 『도스또예프스끼 창작의 제문제』에서」와 「도스또예프스끼에 관한 저서의 개작 계획」 등이 그것이다. 일생동안 신성(神性)을 희구했던 도스또예프스끼를 ‘대화적 소설의 창시자’로 만든 것은 확실히 바흐찐이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대화적 우주 안에서 들끓는 인물들의 말은 가치론적인 종지부를 갖지 않는다. 이 비완결적이며 독자적인 말들의 ‘카니발’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인공들에 대한 작가의 자세이다. 이때 이 평등한 ‘대화’를 창조하고 동시에 이에 개입하는 ‘작가’는, 신의 본질을 지닌 채 인간의 육신을 분유받은 저 독생자(獨生子)의 미학적 변용이라고도 할 만하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그 자신을 끝까지 펼쳐보인 뒤 그 자신을 비난하고 반박하도록 허용하는 신의 능동성”(442면), 그것이 바로 저 ‘대화적 작가’의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백적’ 소설이 구약적이라면, 바흐찐이 생각한 ‘대화적’ 소설은 신약적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이 세계는 단일한 진리치를 향해 나아가는 폐쇄된 자기-대화로서의 소크라테스적 변증법과는 관계가 없다. 바흐찐 자신의 규정대로 “변증법은 대화의 추상적인 산물”(454면)인 것이다. 하지만 바흐찐이 지지한 이질적 ‘목소리’들의 다성악과 상호주관성은 한편으로 다양성에 대한 무차별적 옹호로 해소되지 않는다. 『말의 미학』에 등장하는 “초수신자”(434면) “순수 작가”(410면) “대시간과 소시간”(527면) 등의 용어들과 “가치” 범주에 대한 탐구는 바흐찐의 대화주의가 악무한적 상대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련의 지표들이기도 하다. 가령 바흐찐의 ‘대화’에서, ‘나’와 ‘타자’ 사이에 개입하는 (“초수신자”로 표현된) 모종의 진리치는 대화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구성요소 자체이다. 진정한 대화는 단순히 ‘나와 타자 사이’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리와 타자의 진리”(442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피와 의미로 가득 찬 타자의 의식”(440면)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흐찐을 사유의 원천 중 하나로 받아들였던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 같은 사람이 “대화란 목숨을 건 도약이다”(『탐구』)라고 말한 후, 이를 그리스도적 존재론에 연결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지평(카라따니식으로는 다른 ‘언어게임’)에 존재하는 타자의 상징적 이름이다.
바흐찐이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감정”(456면)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인간은 믿음으로 현실을 대체해서도 안되지만, “믿음의 감정”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이 “믿음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에 이를 수 있는가? 아마도 우리는 이 질문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답을 얻어야 할 듯하다. 바흐찐의 ‘대화’는 현상 저편에 진리의 지평을 상정하는 상징주의적 이원성의 세계를 부인하는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흐찐에게 진리/본질/신성/총체성이란, 삶의 이면 혹은 상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무한한 대화성 속에서만 현현하는 것이다. 바흐찐이 스피노자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인상적이다. “본질은 현상 뒤에 숨겨지고 은폐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 직접 나타나는 것이니까요.”(556쪽) 이는 ‘진리’가 일종의 텅 빈 기표이며, 현실 속에서 그것은 무한한 오해(부정성)를 통해서만 자신을 실현한다는 지젝(S. Zizek)의 헤겔 독해를 연상시킨다. 이 무한한 ‘오해’의 한가운데에 능동적으로 자신을 투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성에 대한 갈망을 소설로 옮기려던 도스또예프스끼가 고통 속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대화’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개별적이며 유일한 자신의 삶을 “끝없는 전체”의 의미들이 교차하는 “경계”의 처소로 삼고,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 바흐찐의 사유가 윤리(‘에티카’)와 만나는 지점 역시 이 어름일 것인데, 『말의 미학』에는 실제로 ‘행동’‘가치’‘책임’ 등 윤리학의 어휘들이 ‘대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등장한다.
이 책에는 그외에도 괴테와 교양소설에 대한 글, 인문학과 텍스트론에 대한 중요한 글들이 실려 있다. 미국의 바흐찐 전문가 모슨(G. Morson)과 에머슨(C. Emerson)이 공저한 해설서 『바흐찐의 산문학』(오문석 외 옮김, 책세상 2006)도 함께 참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