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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이제는 창작 뮤지컬이다

 

 

박병성 朴炳成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 littletree@themusical.co.kr

 

 

 

뮤지컬 붐, 아직 따지 않은 샴페인

 

2006년 공연계를 결산하면서 티켓 예매처와 각 언론사는 ‘공연계를 점령한 뮤지컬’‘뮤지컬 전성시대’ 등 호들갑스러운 헤드카피로 뮤지컬시장의 성장을 알렸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국내 뮤지컬시장은 2000년대 들어서 연 20퍼센트 정도씩 성장해왔다. 연극을 비롯한 기타 공연시장이 정체되거나 축소된 반면, 뮤지컬시장은 꾸준하고도 빠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2006년에는 뮤지컬이 전체 공연시장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부 국내 뮤지컬 제작자들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유럽, 일본에 이어 한국을 세계 5위의 시장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연간 제작편수로는 이미 브로드웨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데다, 고속성장에 따른 자신감에서 나온 평가이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 같은 추세에서는 결코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영화와 함께 뮤지컬이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각광을 받는 것은 전세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산업사회에서 대중예술이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유별나고 극성스러운 면이 있다. 한국 공연시장에서 뮤지컬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부족했던 현실과 맥이 닿아 있다. 우리는 단기간에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내면서 대중예술을 양성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오페라, 무용, 클래식 등 소위 고급예술은 수용자에게 일정정도의 훈련을 요구하는 터라 대중이 쉽게 향유하기는 힘들다. ‘해설이 있는 발레’‘해설이 있는 오페라’ 등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장르 자체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중이 다가오는 통로를 좀더 열어둔 것에 불과해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온 것은 아니다.

대중예술은 일반적으로 통속성을 지향한다. 뮤지컬은 대중의 욕망을 무대에서 재현함으로써 즐거움과 재미를 준다. 이해하기 쉬운 내용에, 춤과 노래, 연기가 어우러진 양식은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의 기질과도 잘 어울려 문화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을 씻어주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뮤지컬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성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않다. 뮤지컬시장의 갑작스러운 성장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인프라의 부족이 의구심을 부추기고 있다.

우선 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뮤지컬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무대에서 제몫을 해낼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뮤지컬배우는 연기와 노래, 춤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무대경험이 필요하다. 최근 각 대학에 뮤지컬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배우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어느정도 실력을 갖춘 배우가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정 수준에 달하는 뮤지컬배우의 수는 적고 작품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해프닝인 셈이다.

연출가, 음악감독, 무대·조명·음향 디자이너 등 스태프들의 사정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전문 스태프를 양성하는 데는 배우보다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래서 이름있는 스태프 몇몇이 국내에 올라가는 모든 뮤지컬의 무대와 조명, 음향을 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 중에서도 뮤지컬의 문법을 체화한 이는 드물다. 대부분 연극이나 오페라, 무용 등 인접 장르에서 뮤지컬로 옮겨온 터라 제작현장에서도 혼란이 빚어지기 일쑤다.

뮤지컬 전용공연장의 미비도 발목을 잡는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세계적인 뮤지컬 메카라는 상징적 공간인 동시에 공연장이 밀집되어 있는 실제 공간이기도 하다. 공연장 클러스터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이곳에 가면 언제든지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갖게 만든다. 일본만 해도 최대 극단인 시끼(四季)가 보유한 뮤지컬 전용극장만 여덟개이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작년에 개관한 샤롯데 한곳밖에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 개막작으로 시끼의 「라이온 킹」을 장기 공연하기로 결정하자 국내 제작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뮤지컬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장기공연이 필수적인데 그 기회를 해외 뮤지컬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문화관광부나 뮤지컬협회, 몇몇 지자체에서 뮤지컬 전용극장 건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2, 3년 후에는 적어도 두세곳의 뮤지컬 전용극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을 키워온 라이썬스 뮤지컬, 그리고 그후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내 뮤지컬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뮤지컬시장의 성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향후의 성장방식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의견도 공통적이다. 지금까지 뮤지컬시장을 키워온 것은 해외 라이썬스 뮤지컬이었다. 본격적으로 뮤지컬 산업화의 포문을 연 「오페라의 유령」에서 시작해 국내시장을 성장시킨 대부분의 작품들이 해외 뮤지컬이다. 2006년 한해에만 120편 정도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고, 그중 상위 10위에 드는 작품들의 매출이 전체 뮤지컬시장의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창작 뮤지컬은 「명성황후」 한편만이 10위권에 들어 궁색하게나마 자존심을 지켰다.

앞으로도 뮤지컬시장에서 해외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겠지만 더이상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필두로 「캣츠」 「레 미제라블」 「미스 싸이공」 등 뮤지컬 빅 4와,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국내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빠리」 「로미오와 줄리엣」 등 시장의 흐름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작품 모두가 이미 소개된 상태다. 이들은 지속적인 앙코르공연을 통해 국내에서 계속 공연될 테지만 갑작스레 커진 시장규모를 유지해줄 뿐이지 새롭게 시장을 성장시키리란 기대를 품기는 어렵다. 결국 국내 뮤지컬의 미래는 창작 뮤지컬의 몫이다.

현재 창작 뮤지컬 시장은 경험있는 창작자의 부재, 제작 노하우의 부족, 투자사들의 근시안적 인식 등으로 인해 제작비 마련조차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창작 뮤지컬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소극장을 중심으로 경쟁력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해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음악 구성이나 드라마의 완결성은 떨어지지만, 우리 정서가 담긴 소재를 우리 감성으로 풀어가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과거의 창작 뮤지컬은 주로 연극 극작가와 대중가요 작곡가 들이 만들었다. 이들은 대개 뮤지컬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기 때문에 결국 서로 다른 장르들이 혼재한, 성격이 불분명한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는 뮤지컬들의 창작자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로, 청소년 시절부터 뮤지컬을 보며 자란 이들이다. 뮤지컬에 대한 인식과 창작방법에 대한 기술이 부족한 것은 선배들과 마찬가지지만, 타 장르에 귀속된 적이 없기 때문에 열린 상태에서 창작에 임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이 다르다. 소재를 무겁지 않게 다룰 줄 알고 음악과 드라마를 훨씬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젊은 뮤지컬 창작자들이 소극장 작업을 통해 경험을 쌓고 그것을 대극장 뮤지컬에 원활하게 적용해나간다면 창작 뮤지컬이 국내 뮤지컬시장을 주도하게 될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소극장 주도의 창작 뮤지컬과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대극장이 해외 라이썬스 뮤지컬에 점령된 상태라면 200석 미만의 소극장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들이 서서히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은 20, 30대 여성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을 고려한 탓인지 로맨틱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공연된 작품을 살펴보면,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세태를 그린 「폴 인 러브」, 오래된 연인들이 갈등을 겪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프로포즈」, 무대적 상상력을 이용해 시각장애인 작가와 연출가의 사랑을 담아낸 「뮤직 인 마이 하트」, 작곡가를 사랑하는 가수지망생의 이야기 「컨페션」,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소재로 한 「김종욱 찾기」 등 사랑타령 일변도인 면이 없지 않다.

이 작품들은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흥미를 끌지만, 소재를 요리하는 방법들이 너무 평이했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는 작품이 많았다. 삶에서 길어낸 사랑이 아니라 사춘기 소녀의 감성에 맞춘 낭만적 사랑은 보는이를 민망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등장인물들도 틀에 박힌 경우가 많았다. 꽃미남, 바람둥이, 순정녀, 순정남 같은 전형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사랑 이외의 삶에는 아예 관심없는 캐릭터도 있었다.

작년에 가장 인기를 끈 「김종욱 찾기」는 재치있고 감각적인 대사, 일인다역으로 등장하는 ‘멀티맨’의 활약, 빠른 전개에 따른 무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한계는 마찬가지였다. 첫사랑을 간직하고 싶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인물 설정은 깊은 공감을 얻기 힘들었고, 곁에 있는 누군가가 바로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메씨지는 진부하게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로맨틱 뮤지컬은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천만번 되풀이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또 사랑이기 때문일까.

로맨틱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와 서민 들의 삶을 담담하게 담아낸 「빨래」는 삶의 진솔함이 담긴 보기 드문 수작이었고, 꽃동네 요양원에 의탁해 있는 버림받은 환자들의 이야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의 온정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계에 대한 희망적인 메씨지를 전해주었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고전을 차용한 소재도 흥미롭지만 배우의 목소리와 움직임만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를 모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평강공주를 닮고 싶어하는 시녀 연이다. 연이의 이야기는 액자형식으로 들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을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야기 소년이 책을 읽어주면, 도깨비나 요정쯤 되어 보이는 이들이 그것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한 장면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한 장면

 

이 작품은 배우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무대에는 대나무숲을 그린 걸개그림 하나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이야기 소년의 설명에 따라 동굴이나 호수, 숲속으로 배경이 변하는데 이것을 모두 배우들이 직접 몸으로 표현한다. 빈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은 바로 연극적 상상력 위에 펼쳐낸 배우들의 몸짓이다. 음악도 악기 없이 배우들의 아카펠라로 풀어간다. 무대는 철저히 원시적인 상상력과 표현으로 충만한 순수한 공간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부딪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참과 거짓, 진실과 허상이 마주보고 있는 거울구조를 취하고 있다. 거울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소품이다. 거울은 연이가 평강의 옷을 입고, 평강의 말투를 흉내내고, 평강인 체 지내는 거짓의 공간이다. 연이는 거울 속에서 평강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확인하는데, 그 모습은 동굴 속에서 평강과 온달을 흉내내며 살아가는 연이와 야생소년의 허상인 셈이다. 연이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존재와 허상의 혼란을 느낀다.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이것은 「거울 속의 나」라는 노래를 통해 형상화된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연이와 연이의 이미지(평강 역을 맡았던 도깨비)가 이중창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묻는 연이와 ‘평강으로 살아가라’고 유혹하는 또다른 연이 사이의 심리적 혼란은 노래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모범이라 여기는 현실에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새로운 답안을 제시했다. 뮤지컬이라고 해서 꼭 브로드웨이 방식을 따를 이유는 없다. 프랑스 뮤지컬이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듯 우리만의 뮤지컬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방식이 특색있는 한국 뮤지컬의 전형으로 자리잡기는 힘들겠지만 이러한 창의적인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공적인 대형 창작 뮤지컬의 신호탄

 

소극장을 중심으로 창작 뮤지컬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문제는 무대 메커니즘과 음악의 조화, 무대와 조명, 음악, 드라마가 총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갖춰야 하는 대극장 뮤지컬 부문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창작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서 뮤지컬이 가치를 지니려면, 결국 대극장에서 상연되어야 한다.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의 구분은 실험성 여부에서 비롯됐지만, 현재는 극장의 좌석 수에 따라 나뉜다. 상업예술에서 좌석 수는 티켓 매출액과 직결되기 때문에 대극장 뮤지컬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은 흔히 영화와 비교된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를 누르고 성장한 것처럼 뮤지컬 역시 언젠가는 브로드웨이를 앞설 수 있지 않을까 핑크빛 기대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공적인 대형 창작 뮤지컬이 신호탄을 터뜨려야 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가 성공한 후 한국 영화가 약진한 것처럼, 뮤지컬에서도 시발점이 될 대형 창작 뮤지컬이 나와야 한다.

올해에는 뮤지컬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대형 창작 뮤지컬 두편이 막을 올린다. 5월에 공연하는 「대장금」과 6월에 개막하는 「댄싱 섀도우」가 그것이다.

「대장금」은 인기리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무수리로 들어온 서장금이 최고상궁을 거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임금의 주치의가 된다는 성공담을 담았다.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에서 원작의 인기가 높아 해외수출에도 유리한 작품이다. 「대장금」을 주목하는 것은 단지 원작이 이룬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극본과 음악인데, 뮤지컬 「대장금」은 현재 공개된 극본을 볼 때 뮤지컬 장르의 성격에 맞도록 훌륭하게 각색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장금」은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적 결합, 여성의 성공과 사랑이라는 매력적인 소재,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 더욱 기대가 크다. 하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성공적인 뮤지컬 한편이 나오기 위해서는 극본과 음악, 무대, 조명, 의상 등 수많은 요소들이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대장금」은 기본 골격인 극본이 탄탄하기 때문에 추후에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댄싱 섀도우」는 차범석(車凡錫)의 사실주의 희곡 「산불」을 「죽음과 소녀」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이 각색한 뮤지컬이다. 작곡은 알런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 출신의 에릭 울프슨(Eric Woolfson)이 맡았다. 우리의 원작을 남미 작가와 영국 작곡가가 참여해서 만든다는 것이 흥미롭다. 낮에는 군인이,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원작은 이념적인 색채가 강한데, 도르프만은 이를 달군과 해군이 대결하는 우화적인 상황으로 각색해서 지역적이고 이념적인 원작의 한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작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댄싱 섀도우」는 또한 국내 창작 뮤지컬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고 있는 작품이다. 본격적인 준비는 2004년부터였지만 이미 1999년에 에릭 울프슨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여기에 철저하게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방식을 따라서 작곡가와 작가, 연출자가 창작단계부터 함께 협의하면서 작품을 구성해갔고, 2005년 9월에는 런던에서 워크숍을 통해 배우나 관계자들이 작품에 대한 반응을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해외 뮤지컬들이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수차례 워크숍이나 트라이아웃(본 무대에 오르기 전에 지방도시를 돌며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시범공연)을 거치면서 점검하는 것은 최종 목적지인 브로드웨이에 올랐을 때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다. 「댄싱 섀도우」는 철저한 준비 끝에 1년 전에 이미 캐스팅까지 마쳐 작품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자아내고 있다.

어느 작품이 대형 창작 뮤지컬로서 먼저 성공의 신호탄을 올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창작 뮤지컬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이고 그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