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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혜진 申惠眞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2. 1973년생. ich0314@hanmail.net
로맨스 빠빠
우리 동네 아침은 「어머나」로 시작된다. 마을회관 확성기가 지글지글 끓다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젖힐 즈음, 마당에서 개새끼들이 합동으로 늑대 울음 같은 코러스를 넣는다. 켁켁- 아아, 마이크 테스트, 이거 시방 나오는겨? 나온다구? 큼- 연하 일구 주민 여러분덜께 알려드리겄습니다아. 그 뭐이냐, 저 아랫녘버텀 장마가 올러오는 중이라고 헙니다아. 카악- 논두렁 단속허시는 짐에 거국적으루다가, 켁- 벼멜구 약을 한바탕 쳐주실 것을 당부드리는 바이올습니다아.
아버지가 마당 쓰레질을 하다 말고, 아이, 그늠 가래나 배앝고 나부댈 거이지, 하고는 이장 대신 카아악 퉵, 하면서 담장 쪽으로 걸찍한 가래침을 뱉어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이며 화장실에 앉았다가 나온 나는 아버지의 가래침이 담벼락에 철썩 달라붙는 것을 보고는, 돼지표 본드는 저리 가라네, 생각하며 문을 걷어차 닫았다.
마당 한쪽에 붙어 있는 화장실은 작년에 아스까(明日香) 일행이 다녀간 뒤에 아버지가 사람까지 사서 좌변기를 앉힌다 세면대를 놓는다 법석을 떨며 고친 것이다. 불편하다고 엄마와 내가 아무리 고치자고 해도 꿈쩍 않던 아버지는 아스까가 푸세식 화장실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두말없이 수리를 시작했다. 금방 또 놀러온다는 그녀의 약속을 아버지가 곧이곧대로 믿은 탓이었고, 우리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옥외 화장실이라 겨울에는 수도 파이프가 얼어 터지는 바람에 며칠 동안 옆집 화장실로 볼일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마을회관 확성기가 잠잠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 쪽에서 차임벨이 울렸다. 듣기만 해도 졸음이 올 것만 같은 ‘내 주 예수 그 크신 사랑은’이 느릿느릿 골목 새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학생부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빠, 무지 한가하네? 오늘은 우리재 안 돌아? 한규네 엄마 실으러 가야지.”
“지지배 말뽄새 허구는…… 실으러가 뭐여, 모시러! 고등부 예배시간 안되았냐? 으쩌구 맨날 교회 빼먹을 궁리만 허는겨?”
“아이씨, 똥 싸느라구 그랬잖어. 있다가 으른 예배 가면 되지. 아빠, 오늘은 기도문 좀 적어갖구 가. 기도책에서 새걸루 하나 베끼란 말야. 접때처럼 또 버벅대지 말구.”
지난주 예배 때 아버지는 대표기도를 하다가 말이 딱 막혔었다. 일년 오십이주, 별로 바뀌지도 않는 내용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주여, 주여, 나라럴 위하야 기도하옵나이다…… 그후 약 삼십초 동안 기도는 중단되었고, 지잉- 마이크 소리만 울렸다. 말이 막힌 게 어이가 없어 눈을 뜨고 강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깍지 껴 모은 손을 떨고 있었다. 한참 동안 부르르 떨다가, 이 땅 우에 다쒸는 육이오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섭리하야 주씨기를 믿사옵고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목소리까지 울먹여가며 겨우 기도를 끝마쳤다. 식은땀 나기는 앉아 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새삼 그 일을 끄집어내자 아버지는 빗자루로 화장실 벽채 밑을 쓸면서 말을 딴 데로 돌려버렸다.
“아잉아, 요짝으루 삥 돌라 달리아 꽃씨나 뿌리보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아줌마 요샌 교회 봉고 타구 댕기나?”
“물러, 그걸 왜 나헌티 묻는겨? 늬나 잘허세요.”
아버지는 내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한규 엄마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한규 엄마는 교회에서 반주를 맡고 있는 새댁이었다. 한규가 아직 젖먹이인데다가 우리재 쪽으로는 때맞춰 버스도 없어서 아버지는 수요 예배 때와 일요일 아침저녁으로 덜덜거리는 승용차를 끌고 한규 엄마를 데리러 가곤 했다. 이십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아버지가 그 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는, 우리재로 자동차 방향을 잡을 때의 표정에 뻔히 드러났다. 그런 아버지가 젊은 여집사 데려오는 일을 주저없이 교회 차량봉사대에 넘긴 것은 이주일 전 수요일 저녁에 한규 아빠에게 망신을 당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자기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 한규 아빠에게서 아버지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다구니를 들었다는 사실은 한규네와 한동네에 살고 있는 고등부원에게 전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기분 좋은 행사를 선선히 포기한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짐작했다.
사실 그 무렵, 아스까에게서 소포가 온 거였다. 누런 소포용지에는 ‘홍대식씨 앞’이라고 적혀 있었고,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동봉된 편지는 아주 사무적인 인사말뿐이었다. 출판사에서 대충 쓴 편지 같았지만 아버지는 드디어 아스까가 연락을 주었다며 무척 기뻐했다. 소포 안에는 아스까의 사진 한장과 얇은 책도 한권 들어 있었다. 작년 여름 아스까가 걸어서 한국을 여행할 때의 일이 씌어진 기행산문집이 번역본으로 출판된 것이었다. 표지에 파란색 비옷을 입은 작달막한 여자, 아스까의 사진이 ‘길 위에서 사랑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찍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애지중지하였다. 일찍 온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커다란 주머니가 붙은 등산점퍼를 입고 아예 그 속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동네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엄마나 내가 보자고 해도 대충 사진이나 볼 수 있을 만큼만, 그것도 자신이 직접 책장을 넘겨가며 보여줄 뿐이었다. 오빠네 식구가 살고 있는 주유소에 일하러 갈 때도 소중히 주머니에 넣어가서 틈틈이 읽었으며,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허벅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먹었다. 아스까의 책을 들여다보는 아버지는 연애편지라도 읽는 사람처럼 행복해 보였다.
“퐁퐁 달리아 가득 주워 마음이 들떠버렸네.”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허공을 휘저어가며 코까지 앵앵거렸다. 아스까가 지었다는 시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듣기에 그녀의 시는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보다 유치한데다, 길이는 구더기 토막 친 듯 짧았다. 짧아서 아쉽기보다는,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시였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짧게 짓는 시가 유행이래나 뭐래나, 하여튼 그렇다고 했다. 아스까는 그런 시를 짓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게 그녀를 따라왔던 뚱뚱한 통역의 설명이었다.
일본어를 못해서 그렇지, 아스까식으로 시를 지으면 나는 십분에 열개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루비아 따먹으며 헤벌쭉 웃었네, 유리창 두드리는 빗방울의 입술, 퐁퐁 다이알 비누 요샌 아무도 안 쓰네, 이빨 사이로 뱉는 사랑노래 등등…… 시가 별건가. 초등학교 때 붓을 꺾어서 그렇지 내 안에도 천재시인이 산다 이거야. 나는 ‘이빨 사이로 뱉는 사랑노래’를 두어번 되뇌고는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내갈겼다.
사실 나는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아스까가 떠난 다음, 아버지가 나에게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성화를 댔던 것이다. 느네 학교는 미국말도 배와주고 불란서말도 배와줌서 가차운 나라 말은 왜 안 갈킨대여? 일본말 배워설랑 아스까 언니하구 펜팔해면 재미질 거인디. 아부지가 학원비 내줄 테니께 언능 학원 알어봐. 아버지는 아스까의 소식이 무척이나 궁금했는지 싫다는 나를 붙들고 자꾸만 학원에 등록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아스까의 이메일 주소와 학원비를 받아챙겼다.
일본만화에 미친, 같은 반 지숙이한테 대신 메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울 아빠가 무지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꼭 넣으라고 강조했다. 떡볶이까지 사줘가며 메일을 두세번 더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학원비는 어디다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녹아 없어져버렸다. 답장이 안 온다고 하자 아버지는 두달째 학원비를 주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거의 일년 만에 소포가 온 것이었다.
“상 채려놓구 지사 지내유? 너는 내동 있다 교회만 가라 허면 변소간에서 버팅기는겨.”
아버지가 아스까의 시 속에 파묻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틈에 엄마가 왈칵 부엌문을 열어젖히며 악을 썼다. 유리 달린 밤색 섀시문이 깨갱깽 몸살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스까의 소포로 틀어진 심사가 그예 불퉁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애초부터 아스까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새우등 터지기 십상이므로.
나는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밥상 앞에 조신하게 앉았다.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가족사진이 보였다. 재작년 엄마 환갑잔치 때 온가족이 쎄트로 한복을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금빛 찬란하던 액자에는 군데군데 파리똥이 묻어 있었다. 제자리에, 살짝 갸우뚱한 모습으로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오늘따라 어딘지 달라 보였다. 못 보던 사진 한장이 액자 틈서리에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만한 사진을 톺아보았다.
기름한 눈을 아래로 깔고 잔뜩 분위기를 잡은 아스까의 사진이었다. 소포에 딸려온 사진인 모양이었다. 웨이브가 우아하게 들어간 긴 머리에, 수술한 게 틀림없는 높은 코, 작고 도톰해서 얄미운 입술, 뽀샵질을 했는지 주름 하나 없이 기다란 모가지.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눈치코치 없이, 상구 봐두 이삠도 이쁘다, 베릴 것이 한개도 웂는겨, 어쩌구 해가면서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고, 엄마는 칼눈을 불똥 튀게 별렀을 터였다. 아무려나 아버지는 아스까의 사진을 가족사진 한구석에 보란 듯이 꽂아놓았고 엄마는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오, 묵인이라니.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다 알다니.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도 나한테 깜짝깜짝 놀란단 말씀이야. 어쨌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사진을 그냥 내버려둔 엄마가 이상했다.
반찬을 집적대지도 않고 얌전빼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진력이 나서 나는 슬그머니 화장대 앞으로 가 앉았다. 주근깨가 다글거리는 볼 위에 엄마 분을 슬쩍슬쩍 찍어 발랐다. 무스를 덜어 앞머리에 묻히고 막 빗질을 하려는데 어이쿠 소리가 났다. 소싯적부터 힘이 장사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한 엄마가 마른멸치 같은 아버지의 멱살을 틀어쥔 것이었다. 올 것이 왔다. 나는 앞머리에 하얗게 무스를 이고 두 사람 앞으로 내달았다. 아버지가 엄마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쩔쩔매고 있었다.
“에잇, 쌍느무 인사야. 내가 이날 입때껏 니가 좋아 산 중 알어? 젊은 년이 그리 좋으면 델따놓구 살어. 한시라도 맘 펜하게 살게시리 위자료 내놓구 갈라서잔 말여.”
엄마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혼타령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양지슈퍼 아줌마처럼 농약을 먹겠다고 협박을 하든가, 돌아올 때 오더라도 가방을 싸든가,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 늙어 이혼하겠다는 게 내가 듣기에도 어설퍼 보이는데 왜 한 노래만 부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오빠 밑으로 나를 낳을 때 15년 터울이 진 것만 봐도 금슬도 웬만하건만. 노땅들 쇼하는 데 엑스트라 서는 기분으로, 아흥 엄마 왜 이래, 아빠가 뭘 알어, 여태까지 잘 참았잖어, 엄마가 참어, 추임새를 넣었다. 엄마는 그악스레 찍자를 놓으면서도 옆에 붙어 알랑거리는 내가 귀찮았는지, 넌두 이년아, 홍가 나부랭이 것덜은 다 한가지여, 퉁바리를 놓았다. 엄마, 그러니깐 봉길례 권사님, 주일 아침에 이러시면 안되지,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죽이지 말구 이혼만 해여, 내가 증인 스께, 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 이 사람 참, 이거 놓구선 대화적으루다가 해두 되잖여. 컥- 숨 맥혀라. 거 말이 나왔으니깨 말여. 우리 아잉이럴 일본으로 유학얼 보내자면 말여. 아잉일 봐서래두 아는 사람 한나 있는 게 어디냔…… 컥-”
“뭐시여? 누구럴 유학 보내? 개갈 안 나는 헷소리 좀 작작해여, 이 화상아.”
엄마는 잡았던 멱살을 한번 더 비틀어 바투잡았다. 할말이 궁했던 아버지가 괜히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말리려던 싸움이 더 커질 징조였다.
엄마가 아버지 점퍼주머니를 뒤져 아스까의 책을 끄집어냈다. 아버지가 어어 하며 말릴 새도 없이 엄마는 책을 마당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길 위에서 사랑하다』는 팔락팔락 날다가 장독에 맞고 날개를 펼친 채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아버지의 얼굴에 낭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버지가 있는 힘껏 엄마의 팔을 뿌리치며 멱살 잡힌 것을 풀었다. 몸을 잔뜩 뻗지르고 서 있던 엄마가 그 서슬에 밥상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아버지가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 아닌가.
“하이고메, 인자 이 인사가 사람얼 치네웨. 밥 처먹으라고 상 채려줬드니 폭력을 써?”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윗옷을 벗어던졌다. 엄마의 거대한 젖이 물결치며 허옇게 드러났다. 엄마가 젖통을 위협적으로 출렁대며 아버지 앞으로 다가가자 아버지는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아빠, 리액션 좋았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적당히 반항하고 적당히 무서워하는 척해줘야 엄마 스트레스도 적당히 풀릴 것이었다. 나는 슬리퍼를 찍찍 끌며 장독대 앞으로 걸어갔다.
아스까의 책은 속살을 진흙바닥에 비비대며 누워 있었다. 그야말로 ‘길 위에서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천천히 책을 주워들었다. 엄마가 아침에 장을 푸면서 간장 골마지를 내버렸는지 책갈피에 거무스름한 간장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책장에서 흙만 대충 털어냈다. 책에서 짠내가 진동했다.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화장실 지붕 아래 짱박아둔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밥 먹긴 다 글러버린 듯했다. 저수지에서 한시간쯤 때우고 돌아가면 싸움은 늘 그렇듯이 엄마의 승리로 마무리돼 있을 것이다.
저수지 둑 위, 폭신한 풀 위에 넓적한 돌 하나를 끌어다 놓고 앉아서 꼬깃한 담배 한개비를 꺼냈다. 한달 동안 한갑을 채 피우지 못해, 지붕 아래 낑겨 있던 담배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라이터도 축축해서 불이 잘 댕겨지지 않았다. 몇번을 털고 옷에 비비고 낑낑댄 끝에 겨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맛은 썼다.
자세히 보니 『길 위에서 사랑하다』는 하드커버로 된 꽤 예쁜 책이었다. 아버지가 무척 소중하게 다루었음에도 두주일 남짓한 사이 모서리가 약간 닳아 있었다. 유난히 뒷부분만 손때를 탔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이야기가 들어 있는 부분인 것 같았다.
물 먹는 아스까, 길가에 앉아서 다리를 두드리는 아스까, 수건을 뒤집어쓴 한국 아줌마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비빔국수를 먹는 아스까, 표지판 아래서 날씬한 허리를 살짝 뒤틀고 만세를 부르는 아스까…… 아버지가 보여줘서 이미 익숙한 사진들을 대충대충 훑어봤다. 페이지를 넘겨, 어정쩡한 표정의 엄마, 아버지의 사진이 있는 쪽을 펼쳤다. 노인네들이 나오는 대목은 여행기 끝부분에 있었다.
(…) 42번 국도로 들어가 좀더 걸어가니 붉은색 간판의 주유소가 나왔다. 주유소 주변에 커다란 흰색 화분들이 정갈했다. 갖가지 색깔의 퐁퐁 달리아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주유소 안에는 젊은 남자와 육십대의 아저씨가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두 남자는 아버지와 아들인 듯 서로 닮아 있었다. 지도를 들고 가서 길을 확인하고 있는데 젊은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여자의 얼굴은 조금 부어 있었고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이든 아저씨가 여자에게 무슨 이야기인가를 건넸다.
부인은 조용히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쟁반에 복숭아를 씻어서 내왔다. 그녀의 치마 뒤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수줍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애는 엄마의 치마 뒤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이 엄마는 향긋한 복숭아를 칼로 저며 우리에게 권했다. 복숭아의 과육은 달콤하고 시원했다.
젊은 남자는 거리는 짧아도 차들이 속력을 내는 42번보다 강둑을 따라 C시로 들어가는 옛길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그가 그려준 약도에 표시된 대로 구멍가게를 끼고 도니 양옆으로 자그마한 강아지풀이 잔뜩 돋아난 좁은 흙길이 나타났다. 바람이 강아지풀들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소금기가 묻어난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공기가 눅눅한 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아스까의 눈에 비친 우리 가족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낯설었다. 결혼 이후 줄곧 사이가 나빴던 오빠네 부부가 이혼할까봐 부랴부랴 선산까지 잡혀 빚을 내 차려준 주유소는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져 있었다.
올케에 대한 인상은 꽤 정확한 것 같았다. 새언니는 정말이지 헌언니처럼 매일 우울한 낯빛이었다. 워낙 말이 없어서 나조차도 새언니만큼은 어려워했다. 치마 뒤에 숨어 있었다는 애는 조카 동주다. 새언니가 극성을 떨면서 매일 C시내 유치원까지 출퇴근을 시켰던 우리 집 장손.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퐁퐁인지 뭔지, 꽃이 피어 있었다는 흰색 화분은 주유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미터쯤 떨어진 파출소 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건 그녀가 착각한 것 같았다. 아무튼 오빠가 그렇게 친절했다는 걸 보면 아스까가 예쁘긴 예뻤던 모양이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들이란…… 사루비아 따먹으며 헤벌쭉 웃었네,가 아닐 수 없다.
고개를 들자 새로 뚫린 고속도로가 길게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게 시야에 걸렸다. 도로공사가 한창일 적에는 주유소 장사가 썩 잘되는 편이었다. 아버지, 오빠, 올케까지 나서서 밥 먹을 새도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공사차량도 없어지고 장사는 시들해졌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찌그러진 국도변 주유소에 부러 들러 기름을 넣으려는 차도 없어서 근근이 면세유나 팔았다. 주유소는 차츰 동네 사랑방으로 변해갔다.
주일 낮 어른예배를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저수지까지 들려왔다. 나는 담뱃불을 운동화 밑에 끼워 빻듯이 비비고 페이지를 넘겼다.
퐁퐁 달리아 가득 주워 마음이 들떠버렸네
꽤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여관이 있을 법한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J읍이라면 여관 정도는 있을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또 몇시간을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묵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난감해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조금 전 들렀던 주유소의 아저씨가 뒷짐을 지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내일 아침에 택시를 타고 되돌아와서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하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대뜸 집에 가서 좀 쉬자면서 우리를 잡아끌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던 아버지가 잠시 후 부인과 함께 나왔다.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지? 방이 누추하긴 하지만.”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저 양반 말대로 해요.”
어머니도 웃음 띤 얼굴로 우리에게 권했다. 난처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40분쯤 지나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에 오르려는 우리를 막아서고는 아버지가 운전기사에게 무슨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돌아와 다시 갈 거면 이 댁에서 묵는 게 낫잖아요?”
운전기사까지 우리를 설득하고 나섰다.
아스까는 어느새 우리 아버지를 ‘아저씨’에서 ‘아버지’라고 고쳐 부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궁금해서 나도 죽 옆에 있었는데 내 얘기는 한줄도 없다. 책에는 짤막하게 나왔지만, 난 아스까 일행이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갈 때까지의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한다. 퐁퐁 화분이 주유소에 있었는지 파출소에 있었는지 헛갈리는 것처럼 그녀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은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식구들이 엄청 착한 사람들로 나와서 다시 한번 놀랐다. 정말 남의 집 이야기 같단 말씀이야.
회색 티셔츠에 푸른 챙 모자를 쓴 아스까는 무척 발랄해 보였다. 통역을 하던 Y라는 여자는 집 앞에 내놓은 평상에 앉아 시르죽한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 통에 아스까는 한층 귀여운 아가씨로 비쳤을 테고, 암상스런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 하며 팔에 매달리는데 아버지가 녹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을 것이다. 통역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Y의 한국어는 절대로 신통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버지 옆에 달라붙어 야살을 떨어대는 아스까를 쪽창으로 내다보며 엄마는 조그맣게, 그년 변죽 한번 좋을세, 하고 말했다. 서른을 훌쩍 넘겨 오빠보다 나이가 많다는 그녀는 겉보기엔 이십대 청순가련형 여배우 같았다. 예쁜 것만으로도 용서가 안되는 판에, 날씬하고 젊어 보이는데다 시인이라니 엄마는 자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엄마가 정말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저 양반 말대로 해요”라고, 게다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고? 인상 확 찌푸리고 “저 느자구 웂는 화상이 고집 핌서 그리허자고 허니께 워쩌유. 할 수 웂쥬”라고 했다면 혹시나 모를까. 나? 나야 뭐, 그냥 일본사람은 무조건 싫어해야 된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 기억에 J읍에서 택시는 오지도 않았다. 거기서 택시가 왔다면 남의 돈이라도 빈 차로 돌려보내며 택시비 쓰는 게 아까워 엄마는 틀림없이 그들을 차에 태워 보냈을 것이다. 택시를 부르긴 부른 것일까, 나는 그것조차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아버지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도리라며 그들을 재워 보내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신자의 도리에 힘을 꼭꼭 넣어서. 엄마는 방도 치워야 하고 찬거리도 마땅치 않다는 매우 품위있는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그렇다. 그들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유령 택시기사가 그녀들을 설득하고 엄마를 조른 탓이다. 퐁퐁 다이알 비누 요샌 아무도 안 쓰네,가 아닐 수 없다.
(…) 어머니가 꺼내온 앨범에는 화목한 가족사진이 가득 꽂혀 있었다. 우리는 가족사진을 보며 어머니, 아버지 모두 육십세가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하나, 딸이 하나라고 했다. 아들은 아까 주유소에서 보았던 젊은 주인이고, 딸은 여고생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딸이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을 했다. 딸은 조금 무뚝뚝한 성격인지 우리와는 좀체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깎아준 복숭아를 맛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서로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 생각이 나, 바깥으로 나와 공중전화로 일본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밤중에 길가로 나가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따라나왔다. 아버지는 내가 통화를 하는 동안 뒷짐을 진 채 멀찌감치 서서 지켜주었다.
여고생 딸이 공부를 잘하고 조금 무뚝뚝한 성격인지 우리와는 좀체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고? 무슨 소리. 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춤도 잘 추고, 잘 놀고, 성격도 좋고,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지만 딱 한가지, 공부만은 못한다. 그건 아버지도 알고 나도 아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내 앞에서 아버지가 그런 거짓말을 늘어놨다고?
나는 엄마가 말도 잘 안 통하는 어색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들 앞에 앨범을 던지는 것이나, 두 사람이 일본어로 수다를 떨면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옆에 앉아서 복숭아를 깎았던 사람도 난데. 왜 이렇게 쓴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스까를 졸졸 따라다닌 것만은 분명하다. 어깨를 옹송그리고 손을 앞으로 모아잡고 대추씨처럼 쪼골쪼골한 얼굴에 함박 웃음꽃을 피운 채……
내가 보기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버지가 젊고 아름다운 아스까에게 흑심을 품은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스까는 그런 아버지를 정말 ‘한국의 아버지’로만 묘사하고 있었다. 뭐, 아스까가 늙어빠진 한국인이 왜 이렇게 껄떡대느냐고 쓰지 않은 것만도 어디야. 그랬으면 철없는 우리 노인네, 여린 마음에 상처받고 엄청 우울했을 텐데……
(…) 마당을 지나 화장실로 가다보니 부엌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다. 한국 여행을 하면서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재래식 화장실이다.
아침 식탁은 어머니가 손수 만든 요리로 풍성했다.
“차린 것은 별로 없지만 많이 먹어요!”
함께 먹자고 해도 어머니는 웬일인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볶음과 나물, 된장국, 모든 것이 맛있었고 우리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었다.
“그새 정이 들었나, 헤어지려니 서운하네.”
물과 간식을 챙겨주고 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두 사람을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어머니가 앞치마 자락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이런 환대와 이런 작별…… 일본과 한국의 사이는 역사가 갈라놓은 것일 뿐, 한국을 걸어서 여행하는 동안 나는 단 한번도 사람들에게서 적대감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 분은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스까는 모른다. 그날 아침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새벽기도를 다녀온 아버지는 나란히 누워 잠든 나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가 끙- 소리를 내며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엄마의 넙데데한 등짝이, 웬만해선 날 깨울 수 없을 걸,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방까지 빼앗겨 안방에서 자야 한 것부터 짜증스러운데다 새벽잠까지 깨우는 데 심통이 나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폭 뒤집어썼다. 아버지는 안방 바로 옆에 들인 부엌으로 들어갔다. 수돗물 트는 소리, 씽크대와 냉장고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찬거리가 있나 뒤져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쌓아놓은 냄비라도 잘못 건드렸는지 무언가 떨어지는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으이구 내 팔자야, 진작부터 깨 있었던 모양인지 엄마가 잠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넌두 언능 인나, 이불 개키구선 세수햐!”
괜한 지청구를 먹고 일어난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세수를 하면서도 연신 하품이 나왔다. 마당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아스까가 화장실에 가는 게 보였다. 나는 치약 거품을 한입 가득 물고 그녀와 인사를 했다.
부엌에선 과연 지지고 끓일 준비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엄마가 냉동실 안쪽 구석진 자리에서 ‘풍년농약사’라고 쓰인 비닐봉지를 꺼냈다. 풍년농약사라는 글자를 보고 봉투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렸다. 그 안에는 묵은 돼지고기 덩어리가 꽝꽝 얼어붙은 채 들어 있었다. 아버지 친구 중에 돼지를 치는 한새 아저씨라고 있는데 그 집에서 온 고기였다. 일년째 냉동실에 넣어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기였다.
돼지콜레라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군내에 있는 모든 돼지 농가에 도축 명령이 내려졌고 돼지를 산 채로 매장하기 아까워했던 아저씨가 몇마리를 밀도살해 온동네 집집이 몇근씩 나눠주었다. 한새 아저씨는, 병든 돼지도 아닌데 버리기 아까워서,라고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먹기 찜찜해서,라고 말하며 고기를 봉투째 냉동실에 던져 넣어버렸다. 그리고 근 일년 동안이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년 만에 그걸 기억해낸 엄마의 쎈스라니. 유리창 두드리는 빗방울의 입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와 엄마는 돼지고기 두루치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 그들과 다정하게 껴안은 것은 아버지 한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엄마와 나는 각기 다른 이유로 아스까 일행에게 충분히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대충 우리 집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 같아 책을 덮으려다 우연히 맨 뒤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이는 말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집, 아니 내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덧붙이는 말
여행 도중 숙소를 찾지 못해 쩔쩔매던 우리를 흔쾌히 묵게 해주신 홍대식(洪大植), 봉길례(奉吉禮)씨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오시겠다는 너무 기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따님 아영양이 이메일을 보내주어 알았습니다.
두 부부가 일본으로 오시는 것은 아영양의 유학 준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저의 의견을 마침내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당시 다소 침울하고 과묵했던 아영양은, 아스까씨가 우리 집에서 묵고 가신 덕에 일본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아마도 일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에게 냉담하게 대했었나 봅니다. 이번 여행에서 입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아영양의 유학 소식은 오히려 저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일본만화에 미친 지숙이가 평소에 일본으로 유학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우리 아잉이 일본에 유학시킬라면 아는 사람이 일본에 있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고 하던 말도 비로소 이해가 갔다. 아버지는 내가 아스까에게만 살짝 내 장래희망을 메일로 써보냈다고 여긴 게 틀림없었다. 지숙이 이년, 소설을 썼네, 소설을 썼어. 나는 쓰게 웃었다.
저수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점심때가 다 된 것 같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침도 걸렀던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아스까의 책을 남방 속에 감추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방에서 올케가 엄마,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하던 말을 뚝 멈추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세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예배 빼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잔소리가 심할 텐데 별다른 소리도 없었다. 부엌으로 가서 안방 쪽으로 난 문을 닫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 아스까 책이나 뒤적이려고 했는데 침대 위 이불 속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살그머니 이불을 들춰보니, 동주였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는 모양이 잠든 것 같지는 않은데 숨이 막힐 것만 같아 어깨를 살짝 흔들어보았다. 동주는 흐느끼듯 몸을 떨었다. 몸을 바로 돌려 눕히자, 나를 알아본 동주가 그제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야, 너 왜 그래? 누가 때렸어?”
“고모…… 아빠가 엄마한테 맨날 소리 질르구 무섭게 해. 엄만 맨날 울어.”
“뭐? 왜? 엄마한테 왜 그러는데?”
“몰라, 아빠 맨날맨날 밤에만 나가.”
나는 조카를 달랬다. 고모가 업어줄까? 동주는 울음 끝을 물고 가늘게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동주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동주와 저수지 쪽으로 걷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길가 수풀에 앉았다. 동주도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 동주 많이 속상했쪄? 내가 그렇게 묻자 동주는 다시금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오빠가 평소에도 올케 속을 썩인다는 건 알았지만 젊으나 늙으나 어떻게 하는 짓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운동복 바지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동주가 자꾸만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길게 연기를 뿜으며 동주에게 말했다.
“야, 인생에 금이 간다. 그치? 너도 한대 할래?”
동주가 풀숲에서 튀는 메뚜기를 향해 발길질을 하며, 고모나 많이 해, 한다.
그래도 나는 참 내 마음이 이상했다. 아빠가 행복해 보일 때면 얄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마음 밑바닥에선, 우리 아빠도 예쁜 사람을 보면 막 설레나봐, 우리가 봐주자는 말이 하고 싶었다. 아무려나 여덟살짜리 내 조카도 어느새 나처럼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같이 학생부실에 끌려간 친구 같았다.
동주와 함께 집에 돌아와보니 올케가 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식구들이 아직 점심 전인가 보다. 많이 울어서 그런 건지 몸이 안 좋은 건지 올케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동주가 제 엄마 치마폭으로 달려들었다. 언니, 위자료 받고 이혼해라, 내가 증인 서주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올케는 입꼬리를 힘겹게 들어올리며 억지로 웃었다.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좀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그때 올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가씨, 난 이혼하기 싫어요.”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올케가 상 위에 수저 놓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올케는 내가 나가 있는 동안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일합작으로 무슨 특집을 찍는다나 친절한 한국사람을 찍는다나, 하여튼 아스까가 온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무조건 좋다고 했고,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 엄마도 반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덕분에 국제적으로 주유소 선전도 되고 장사가 잘될 거라고 설득해서 허락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왠지 반가운 소식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낡은 카세트로 성경을 듣고 있었다. 성우의 낭랑한 목소리가 한창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낳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TV를 켰다. 성경 테이프 소리 때문에 탤런트의 대사가 헛갈렸다. 볼륨을 더 높였다.
아버지가 카세트를 끄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빠두 볼라구? 옷 속에 손을 집어넣고 등에 난 여드름을 긁으며 내가 말했다. 아녀, 늬나 봐, 아버지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으나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처럼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자꾸 달라붙어? 할 말 있어?”
나는 아버지도 오빠나 한가지로 엄마 속을 썩이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아빠, 오빠 좀 어떻게 해봐봐. 맨날 밤에 나간대잖어. 지가 미친년이야? 밤에 왜 나가!”
내가 퉁을 놓자 아버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점퍼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스까 책이라면 내 방에 있는데 가져다줄까 싶었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아버지는 코 푼 휴지뭉치 같은 것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탁구공만한 휴지뭉치는 매우 꼬질꼬질했다.
“아잉아, 이게 뭔 줄 아느냐? 한번 맞혀보거라.”
아버지답지 않게 퍽 엄숙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겉보기에 그냥 휴지를 뭉쳐놓은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 손바닥에 있는 휴지를 집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얼른 손을 치우며, 기양 맞혀보라니께, 한다. 나는 아무래도 휴지 속에 뭘 감추어놓은 듯해서 빼앗으려고 했고, 아버지는 내 손을 피해 휴지 든 팔을 허우적댔다. 뭐야, 금반지라도 주웠어?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그러엄? 그냥 코 푼 거 아냐?
“비슷하게 맞추었다. 이것은 아부지으 눈물이다. 새벽기도 때마동 느이덜얼 위하야 월매나 월매나 간절허게 기도를 허는 중 아느냐?”
아버지는, 아느냐? 하는 대목에서 짐짓 목소리를 떨기까지 했다.
일주일 뒤에 약속대로 방송국에서 요란뻑적지근하게 사람들이 몰려왔다. 동네사람들도 ‘테레비 찍는 귀경’을 한다며 우리 주유소로 몰려왔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이발소에 들러 찐득해 보이는 기름을 머리에 잔뜩 발랐다. 방송용으로 옷을 쫙 빼입고 주유소에 앉아 안절부절못했고, 엄마도 ‘친절해’ 보이기 위해 새로 앞치마를 사서 걸쳤다. 왜 주유소에서까지 앞치마를 입어야 되는 건지 원…… 그리고 앞치마를 입으면 친절해 보이긴 하는 건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오빠도 주유소 유니폼과 모자를 새것으로 꺼내 걸치고 오랜만에 동네사람들을 정리해가며 가로세로 뛰어다녔다. 꼭 방송국 스태프 같았다.
여러대의 방송차량이 먼저 도착했고, 장비를 꺼낸다 콘티를 설명한다 부산한 틈에 올케와 나는 내내 이층 살림집에서 그런 모습들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썬글라스를 낀 감독이 뭐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 보이고, 스태프들이 더 긴장하는 걸 보니 아스까가 도착할 모양이었다. 나도 그녀를 보려고 이층에서 내려와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벌써 주유소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은색 승용차가 주유소 앞에 멈춰 서자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보며 길을 터주었다. 거기서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를 입은 아스까가 내렸다. 이쁘네 이뻐, 동네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아스까를 향해 엄벙덤벙 달려갔다. 그리고 나리꽃처럼 환하게 미소짓는 그녀를 왈칵 끌어안았다.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아버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엔지, 엔지!”
썬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은 감독이 둘둘 만 공책을 휘두르며 엔지를 외쳤다. 그 소리에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대추씨처럼 쪼글쪼글한 이마를 심하게 찡그렸다.
“홍사장님, 그렇게 빨리 뛰어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미처 못 찍었잖아요. 그리고 아스까씨가 저만큼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 그래야 한 프레임에 걸린다구요. 자, 다시 한번 갑시다.”
한번 더 가잔 말을 못 알아듣고 어물거리는 아버지를 젊은 스태프가 저쪽으로 다시 가주세요, 하며 안내했다. 그는 새로 파마를 해서 머리가 라면처럼 뽀글거리는 엄마 곁을 가리켰다. 아버지는 시키는 대로 얌전히 따랐고, 아스까는 난처한 표정으로 자동차 앞에 서 있었다. 함께 내린 통역은 작년에 봤던 뚱뚱한 여자가 아니었다.
너무 느리게 걸어서 엔지, 표정이 어색해서 엔지, 껴안는 각도가 나빠 아스까의 얼굴이 안 보여서 엔지, 이래서 엔지, 저래서 엔지. 엔지가 거듭되자 구경꾼들은 지루해했다. 날두 더운디 엥간히들 허잖구. 동주 할매 뿔나겄어. 아, 아가씨 땀띠 나겄슈.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아스까와의 포옹씬을 영원히 계속하고 싶은지 끝없이 엔지를 냈다.
* 본문에 인용된 책 내용은 마유즈미 마도까(黛まどか)의 여행기 『걸었다 노래했다 그리고 사랑했다』(아침바다 2003)를 모티프로 삼아 창작한 것입니다.「퐁퐁 달리아 가득 주워 마음이 들떠버렸네」는 이 책에서 발췌한 하이꾸임을 밝힙니다.
심사평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에는 유난히 외국어 제목이 많았다. 한자어, 영어를 발음대로 한글로 옮겨놓기도 했다. 거기에다 일본만화의 인물들이나 할 법한 말투에 세부가공이 부족한 문장이 자주 보이는 것이 소설을 별다른 생각이나 퇴고의 과정 없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그런 그릇에 소설로 담을 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많지 않았고 예상된 결말, 단순한 구성이 작품을 끝까지 따라 읽게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대학문학상이라고 해서 소재가 제한된 것은 아니지만 청년실업이나 아르바이트 체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적지 않았다. 아픔과 고민, 좌절은 느껴지지만 소설로 형상화되는 데는 이르지 못해서 아쉬움을 주는 작품이 많았다.
총 309편 중에서 예심을 통해 걸러진 작품은 8편이었다. 「연화대무」(강효미, 동국대) 「춘몽선생매몽기」(송인재, 고려대) 「색」(이희진, 명지대) 「소프트 머신」(윤병주, 서울예대) 「버드맨」(이지훈, 서울예대) 「안녕, 명왕성」(서동미, 중앙대) 「수잔네에게 보내는 편지」(김재은, 단국대) 「로맨스 빠빠」 가운데 최종으로 논의된 작품은 뒤의 두 작품이다.
「수잔네에게 보내는 편지」는 뼈대가 잘 잡혀 있고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공들여 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문장은 차분하고 내성적이며 한발씩 내딛는 발걸음이 안정적이다. 수잔네, 순희 같은 이름과 혼혈이라는 존재론적 정황의 조응을 통해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도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마른 몸처럼 뼈가 드러나 있고 살은 거의 없어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른 이유가 체질적인 것이든, 거식증이나 절식의 결과이든 간에 살이 더 붙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로맨스 빠빠」는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다. 농촌마을에서 사람 사는 풍경을 능란한 사투리에 담아 시원시원하게 풀어낸 것이 요즘 보기 드물뿐더러 그러면서도 입담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빠나 아빠를 바라보는 여동생, 딸의 일정한 관점이 살아 있는 것이 호감을 준다. 무엇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와 자판으로만 쓰느라 빈혈증상에 시달리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소설의 현장’을 찾아나선 태도, 그리고 제대로 캐낸 원광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다듬어냈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소설의 힘, 소설의 젊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어서 당선작으로 뽑는 데 별다른 주저가 없었다. 이처럼 긍정적인 자세와 좋은 흐름을 잃지 말고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작품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구효서 이혜경 성석제│
당선소감
고양이가 죽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다. 나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서 흙을 털고 몇차례 쓰다듬은 후 이제 막 뻣뻣해지기 시작한 고깃덩이를 비닐주머니에 넣어 큰 개울 다리 아래로 가져갔다. 동네사람들은 다리 주변에다 온갖 쓰레기들을 가져다 버렸다. 타다 만 쓰레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악취가 시체를 폐기할 장소로 맞춤이라고 생각했던 탓일까. 그곳은 집에서 꽤 먼 거리였으나 나는 묵직한 비닐자루를 어깨에 걸치고 묵묵히 걸어갔다. 다리 위에서 개울로 침을 뱉었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내 침을 먹으려고 물 밖으로 입을 내밀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땅속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개울로 다시 찾아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양이 무덤을 파헤쳤다. 축축한 개흙은 쉽게 파헤쳐졌다. 비닐자루를 꺼내 뜯자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아름답던 녀석의 털이 엉망으로 엉겨 있는 모양이었다. 썩은 고기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한손으로 코를 감싸 쥐고 다른 한손으로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진 녀석을 뒤집어보았다. 호박색으로 반짝이던 녀석의 눈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보석 같던 눈이 검고 깊은 구멍으로 변해 있었다. 검은 구멍 안에는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서둘러 고양이 시체를 땅속에 도로 묻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듯하다. 남의 집 장롱이나 문갑을 뒤져 동네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무엇을 훔치려던 것은 아니고, 그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냈고, 덕분에 나는 종아리깨나 맞아야 했다.
이상한 건, 사람들이 자기 것은 그렇게 꼭꼭 감추려 하면서도 남의 이야기에는 열광한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간절히 바라기는 했지만, 내가 지어낸 엉터리 이야기가 활자로 찍힐 날이 오게 될 거라 기대하지 못했다. 기쁜 한편 정말이지, 두렵다.
아둔한 제자를 보듬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의 열정에 빚진 바 크다. 그들에게서 받은 자극이 밤샘할 때면 곧잘 각성제 역할을 했다. 잘 참아준 식구들에게는 고맙다는 인사와, 기왕 참은 김에 좀더 참아달라는 뻔뻔한 부탁을 더불어 드린다.
새벽마다 기도해주신 아빠, 엄마!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허구입니다. 믿어주세요.
│신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