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비사가 제정한 만해문학상의 제19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올해 만해문학상은 특히 북의 작가 홍석중씨를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분단을 넘어서 남북 공동의 문화유산을 각별히 주목하고 북돋우고자 하는 만해문학상의 의의를 십분 살리게 되었습니다.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창비사는 남북한 당국의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수상자의 초청과 시상에 관한 제반 절차를 시행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004년 11월 24일(수)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19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홍석중 장편 『황진이』
심사위원
본심: 이선영 정희성 오생근
예심: 임홍배 진정석 장석남
2004년 7월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및 심사평
예심위원들의 노고를 거쳐 본심에 올라온 심사대상 작품은 시집 네 권(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시영 『은빛 호각』, 정현종 『견딜 수 없네』)과 소설 네 권(공선옥 소설집 『멋진 한세상』, 윤흥길 연작소설 『소라단 가는 길』, 은희경 소설집 『상속』, 홍석중 장편 『황진이』), 그리고 한 권의 평론집(황광수 평론집 『길 찾기 길 만들기』) 등 총 아홉 권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꼼꼼히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소설 장르의 풍성한 성과에 주목하게 되었고 결국 최종 논의대상에 오른 것은 능숙한 기량으로 어린시절에 겪은 전쟁과 그 이후의 삶을 여러 친구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한 『소라단 가는 길』, 서민들의 삶과 애환, 여성의 절박한 생존문제를 깊이있게 그린 『멋진 한세상』, 그리고 이념성이 제거된 북한문학으로서가 아니라 풍부한 문학성을 갖춘 탁월한 역사소설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황진이』였다. 이 작품들을 중심으로 논의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홍석중(洪錫中)의 장편 『황진이』를 금년도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작가 홍석중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의 손자이고 그의 최근 소설 『황진이』는 북한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에로틱한 성애묘사를 보여주었다고 금년초 국내 일간지에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이런 선입견을 버리고 소설을 정독하면서 이 작품의 빼어난 성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작가는 조선시대의 기녀 황진이에 대해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녀와 서경덕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중심에 놓지 않고 상전과 종의 관계인 ‘황진이’와 ‘놈이’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로 소설의 기틀을 삼고 있다. 이 소설에서 확인되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창조력은 우리가 언제부턴가 잊고 있던 소설적 서사의 진수를 복원하는 한편, 독자로 하여금 풍부하고 긴장된 이야기의 흐름 속에 한눈팔지 않고 빠져들게 한다. 거대서사와 작은 에피소드들이 빈틈없이 연결되는 가운데, 주인공인 황진이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 묘사는 대단히 치밀하고 절실하다. 또한 사실과 야사, 고전적인 속담과 살아 있는 비유, 민중적 비속어와 품위있는 시적 표현, 북한의 언어와 남한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독자들은 이 소설이 북한문학의 한 성과임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민족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만해문학상의 수상작으로서 『황진이』의 성취와 격조가 손색없으리라 생각하였다. 이 작품이 민족 공동의 문화유산을 향유하고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 문학의 힘과 높은 가치를 깊이 성찰해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李善榮 鄭喜成 吳生根
■ 수상자 약력
洪錫中 1941년 9월 23일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의 손자로 서울에서 출생했고 1948년 조부를 따라 월북했다. 1957~64년 조선인민군 해군에서 복무하고 1969년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했다. 1970년 첫 단편 「붉은 꽃송이」를 발표하고 1979년부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대하장편소설 『높새바람』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