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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인터뷰

 

한국사회, 시장만능주의의 덫에 걸리다

 

이정우 李廷雨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경제학.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저서로 『소득분배론』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공저) 등이 있음.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치학.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한국형 개방전략』(편저) 등이 있음.

 

ⓒ이영균

ⓒ이영균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인터뷰를 하기로 해놓고는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꽤 심란해졌다. 그가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거물이어서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브레인 역을 맡았을 정도로 엄청난 지력을 지닌 대학자여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정갈하고 겸손한 인품을 평소부터 존경해오던 터라 그를 상대로 ‘도전인터뷰’를 하기가 거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도전인터뷰라 함은 어느정도 도전적 혹은 도발적 성격이 기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와 아예 모르는 사이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상당수가 그에게는 매우 민감한 질문일 수 있고,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그런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두려웠다.

어쨌든 드디어 도전인터뷰는 시작되었다. 한미FTA협상을 타결시킨 노무현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은 객관적이고 날카로웠다. 놀랄 정도였다. 관료제와 권력구조 등 정치개혁에 대한 태도 역시 단호했다. 명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안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분석적이고 힘찼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했고 성실했다. 일부러‘도전’이나‘도발’을 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 모두 말해주었다.

 

최태욱 청와대에 계시다가 학교로 돌아오신 지 2년이 지났죠? 교수로 재직하던 분들이 고위공직자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허전함을 느낀다는 분들도 계시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또 예외적으로 어떤 분들은 잘 적응하시고요.(웃음)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요?

이정우 저는 학교에만 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훨씬 편하고 즐겁고 물고기가 물로 돌아온 느낌이죠. 인수위에서 일할 때 근무 마치고 밤 10시쯤 숙소로 걸어가는데, 저절로 흥얼거리는 노래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곡이었어요.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거죠.(웃음) 나중에 안 일인데, 윤동주가 일본 쿄오또에 있는 도오시샤(同志社)대학 유학시절에 애창곡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였답니다.(웃음)

최태욱 우리나라에는 교수 생활을 하다가 고위공직을 경험하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정우 저는 좋았다고 봅니다. 늘 책만 보다가 현실의 정책을 접해보니까 이론과 다른 점도 많고 그걸 통해서도 많이 배웠죠. 학교에 돌아와서 가르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그래서 학자들이 정부와 학교를 왕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는 나라가 미국이고요, 일본이나 유럽은 드문 것 같습니다. 사실 조선시대도 그런 미국 방식이었죠. 사대부라는 게 뭡니까? 사(士)로 있다가 정부에 들어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다시 재야에 나오면 사가 되는 거죠. 어떤 선비는 그렇게 수십번 왕래했는데 그런 모델이 좋다고 봅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학자가 들어가서 잘해내겠느냐, 책상물림이 장(場)거리에 가서 배겨내겠느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학자들이 들어가서 큰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해방후 지금까지 너무 안되어 있었던 거죠. 작은 건 실수할지 몰라도 큰 방향을 잡는 데는 학자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미FTA는 참여정부의 자기부정

 

최태욱 예, 그렇겠군요.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한미FTA문제인데, 결국 협상은 타결됐습니다. 물론 정부 쪽에서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 만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얻은 건 별로 없고 내준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것들 중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이 상당히 들어 있다는 등의 우려가 있습니다. 한미FTA협상이 개시된 것은 선생님께서 학교로 복직하시고 몇달 후의 일이죠. 협상 초기에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서 신중론을 펼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핵심 브레인으로서 정책 결정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다가 물러나신 뒤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던 거겠죠? 소회가 정말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이정우 정부에서 2년 반이나 일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정부의 일에 대해서는 협조해야 하고, 또 침묵을 지키는 게 상식이겠죠. 그러나 한미FTA경우에 저는 굉장히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라 보고 찾아가서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몇달 뒤에 민교협에서 교수들이 반대성명을 발표하기에 저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예상외로 큰 파문을 가져왔어요. 어떤 보수언론에서는 그걸 가리켜‘등 돌렸다, 배신이다’하는 식으로 표현해서 이용하는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 선비들은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늘 나랏일이 잘못될 때는 비판합니다. 그게 선비의 소임이죠.

저는 한미FTA는 다른 FTA와는 다르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와의 FTA는 비교적 피해가 작습니다. 그리고 장점이나 실익이 꽤 크죠.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그리고 로드맵에서도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 했던 것을 갑자기 앞당겨서 그렇게 속도를 올리는 걸 보고 저는 굉장히 큰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거죠.

지금 불과 1년 만에 타결까지 갔는데요. 어마어마한 속도죠. 이를테면 한일FTA나 한-싱가포르FTA의 전례를 보더라도 이건 과속입니다. 미국 TPA(무역촉진권한)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속도를 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시인의 표현에‘속도는 영혼을 망친다’는 게 있는데, 우리가 모든 일에 너무 속도를 내는 바람에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많이 생겨요. 지금은 심지어 노무현 때리기를 4년간 해온 보수언론들까지 앞장서서 찬양하고 있는데, 아마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면서 국민들도 본질을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참여정부에 대해서 지금까지 계속 옹호해왔고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고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미FTA는 방향이 크게 잘못됐고, 사실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4년간 일해오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반대로 돌리면서 자기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최태욱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다른 나라와 FTA를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중에서 특히 어떤 부작용을 걱정하세요?

이정우 한미FTA는 높은 단계의 통합입니다. 이를테면 관세철폐라든가 무역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제도나 정책, 법률까지 국내의 많은 제도틀의 수정을 요구합니다. 말하자면 심층통합을 요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미국의 소위‘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의 핵심입니다. 이런 과도한 요구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고 FTA를 맺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경제의 기본틀을 미국식으로 가져가겠다, 미국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경제가 바람직한 모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많은 단점이 있고, 미국 모델보다 좋은 모델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우리가 문제 많은 미국 모델에 동의하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그리로 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죠. 국가의 운명을 이렇게 다른 나라와의 조약을 통해서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저는 근본적으로 회의가 듭니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 헌법과 충돌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경제체제에 관한 몇가지 조항 중에는 시장경제 모델을 취하면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내용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산업의 피해나 이득, 예컨대 농업, 제약업의 피해, 자동차나 섬유의 이득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우리나라의 미래 체제를 결정하는 것인데 과연 이 길이 옳은 것이냐 하는 거죠. 오히려 지금보다 우선회하는 길로 가겠다는 것인데,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좌선회하는 길이 맞습니다. 좌선회란 북구형 모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온갖 시장경제의 실험이 있습니다. 그 실험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우수하다고 판명난 것이 제가 보기에는 북구 모델입니다. 한국에서 당장 실행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그쪽으로 가야 하고, 그 길이 먼 장래 우리의 이상일 텐데, 그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죠. 한미FTA는 그 길과 반대편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는 제일 아픈 점입니다. 한마디로‘꿈은 사라지고……’지요. 진보의 꿈을 포기하고 아주 삭막한, 비인간적인 미국 모델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정하자는 겁니다.

 

미국화가 우리의 살길인가

 

최태욱 미국식 FTA는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교역을 자유화하자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국의 제도, 정책, 심지어는 관행까지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체제의 미국화, 따라서 우리 사회체제의 미국화로 갈 거라는 우려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이걸 추진하는 사람들은‘바로 그게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통상교섭본부나 재경부 고위관료들의 상당수가 그런 확신에 차 있는 것 같더군요. 말하자면 우리는 더이상 일본식이나 다른 식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가야 한다, 그게 민족의 미래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깥에서 보더라도 참여정부 초기에는 말씀대로 북구형 모델이 많이 연구됐고, 학계에서도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의 학자들이 사실은 그게 가장 나은 대안이라는 데 동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미FTA가 북구형이 아니라 미국형으로 가는 거라고 한다면, 참여정부 내에 있었던 미국형 모델과 북구형 모델의 갈등과 대립에서 결국 미국형 모델이 승리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옳은 건가요?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승리의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웃음)

이정우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제가 참여정부 초기에 일했기 때문에 전반기 참여정부 안의 분위기는 알 수 있는데요. 학자들과 관료들 사이에 그런 생각의 차이는 분명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좀더 진보적·이상적이고, 관료들은 좀더 보수적·시장지향적이고……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제가 만난 일부 관료는 아주 개혁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아주 적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훈련받은 관료들이 많죠. 통상이나 경제부서에 특히 많습니다. 그분들은 굉장히 유능한데 미국에서 훈련받은 까닭에 미국식 주류경제학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미국식 시장모델은 실현가능한 전체 시장경제 모델 중 일부일 뿐이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문제점이 매우 많은 모델입니다. 그런데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교재는 시장주의가 이상적인 것처럼 아주 치밀한 논리로, 휘황찬란한 논리로 사람들의 혼을 빼죠. 거기서 훈련받은 경제·통상관료들은 혹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모델의 장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혁신역량이나, 성장, 고용, 일자리 창출, 이런 것은 미국경제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워낙 짙기 때문에 우리가 쉽사리 취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닙니다. 그런데 관료들이 미국에서 훈련받으면서 거기에 너무 반해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과거의 한국 발전모델, 박정희식 관치경제하에서야 시장주의가 오히려 이단이었죠. 이를테면 김재익(金在益) 경제수석이 처음에 시장원리를 주장했을 때는 이단으로 몰려 관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공공의 적’처럼 되었다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지금은 정반대로 시장주의가 판을 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단이 되는 구도입니다.

참여정부 전반기에는 학자와 관료 들의 두가지 철학이 그런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어느 한쪽도 우위를 점하지 않고 건설적인 경쟁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됐어야 하는데, 후반기에 와서는 급속히 학자들이 퇴조하고 관료들이 힘을 얻으면서 시장주의가 다시 확실한 우위를 차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태욱 한국의 경제체제가 미국화된다고 할 때 일반 시민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양극화입니다. 한미FTA로 인해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서 처음에는 정부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은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소 조심스럽게 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더욱 공세적으로 오히려 한미FTA를 통해서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점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정우 그렇습니다. 대통령도 그런 발언을 했더라고요.‘농업과 제약업은 확실히 피해를 보는데 그것말고 피해를 보는 분야가 어딨느냐? 그리고 양극화가 심해진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뭐냐?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못하더라’하는 얘기를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습니다. 양극화가 되는 건 어느 특정 분야, 이를테면 농업, 제약업 분야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생길 수도 있고요. 그보다는 오히려 중요한 것이 미국 체제가 갖는 성격이죠. 미국식 경제체제의 특징은 혁신속도가 빠르고 R&D가 뛰어나고 비교적 경제성장이 괜찮은 편이라는 것이에요. 북구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프랑스, 이딸리아, 독일 같은 유럽 나라에 비해서는 높습니다. 특히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미국의 별명이‘the great job machine’입니다. 일자리 만드는 기계라는 거죠.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소득분배가 OECD국가 중에서도 가장 나쁜 편에 속하고, 고소득국가지만 빈곤층이 15% 내외나 됩니다. 그리고 사회보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거지들이 길거리의 벤치에 누워 있는 살벌한 풍경이 나타나죠. 거기다가 최근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도 있었지만 범죄가 굉장히 많은 나라거든요. 미국 성인남자 노동력 중에 100만명이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은 실업률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감옥에 있는 100만명의 성인남자를 생각하면 결코 낮은 게 아니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회연대가 취약하고 모래부스러기 같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살 만한 좋은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어요. 양극화가 가장 심한 체제가 미국식 시장체제입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그걸 강요당할 텐데 한미FTA를 하고 나면 관세나 무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정책, 모두가 미국식으로 갑니다. 특히 위험한 게 투자자-국가 제소권이죠. 이것이 독사의 이빨처럼 앞에 딱 버티고 있는 겁니다.‘그게 몇건 안되지 않느냐?’하고 이야기하는 관료들을 봤습니다. 건수로는 수십건에 불과하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독사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노려보고 있기 때문에 이쪽에서 움츠러드는 겁니다. 독사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 미리 조심하고 눈치를 보는‘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정책, 제도를 만들고 우리끼리 토론해서 정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없는 거죠. 제도 하나 바꿀 때도 미국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꾸 미국식 모델로 가게 되는 것이죠. 그게 가장 안타까운 것이고 한미FTA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대통령은 양극화가 어디에서 오느냐, 답답하다고 하는데 양극화는 미국식 모델에서 태생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미국은 지난 30년간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그레이트 유턴’(Great U-Turn)이라고 해서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30년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하고 빈곤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그 체질을 우리가 닮게 된다면 앞으로 양극화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그것이 한미FTA가 우리나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를 벗어나는 차원입니다.

 

진정 배포있는 대통령이라면……

 

최태욱 한덕수(韓悳洙) 총리가 한미FTA체결지원위원장이었을 때 한 토론회에서 만났는데 회의 후에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국내 피해와 관련해서는 참여정부의‘비전2030’같은 것이 있다고요. 선생님께서도 청와대에 계실 때 동반성장 정책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지요.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성장과 분배를 같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동반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위‘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를 보장해주는 기제나 제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개방으로 인한 추가이득이 특정 부문에 생길 경우 이것을 여타 부문으로‘흘러내려가게’해주는 장치나 구조가 필요하다는 거죠. 우리나라에도 대기업이 더 벌면 중소기업도 덩달아 더 벌게 되고, 교역부문이 커지면 비교역부문도 그만큼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일어나는 조세정책이나 복지정책 등이 확립돼야 할 겁니다. 한덕수 총리나 정부에서 한미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은‘비전2030’등을 통해 이런 식의 트리클다운 효과를 한미FTA발효 이후에도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 말대로 한미FTA시대에도 여전히 동반성장은 가능한 걸까요?

이정우 ‘비전2030’은 좋은 계획이죠. 전에는 없었던, 우리 정부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계획이라고 봅니다. 높이 평가할 만하죠. 문제는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것이고,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느냐의 문제가 아직 해결 안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 계획 자체도 아주 최소한의 것입니다. 서구식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최소한이라서 저걸 갖고 되겠나 싶은데, 국내에서는 보수파들이 계속 반대하고 초를 치고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실현이 어려워 보이는 거죠. 이런 현실에서 한미FTA라는 거대한 해일이 밀어닥칠 텐데요. 이 해일에 대한 방파제로서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아직 형편없이 부족합니다. 미국도 선진국 중에서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나라이고, 사실 FTA를 많이 맺을 자격이 부족한 나라입니다. 사회안전망 없이 FTA를 맺는 것은 위험한 겁니다. 미국도 그러한데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실한 방파제를 갖고 거대한 해일에 맞서 무조건 개방하자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개방은 대개는 옳은 방향이지만 만능은 아닙니다. 대상, 속도, 정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한미FTA반대를 쇄국론으로 치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최태욱 선생님께서 방금 핵심은 재원 마련인데 그 해결책이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고 하셨잖아요? 그와 관련해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일전에‘한미FTA는 반드시 필요한데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아마 나 아니면 이런 걸 할 대통령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는‘저렇게 배포있는 대통령이라면 한미FTA가 아니라 조세개혁을 확실하게 해놓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원 마련의 핵심인 조세개혁이야말로 누구에게서나 욕을 먹는 일이니까 모든 정부가 다 꺼려왔지 않습니까? 현정부도 증세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고작 했던 게 간접세 인상이었습니다. 담배세와 소주세 인상 같은 조치를 보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대통령이 한미FTA를 처음 언급한 2006년 신년연설을 들었을 때도 사실 전반적으로는 조세개혁 얘기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엉뚱하게도 한미FTA체결 필요성으로 끝이 나더군요.

이정우 ‘비전2030’이 나오면서 2005년 하반기엔 증세논쟁이 벌어지죠. 증세냐 감세냐 했는데…… 증세로 치고 나갈 거냐? 그건 욕을 많이 먹는 건데요. 세금 좋아하는 국민이 없으니까 인기가 떨어지겠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그런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증세 이야기는 그냥 실종되고 갑자기 한미FTA로 가버렸어요.

최태욱 그게 제일 답답한 부분이에요.

 

비관세장벽이 버티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이정우 네. 그래서 지금 한미FTA타결을 보면서 아까 제가 근본적인 문제점을 얘기했고요.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얘기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 정도라도 막아냈다면 그 공로의 상당부분은 한미FTA를 반대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봅니다. 직접 협상을 했던 사람들의 수고도 물론 인정하지만, 밖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저 정도까지도 못 갔을 거라고 봅니다.

 

ⓒ이영균

ⓒ이영균

 

그다음에 또 하나는 관세 철폐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요. 농업이다, 자동차다, 섬유다 하면서 관세장벽 얘기를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이 비관세장벽입니다. 알다시피 무역장벽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이죠. 비중에서 보면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이 거의 반반이에요. 일본 같은 나라는 비관세장벽이 오히려 더 높죠. 그런데 한미FTA를 보면 관세는 낮추기로 합의가 됐는데 비관세장벽은 미국이 낮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역구제, 소위 반덤핑관세, 그리고 상계관세(相計關稅), 쎄이프가드, 그런 것들입니다. 이걸 손을 못 댔습니다. 그게 사실은 문제투성이고 미국이기주의가 관철되고 있는 불합리의 온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미국은 온갖 억지를 갖다붙여서 다른 나라의 수출을 방해합니다. 말로는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정말 보호무역의 거대한 온상을 마련해놓고 있는 거죠. 거기에 대해 손을 못 댔고, 겨우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만든다는 정도입니다. 고작 표피만 긁고 만 것인데, 그렇게 해서 저 무시무시한, 수십 수백 퍼센트의 관세를 때리는 상계관세, 반덤핑, 저런 걸 어떻게 이겨내겠습니까? 그걸 또 어떤 사람들은‘몇건 안되지 않느냐? 1년에 수십건 정도 아니냐?’하는데, 물론 전체 무역에서 액수로 보면 1%가 안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걸 보고 이쪽에서 겁을 내서 역시 위축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캐나다하고도 미국이 그런 위원회를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결정이 났는데도 미국은 그걸 무시하고 안 듣는 나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오만하죠. 항상 시장을 얘기하고 자유무역을 떠들지만 뒤로는 엉뚱한 짓을 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 본질을 잘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섬유도 그렇습니다. 가장 이득을 볼 분야가 섬유, 자동차인데요. 섬유도 원산지 규정이 문젭니다. 원산지 규정은 한마디로 복마전입니다. NAFTA의 원산지 규정만 책으로 200페이지라고 하는데요. 그 복잡한 조항들을 한국에서 섬유업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파악해서 헤쳐나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겁니다. 섬유분야의 관세 10%가 없어져서 수출이 많이 늘어날 거다 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지요. 실제 복병은 그런 원산지 규정에 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인가

 

최태욱 이제 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현정부의 임기가 1년이 채 안 남아서 그런지 평가작업을 하는 팀들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단언하는 분들도 있고,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다소 있는 정부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성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애초에 노무현정부를 지지하고 탄생시켰던 진보개혁 성향의 사람들이 바랐던 것은 형평성, 동반성장,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의 가치가 좀더 강조되는 세상이었는데, 왜 그런 정부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졌을까요?

이정우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죠. 보수 쪽에서는 좌파라고 그랬고, 또 진보 쪽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는데 저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시민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에 저는 주로 시장만능주의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둘 다 틀렸고 참여정부는 중간쯤 되는 정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중간쯤 가는 것도 과거로부터는 크게 노선을 선회한 것이지요.

최태욱 그나마도요?

이정우 네. 국민의정부 때 IMF의 압력에 의해서 확실히 시장만능주의로 갔고, 그것을 다소 수정해서 시장의 폭력을 제어하고…… 사실 박정희정부 때부터 거의 40년간 성장일변도였거든요. 뒤를 이은 모든 정부가 성장일변도였는데 성장과 분배의 조화, 혹은 동반성장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는 크게 노선을 선회한 것이죠. 그렇다고 그게 분배 위주의 좌파로 간 것은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중도적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가 우파 일색이고, 그것도 그전에는 아주 극우파적인 정부였는데, 비로소 최초로 등장한 중도적 정부가 참여정부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문제는 한미FTA로 인해서 이것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죠. 그래서 참여정부의 근본적인 철학 자체가 지금은 애매모호해졌다고 봅니다. 4년간 지탱해온 큰 철학이 있었는데, 그 철학이 앞으로 한미FTA라는 해일을 맞아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장만능주의로 갔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이제는 별로 할 말이 없겠구나, 그 점이 참 걱정입니다.

최태욱 그간 제가 여기저기서 선생님 인터뷰를 봤을 때 그래도 끝까지 참여정부를 옹호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시장만능주의는 아니다,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이런 입장이셨는데 이제는 한미FTA때문에 더이상 그렇게도 말씀하실 수는 없다는 거죠?

이정우 그렇죠. 국내에서 아무리 노력하고‘비전2030’을 실행하더라도 한미FTA라는 해일이 시장만능주의를 강요하는데 이걸 막아설 장사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건 참여정부의 자기부정이 아니냐고 보는 겁니다.

최태욱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것이죠?

이정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전반기에는 학자와 관료 사이의 균형, 선의의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토론정부라고 불렸는데요. 그런 식으로 토론을 많이 한 것도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죠. 아주 좋았고 바람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위원회가 있어서 위원회공화국이라고도 불렸는데 그게 희망이었죠.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해가는 데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서 해나간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는 아무도 토론정부라고 부르지 않고 위원회도 힘을 잃고 있어요. 원래대로 돌아간 거죠. 관료 우위라는 용수철이 제자리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태욱 여태까지 노무현 대통령처럼 개혁지향적인 대통령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결국 관료 우위로 복귀했다는 것은 역시 인물 변수보다는 구조나 제도 변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제도개혁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죠.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문제일 수도 있고요. 설령 앞으로 노대통령보다 훨씬 개혁지향적인 대통령이 나온다 할지라도 기껏 3, 4년 후에는 다시 관료 우위 구조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면 인물 변화에 희망을 걸 것이 아니라 제도개혁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관료제-흘러가는 물과 남아 있는 돌

 

이정우 상당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참여정부가 위원회공화국 혹은 토론정부, 이렇게 불릴 수 있었던 건 참 바람직했고 큰 진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해방후 최초의 사림파 정부’라고 불렀습니다. 그전에는 관료들이 항상 우위에 있었죠.

조선시대를 예로 들어보죠. 지방의 군수나 감사는 정치적으로 임명됩니다. 대부분은 부패했지만 그중에 개혁적인 사람도 더러 있죠. 이들이 부임하면 거기에 아전이라 불리는 토착관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원님은 위에 흐르는 물이요, 우리들은 강 밑의 돌이다. 물은 흘러가고 돌은 그대로 남는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아무리 개혁적인 군수나 원님이 가더라도 토착세력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거죠. 시간만 지나면 물은 그냥 흘러간다는 겁니다. 그것을 가리켜 숙습난당(熟習難當)이라고 합니다. 요새 말로 하면 전문성에는 못 당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개혁적으로 뭘 고쳐보려고 해도 아전들이 “그건 안됩니다. 그건 관례가 이렇고, 경국대전에 뭐가 걸리고……” 하면 못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관료체제의 본질이 숙습난당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료들이 갖는 전문성은 대단합니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수십년 일해왔거든요. 법률, 제도, 관행, 사람까지 꿰차고 있습니다.

인수위 때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학자들이 이번에 처음으로 인수위에 포진했잖아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6개월을 못 갈 거다. 누가 이기나 보자” 그렇게 큰소리치는 관료가 있었답니다. DJ정부 때도 일부 학자들이 개혁청사진을 내걸었지만 6개월 이상 못 가고 다 밀려났거든요. 참여정부 인수위가 두번째 인수위인데, 거의 학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6개월 이상 갔습니다. 실제 2, 3년 갔습니다. 학자들이 많은 부처와 위원회에 포진하고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반기에는 그런대로 균형이 있었다고 한 겁니다. 학자들이 실무적 전문성은 약하지만 학자들의 장점은 철학입니다.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을 향해서 타협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의지가 있는 거죠. 그런데 후반에 와서 학자들이 거의 물러났어요. 위원회에 일부 남아 있지만 불행하게도 힘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뭔가 제도개혁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최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헌논의가 나오다가 들어갔습니다만, 저는 한미FTA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지만 개헌에 대해서는 대통령 생각과 같습니다. 지금 같은 체제로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는 것은 엄청난 낭비이자 불합리라고 생각합니다. 불합리 그 자체죠. 그런 면에서 개혁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물론 단점이 있죠. 특히 한국의 재벌체제하에서 금권정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는 대통령제가 낫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내각책임제를 해서 장관들은 전부 개혁적인 인사로 앉히고…… 이것이 오히려 책임정치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참여정부가 초기에 꽤 개혁적인 인물을 많이 발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합니다. 특히 관료제, 관료들의 충원과정, 행정고시라는 오래된 일본식 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저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행정고시 폐지까지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관료제의 폐단을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법률시험, 경제학시험을 쳐서 관료를 뽑는 나라가 지구상에 별로 없을 겁니다.

최태욱 숙습난당이라는 말이 사태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미FTA의 급한 불이 꺼지면 이런 제도개혁 문제에 대해서 범사회적 논의가 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도개혁과 관련해서 더 깊이 여쭙고 싶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 더 자세히 논의할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제도개혁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념적인 고민에 빠진 분들도 많습니다. 좀더 공동체적이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제도화될 수 있는 국가의 구성에 대한 꿈들을 여전히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 사이에 대안정부 모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만, 사회투자국가론이니 신진보주의니 하는 논의들이 여럿 나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셨을 때 선생님께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 혹은 아직은 미진하지만 그 방향은 제대로 잡힌 것 같다든가 하는 것들이 혹시 있으신지요?

 

진보무능론과 우리 사회 대안모델

 

이정우 저도 관심을 갖고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대안모델이 백화제방, 백가쟁명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고요. 많은 모델이 서로 경쟁해서 끊임없이 토론하다 보면 어떤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요. 논의를 보면서 받는 느낌은 이게 다 하나씩 일리가 있구나 하는 겁니다. 이 모델은 이 측면을 강조하고 저 모델은 저 측면을 강조하는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현재 우리가 빠져 있는 성장지상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왼쪽으로 가야 할 것은 분명하고요.

저는 앞의 모델들 전부가 부속품이 되어서 들어오는 그런 나라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해요. 사회투자국가는 복지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죠. 물론 옳은 말이고 필요하죠. 또 신진보주의에서 혁신과 연대, 개방, 이런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도 옳습니다.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이런 것도 다 옳은 것이고 필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그런 것이 다 부족했죠. 우리나라는 해방후 60년 동안 우파 일색이었고, 그 과정에서 좌파가 절멸되다시피 했습니다. 전부 감옥 가고 고문당하고 인권이나 사상의 자유가 없었죠. 절멸된 좌파의 가치를 조금씩 살려나가는 게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이고, 그것이 비로소 다른 선진국들과 비슷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진보무능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그건 틀린 생각이라고 봅니다. 진보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무능한 것은 우파죠. 우파가 우리나라를 이렇게 기형적으로 몰고 갔고,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겁니다. 비로소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에서 약간의 진보적 가치가 새싹이 움트고 있고, 이제 비로소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균형잡힌 사회로 가려는 첫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대해서 진보의 무능을 얘기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보지 못하는 거죠. 그러면 그 참혹했던 시절이 유능했다는 겁니까?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진보는 유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희망입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그래서 여러 모델에 대해서 저는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고 각각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사회에 다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의 어느 한 모델로 좁힐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최태욱 선생님께서는 노동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으실 텐데, 노동과 관련해서 대안모델에 대해 특별히 말씀하실 게 없으신가요?

이정우 노동에 대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사회적 대화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제가 2003년에 네덜란드 모델의 장점을 한번 얘기했다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엄청나게 두드려맞았는데, 나중에 스크랩해놓은 걸 보니까 한달 동안 계속 얻어맞았더라고요. 정상이 아니죠. 우스운 것은 저를 그렇게 공격했던 보수언론이 한두해 뒤에는 그런 네덜란드식 모델을 해야 한다는 식의 기획기사를 싣더라고요. 그러니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사람들입니까?

바로 네덜란드 모형의 핵심이 사회적 대화입니다. 1982년 사회적 대타협이 있기 전 네덜란드의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노사간 대화가 단절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적자도 쌓이고 경쟁력을 상실하고 노동조합은 양보하지 않고…… 그런 위기상황에서 노총위원장 빔 콕(Wim Kok)의 결단이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바쎄나르협약(Wassenaar Arrangement)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이 나온 것이죠. 그것이 네덜란드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가 생기고 경쟁력이 회복되었습니다.

그후에 나온 아일랜드 사회협약도 성공적이죠. 아일랜드는 지금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놀랍게도 영국을 추월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오랜 앙숙이자 아주 쓰라린 역사를 공유하고 있죠. 그런 아일랜드가 영국의 국민소득을 앞질렀다는 건 획기적인 일이지요. 아일랜드는 그걸 기념해서 높다란 첨탑을 세웠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런데 그 비결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결국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계속해온 사회적 대타협에 있는 거죠. 모든 사회구성원이 한발씩 양보하면서 나라를 살리는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 안에서도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아직은 진보정당이 약하다, 노조조직률이 아직 10%밖에 안된다 같은 얘기들인데, 저는 객관적인 조건이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가능한가

 

최태욱 주체의 문제가 제기되는군요.

이정우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의지입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노사정 삼자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정부의 의지이고,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의지이지요. 그다음에 노사는 많은 대립이 있고 갈등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걸 헤쳐나가서 결국 어떤 타협에 도달할 가능성이 지금 무르익었다고 생각합니다.

최태욱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성공적이지 못했고, 노무현정부에서도‘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그것 역시 별 진전이 없었죠.

이정우 그렇죠. 대통령이 나서지 않고 총리한테 맡겼는데,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총리보다는 대통령이 나서야 일이 되는 그런 상황이죠.

최태욱 사회적 대타협이 한국 상황에서는 힘들 거라는 일부 진보진영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셨는데, 사실 실력있는 진보정당이 없을 경우 입법과정이나 정책결정과정에서 노동 등 사회경제적 약자집단의 이익이나 선호 반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타협의 장을 마련하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이 아닐까요? 자신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사회적 대화의 장에 적극 나설 집단들은 사실상 별로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설령 그럴지라도 우리 권력구조에서는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나서면, 이를테면‘타협의 결과가 현실화되는 것은 대통령인 내가 보장한다, 그러니까 타협의 장으로 들어와라’라는 식으로 하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이정우 그것도 중요하고, 또다른 측면으로 우리나라에는 다른 선진국에 없는 유리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NGO입니다. 아주 강력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NGO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주체로 들어올 수 있고, 들어오면서 국민여론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언제까지 싸울 거냐? 우리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이제는 타협하고 나라를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이렇게 호소하면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렇게 대통령이 나서고 NGO들이 나서면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이고요. 그러면 노조나 경영자들도 자기의 이기적인 주장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지죠. 대한민국은 그렇게 해서 개혁되는 게 많습니다. 그게 선진국에 없는 조건이죠.

최태욱 혹시 청와대 내부에서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으로 사회적 대타협에 관한 어떤 제안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이정우 구체적으로 제안하지는 못했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그 중요성,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일의 당사자는 사실 노동부장관이었겠죠. 그런데 노동부장관을 제치고 제가 나서서 일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최태욱 대안모델 얘기가 하도 많이 나오니까 요즘은 일부에서‘무슨 또다른 대안을 만들려고 하느냐, 원래 있는 사회민주주의로 가면 되는 게 아니냐’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 의하면 사회투자국가니 신진보주의니 하는 것들이 사실 다 아류를 만들려고 하는 것뿐인데 제대로 된 사민주의 한번 못해본 우리가 사민주의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남들 소리만 듣고 아무런 검증 없이 그들을 따라 곧바로 개량주의로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민주의,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정우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사민주의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또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실험을 해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대안적 모델이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있고, 사회주의는 반세기 만에 실패로 끝났지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안이 사민주의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도 충분히 도입할 만하죠.

독일에서는 100년 전에 이미 사민당 투표지지율이 3분의 1에 달했거든요. 탄생하자마자 얼마 안돼서 3분의 1의 지지를 얻을 정도였고, 스웨덴 같은 나라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 벌써 사민당이 집권합니다. 그런데 21세기 초에 와 있는 대한민국이 100년 전의 독일이나 70년 전의 스웨덴보다도 못하고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언제 된다는 겁니까? 저는 사민주의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고, 특히 남북한이 지금처럼 대치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 필요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사민주의는 없었지만, 예컨대 1950년대 조봉암(曺奉岩) 선생의 진보당에 대해서 이미 국민들의 지지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국민의식만 탓하고 있을 일은 아니지요. NGO의 성장, 이런 것만 보더라도 저는 우리 사회가 충분히 진보로 갈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까 한미FTA를 개탄하면서 북구 모델이 우리의 이상이고 그리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스웨덴을 한번 봅시다. 스웨덴과 우리는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이를테면 수출주도형 국가라는 점, 재벌중심형 경제라는 점이 같습니다. 그런데 경제체제는 거의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정반대죠. 스웨덴의 사민당이 1932년에 처음 집권해서 지금까지 70여년 동안 딱 네차례 정권을 잃고 나머지 60년 이상을 집권해왔습니다. 작년 가을 선거에서 진 것이 네번째 패배입니다. 임기가 3년이니까 과거에 9년, 이번까지 해서 12년째 정권을 잃는 셈인데, 스웨덴에서 사민당이 패배하자 우리 보수언론들이 살판났다는 식으로 아전인수식 기사를 써댔습니다. 사민당이 뭘 잘못해서, 북구형 복지국가가 한계에 도달해서 선거에서 진 게 아닙니다. 실제로 페르손(G. Persson)정부 집권기에 경제성적표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진 것은 사민당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탓이 아니라, 페르손 총리의 개인적인 실수, 이를테면 분에 넘치게 호화주택을 구입한다든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 이런 것들이 민심이반을 가져온 결정적 이유라고 제가 스웨덴에 가서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의 보수 연립정부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복지국가의 철폐, 후퇴가 절대 아닙니다. 2001년에 그렇게 했다가 참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민당보다도 복지정책을 더 잘하겠다고 약속하고 집권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복지국가의 실패라든가 사민당 좌파의 실패,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우리 보수언론은 오보를 내서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 2, 30년간의 경제성적표를 놓고 봤을 때 제일 성적이 좋은 나라가 북유럽입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같은 나라들이 최고 성적을 차지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몇년 전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선호도 1위가 북유럽형 사민주의로 나왔습니다. 또 최근에 유럽에서 국민들 상대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덴마크가 1위고, 그밖의 북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상위 5위 안에 들었습니다. 이런 걸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명백히 그쪽이에요.

스웨덴 이야기로 되돌아가보면, 보수당이 집권했던 그 9년 동안의 경제성적표가 사민당 때보다 못합니다.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수출경쟁력도 약해지고 노사분규가 심해집니다. 스웨덴 노조가 90%의 조직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막강한 힘을 가진 노조가 평소에는 그러지 않다가 주로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힘을 사용하죠. 그래서 노사분규가 심해지고 임금도 많이 오르고 해서 경제가 나빠지면 정권이 다시 사민당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지난 70년간 쭉 왔는데, 스웨덴의 성공을 보더라도 우리의 길은 역시 사회적 대화를 통한 길이고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성장과 분배를 조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렌베리(Wallenberg)라는 거대한 재벌이 있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습니다. 우리 재계에서 걸핏하면 국민이 반(反)기업 정서가 너무 심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반악덕기업가 정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기업인의 뇌물, 방탕, 정치개입 같은 건 스웨덴의 발렌베리에서는 상상할 수 없죠. 발렌베리가 지금 5대째 최고 재벌의 위치에 있지만 아주 서민적으로 살거든요. 사치, 방탕과는 거리가 멉니다. 평범한 옷 입고 경호원 없이 주말에는 직접 자동차를 몰아요. 마을 반상회에 참석하고, 학부모로서 학교 사친회에도 참석합니다. 친근한 이웃으로 행동하는 거죠. 그러니까 존경받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재벌이 있다면 왜 국민들이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북유럽식 사민주의 모델의 한반도적 유효성?

 

최태욱 스웨덴식 사민주의를 우리의 모델로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의 한반도적 유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반도적 유효성이라고 할 때는 북한 변수를 어떻게 인식하고 취급할 것인가, 분단체제하의 남한에서 그걸 적용한다는 게 어떤 식으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등의 의미입니다.

이정우 북한은 지구상에 넷밖에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고,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좌파 국가인데, 지금 한국은 가장 우파적인 경제모델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극과 극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두 체제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겁니다. 독일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거예요. 그 때문에라도 한걸음씩 중간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간이라는 것이 스웨덴식 사민주의가 아니겠어요. 한국의 경제체제도 지금보다는 훨씬 왼쪽으로 가고, 북한의 극단적 사회주의도 훨씬 오른쪽으로 오고…… 그쪽에서는 우선회이고 우리로서는 좌선회죠. 그렇게 해서 중간에서 만날 수 있다면 실현가능한 경제통합의 길로 가기가 좀더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때 얘기인데, 그가 뻬레스뜨로이까, 글라스노스쯔를 할 때 실제로 스웨덴을 소련의 미래모델 후보로 생각하고 시찰단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나중의 결과는 개혁에 실패하고 엉뚱한 경로로 갔지만 한때는 그런 시도를 했었습니다.

최태욱 스웨덴식 모델을 어떤 사회에 적용할 때, 이를테면 분단상태에 있는 우리의 현실에 그 모델을 적용할 때 그것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선생님께선 남한이 약간 왼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수 있지요. 분단의 제약 때문에 조금 왼쪽으로 가는 것조차 여지없이 공격을 받거든요. 그런 상황에서는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방식과 한국의 모델을 찾는 것이 함께 가야 할 문제가 아니냐 하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정우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겠죠.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수십년 걸리는 일이라고 봅니다. 수많은 반대와 부작용이 생기고 숱하게 돌에 걸려 넘어질 텐데, 그래도 스웨덴 모델의 장점으로 보나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숙제로 보나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북한도 2002년 7·1개혁 이후로 그래도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해서 조금씩 성공하고 있고 개성공단도 하고 있잖아요? 북한도 개혁개방만이 살길이지요. 지금까지는 그래도 현실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대안이 스웨덴식 사민주의이기 때문에 그걸 우리의 먼 미래로, 5년, 10년 걸리는 일이 아니라 수십년 걸린다고 보고 그런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바다를 항해할 때 별을 보고 가야 길을 잃지 않듯이 말이에요. 당장 된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런데 한미FTA로 인해서 그 반대방향으로 틀었기 때문에 저는 성장위주, 시장만능주의가 다시 발호하지 않을까, 그리고 모처럼 남북화해와 동북아시대를 표방했는데, 이제까지 거의 친미사대주의에 가깝던 전략도 동북아시대론 같은 좋은 방향으로 틀었고 그런 면에서 보면 아주 큰 진전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대미편향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해서 걱정이 많습니다.

최태욱 사민주의식 발전과 관련해서 선생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아마 이런 데 대한 갈증이 있어서인지 진보정당이 하나 더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천정배(千正培) 의원의 민생정치모임과 김근태(金槿泰) 의원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여기에 속한 의원들의 수를 합치면 스물댓명 되지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와‘창조한국 미래구상’이 하나로 합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합친 시민단체가 앞장서고 민생정치모임과 민평련의 기성 정치가들이 거기에 합세해서 진보정당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들이 사민주의로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정우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사민주의를 내건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죠. 학자로서 개인적으로 그걸 지지하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들이 그걸 정강(政綱)으로 내거는 건 조봉암 선생의 비극을 보더라도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많이 민주화되고 자유가 신장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레드콤플렉스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런 사민주의를 내거는 정당이 생긴다면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5년, 10년 뒤에는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속도가 굉장히 빠르고요. 국민들이 마음속 깊이 갈망하는 게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참 살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GDP순위 11위임에도 불구하고 살기 어려운 나라인 것을 숫자로 한번 보여드릴게요.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가 6백몇십만명이에요. 정규직이 7백여만명 되지 싶고, 비정규직이 8백만명이 넘습니다. 숫자가 엇비슷하니까 편의상 3등분해봅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 중에 정규직으로 비교적 안정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3분의 1밖에 안된다는 뜻입니다. 나머지가 비정규직이거나 영세자영업에 몰려 있습니다. 이 두 집단이 참 살기가 어렵고 불안하죠.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3분의 2나 된다는 겁니다. 도소매업, 식당, 택시, 미장원, 이런 쪽에 취업자의 37%가 몰려 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이게 누구 책임이냐? 역대 정부가 그냥 방치한 결과죠. 수십년 쌓인 결과입니다. 노상 성장만 부르짖었지 이렇게 되도록 역대 정부가 뭘 했습니까? 비정규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요. IMF환란 이후에 10년간 급증해서 8백만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나라를 한번 볼까요? 선진국에서는 비교적 안정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정규직이 대체로 70%가 넘습니다. 나머지 자영업자들이 15% 내외가 있을 것 같고요. 비정규직이 15%쯤 있을 겁니다. 그것이 다른 OECD국가들의 모습이죠.

최태욱 우리나라는 참으로 불안한 사회네요.

이정우 그렇죠. 비정규직은 1년 뒤를 기약할 수 없어요. 자영업자들은 매일의 삶이 고통입니다. 장사 안되고 손님이 없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사회가 되어버렸는데, GDP 2만달러, 3만달러보다 훨씬 중요한 게 이런 문제죠. 우파는 입만 열면 성장, 시장, 이 두가지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데요. 성장, 시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최태욱 이 불안사회가 소득불평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님께서 소득격차 못지않게 강조하시는 게 자산격차의 문제 아닙니까?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같은 분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선구자인데, 선생님은 관련 저서를 내기도 하셨죠. 우리 사회에서 자산격차 문제가 계속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헨리 조지 사상과 관련해서는 이것이 정책적으로 현실성이 있나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이정우 헨리 조지 사상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죠. 핵심은 토지가치세제인데요. 토지가치에 대해서 과세하고 지대만큼을 세금으로 환수하면 불로소득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면 빈곤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빈부격차나 빈곤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으므로,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입니다. 세금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금이 토지가치세입니다. 세금을 평가하는 기준이 형평과 효율 두가지인데, 두가지 관점에서 세금을 평가했을 때 토지가치세가 가장 우수합니다. 왜냐하면 토지세는 경제적 부작용이 가장 작아서 효율성 면에서 우수하고요, 형평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돈 많은 지주들한테서 세금을 거두기 때문에 대단히 공평한 세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을 싫어하고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조차도 “세금 중에서도 가장 덜 나쁜 세금은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신을 도입한 것이 말하자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같은 것입니다. 이게 가장 좋은 세금이고요. 이걸 늘리는 대신에 나쁜 세금들을 줄여줄 필요가 있죠. 토지거래세, 즉 취득세, 등록세는 우리나라가 굉장히 높으니 줄여야 하고요. 나아가서는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다른 세금도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줄여줄 수 있으면 좋죠. 종부세가 바람직한 세금이라는 건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언론, 보수학자 들은 기회만 있으면 트집을 잡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관성을 유지했고 기본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의 사투 끝에 이제 투기라는 괴물에 대해서 희미하지만 승산이 보이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건 대단한 업적입니다. 왜냐하면 역대 정부 중 누구도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태욱 지금까지 제가 선생님 말씀을 직간접적으로 들었던 것 중에서 이번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에 대해 가장 심하게 비판하신 것 같은데,(웃음) 그래도 부동산정책은 평가해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참여정부의 역사적 평가와 한미FTA의 전망

 

이정우 부동산정책뿐 아니라 사실 평가할 건 많죠. 균형발전이라든가……

최태욱 네, 그 몇가지를 말씀해주시죠.

이정우 경제적으로 보면 부동산정책을 일관성있게 잘했고요. 균형발전, 역대 어느 정부도 못했던 행정수도나 공공기관 180개 이전이라든가 혁신클러스터 등은 굉장히 잘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성과가 충분히 난 건 아니고 이걸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가 계승해나가야 성과가 날 겁니다. 그리고 경제정책 면에서도 인위적 경기부양을 자제한 것, 모르핀주사 안 놓고 욕먹으면서도 버틴 것, 그런 건 잘했습니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 정치개혁, 부패추방, 깨끗한 선거,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이 노대통령의 업적입니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꿈도 못 꿨던 일을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해낸 것이죠.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과거사 정리작업도 그렇구요. 민주정부라면 진작 했어야죠. 이것을 이승만, 박정희정부 때 방해받고 못했지요. 6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하고 있는 건 이제 제대로 된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겁니다. 이건 앞으로의 장구한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이론의 여지 없이 아주 잘한 겁니다. 경제도 중요하고 GDP도 중요하지만, 저는 역사 바로 세우기,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경험을 잠깐 얘기한다면, 제가 일하고 있는 도중에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보고서가 나왔고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서 최초로 사과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서울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보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는 걸 듣고 청중석에 앉아 있던 어떤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서 “내 생전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나오더라구요. 그때가 제가 참여정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최태욱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역대 정부 중에서 그래도 가장 개혁적이었고, 특히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를 함께 도모한 첫 정부였다는 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아까 말씀하셨듯이 한미FTA로 자기부정의 길로 들어섰다고 안타까워하셨는데요. 어떻습니까? 지금 협상은 타결됐고 국내 비준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국회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겠고 그렇다면 시민사회에서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정우 타결되고 나니까 국민들의 지지율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찬반 비율이 그전에는 반반씩 나오다가 지금은 찬성 여론이 높죠. 대체로 우리 국민들은 정부가 고생해서 뭘 했으면 문제가 있어도 인정하고 일이 되도록 해야지 않느냐는 생각이 굉장히 강합니다. 뭐랄까, 실용주의적인 생각이죠. 웬만한 거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한미FTA는 예사 FTA가 아니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심각한 사태이기 때문에 저는‘일이 여기까지 왔으니까……’하면서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이걸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자동차를 많이 수출할 수 있나 보다. 일자리도 생기고 좋겠네’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 차원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려야 하고, 그래도 이것을 해야 할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국회에만 맡겨서는 안되죠. 지금까지 국회의 속성으로 봐서는 뚜렷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지 않고 눈치를 볼 겁니다. 마냥 허송세월을 할 텐데, 차라리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런 심각한 문제점들을 다 알리고 국민들이 판단하게 해서 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거죠. 다른 나라와의 FTA같으면 심층통합도 아니고 관세를 조정하는 정도라 심각한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면 충분하겠죠. 그러나 한미FTA는 헌법을 뛰어넘는 정도로 그 파급력이 강하기 때문에 헌법개정할 때 국민투표에 부치듯이 이것도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최태욱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체결하기로 한 것은 결국‘자기부정’이라고 규정하던 이정우 교수의 낮은 목소리가 오래도록 귀에 남는다. 그 자신이 주도세력으로 몸담았던 정부를 그렇게밖에 평가할 수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야속했으리라. 오죽하면 “꿈은 사라지고……”라며 자신의 아픔을 토로했을까.

한편, 다른 귓가엔 그의 힘찬 목소리도 남아 있다. 그때 그는 북구형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장만능주의의 압력과 유혹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 그는 우리 땅에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그런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강력하고 헌신적인 우리의 NGO들 덕분에 성사가능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더구나 사민주의체제는 경제통합을 향한 남한과 북한의 행보를 더욱 용이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해주리라는 제도론적인 분단체제 해소방안도 들려주었다.

그의 한탄과 희망의 목소리, 어느 쪽이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일까? 국내비준 과정을 통과하여 한미FTA가 결국 발효되고 만다면 정말 진보의 꿈은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미FTA는 막아야 할 텐데, 그것은 무엇으로 가능한 일일까? 혹시 막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한미FTA시대가 도래한다면, 그 조건하에서라도 여전히 사민주의적 대안을 도모할 방안은 정녕 없는 것일까? 질문과 질문이 꼬리를 이으며 그 사이사이 동일한 고민에 빠져 있을 동시대인들의 면면이 떠오른다.‘그래 그들을 만나자. 그들과 더 상의하자.’어차피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늘 새롭게 만들어오지 않았던가……